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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너목들 폐인’이 속출할 수밖에
기사입력 :[ 2013-07-17 15:42 ]


‘너의 목소리가 들려’ 신드롬, 우연이 아니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완벽한 여름 드라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쓸쓸한 감수성이 낙엽마냥 떨어지는 가을이나 이불 속에 들어앉아 인생이 뭔지 사랑이 뭔지 고민에 종종 빠져드는 추운 계절 겨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봄이라면 <너목들>보다는 더 달곰씁쓸한 전통멜로에 시청자들의 마음이 기울 것이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제목과는 달리 꽃샘추위와 따사로운 4월의 분위기가 공존하는 봄날에 어울리는 드라마였듯 말이다.

<너목들>이 여름의 드라마인 까닭은 시청자를 너무 슬프게 하거나 너무 피곤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꿉꿉한 장마와 지겨운 열대야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김이 날 것 같은 복잡한 이야기나 기가 빠질 만큼 독한 스토리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한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고 기분 좋게 달달하지만 팔뚝에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의 서늘한 이야기를 원한다. <너목들>이 바로 그러하다.

<너목들>은 한 잔의 쓰디 쓴 독주를 닮은 깊은 드라마는 아니다. 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힘은 깊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장르를 적정한 비율의 칵테일로 섞는 재주에 있다. 멜로, 학원물, 판타지, 법정드라마, 스릴러, 휴먼코미디, 홈드라마, 어설프지만 액션물의 맛도 조금 첨가. 마치 럼과 애플민트, 라임이 얼음 속에서 어우러져 시원하고 상큼하면서도 알코올의 맛을 톡톡히 내는 여름 칵테일 모히또처럼 말이다. 하지만 언뜻 쉬워 보이는 이 칵테일은 자칫하면 드라마가 산만해지거나 ‘병맛’ 드라마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에 딱 쉽다. 하지만 <너목들>은 초반부터 지금까지 여름에 어울리는 칵테일의 맛을 제법 잘 유지해왔다.

그 까닭은 우선 연출과 작가의 상호보완에 있다. <너목들>은 각각의 특성을 가진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뒤섞였다가 다시 흩어지곤 한다. 학원물과 멜로가 겹치고, 여기에 갑자기 초능력판타지가 가세해서 법정드라마로 옮겨갔다가, 홈드라마의 끈끈한 장면으로 훈훈해지다, 휴먼코미디의 분위기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찰나, 팔뚝에 소름 돋는 스릴러로 마무리를 하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각 장르를 적당히 배분하면서도 리듬감을 잃지 않는 작가의 능력이 꽤 중요하다. 장면전환이 빠른 시트콤 작업으로 예민한 감각을 익혔을 <너목들>의 박혜련 작가는 이 부분에서 다른 작가들에 비해 유연한 테크닉을 발휘한다. 반면 연출을 맡은 조수원 PD는 작가가 펼쳐 보이는 복잡한 요소들을 하나의 톤을 지닌 영상으로 꽉 잡아준다.

생각해 보자. <너목들>에서는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이야기들이 수많은 물고기들 마냥 재빠르게 지나간다. 하지만 <너목들>을 시청하는 이들은 수족관을 둘러보던 장혜성(이보영)과 박수하(이종석)처럼 나른하고 편안한 기분이 든다. 드라마 전체에 안정감이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각 장르의 대표적인 배우들을 데려왔기에 이야기의 호흡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학교3>로 교복 입은 꽃돌이의 상징이 된 이종석, 잘생겼지만 약간 모자란 듯해도 훈훈한 조연남 역할에 최적화된 윤상현, 홈드라마 억척 엄마 연기의 달인 김해숙, 이 드라마 이후 스릴러 악역의 얼굴마담이 될 것 같은 정웅인, 법정드라마의 재미와 무게를 동시에 실어주는 윤주상, 정동환, 김광규, 김병옥 같은 중견배우들까지. 그리고 거기에 더해 여주인공 이보영 역시 <내 딸 서영이>에 이어 두 번째로 변호사 역할을 맡으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대표작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중반에 이르면서 <너목들>이 던진 두 개의 장치 때문에 드라마의 시원하고 쓴맛은 다소 밍밍해져 버렸다. 하나는 민준국이 장혜성의 엄마를 죽이고 살인용의자로 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주인공 박수하의 기억상실, 그것도 교통사고로 인한 기억상실이다. 첫 번째 장치 때문에 이 드라마의 홈드라마 분위기는 완벽하게 깨졌다. 하지만 그건 큰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많은 장르들 중에 하나 정도는 버리고 가도 될 시기였으니까. 더구나 엄마의 죽음으로 자칫 어두워질 것 같은 드라마의 분위기를 제작진은 자연스럽게 본궤도로 올려놓는 데에도 성공했다.

문제는 그 사건으로 <너목들>의 기본 뼈대인 법정드라마의 틀이 우그러졌다는 데 있다. 초반 나름의 탄탄한 구조를 지녔던 법정 장면들은 민준국의 재판에서 무죄판결이란 설정을 끌어내기 위해 너무나 억지스럽게 흘러가 버렸다. 그러니 당연히 그 이후에 등장하는 박수하의 재판 장면 역시 그저 드라마를 위한 가벼운 장치로 밖에 여겨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박수하의 기억상실이란 설정도 얼음처럼 단단한 진행을 바랐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진행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히또의 얼음은 다 녹아내렸지만, <너목들>의 남녀주인공 장혜성과 박수하의 관계에서 감도는 달달한 사랑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민준국이 들려주는 서늘한 목소리에 대한 긴장감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너목들>의 종영 후에도 남풍이 불어오는 계절만 되면 모히또 속 얼음이 쟁강쟁강 부딪히는 것 같은 이 드라마의 시원하고도 달콤한 목소리는 다시금 우리 귓가에 들려올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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