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s)이라는 말이 있다. 식물은 그 자리에 머물고 동물은 움직인다. animal은 그럼 역동적인 움직임을 나타내는 걸까? 그럼 spirits는 뭘까? 알코올은 아니겠다. 사전에 나오는 뜻 중에서는 ‘온 몸에 가득했다는 생명의 액체’가 가장 가까울 듯하다.

찾아보니 애니멀 스피릿은 기원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가 오래된 말이다. 옛날에는 뇌에서 생성되는 애니멀 스피릿이 신경을 통해 근육에 전달돼 근육이 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도록 한다고 여겼다. 이 개념은 의학이 발달하면서 사라졌다. 애니멀 스피릿은 이후에는 주로 ‘활기’ ‘혈기’ ‘생기’라는 뜻으로 활용됐다. 웬만한 영한사전에는 이런 뜻으로 나온다. 아래 예문을 몇 가지 전한다.

“그는…활력이 대단했고 즐기는 감각이 예리했다.”
“He...had great animal spirits, and a keen sense of enjoyment."
- 소설가 벤저민 디즈레일리 글 중에서 (자료: wikipedia)
"리디아는 혈색이 좋고 표명이 명랑하며 생기가 넘쳤고,“
“with a fine complexion and good-humoured countenance (…) She had high animal spirits,"
-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경제학에 애니멀 스피릿을 불어넣었다. 요즘처럼 경제가 부진을 벗어나지 못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 애니멀 스피릿이다. 케인스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게 하는 충동적인 낙관주의, 가만히 있기보다는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충동을 가리키는 데 이 말을 썼다.

애니멀 스피릿은 국내에서는 ‘야성적 충동’ ‘야성적 본능’ ‘동물적 직감’ 등으로 옮겨졌다. ‘야성’과 ‘동물’ 부분이 거칠다.

요즘 본토 사람들은 뭐라고 하나?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낸 경제용어 사전 ‘에센셜 이코노믹스’에서는 간단히 자신감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일본경제신문 홈페이지(www.nikkei.com)에서 기사를 찾아봤다. 그냥 ‘애니멀 스피릿’으로 쓰거나 ‘애니멀 스피릿(血氣)’으로 적은 글이 많았다.

일본은 세밀하고 정확함을 추구하는 만큼 애니멀 스피릿의 ‘애니멀’에 빠지지 않고 뉘앙스를 살려 번역한 것 같다.

중국은 사람이 많다. 13억명의 두뇌가 뒷받침하는 번역은 일본 못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중국 인터넷 포털 바이두(baidu.com)에서 검색했다.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중국 사람들은 애니멀 스피릿을 가장 다양하게 옮겼다. ‘동물정신(動物精神)’ ‘수성적 충동(獸性的 衝動)’ ‘비이성 충동(非理性 衝動)’ 등이 나왔다. 케인스의 뜻을 많이 담아 ‘혈기 충동적 성질(血氣 衝動的 性質)’이라고 옮긴 표현도 찾았다.

중국은 사람이 많은 만큼 말도 많고 표현도 많은가보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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