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도 머리로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엔터미디어=노준영의 오드아이] 음악은 마음이 하는 거라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본질적인 감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만드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진정성이 보이는 음악이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티스트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도 아쉬움의 이유가 된다. 이런 생각들을 고려해보면 분명 음악은 마음으로 하는 게 맞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부연하자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맞다.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달라졌다.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는 변하지 않았지만, 여기에 음악 외적인 ‘머리’라는 요소가 추가됐다. 바로 ‘콘텐츠 기획’이다. 워낙 아티스트가 많다. 각자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은 상당히 유사하다. 이러다보니 한 박자라도 더 튀는 게 아티스트의 생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인데, 이 튀는 방향성을 결정하는 게 바로 음악 외적인 머리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머리로 하는 음악이 중요해진 시대라고.

위에서 언급한 한 마디를 대주제로 놓고 아티스트들을 바라보니 몇몇 팀이 눈에 들어왔다. 대표적 케이스는 아이돌 그룹 빅스(VIXX)다. 사실 빅스는 처음부터 결정적 한 방을 논했던 건 아니다. 데뷔 초기에 본 빅스는 여타 보이 그룹과 크게 다른 부분은 없었다. 기본기가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았고, 스타로 대성할 가능성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빅스는 음악 외적인 머리에서 크게 앞서가기 시작했다. ‘다칠 준비가 돼 있어’에서부터 시작된 강렬한 콘셉트 완성은 ‘Hyde'에서 정점에 이르렀고, 제목부터 남다른 ‘대.다.나.다.너’에서는 다른 아이돌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증명사진 콘셉트를 시도하며 빅스가 달라보일 수 있는 지점을 스스로 창조했다. ‘백워드 매스킹’ 기법을 생각해 낸 것도 기발하다. 모두가 똑같은 걸로 잘 승부할 방법을 찾고 있을 때, 빅스는 다른 방법으로 특별하게 승부할 방법을 찾아낸 느낌이다.



이런 머리로 하는 기획의 측면은 현대 대중음악에서 정말 중요해 졌다. 여기서부터 홍보가 시작되고, 여기서부터 아티스트의 활동이 탄력을 받는다. 다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미지, 낯선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대중들에게는 아티스트를 다르게 인식하는 첫 걸음이다. 이전에 나왔던 아티스트가 비슷해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선택의 기준에서 조금은 멀어지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어색한 언론 플레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콘셉트로 홍보가 가능하다는 건 정말 큰 강점이라 할 수 있다.

‘V’와 ‘첫 사랑니’로 각각 컴백을 선언한 이정현과 에프엑스도 좋은 예다. 지난 1999년부터 가수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정현은 정체성 면에서 남다르다. 'V’도 박찬욱 감독과 함께 그녀만의 콘셉트를 들고 나왔는데, 사실 그녀는 콘셉트의 여왕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해온 과거가 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가수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머리로 하는 기획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별한 걸그룹으로 차별화되고 있는 에프엑스도 마찬가지다. 노출만 강조하는 수많은 걸그룹의 틈바구니 속에서 에프엑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음악 외적인 머리로 만들어 낸 그녀들만의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남들과는 약간이라도 다른 걸 선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그 노력을 기반으로 톡톡 튀면서도 상큼하고, 심지어 은근한 섹시미까지 가진 걸그룹으로 거듭났다. 음악적을 완성도가 뛰어났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음악을 뒷받침하는 다른 콘셉트와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지금의 위치다. 지금 이 순간 음악 외적인 머리로 하는 활동들이 중요해지고 있는 이유다.



노이즈 마케팅에 대한 말들도 나오고, 언론 플레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나온다. 이런 사례를 곰곰이 따져보면 많은 수가 즉각적으로 시선을 끌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호기심에 검색을 하지만, 이 검색이 그리 오래갈 수는 없는 구조였다. 대중음악의 화두는 얼마나 길게 갈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짧고 굵게도 나쁘진 않지만 기왕이면 길고 굵게면 더 좋지 않겠는가?

이러기 위해서 음악 외적인 머리로 하는 활동들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좀 더 근본적으로 아티스트에게 맞는 옷을 입혀줄 수 있는 생각들이 모여야 하고, 대중들에게 다르게 인식 될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과정에 과정을 거듭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의 질이 높다면 대중들은 당연히 구매 욕구를 느낀다. 이 콘텐츠의 질이라는 건 이제 음악과 음악 외적인 부분이 모두 포함되는 개념이라는 걸 한 번쯤 상기해봐야 하지 않을까? 음악도 아이디어 싸움이다. 새로운 상품에 대한 갈증이 똑같이 흘러가는 대중 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노준영 nohy@naver.com

[사진=SM 엔터테인먼트,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에이바 필름 앤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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