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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대통령은 왜 주한미군에 맞섰을까
기사입력 :[ 2013-08-12 13:01 ]


‘감기’, 재난을 소재로 금기의 영역에 도전하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감기>는 <비트><태양은 없다><무사>등을 만들었던 김성수 감독의 신작으로, 100억 원의 예산을 투여한 감염재난물이다. <연가시><세계의 끝>등의 성공으로 국내 감염재난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데다, 공개된 예고편 영상의 충격적인 비주얼로 인해 관객의 기대가 고조됐다. 게다가 주연을 맡은 수애와 장혁에 대한 호감도도 높은 편이라 영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초중반의 흠결을 만회하는 후반부 결정적인 장면들

구급대원 장혁은 자동차 사고에서 구조한 수애에게 호감을 갖고, 얼떨결에 수애의 딸을 돌보게 된다. 감염내과 전문의이자 싱글맘인 수애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에 급성감염환자가 들어온다. 동남아시아에서 분당으로 들어온 컨테이너에 숨어 밀입국하던 불법이민자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한명의 생존자가 도망치면서 원인불명의 감염질환이 분당주민들 사이에 퍼져나간다. 의료진들은 베트남에서 유행하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컨테이너를 배양기 삼아 변종을 일으켜, 공기전파에 의해 사람 간 감염을 일으키는 치사율 100%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생겨났음을 알아낸다.

제대로 격리조치를 취할 겨를도 없이 감염은 급격히 확산되고, 기존의 조류독감 치료제에도 듣지 않아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분당구 전체는 도시기능이 마비된다. 정부는 분당을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분당과 서울을 잇는 교통과 인터넷 통신망을 끊고, 주민들을 격리하여 집단수용한다. 기침증상을 보이는 딸로 인해 수애는 감염대책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주민캠프에 수용되는데.....

<감기>는 단점과 장점이 뚜렷해 오호가 엇갈릴 만한 영화이다. 초중반의 수애와 장혁의 허접한 로맨틱 코미디나 아이를 둘러싼 신파적인 분위기, 마동석과 이희준에 의한 낭비적인 액션장면 등은 영화의 흐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좋지 못하다. 수애와 장혁의 캐릭터는 공연히 들떠 있으며,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이나 관료에 대한 묘사도 정교하지 못해 그들 간의 미묘한 알력이 입체적으로 묘사되지 못하는 것도 흠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제시되는 결정적인 장면들은 이러한 단점들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종합운동장의 ‘살처분’ 광경이다. 과연 이것은 수많은 홀로코스트영화는 물론이고, 최근의 대규모 좀비영화들을 통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충격적인 장면이다. 구제역 뉴스에서 언뜻 보았던 가축매몰 장면과 종량제 봉투가 산처럼 쌓여있는 쓰레기매립장의 광경이 겹치면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오싹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상상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극한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결정적인 장면은 고속도로 입구에서 벌어지는 군·민 대치상황이다. 서울로 가려는 주민들과 이들에게 총을 겨눈 군인들,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사이 발포명령과 미군폭격기와 미사일이 거론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는 대게의 재난영화가 다룰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고의 한계지점을 훌쩍 넘어선다.

◆ 감염재난물이라기 보다는 본원적인 정치영화

흔히 감염물이 주는 공포라고 하면 ‘서로를 불신하고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 등을 떠올린다. 물론 이 영화에도 그런 종류의 공포가 전혀 없진 않다. 그러나 더 핵심적인 공포는 주민과 국가공권력 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은 흔히 생각하는 감염물의 공포가 아니다. 영화는 감염재난물의 측면에서 보자면 지나치게 단순하다. <아웃 브레이크><컨테이전>등의 할리우드 영화들은 물론이고, <세계의 끝>이 보여주는 정도의 정교한 역학조사 과정도 생략되어 있다.

초반에 감염이 전파되는 양상은 너무 폭발적이고, 감염원을 추적하는 과정도 ‘부르고 대답하는 식’이다. 바이러스를 분리하고, 항체를 얻는 과정도 너무 거칠게 그려져 있으며, 감염자와 감염가능자에 대한 격리조치도 너무 과격하게 이루어져서 감염재난영화로서의 전문성은 낮은 편이다. 영화에서 재난에 대처하는 주축은 생의학자들이나 질병관리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군대와 정치권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 비견할 만한 영화는 <컨테이전>이 아니라, <크레이지>이다.



<크레이지>(2010)는 좀비영화의 대부 조지 로메로의 <분노의 대혈투>(1973)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감염이 의심되는 지역의 주민을 박멸해야 할 적으로 보고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공권력의 모습을 충격적으로 보여준 수작이다. <감기>에서 국가는 위험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감염자군’와 ‘감염가능군’과 ‘비감염자군’을 구분하여, ‘감염자군’과 ‘감염가능군’을 붙여놓는다. ‘비감염자군’을 살리기 위해, ‘감염가능군’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소’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일만한 일일까. <크레이지>는 처음에는 지역주민을 위해 위험한 ‘소’를 희생시키는 주체였던 보안관이 연방정부에 의해 박멸되어야 할 ‘소’로 규정되어 쫓기는 과정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준다.

어디가 박멸되어야 할 ‘소’인가 하는 것은 매순간 다르게 규정되며, 극히 상대적이다. <감기>에서 그 경계는 쇼핑센터 안과 밖으로 나뉠 수도 있고, 분당의 안과 밖으로 나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대한민국의 안과 밖으로 나뉠 수도 있다. 감염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분당을 봉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대한민국 앞에 놓여있다. 처음엔 분당 봉쇄에 찬성하는 전국의 여론이 35%에 불과 하였지만, 나중에는 96%가 찬성한다. 그런데 동일한 종류의 질문, 즉 감염이 전 인류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한민국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주한미군 앞에 놓인다. 그 결정을 왜 주한미군이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잠시 접어두자. 아무튼 미군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대한민국 역시 희생될 수 있는 ‘소’에 불과할 수 있다.



이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미군이 판데믹(pandemic)상태의 대한민국에서 취할 수 있는 입장과 태도가 어떻게 규정될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다. 영화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내리는 재난에 대한 조치와, ‘인류(?)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을 지닌 주한미군이 한국 국민들에게 내리는 조치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군작전통제권이라는 대단히 까다로운 문제까지 감히 언급해 버린다.

◆ 군작전통제권까지 거론할 줄이야

군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사령관 즉 미군이 갖느냐, 한국군이 갖느냐 하는 것은 워낙 거대하고 전문적인 문제라, 개개인의 피부에 잘 와 닿지 않는다. 이는 안보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섣부른 감상주의나 민족주의만으로 이야기 되어서도 안 되는 문제이다. 그러니 사실 차원에서 몇 가지만 언급하고 넘어가자. 알다시피 군작전통제권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유엔군사령관에 이양된 후, 1978년 한미연합사령관에 이관되었다. 냉전종식과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 등으로 부담을 느끼던 미군이 1994년 평시작전권을 한국군에 이양하여, 현재 전시작전통제권은 한미연합사령관에 속해있고,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속해있다.

그 결과 평시에는 한국군 작전통제는 한국 합참의장이, 미군에 대한 작전통제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행사한다. 하지만 평시에도 정보관리, 연합훈련, 작계작성 등 핵심적인 6개 항목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위임되어 있어서, 평시라도 한국군에 대한 완전한 의미의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있다고 보기는 좀 어렵다. 전시에는 수도방위사령부, 특전사, 제2방위 사령부를 제외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하는데, 전시작전통제권이 발휘되려면 한미 양국정부의 승인 하에 방어준비태세인 데프콘III가 발령되어야 한다.



<감기>에서 주한미군사령관은 군작전통제권이 미군에게 있다고 말하며 전폭기를 띄운다. 대통령은 군과 대치하고 있는 민간인들을 가리키며 묻는다. “지금이 전시 상황입니까? 저 사람들이 적입니까?” 대통령은 수도방위사령부를 움직여 미군을 저지하려 한다. 이 장면은 현재의 군지휘체계로 보건데 무리한 감은 있지만,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영화 속 상황은 평시상황으로, 미군에 대한 작전권을 지닌 주한미군사령관에 의해 미군전투기가 출격할 수 있으며, 대통령은 직속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를 움직여 이를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다소 무리한 장면들을 통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가 이다.

영화는 군작전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안보’인지, 전시와 평시를 구분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내란 혹은 내전의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며, 누구를 적으로 볼 것인지 등에 따라 국가적인 비상 상황에서 내려지는 조치들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재난, 폭동, 혁명, 내란 등 ‘예외상태’에서 국가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궁극적으로 군작전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국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좌우하는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영화는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간의 국내 재난영화들이 감히 다루지 못하고 말할 수 없었던 정서적 금기의 영역까지 문제의식을 밀고나감으로써, 본원적인 정치영화가 만들어졌다. 대단한 뚝심이다.

P.S. 전시작전통제권은 2007년 한ㆍ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2012년 4월에 한국군으로 환수하기로 합의했으나, 2010년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이양시점을 2015년 12월로 미루기로 합의 했다. 이양시점이 다가온 만큼 이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참고=<전시작전 통제권 오해와 진실> 한국국방안보포럼 엮음. 플래닛 미디어. 2006
[사진=영화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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