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용팝, 일베와 선긋기 타이밍 적절했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크레용팝은 뜨거운 감자다. ‘빠빠빠’의 직렬 5기통 춤은 사회현상으로 분석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소속사에서 장문의 공식 입장 발표를 통해 해명할 만큼 온갖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지난 두 달간 연예계 이슈 중 가장 첨예하게 옹호와 비판의 백병전이 벌어진 고지가 바로 크레용팝이었다. 멤버들이 쓰는 몇몇 단어가 한 사이트에서 나쁜 의도로 쓰이는 은어라는 점, 소속사 대표의 트윗에서 그 특정 사이트에 감사를 표하고, 역시 관련 은어를 썼다는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대해 지엽적인 지적이라는 입장과 사회의식 결여를 드러내는 심각한 마케팅이라는 분노가 맞부딪히고 있다.

방송 활동에 비교적 제약이 있던 소규모 기획사의 여자 아이돌은 철저하게 자신만의 전략을 세웠다. ‘빙빙’ ‘댄싱퀸’ 등 이전부터 백수건달이나 시건방춤과 같은 꾸준히 재미있는 콘셉트로 승부를 보았다. 미니스커트 대신 운동복(추리닝)을 입었고, 교복 치마에 다시 운동복을 입었다. 그리고 지금은 <후레쉬맨>과 같은 열혈물 스타일로 헬멧을 쓰고 나온다. 어쨌든 레드오션을 비껴간 전략은 출중했다. 갖은 고생 끝에 4차원 정서를 가진 귀엽고 씩씩한 사랑스런 동생들은 중독성 있는 노래 ‘빠빠빠’를 만나면서 터졌다. 얼굴은 몰라도 하는 짓이 귀엽다. 헬멧을 쓰고 점핑을 하는 것은 선미까지도 섹시를 외치는 세상에서, <뽀뽀뽀>도 폐지된 마당에 찾아온 반가운 율동이었다.

지금의 성공은 이처럼 일관된 콘셉트로 밀어붙인 나름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케팅의 일환이자 마이너한 감수성을 고취하는 차원에서 크레용팝은 <무한도전>의 하나마나 시즌1때처럼 좀처럼 여자 아이돌이나 연예인이 하기 힘든 밑바닥 공연들을 전략 하에 잘 소화했다. 도도함이나 섹시는 집어치우고, 무대를 가리지 않으며 성장하는 씩씩한 스토리는 귀여움을 증폭시켰다. 물론, 이 콘셉트 또한 나중에 논란이 되었지만 공식 해명을 통해 일본의 특이 콘셉트 아이돌인 모모이로 클로버Z를 따라한 게 아니라 여자 DOC를 표방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들은 눈에 띄었다. “사실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 바로 크레용팝의 인기 비결이다. 크레용팝을 모르겠다는 게 아니라 섹시와 귀여움을 어필하는 수많은 여자 아이돌이 누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이 친구들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들의 인기를 분석하고 원인을 노이즈 마케팅에서 찾는 건 사실 비약이다. 기존 아이돌과 다른 접근, 얼마 전 싸이가 지나갔기에 차별화되는 ‘오리지널티’를 가진 개성 있는 이 팀에 언론과 삼촌팬들의 관심이 쏠린 것이다. 그렇게 나름 춥고 배고픈 포지셔닝은 성공한 전략이 되어 음악방송은 물론 뉴스로도 다뤄지고, 다큐까지 거론되는 수준으로 발전한 오늘에 이르게 됐다.



그런데 논란은 그들이 지금처럼 대중의 폭넓은 이해를 받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이 주로 회자된 동네는 다른 아이돌 그룹과 다른 전략을 택하면서 특이하고 긱(geek)스럽고, 4차원의, 한마디로 어린 여자 아이돌의 ‘병맛’ 콘셉트를 이해해주는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그리고 약 2달 전 ‘빠빠빠’ 활동을 시작할 무렵 이들은 논란에 휩싸였다. 인과관계를 찾을 수는 없지만 동시에 인기는 급상승했다. 놀던 동네 중 한 군데가 문제가 된 것인데, 한때의 구름판이 점프하는 발목을 잡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노무노무’ ‘쩔뚝이’ ‘오늘도 디씨와 일베에 크레용팝을 전도하시는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멋지노.’ 등의 굳이 알 필요는 없으나 특정 사이트의 은어가 분명한 단어 사용과 문제 사이트 유저들에게 감사를 전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두 달간 지속된 논란 속에서 이들은 해명을 하지 않았다. 선을 긋지도 않았다. 연예인과 연예 이슈에 대해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 도덕적 검증에 민감하고 분노 지수가 높은 이 땅에서 이런 정체성과 관련된 이슈를 모른 체했다.

같은 이유로 문제가 된 전효성 측의 대응과는 전혀 다르다는 게 특이사항이다. 오히려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의(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라는 글로 짐짓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사람들은 귀여운 아이들이 헬멧을 벗었을 때의 서늘함을 맛봤다. 물론 이때는 지금 수준의 인기를 누리기 전이었다.



그리고 지난 21일에 이르러서야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 댓글이 달리는 일베 사이트에 감사를 전한 것이나 관련 용어들을 사용한 것은 무지가 빚어낸 오해와 우연의 산물이라 공식해명했다. 사실 의혹 자체가 지엽적이라고 볼 수 있기에 해명 자체가 거짓이라 단정할 수도 없고,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다만, 해명을 전후해 우연은 <아내의 유혹>급으로 펼쳐졌다. 스케줄 문제 상 기획 단계에 있던 다큐멘터리가 취소되고, 시축 또한 같은 사유로 취소되고, 모처럼 잡은 대형 CF는 중단됐다. 특정 사이트 논란에 얹어져 표절 논란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즈음이다. 그러자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정체성에 심각한 의문을 표하는 의혹을 두 달간 도외시하다가 왜 공식적인 해명과 선긋기를 지금 하는지, 이런 우연의 일치들이 크레용팝에 대한 오해를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 숱한 논란이 일어나며 첨예한 대립을 보일 때에는 마치 화제성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CF가 끊기고 나니 하루 만에 즉각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는 모습은 그것이 우연이라고 해도 진정성에 의심을 받을 만한 이유로 충분하다.

어떤 전략과 마케팅 계획이 있었든지, 문제는 뜨고 난 후다. 모든 언더그라운드, 마이너 정서로 출발한 콘텐츠들은 정점을 찍는 순간까지는 에너지가 충만해지지만 정상에 오른 순간 장렬히 산화하고 에너지가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크레용팝은 이것을 무시하거나 지나가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해명의 적극성은 너무 떨어졌었다. 논란은 분명 이 팀의 유명세에 도움을 주었다. 다만, 이제 그 유명세만큼 감내해야 할 반대급부, 기회비용을 치를 때 또한 다가오고 있다.



SBS 뉴스에 특정사이트에서 왜곡된 자료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이미지가 참고 자료로 등장해서 큰 물의를 빚었다.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는 ‘빠빠빠’가 신나게 흘러나왔다. 모두 같은 날 벌어진 일이고, 쓰임과 반응은 전혀 달랐다. 아직 특정 사이트와 관련된 논란과 크레용팝의 인기는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진 않고 있다. 인터넷 여론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 문제시 되는 사이트니, 크레용팝이니, 크레용팝이 문제시되는 특정 사이트의 용어를 썼느냐 마느냐는 일상의 관심 영역 밖이다.

다만 인기가 부풀어 오르는 만큼 일정 간격을 유지하던 인기와 논란과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인기가 더 높아갈수록 옥션 광고 중단 등과 같은 일이 점차 더 많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소속사는 나름 충실한 해명을 내놓으면서 논란에 적극 대응했다. 그동안 논란을 벌이던 사람들이 가장 바라던 행동을 드디어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이었느냐다. 이 부분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진정성의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다.

이들의 전략이 또 한 번 더 들어맞을지, 아니면 점프하던 발목이 잡힐지는 사람들의 선택에 달렸다. 우리는 지금 대중의 분노 혹은 냄비근성에 관한 또 하나의 레퍼런스를 생생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크롬엔터테인먼트, 트위터, 빌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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