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디스전’ 이건 단순한 싸움구경이 아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금요일부터 주말 사이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힙합 뮤지션들과 관련 키워드들이 화산재처럼 포털사이트를 뒤덮었다. 동일한 연예 이슈가 실시간 검색을 며칠씩이나 점령한 예는2012 런던올림픽을 집어삼킨 티아라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디스(diss)곡들이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커리어와 명예를 판돈 삼아 랩으로 한판 붙은 생방송 서바이벌쇼 혹은 진짜 <나는 가수다>를 보는 기분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랩이 됐다. 박지성과 류현진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쌈디의 대응곡을 기다리다가 밤을 샜다는 분위기다. 이렇게 2013년 한국 힙합 역사의 분수령이 될 힙합 디스 전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이 디스전이 어느 팝밴드의 한 멤버가 말한 대로 문제 있는 거냐?,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피는 보겠지만 이번 힙합 디스전은 우리나라 힙합씬에 굉장한 에너지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금 이 싸움은 그간 힙합과 대중의 괴리를 좁히는 빅뱅이자 힙합 대중화 공식에 대한 수정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디스전을 치루면서 뼈가 아픈 건 자정과 자중을 못해서가 아니라, 힙합이 빅뱅 수준의 성장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거고 음악 하는 사람끼리 싸우냐고 말하는 것보다 지금 대중들이 왜 힙합씬에 초미의 관심을 쏟는지가 설명되어야 한다. 사실 힙합씬 안에서 디스는 일종의 이벤트였다. 예전에도 주석과 타이거JK간의 싸이월드 소동이 있었고, 버벌진트가 조PD를, 디지가 MC스나이퍼를 디스한 적이 있었다. 태초에 판을 벌인 스윙스도 유명한 전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전부 힙합 관련 커뮤니티 안에서 머물렀던 이슈였다. 그 누구도 지금처럼 광분의 에너지를 만들지 못했다. 심지어 CJ와 엠넷도 힘겨워하는 힙합 대중화다. 그러니 순도 100%의 힙합 마인드로 무장한 이 전투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아봐야 한다.

싸움구경이 본디 재밌는 것이긴 하지만, 이번 경우는 힙합 고유의 매력이 사람들의 귀에 내리 꽂히면서 판이 커진 일이다. TV에서 보던 연예인들의 다른 얼굴이었다. 자신을 내던진 생생함에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힙합이란 결국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랩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디스는 이것의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다. 상대를 공격하며 자기 메시지를 효과적 설득력 있게 설파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메시지에 동조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 토론에서 논리와 증거로 맞선다면, 랩에선 라임과 플로우로 맞선다.



그래서 베틀과 디스에선 상대방을 재치 있게 비꼬면서 신랄하게 후벼 파는 랩의 매력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국내 최정상 MC들이 날선 태도로 쏟아내는 랩에서 사람들은 힙합 문화, 랩의 진짜 모습을 봤다며 열광한다. 이는 오늘날 힙합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힙합과 랩을 가요화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물론 아직 일각에서는 욕설로 뒤덮인 거친 언사와 싸움에 적잖게 당혹한 듯하다. 그런데 힙합의 뿌리인 미국 빈민층 흑인들의 당면 과제는 언제나 서바이벌이었다. 일부는 갱단과도 결부되어 있는지라 이런 의식은 더욱 강했고 국토의 넓이만큼 지방색이 강하다보니 자신의 출신지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이처럼 디스는 힙합문화의 태생과 함께한 중요한 요소였다. 우리나라에서 힙합을 주로 젊음과 청춘의 한 이미지로 소비하지만 실상은 이번 대란에서 볼 수 있듯이 쌍욕이 난무하는 날 것의 생존에 더 가까운 것이다. 힙합이 미국에서 온 것이라고 그 문화까지 받아들여야 하나는 말은 판소리를 미국에 수출하는 데, ‘한 정서’는 미국과 같은 패권 국가에는 없는 거니 빼고 팔자는 말과 같다. 점잖음 없음. 내 똥 굵다와 내가 진실이고 너는 못났다가 직설적으로 오고가는 게 힙합 마인드의 정수다.

바로 이런 마인드로 한국 힙합에서 성역과도 다름없는 다이나믹 듀오에 이센스가 도전장을 내면서 판이 커졌다. 좌우앞뒤 안 가리는 정말 힙합스런 사건이다. 랩으로 공격하고 랩으로 반격하는 힙합 마인드에 충실한 방법론에다가 SNS라는 날개가 만나니 휘발유를 끼얹었다. 힙합이라고 해봤자 슬픈 이별 이야기나 신나는 파티풍 노래만 들어온 많은 사람들에게 디스곡들은 왜 다이나믹 듀오와 슈프림팀과 스윙스 등이 나름 전설이었고 실력파 랩퍼라고 불리는지 깨닫게 해줬다. 힙합이 가요에 정착하면서 포지셔닝했던 그간의 상식을 깨는 작업인 동시에, 이제 한 줌밖에 안 남은 힙합 리스너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그들이 횃불이 되어 여기저기서 힙합 이야기로 캠프파이어를 벌이게 만든 불씨였다.



당사자들은 이해관계의 규명 싸움이겠지만 대중의 관점에서 봤을 땐 전율에 대한 기대다. 힙합씬 차원에서는 ‘제대로 경쟁해서 신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캔드릭 라마의 메시지가 구현 중이다. 여기서 이번 디스전의 양상과 영향은 애초의 발발 계기부터 살펴봐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미국의 캔드릭 라마가 빅 션의 ‘커트롤’이란 곡에서 인기 랩퍼들에게 자성을 촉구하면서 시작된다. 이해관계를 놓고 벌인 싸움이 아니었다.

캔드릭 라마는 2011년 등장해 2000년대 중반 이후 주춤거리던 흑인 음악씬에 활력을 불어넣은 대형 신예다. 투팍의 사후 대중과의 괴리 속에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서부 힙합을 이십여 년 만에 부흥시킨 대형 스타다. 흑인들의 삶을 음악에 녹여낸 90년대 힙합의 향수를 지금 시대에 걸맞게 가져오면서 세대를 초월한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그런 그가 그저 비즈니스로만 가는 힙합씬에 자성을 촉구하면서 미국에서도 대규모 디스전이 발발했다.

이에 자극받은 스윙스가 우리나라에서 그 불을 지폈고 이 분위기 속에 이센스가 얼마 전 나온 회사의 수장인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를 공격했다. 그러자 스윙스가 합세해 다이나믹듀오의 아메바 컬쳐에 소속된 쌈디를 저격했다. 이에 개코와 쌈디가 대응곡을 내놓고 다시 이센스의 대대응곡이 나온 것이 현재까지의 상황이다. 스윙스는 또 다른 대응곡을 내놓을 것이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음악의 신>의 한 장면이 아닌가 착각되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자신의 인생과 커리어를 걸고 벌어지는 진짜 스토리다. 그리고 그 평가는 랩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한국에서 힙합으로 가장 성공한 다이나믹 듀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디스전은 결국 한국 힙합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 이 랩게임에 열광하는 것은 그동안 힙합에서 무엇의 결핍됐던 것인지 의문을 던지게 한다. 좁은 씬에서 아등바등하던 때와 달라진 위상을 말하기도 한다. 힙합퍼란 정체성을 기반으로 대중가수가 되는 길과 힙합 정신만 고집하면 배고픈 인디가 된다는 오래된 선택의 갈림길이 아닌 신작로가 개통됐음을 말한다.



힙합이 팝의 주류가 됐지만 우리나라에서 힙합 음악 시장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 남성들 중 극일부에 한정되어 있다. 그들은 정말 한 줌이기에 말랑한 사랑이야기의 대중적 음원과 파티풍의 당의정을 씌운 힙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지 못한 이들은 그런 대중적 힙합을 욕하며 가난한 자신을 한탄했다. 그런데 이제 지금 그 경계선에 선 힙합퍼들이 거울을 돌아볼 때다. 대중이 원하는 칼춤을 추라는 것이 아니라 힙합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더욱 넓고 깊어졌으니 찬스를 잡을 기회가 훨씬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번 디스전에서 누가 랩을 더 잘하고 못했냐는 각자 판단에 맡길 일이다. 그 누구도 심판처럼 손을 들어줄 순 없다. 이 스토리의 끝 또한 어찌될지 모른다. 데프콘 말대로 결국 홍대 강남 안에서 다 만날 사이다. 그러나 이번 계기로 힙합이란 포지션을 파는 것에 그치지 말고 서로 견제하는 가운데 경쟁과 발전을 도모할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차트에 있는 다이나믹 듀오, 마이티마우스, GD나 긱스의 음악을 즐겨듣지만 힙합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중과 힙합 리스너들의 간극이 좁혀졌고,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힙합 문화를 즐기고 있다. 아이유, 진중권, 이상민, 유노윤호 등등 각종 패러디물로 즐기기까지 하고 있다. 개코 등 유명 MC들의 곡뿐만 아니라 여러 언더 MC들의 곡들이 함께 널리 퍼지면서 대중들에게 소개되고 평가받는 중이다. 이건 싸움 구경이기 때문이 아니라 랩으로 싸우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디스 전 후 사람들은 MC의 차트 성적이 아닌 랩메이킹과 랩스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디스전을 계기로 힙합을 다시 바라보는 셈이다. 남의 것, 마이너한 장르로만 생각하다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아, 이게 힙합이구나.”라고 말하면서 다음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이 긴박한 스토리 속에 펼쳐지는 랩 향연에 대한 반응이다. 지금 우리는 한국 힙합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함께 넘기고 있는 중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아메바컬쳐, 브랜뉴뮤직,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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