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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움’ 맷 데이먼의 희생이 짠한 이유
기사입력 :[ 2013-08-29 12:57 ]


SF 속에 현재 빈민들 소망 담아낸 ‘엘리시움’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엘리시움>은 <디스트릭트 9>을 만들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닐 블롬캠프 감독이 할리우드로 진출하여 만든 SF영화이다. 맷 데이먼, 조디 포스터가 주연을 맡았고 1,280억 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대작이다. 전작인 <디스트릭트 9>는 발상의 전환을 꾀한 SF영화였다. 기존의 SF영화에서 외계인을 발달된 문명 세계에서 온 지구침입자나 정복자로 그렸던 것과 달리, 지구에 불시착한 난민이자 부당한 인종차별을 당하는 비천한 타자로 그리면서 남아공의 최대의 사회문제인 인종문제를 환기하였다. <엘리시움> 역시 탁월한 뒤집기를 통해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사회문제를 조명해낸다.

◆ 특권층을 위한 꿈의 신도시 엘리시움과 슬럼화 된 지구

‘엘리시움’이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축복을 받은 영웅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불사의 세계인 ‘엘리시온’에서 따온 단어로, 우리가 생각하는 천당쯤 되는 곳이다. 서기 2154년의 지구는 인구과밀, 환경오염, 자원고갈로 완전히 황폐화되고, 선택받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지구에서 완전히 떨어진 인공위성인 엘리시움에서 산다. 그곳은 꿈의 신도시로, 맑은 공기와 완벽하게 조성된 녹지, 그리고 환상의 계획도시가 건설되어 있다. 인구 50만의 엘리시움에는 최상위 관료, 사업가들만이 그들만의 낙원을 이루며 살고 있는 반면, 지구에는 위험한 공장시설과 지저분한 집들이 무질서하게 난립되어 있다.

엘리시움의 주민들은 주로 영어와 불어를 사용하는 백인들이고, 맷 데이먼이 사는 지구의 LA에는 스페인어를 쓰는 히스패닉이 다수를 차지한다. 엘리시움에서는 애초에 설계된 시스템에 의해 시민들의 안전과 복지가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는 반면, 지구에선 로봇경찰에 의해 폭력적인 검문과 주민통제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두 장소를 오가는 셔틀 우주선이 있지만, 우주선의 이착륙은 엘리시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허가 받지 않고 엘리시움으로 향하는 우주선은 가차 없이 요격당하며, 시민권 없이 엘리시움에 들어온 자들은 즉시 추방당한다.



<엘리시움>이 그리는 미래는 지구가 외계에 식민지를 개척한다는 식의 상상을 뒤집은 것으로, 낡고 오염된 지구가 완전히 슬럼화 된다는 설정이다. 극소수의 특권층들이 “지구 버려~”를 선언하고 그들만의 낙토를 건설해 이주해버리고, 그곳에서 최첨단 과학기술의 온갖 혜택을 누리며 선택된 시민권자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미래사회에서 발달된 과학기술은 차별적으로 활용된다. 엘리시움의 시민권자들이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의료기기는 치명적인 질병이나 손상도 몇 분 만에 치료하고 재생시키기 때문에, 질병이나 노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좋은 과학기술도 지구에 남겨진 이들의 삶을 위해선 쓰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과학이 무지막지한 폭력과 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지구 주민들은 시민권을 위조해서라도 엘리시움에 한번 가보기를 소망하는데, 치명적인 병에 걸린 경우 그 소망은 더 절박해진다. 이는 마치 <은하철도 999>에서 지구인 철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러’ 은하철도 999를 타고 어느 별에 가야만 하는 것과 같다.

맷 데이먼은 어린 시절 고아원 수녀님으로부터 “너는 특별한 사명을 지닌 아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LA의 흔한 하층민 청년이다. 그는 차를 훔쳐 파는 일을 하며 전과를 쌓다가 지금은 경찰로봇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 어려서부터 엘리시움에 한번 가보는 것을 소원했지만, 그 꿈도 희미해질 무렵 그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공장에서 위험한 작업을 강요받다가 전신이 고선량 방사선에 피폭되는 엄청난 산업재해를 입은 것이다. 그는 5일 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지구에서 나름 실력자로 통하는 스파이더를 찾아간다.



스파이더는 돈을 받고 시민권을 위조하거나 불법이민을 주선하는 범죄조직의 수장으로, 슬럼화 된 지구에서 상당한 기술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지하경제를 꾸려간다. 스파이더는 엘리시움에 가게 해달라는 맷 데이먼에게 엘리시움에 무기와 보안시스템을 납품하는 기업가 칼라일의 뇌 속에 있는 정보를 맷데이먼의 뇌에 담아 오도록 시킨다. 그런데 마침 엘리시움의 강경파 정치인 조디 포스터와 칼라일이 쿠테타 음모를 꾸미면서, 칼라일의 뇌 속에는 엘리시움 전체를 리셋할 수 있는 정보가 담기게 되는데...

◆ SF의 탈을 쓰고 다룬 의료-불법이민 문제

<엘리시움>은 SF영화로서 설정이나 시각적 쾌감이 강한 편이다. 일단 위성처럼 떠 있는 엘리시움의 근사한 모양이나 온갖 임무를 수행하는 인체형 로봇 드로이드의 디자인이나 움직임이 주는 시각적 쾌감이 상당하다. 또한 뇌-뇌 인터페이스라는 신기술과 원격 제어복을 몸에 장착하고 철의 용사가 되어 싸우는 맷데이먼의 액션은 진기한 상상력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만병통치의 가정용 의료기기의 모습은 너무 단조로워 동화적 수준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SF가 다른 판타지 물과 다른 점은 과학기술적 논리를 갖는다는 점이다. SF는 현재의 기술적 한계를 벗어난 상상을 하되,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를 결정짓는 물리학적, 생물학적 논리를 따라야 하는 장르이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소망을 투사하는 식의 상상은 저급한 것으로 취급된다.



<엘리시움>은 이런 SF의 원칙을 도외시해가면서까지 만병통치 의료기기를 보여준다. 이는 뚜렷한 주제의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디스트릭트9>에서도 그랬듯이, 감독은 영화가 만들어진 그 사회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강하게 발언하고 싶어 한다. <엘리시움>이 만들어진 할리우드가 속한 미국남부의 사회문제라면, 단연 의료문제와 불법이민 문제이다. 이는 미국 남부 빈민이라면 누구나 가장 절실하게 느낄 문제들이다.

<엘리시움>에서 주로 히스패닉인 LA주민들이 전 재산을 털어 시민권을 위조하고, 목숨을 걸고 불법비행선에 오르며, 엘리시움에 도착한 뒤 무장경찰을 피해 우수수 달아나는 모습은 영락없이 멕시코와의 접경지역에서 매일 벌어지는 현실의 장면이다. 또한 미국에 사는 빈민들의 상당수가 가장 고통 받는 문제는 천문학적인 의료비와 공공의료보험의 부재로 인해 의료가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린 현실이다. 실제로 미국 빈민의 눈으로 보았을 때,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의 의료기술은 하늘에 떠 있는 듯 까마득한 상류층들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누리는 꿈의 혜택이다.



영화는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고, 실제로 캐나다 벤쿠버에서 엘리시움의 모습을 찍었고, 멕시코시티에서 황폐화된 LA의 모습을 촬영하였다. 어쩌면 ‘SF의 탈을 쓴 극사실주의 사회극’이라 할만하다. <엘리시움>은 미국남부의 빈민들이 현실에서 겪는 비참함과 소망을 극대화하여 SF의 그림 속에 담아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사회적으로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을 푸는 것이다.

<엘리시움>은 그 과정을 혁명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분열과 한 사람의 희생에 의한 것으로 그린다. 다소 나이브한 발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몫 없는 자들의 몫’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혁명적이다. 모두가 시민이 되어 평등한 복지를 누리는 사회, 그것이 지상의 엘리시움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엘리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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