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제국’ 영원히 사랑할 수 없는 고수와 이요원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황금의 제국’을 세운 최동성 회장(박근형)은 자신의 아이들에겐 고구마 대신 황금수저를 입에 물려준다. 태어날 때부터 고구마하나를 먹기 위해 가족들이 죽어가는 모습조차 외면해야 했던 배고픔 따위는 모르는 황금의 아이들. 하지만 황금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보다 더 행복했을까?

그들은 맨땅에서 황금의 제국을 세운 아버지만큼 강하지 못한 자신 때문에 콤플렉스에 빠지거나, 황금수저를 젖병처럼 입에 물고 칭얼거리거나, 혹은 황금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느라 그 아버지의 손에 묻은 피를 보진 못한다. 최서윤(이요원), 최동성 회장이 가장 사랑한 딸. 황금수저 대신 문학을 사랑하지만 결국 책장만 넘겼을 그 손에 그녀 역시 아버지처럼 황금빛의 피를 묻힌다.

황금의 제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가난한 동네에는 불행한 아비를 둔 고물상의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는 고물상에 앉아 폐지로 들어온 소설과 시집을 읽으며 리어카에 고물을 실어오는 아버지를 기다린다. 그의 아버지는 30년간 잡초처럼 열심히 일해 제국은 아니지만 자그마한 가게를 마련한다. 하지만 신도시 재개발이라는 황금 고구마를 캐려는 황금의 제국의 거대한 손길에 잡초처럼 뿌리까지 뽑혀 버린다.

부박하게 살다 허망하게 세상을 뜬 아비는 아들에게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 “태주야, 네는 이기라. 아버지는 한 번도 못 이겨본 세상에서 꼭 한 번은 이겨봐라.” 고물상의 아이 장태주(고수)는 황금의 제국으로 들어가 황금의 아이들이 입에 문 황금수저를 하나둘 빼앗는다.

그런데 황금의 아이 서윤과 고물상의 아이 태주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만들어진다. 서윤은 아버지의 기업을 사촌 최민재(손현주)와 새어머니 한정희(이미숙) 여사에게 빼앗기기 않으려 10억 달러를 움켜쥔 태주와 계약결혼을 한다. 물론 이 결혼에 사랑 따윈 없고 태주와 서윤 사이에 멜로의 감정 따윈 더더욱 없다.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태주와 서윤의 침실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 기괴함을 더해준다. 두 사람은 테이블을 중심으로 양편에 킹사이즈의 침대를 둔다. 그들의 침대 옆에는 베개 하나가 더 있지만 그들은 결코 상대를 자신의 침대로 인도하지 않는다. 이 젊은 부부는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함께 침실을 쓰면서도 한 번도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서로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정장 차림으로 테이블 앞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대화는 이들의 긴장된 어깨를 조금은 부드럽게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만 같다.

사실 서윤과 태주는 어찌 보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고물상의 아이와 황금의 아이지만 이 둘은 동시에 도서관의 아이이기도하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 둘은 그들이 읽은 소설을 인용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상상으로 체스판을 그리고 몇 십 년 동안 체스를 연습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다 체스 챔피언하고 시합을 하게 됐는데요. 실력은 그 사람이 훨씬 좋았는데 실제로 체스를 처음 두다 보니까 겁이 나는 겁니다. 져도 좋다는 마음으로 덤비면 실력도 좋겠다, 판세도 유리하겠다, 무조건 이기는 게임인데 스스로 불안해서 승부사 앞에서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졌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 체스. 책을 많이 읽었나 봐요? 도서관에서”
“고물상에서 읽었습니다.”

황금의 제국에서만 살았던 서윤은 태주를 통해 처음으로 제국 바깥의 사람과 인간적인 교류를 가진다. 태주 역시 서윤에게 친구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고 은근슬쩍 고백한다. 10 년 가까운 결혼 생활을 유지한 덕에 그들은 식성까지 비슷하게 닮아간다. 또한 서윤은 태주 가족의 정겨운 식탁을 보고 황금의 아이들의 화려하지만 살벌한 식탁과 비교하고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한다.



“부럽네요. 장태주 씨네 식탁.”
“우리집 식탁이 부럽다? 쉬러 갔다가 고기 맛있다고 평생 거기서 살 겁니까? 싸움터로 돌아와야죠.”

그렇다 태주는 알고 있었다. 이 둘 사이에 우정이 지속되기란 쉽지 않다는 걸. 그들은 처음부터 고물상의 아이와 황금의 아이였고 결국 최후의 싸움을 위해 만난 상대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해주는 감정까지는 결코 다다르지 못한다.

어쩌면 그들은 각자의 침대 옆자리, 텅 빈 베개가 놓여 있는 그 자리에서 위로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곳은 그들이 피로에 지쳐 잠들기 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추억의 자리일 테니까. 태주에게는 그를 위해 살인죄까지 덮어쓴 설희와 허망하게 세상을 뜬 아버지의 추억이. 서윤에게는 그녀가 꿈꾸던 인간의 모습인 동생 성재와 그녀가 모든 힘을 다해 황금의 제국을 지켜야하는 의미인 아버지의 추억이.

그래서 황금의 아이와 고물상의 아이는 서로의 감정이 더 가까워지기 전 황금의 제국을 차지하기 위해 결국 서로를 떠민다.

“(자신의 최측근인 박상무에게) 장태주 씨, 빨리 돌려보내고 싶네요. 신림동 판자촌으로.”
“(성진제철을 팔고 서윤에게) 기분 나쁩니까? 아빠가 사준 곰인형 내가 엿 바꿔 먹어서.”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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