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화에 성공한 힙합, 롱런을 위한 조건은

[엔터미디어=노준영의 오드아이] 프라이머리와 자이언티의 합동 공연, 그리고 9월의 첫 번째 주말을 밤새워 달궈준 ‘원 힙합 페스티벌’을 보자. 프라이머리와 자이언티는 원래 이틀 공연이 예정돼 있었지만 모두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공연을 하루 늘리고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서울이 아닌 일산에서 열린 ‘원힙합 페스티벌’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음악 페스티벌 홍수 속에서 성공의 계보를 이어가는 기쁨을 누렸다.

현장의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마니아 층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은 것이다. 실제로 프라이머리와 자이언티의 공연은 스탠딩 입장 전부터 기나긴 대기줄을 형성하며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만들었다. 아이돌 부럽지 않은 인기였다. 떼창을 거듭해 가며 두 아티스트에게 열렬한 반응을 보여주던 관객들은 분명 힙합의 특수성 보다는 아티스트의 음악성에 더 집중한 듯 했다.

‘원 힙합 페스티벌’도 꽤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며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음악 축제’로 인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힙합이라는 장르적 특수성 보다는 자신들이 보고 싶었던 아티스트를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공연장을 찾았다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 한 때 마니아들의 이야기로 여겨졌던 힙합 음악이 소위 ‘먹히는 장르’로 탈바꿈 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음원 차트에서 프라이머리, 배치기, 자이언티, 다이나믹 듀오 등이 돌풍을 일으키며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일이다. 음원에 대한 반응은 공연을 통한 직접적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문화적 편익을 위해 비싼 공연 한 번쯤은 선뜻 관람할 수 있는 게 지금 젊은 세대의 경향이다. 그러니 예측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보는 건 옳지 않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건 도대체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최근 화제를 모았던 욕설 디스전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설득력이 충분하지 않다. 필자는 힙합 전문가가 아니다. 따라서 전문적 음악 지식보다는 트렌드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사항들을 한 번 짚고 넘어가 보고자 한다.



일단 스토리 텔링의 측면이다. 아이돌 그룹들이 차트에서 득세하며 가장 먼저 사라진 건 나만의 이야기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음악의 존재감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억울할 때나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 말해주던 건 바로 음악이었다. 이런 음악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힐링을 체험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의 음악에서는 이 부분이 쏙 빠져있었다. 대신 의미도 모를 단순한 가사들이 난무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나마 구조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건 힙합 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대신해 줄 수 있는 가능성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음악을 통해 느끼던 본질적 치유의 미학을 찾을 수 있는 힙합 음악에 반응하게 된 것이다. 음악이 가질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무시하지 않았던 힙합의 강점이었다.

과거보다 다소 조직적으로 변한 레이블들과 홍보에 용이한 점이 많아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힙합 아티스트들은 과거보다 훨씬 체계적인 레이블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소위 잘 나가는 레이블로 평가받는 브랜드뉴뮤직, 아메바 컬쳐, 일리네어 레코드는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나가고 있다. 분명 메인스트림을 등지고 활동하던 때와는 다른 부분이다.

아티스트들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고충이 있겠지만, 적어도 홍보에 용이한 부분을 선점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프라이머리와 자이언티의 합동 공연과 ‘원 힙합 페스티벌’은 모두 문화 대기업의 손끝에서 움직였다. 이 정도로 잠재력을 인정받게 된 건 음악 자체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이 음악이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까지 펼쳐진 홍보 방법들이 한 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며 달려왔다. 지금까지 올라온 과정이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상업적 논리라는 건 무시할 수 없겠지만, 힙합 음악이라는 장르적 의미까지 퇴색된다면 팬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대중음악적인 마인드가 지나치게 녹아버리면 아쉬움을 피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트렌드를 읽으려는 노력과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자존심을 통해 중간선을 도출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중간을 지키는 게 제일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것도 더 큰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 아니겠는가?

홍보를 위한 방법들도 다각화를 모색해야 한다. 아티스트 본인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고, 가장 많은 노력의 대가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프라이머리와 자이언티, 그리고 ‘원 힙합 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었던 색다른 모습도 참고하기에 좋은 모델이다.

프라이머리와 자이언티는 공연에서 ‘어쿠스틱 타임’으로 새로운 느낌을 연출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배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원힙합 페스티벌도 콜라보 구조와 힙합 페스티벌 자체의 다양성을 실험했다. 모여서 콘텐츠를 만들 때 어떤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지도 증명했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모습을 지향하는 것, 콘텐츠의 콜라보를 통해 또다른 에너지를 얻어내는 것, 어쩌면 앞으로 힙합 음악의 홍보에 있어서 작은 지혜를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힙합 음악은 지금 장르적 특수성을 넘어 비상하고 있다. 이제 이 비상을 롱런하는 트렌드로 만들고 가꿔나갈 사람들은 아티스트들과 대중들이다. 함께 소통하며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장르의 장이 힙합 음악의 이야기를 날로 뻗어나가게 만들 것이다. 이 바닥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칼럼니스트 노준영 nohy@naver.com

[사진=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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