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데이’ 음악의 흡인력과 정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마음을 위무해주는 공연 한 편이 그 어떤 진통제보다 나을 때가 있다. 마음의 편두통과 치통, 그리고 끔찍한 붓기를 달콤 쌉쌀하게 날려주는 ‘그린데이’ 음악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지난 9월 5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밴드가 직접 연주하는 그린데이의 음악이 환상적으로 결합해 환호를 지르게 만들었다. 여기에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무대, 춤추는 듯한 조명과 에너지 넘치고 감각적인 안무가 더해져 9·11 사태 이후 미국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불안한 현실과 정체성의 혼란이란 드라마가 완성됐다. 무대디자이너 크리스틴 존스(Christine Jones), 조명감독 케빈 아담스(Kevin Adams)의 손길 역시 느껴진다.

2010년 4월 처음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아메리칸 이디엇>은 암울한 교외 지역에서 살던 세 청년이 각자 다른 운명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뮤지컬이다. 무대는 펑크 락 클럽 혹은 창고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주인공인 ‘조니’는 도시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하지만 섹스와 마약으로 가득찬 향락의 세계로 안내하는 ‘왓서네임’이란 여인에게 빠져버린다. 앨범 “아메리칸 이디엇” 속 JOS(Jesus of Suburbia)라는 이름의 소년이기도 하다.

조니의 친구인 ‘터니’는 군에 입대해 참전한 중동 전쟁에서 왼쪽 다리를 잃는다. 또 다른 친구 ‘윌’은 갑작스런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고향에 남게 되는 인물. 집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약물과 술에 중독되고 여자친구 마저 떠나버린다.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이끄는 인물은 마약 판매상으로 나오는 ‘세인트 지미’이다. 마약에 찌든 조니의 또 다른 자아이자, ‘아버지와 분노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허상’이기도 한 이 인물은 조니의 성장을 관객들에게 이해시켜 주는 존재이다. 연출가 마이클 메이어(Michael Mayer)는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란 넘버에 무대 위에 설치된 총 43개의 스크린에 영상을 입혀 세인트 지미의 자살을 표현해냈다. 지미의 흔들거리는 고개가 천천히 관객 앞에 다가올 때, 가슴에 그려진 하트가 터질 때, 예전의 나약한 조지가 사라지고 한층 성장한 조지가 눈 앞에 나타난다.



자신이 원치 않았던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상황에 놓여 힘들어하는 청년의 여정을 또 다른 자아로 설정한 연출은 ‘윌’ 커플에게도 적용된다. 조금만 자세히 보면, 윌과 헤더 커플의 싸움이 격렬해질 때 비슷한 의상을 입고 나타나 조롱하는 남녀를 만날 수 있다. ‘터니’의 환각 속에 나타나는 공중 부양 장면도 흥미롭다.

세계적인 팝 펑크 밴드 그린데이의 그래미 수상 앨범인 “아메리칸 이디엇”과 그린데이의 새 앨범인 "21세기 브레이크다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아메리칸 이디엇>은 그 동안 미국 뮤지컬이 도전해보지 못한 것에 도전한 새로운 뮤지컬이다. 아티스트의 히트곡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전복시킨 것. 주크박스 뮤지컬이 아닌 록 오페라로 볼 수 있다.

“아메리칸 이디엇” 앨범이 담고 있는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과 부시(Bush) 행정부에 대한 저항과 반전의 메시지는 뮤지컬 속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매체에 지배 받는 나라, 히스테리 정보의 시대, 집단으로 히스테리에 빠져 있는 미국의 현실을 쉴 새 없이 바뀌는 독특한 무대 디자인과 무대 위에 설치된 수십개의 스크린을 통해 전달했다.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은 뛰어난 크리에이티브 팀과 그린데이 음악의 힘을 통해 모던록과 극이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린데이의 팬이나 강한 비트의 펑크록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내 맡기게 되는 곡들이 많다.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은 것 같아 슬픈 날, 마치 빗속의 버려진 강아지 같아 눈물이 날 때 ‘Give Me Novacaine’, ‘Homecoming’ 노래가 흘려 퍼지면 영원한 숙취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아지니 말이다.

<아메리칸 이디엇> 오리지널 팀 내한 공연은 2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 홀에서 만날 수 있다. 배우 션 마이클 머레이(조니), 다니엘 C. 잭슨(세인트 지미), 토마스 해트릭(터니), 케이시 오패럴(윌)등이 출연한다. 국내 배우로 꾸려진 <아메리칸 이디엇> 공연도 어서 빨리 만나고 싶어진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OD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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