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신성록·이윤지, 사랑의 우울증에 빠지다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첫 눈에 반한 사랑, 숨겨진 유혹'(2004년 영화 카피),‘니꺼보다 더 달콤해!!!’(2006년), ‘당신의 사랑이 또 한번 흔들린다!!!’(2007년), ’그들이 당신을 유혹한다!'(2008년), '널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어'(2010년), '안녕, 낯선 사람'(2013년)

<클로저>(CLOSER)의 카피 변천사를 보면, 지난 시즌들이 좀 더 자극적인 문구로 관객을 유혹한 걸 알 수 있다. 2013년 추민주 연출의 <클로저> 포스터 카피는 건조하게 인사만을 건네고 있다. 추 연출은 관객에게 어떤 인사를 하고 있을까?

‘클로저’는 사랑의 진실에 대해 절제했다. <클로저>에 대한 감상을 ‘댄‘이 그랬던 것처럼 완곡한 표현으로 정리한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 할 때 이야기되는 모든 것들을 연극 안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영국의 젊은 극작가 패트릭 마버(Patrick Marber)의 대표작 <클로져>는 뉴욕 출신의 스트리퍼 앨리스(이윤지▪진세연▪한초아), 부고 전문 기자 댄(신성록▪ 이동하▪ 최수형), 사진 작가 안나(차수연▪ 김혜나), 피부과 의사 래리(서범석▪ 배성우▪ 김영필), 이렇게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끝없는 갈망을 그린 작품.

<클로저>는 사랑을 하면 할수록, 상대와 가까워지면 질수록 외로워지는 모든 이들에게 그 외로움의 이유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이는 제목 ‘closer’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서로의 관계가 근접해짐과 동시에 사랑에 의해 결국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이라는 중의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 이유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진실에 대해 집착하는 인물. 각각의 직업 역시 작가의 통찰력을 돋보이게 한다. 기자인 댄과 사진 작가인 안나는 진실을 담아내는 사람이고, 스트리퍼 앨리스와 피부과 의사 래리는 맨 살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봐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솔직한 진실이 항상 최고의 방편이기만 한 것이 아님을 연극은 꿰뚫고 있다.



연극은 미니멀한 무대 위에서 시간의 흐름을 간략하게 표현하며 진행된다. 대부분은 배우들이 주고 받는 대사에 무게 중심을 뒀다. 앨리스가 두 명의 남자에게 선물하는 ‘뉴턴의 요람’(Newton's Cradle)이 네 남녀의 흔들리는 사랑 그리고 사랑의 작용과 반작용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사랑의 신인 ‘큐피트’처럼 굴었던 댄은 어떻게 그 화살을 꺾었을까? 세상의 모든 거짓에 둘러싸인 두 여자를 안심시키며 보호해 줄 것 같았던 그 남자는 어디 갔을까? 직설적 표현보다 완곡한 표현으로 부고 기사를 완성했던 댄은 어디가고 솔직함만을 상대에게 강요하게 됐을까? 이에 대해 사랑행위를 하며 눈도 뜨지 못하는 ‘댄’은 ‘사랑이 날 실망시킨다’고 답했다. 여기에 대해 래리가 처방전을 내민다. ‘넌 사랑의 첫 번째 조건인 타협을 몰라’.

사랑의 축축한 감정과 습기는 살아있다는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눈물과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연극 속에서는 실제 비가 내리는 창문과 음향효과를 통해 관객과 공감의 공기를 나눠가졌다. 이미 알면서도 자꾸 빠져들게 되는 ‘사랑의 우울증’을 효과적으로 불러낸 장면이다.

<클로저>의 메타포는 무궁무진하다. 사랑 앞에서는 수족관의 물고기들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존재인 댄의 소설 제목도 그렇고, 수족관에서 처음 만나 사랑하게 되는 래리와 안나 커플 역시 그러했다. 이성과 감성 그 사이를 부유하며 사랑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그들의 모습이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연극의 처음과 끝에서 만날 수 있는 포스트 맨 공원은 진실과 거짓이 탄생된 곳인 동시에 모든 것이 끝나는 장소이다. ‘앨리스’이자 ‘제인 존스’인 그녀의 삶 앞에서 누군가는 드러내놓고 슬퍼했을거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당혹스러웠을 수도 있다. 거짓말이 진실이 되는 순간 사랑은 끝나는 것이기에.

20대에 만난 <클로저>와 30대에 만난 <클로저>는 분명 다르다. 내용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저만치 멀어져가는 마력의 연극인 건 분명하다. 네 명의 남녀가 보여준 사랑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다 풀어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진실 꾸러미들이 도착한다. '사랑'의 속성과 어찌나 닮아있는지. 리뷰 완성이 결코 쉽지 않았던 작품 중 하나이다.

신성록의 댄 연기에 물이 올랐다. 부단한 연습이 묻어나는 여유 있는 대사 템포가 극 몰입을 도왔다. 이윤지가 분한 앨리스의 단단함도 좋았다. 차수연 안나는 미묘하게 흔들리는 갈대 같은 여인의 내면을 잘 보여준다. 김영필 래리는 느끼함으로 먼저 다가오기 마련인 ‘래리’란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는 부드럽고 단호함으로 채워 넣었다.

한번 관람 하는 것으론 만족하는 못하는 연극이다. 이번엔 잠자리와 사랑을 동일시하며 집착하지만 정작 사랑하는 방법은 잘 알지 못하는 남자, 여자들이 안심할 때쯤 터질 것 같은 어마 어마한 짐을 들고 오는 남자들의 감정에 집중했다면, 다음엔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 생각하는 여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해서 봐야 할 것 같다. 12월 1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악어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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