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드파리’, 곰콰지와 마그랭의 시대가 밝았다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2007년 <노트르담 드 파리> 라이선스 초연 당시, 배우 윤형렬은 ‘딱 콰지모도의 목소리’라는 평을 들었다. 이젠 그 수식어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실제 콰지모도의 숙명을 안고 태어난 사람 같았으니 말이다. 불공평한 세상에서 꼽추로 태어난 험난한 발걸음,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울리지 않는 종 앞에서 에스메랄다를 향한 연정을 키우는 모습이 객석 저 끝까지 전달됐다. ‘콰지모도’ 옷을 입은 배우로 보이지 않고 ‘콰지모도’ 자체로 보였다는 점이 힘껏 박수치게 만들었다.

사실 그의 울림이 강한 허스키 목소리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관람한 것은 콘서트가 아닌 뮤지컬이다. 관객은 단순히 가수의 입을 보는 것이 아닌 배우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품어져 나오는 기운과 감정 한올한올까지를 함께 보게 된다. 곰콰지(윤형렬 콰지모도)가 관객을 감동시킨 점은 두 가지다. 배우로서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 놓은 겸허한 자세, 그리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남자가 갖게 되는 ‘한 여자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설득력 있게 내 보인 점이다.

넘버 ‘불공평한 이 세상’에서 ‘그녀를 내게 주오’,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로 이어지는 감정 신을 긴밀하게 몰고 가는 명불허전의 무대 장악력, 무대 한 구석을 차지하는 괴물 형상의 석상 얼굴에서 콰지모도의 슬픈 운명이 예견 된 이는 단연코 윤형렬이었다. 같은 울음을 나눠 가진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15세기 노트르담 대성당 벽 한 구석에 새겨진 단어인 ‘Anarkia'(아낭케)에서 영감을 받아 써 내려간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방인이었던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랑한 꼽추 콰지모도의 슬픈 사랑 외에도 주교 프롤로와 근위대장 페뷔스의 사랑과 욕망이 스스로에 의해 처참히 짓밟히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비극적인 세 남자가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노래하는 넘버 ‘Belle(아름답다)’이 유명하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이는 작품의 해설자이자 시인인 ‘그랭그와르’이다. ‘그랭그와르’는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대성당들의 시대’로 1막을 열고, 인쇄술과 신대륙의 발견에 의한 변혁의 시대를 예견하는 ‘플로렌스’로 2막 첫 무대를 연다. 실제로 <노트르담 드 파리>는 철학적인 내용이 장엄한 선율과 어우러져 듣는 이를 압도한다.

지금까지 ‘그랭그와르’는 캐릭터에 대한 특별한 감정보다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더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마이클 리가 분한 ‘그랭그와르’는 세상을 평등하게 비추는 ‘달빛남자’란 이름으로 먼저 기억 될 듯하다. 마그랭(마이클리 그랭그와르)은 인간이 ‘사랑’으로 괴로워하고 고통 받는 모습을 어두운 달을 통해 노래한다. 아니 읊조린다. 그리고 따뜻하게 감싼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느꼈던 ‘성스러운 공감’을 다시 한 번 이 곳에서 경험할 줄이야! 모든 배우와 모든 관객, 아니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배우의 착한 성정이 무대에서 만져졌다.

배우 최성희의 발견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시즌에 비해 훨씬 촘촘해진 보헤미안의 감정선과 가창력이 사랑스러운 ‘에스메랄다’ 그 자체였다. 듬직한 배우 김성민은 수차례 페뷔스 역을 맡은 배우답게 안정적으로 무대를 채웠다. 2013<노트르담 드 파리>에선 배우 홍광호 윤형렬 (콰지모도), 바다(최성희) 윤공주 (에스메랄다), 마이클 리 정동하 전동석(그랭구와르), 민영기 최민철(프롤로), 문종원 조휘(클로팽), 김성민, 박은석(페뷔스), 이정화 안솔지 (플뢰르 드 리스)가 열연한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극작가 플라몽동과 유럽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 코치안테 등 함께 만들어 낸 <노트르담 드 파리>는 주옥 같은 넘버들로 현재까지 1,200만 장의 경이적인 OST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상징하는 대형 무대세트(길이 20m, 높이 10m)와 100kg 이 넘는 대형 종들, 감옥을 상징하는 쇠창살, 움직이는 기둥과 가고일 석상 등 30톤이 넘는 세트와 무대미술까지 남다른 스케일과 예술성을 자랑한다.

노래 위에 대사가 얹혀진 대표적인 송 쓰루(Song through)뮤지컬 <노트르드 담 드 파리>는 대사 없이 총 50여곡의 음악과 노래로만 펼쳐진다. 또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작품과는 다르게 노래하는 배우와 춤추는 무용수를 철저히 분리시켜 종합예술로서 뮤지컬을 재구성해낸 것이 신선함을 더해준다.

현대무용과 아크로바틱, 허공을 가르는 덤블링은 물론 브레이크 댄스가 접목된 안무는 끊임없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댄서들은 암벽 등반을 연상케 할 정도로 구조물을 오르내리거나, 천장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종에 거꾸로 매달려 역동적인 무대를 만들어냈다. 땀 흘리며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댄서들에게 ‘브라보’를 외치고 싶은 뮤지컬이기도 하다. 11월 17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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