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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이준익이 끔찍한 성폭행을 대하는 방식
기사입력 :[ 2013-10-02 13:00 ]


‘소원’ 이준익 감독의 휴머니즘 유독 빛났던 이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소원>은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등으로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었던 이준익 감독의 복귀작으로, 아동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설경구, 엄지원 등 연기파 배우들의 진심을 담은 연기가 기대를 모으는 가운데, 신인 아역배우 이레의 몰입감 높은 연기가 신선함을 안기는 영화이다.

수년전부터 아동성폭행 사건이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사회를 공분에 휩싸이게 하였다. 영화 <소원>은 이러한 현실에서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한 선물 같은 영화이다. <소원>은 2008년에 발생해 많은 이들의 경악을 불러일으켰던 조두순사건을 영화화하면서, 지금까지의 분노일변도의 시각에서 물러나 피해아동과 가족들의 고통과 치유에 시선을 돌린 영화이다.

◆ 소원이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내다

공장에 다니는 아빠(설경구)와 문구점을 하는 엄마(엄지원)를 둔 소원이는 비오는 등굣길에서 술에 취해 다가와 우산을 씌워 달라는 아저씨에게 끌려가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중상을 입었지만, 소원이는 직접 경찰에 신고하여 출동한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소원아빠는 딸의 내장이 심하게 손상되어 복부에 인공항문을 만드는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딸이 당한 사고가 믿기지 않지만, 아빠는 딸을 안심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엄마는 딸에게 나쁜 소문이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피해아동지원센터에서 나온 전문가(김해숙)의 도움도 마다한다. 하지만 언론의 대대적으로 보도로 기자들이 병원에까지 들이닥치는데....

영화 <소원>은 미성년자 성폭행을 사회문제로 다루었던 <도가니>나 <돈 크라이 마미>가 보여주었던 고발이나 응징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영화는 아동을 피해자이기 이전에 자신의 삶과 생각을 지닌 능동적인 주체로 인정하며, 소원이 사고 이후 새롭게 자기 삶을 추슬러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딸의 사고로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놓인 부모를 조명하면서도, 그들이 모든 감정의 중심에 딸의 치유를 놓는 모습에 주목한다. 영화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장면은 딸과의 대화를 잇기 위해 애쓰는 아빠의 노력이다.



영화는 소원이 부모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내면을 전문가와의 상담 장면을 통해 들려준다. 아이는 자신이 가해자에게 친절을 베푼 것이 비난받는 게 서글프고, 가해자가 다시 나타날까봐 두렵고, 자신으로 인해 부모님이 힘들어하는 것이 속상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잘 적응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고, 아버지가 가해자에게 직접 응징을 가할까봐 겁이 난다.

영화는 피해아동과 가족들의 치유와 회복에 주목하면서도, 아동성폭행 사건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들을 짚어주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가령 선정적인 언론의 행태나 파렴치한 가해자의 모습, 음주를 감경사유로 인정하는 법원 등에 대해서 영화는 분명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피해자의 치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어떤 불행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전문가의 사연을 통해 들려준다.

소원은 아빠가 기자들을 피해 자신을 안고 도망을 칠 때,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묻는다. 소원은 아빠 앞에서 배변주머니가 흘러내린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소원이와 부모가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가장 신경을 쓰는 대목도 바로 수치심이다. 다행히도 영화 속 소원의 친구들과 이웃들은 소원이 겪은 사고를 제대로 이해하고, 아픔에 공감하며, 소원을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사고가 어떻게 인식되고, 피해자인 자신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것도 피해자의 사회적 치유를 성공 짓기 위한 관건이다.

소원은 “왜 태어났을까?”를 나지막이 웅얼거리던 심정에서 벗어나, 태어난 동생을 보며 “태어나길 잘했다”는 말을 해준다. 이는 사회가 아동성폭행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기울였기에 얻을 수 있었던 성과이다.



◆ 아동성폭행문제 바로 보기

최근 아동성폭행 문제가 줄을 잇는 것은 과거에는 전혀 없던 범죄가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아동성폭행문제는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사회문제로 인식되지 못한 채 피해자들의 악몽으로만 묻혀있었다. 1991년 9세 때 자신을 성폭행했던 가해자를 21년 후에 살해한 김부남 사건으로 아동성폭행이 알려졌지만, 성폭행에 대한 통념으로 인해 아동성폭행 문제는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였다. 예컨대 성폭행을 불가항력적인 남성의 성욕이 유혹적인 여성에 의해 촉발되어 일어나는 사건으로 이해하는 문화권에서는 아동성폭행사건이 가시화되기 힘들다.

따라서 강간통념이 남아있던 90년대 후반까지 아동성폭행은 좀처럼 이해되기 힘든 사건이라, 괴담처럼 치부되거나 신고 되지못한 채 묻혔다. 그러나 차츰 성폭력이 약한 상대를 힘으로 무력화시키고 상대로부터 성을 착취하는 ‘폭력’이라는 개념이 정착되면서, 아동성폭행사건은 가시화되었다.



지난 몇 년간 아동성폭행 뉴스가 폭주한 것은 아동성폭력의 개념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피해의 심각성이 알려졌으며, 피해자와 부모에 대한 잘못된 비난이 잠식됨으로써 아동성폭력 사건의 신고율과 기소율이 높아진 덕분이다. 오랫동안 피해 아동의 고통이 침묵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그 관심의 방향이다.

지난 몇 년간 아동성폭행에 대한 담론의 중심은 분노와 형벌 강화였다. 사회에 만연한 남성 중심적인 성인식에 대한 성찰은 없고, 가해자의 욕망이 얼마나 변태적이며 범행이 얼마나 잔혹한지에 대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아동이라는 순결한 존재를 짓밟는 악마’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외칠수록 내 욕망의 결백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듯, 가해자에 대한 특화된 증오가 모든 담론을 뒤덮었다. 대중추수적인 정치권이 이에 반응하면서 엄벌주의가 뒤를 이었다. 가해자에 대한 형량이 높아지고, 전자발찌, 치료감호,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가 일사천리로 법제화되었다.

그러나 방과 후 아동관리 등 실질적으로 아동성폭행 사건의 발생을 줄이기 위한 예방책이 강화되거나, 10%에도 못 미치는 신고율과 40% 밖에 되지 않는 기소율을 높이기 위한 형사사법제도를 개선하거나, 가해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해 왜곡된 성인식을 교정하는 체계적인 교화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피해아동과 가족의 재활을 지원하는 등, 장기적인 노력과 예산이 필요한 정책들은 제자리 수준이다.



<소원>은 가장 선정적인 소재로 소비될 수도 있었던 실화를 영화화하면서, 분노와 응징으로 나아가지 않고, 피해자를 보듬는 성숙한 시선을 견지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퇴원하여 집에 돌아온 소원이 그를 응원하는 편지들을 보는 장면과, 재판정에서 격분하는 아버지를 소원이가 필사적으로 말리며 “집에 가자”고 울먹이는 장면이다. 피해자의 치유를 위해, 범인을 반드시 잡아 정당한 죄과를 치르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공분을 표출하는 것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자기만족을 위한 심리적 제스처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를 응원하고 그들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회복하여 자기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소원>은 그 당연한 가르침을 잔잔한 감동이 넘치는 대중영화의 화법을 통해 전달한다. 이준익 감독 특유의 대중적 휴머니즘의 시선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P.S. 2013년 6월부터 시행된 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20조에 따라, 성폭력 범죄에 대하여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상태는 형량 감경의 사유에서 제외되었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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