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한재림 감독 “수양대군은 과연 이긴 걸까?”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생생인터뷰] 초반 속도대로라면 영화 <관상>은 천만 관객에 쉽사리 도달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9월 30일 개봉 3주 차가 시작되면서 관객 수가 10% 정도씩 빠지기 시작했다. 천만은 쉽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여기까지만도 정말 한 순간에 다다른, 놀라운 수치다. <관상>이 이렇게까지 ‘터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는 수양대군이 1453년 계유정란을 일으켜 세조로 등극하던 시대, 그 격랑에 휘말리는 한 관상쟁이의 이야기다. 녹록지 않은 내용이다. 프로덕션 과정도 감독과 현장 프로듀서가 교체되는 등 난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관객을 휩쓸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 이 영화를 연출한 한재림 감독과 만났다.

-천만이 갈 것 같은 가, 어떤가?

“아니다. 거기까지는 못 갈 것이라고 본다. <소원>에 <깡철이>에…화제작들이 많다. 한 주 뒤에는 <화이>도 있고. 그 영화 소문이 좋더라. 그렇게 되면 관객들이 빠지는 것도 빠지는 것이지만 일단 스크린 수가 대폭 줄 것이다. 대체로 9백만은 가지 않겠냐 고들 한다. 글쎄? 그 정도면 된 것 아닌가 싶다. <설국열차>도 9백만 대를 했다. 요즘은 9백만 대에서 멈추는 것이 대세 아닌가?(웃음)”

-왜 관객들이 이 영화를 이처럼 좋아했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그 이유를 분석할 틈이 없을 만큼 흥행 속도가 빨랐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을 정도로. 지금 생각엔 상당 부분 배우들 덕이 아닌가 싶다. 송강호 선배야 워낙 대중들로부터 신뢰성이 높은 배우고. 이정재 선배나 김혜수 선배 모두 요즘 들어 활약이 대단했던 배우들이었다. 조정석과 이종석 모두 그렇게나 여성 팬들이 많은지를 영화를 하면서 알았다. 게다가 모두가 이 영화 직전에 화제작들 한편씩을 갖고 있었던 점이 흥행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송강호는 <설국열차>, 김혜수는 <직장의 신>, 이정재는 <신세계>, 그리고 이종석과 조정석은 각각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최고다 이순신> 등등. 이 영화가 시작은 미미했을지 몰라도 이렇게 결과가 창대한 것은 상당 부분 배우들의 시너지 효과 때문이라고 본다.”

-이 영화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관객들에게 통해서겠지. 근데 그게 뭐였다고 생각하나.

“이번 영화는 내가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니었다. 다소 복잡한 사정을 거쳐 내게 연출 의뢰가 왔고 처음엔 관상 얘기라고 해서 긴가민가 했었다. 진짜 관상 얘기만 하는 영화면 어쩌나 싶었다. 근데 시나리오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어서 좋았다. 관상 얘기보다는 한 시대의 정치와 거기에 얽혀 있는 사람들의 얘기였다. 내가 주목한 것은 일종의 ‘패배의 카타르시스’였다. 난 영화의 극중 인물들을 모두 패하게 하고 싶었다. 겉으로는 문종과 단종, 영의정 김종서, 그리고 주인공 김내경(송강호)과 그의 사람들 쪽이 모두 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 이들만이 진 걸까. 수양대군은 과연 이긴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수양대군도 결국엔 자신이 꿈꿨던 강력한 왕권 중심의 국가를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게 아이러니다. 역사와 시대 앞에서 사실상 승자는 없다. 잠깐 이긴 것 같지만 그 사람도 궁극적으로는 패자가 된다.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바로 그 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양대군이 등장하는 신을 두고 최고라고들 하더라. 그런데 그보다는 수양대군의 책사라는 인물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게 더 탁월했다고 본다. 세상에. 그 역을 맡은 배우는 영화 말미에 몇 신 정도에서만 얼굴을 비춘다. 그거 참 좋았다.
(*스포일러일 수 있어 책사의 실제 인물이 누구였는지, 그 역을 맡은 배우는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는다. – 편집자 주)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당초 시나리오도 이 책사 중심의 내러티브 구조로 약간 수정했다. <관상>을 아직 안보신 분들은 이 영화를 볼 때 이야기의 처음 부분을 꼭 기억하시면서 보면 좋을 것이다. 한 노인이 나와서 젊었을 적 한 관상쟁이가 말하길 자기가 목이 잘려서 죽을 팔자라는 말을 했다며 호위무사들이 지키고 있는데도 벌벌 떠는 장면이다. 근데 그 관상쟁이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이다. 많은 분들이 무릎을 탁 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하더라.”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오프닝 장면을 정말 까맣게 잊게 된다. 맞아. 그게 특이하다. 그 점에서 영화의 구조를 영리하게 짰다고 본다. 일종의 순환구조였으니까.

“그 책사의 정체를 숨겨 존재감을 극대화시킨 것이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 배우는 영화 중간에 각시탈을 쓰고 연기를 하는 장면에서도 본인이 직접 했다. 얼굴을 가리는 장면은 직접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의 연기를 위해서는 그 흐름이 중요하다고 본 것 같다. 얼굴이 나오든 안 나오든 모든 신을 다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배역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수양대군이 등장하는 신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책사 역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존재감이 극대화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상에도 수양대군은 극 중반 부분에나 가서야 나오게 돼있었다. 자 근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 의상은 어떻게 입힐까, 얼굴이나 외모는 어떻게 보이게 할까 등등. 결론은 전형적인 수양대군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사냥꾼 옷을 입히게 하고 얼굴도, 그게 전쟁터에서 얻은 것인지, 호랑이를 잡다가 얻은 상처인지 아무튼 칼자국을 만들게 했다. 사냥꾼 옷은 사냥꾼 옷인데 왕족이었던 만큼 고급 모피처럼 보이게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정재 씨였다. 옷을 입히고, 분장을 하고 나니까, 어쩜 그렇게 완벽한 모습이 되는지… 수트 감이 최고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배우라고 새삼 감탄했었다.”

-맞다. 그 ‘퍼(fur)’의 느낌이 남달랐다.

“그런데 동시에 주목해야 할 부분이 그때, 그러니까 수양대군이 등장할 때 경악하는 표정의 송강호 씨 연기다. 영화를 볼 때는 수양대군이 등장하는 신, 그걸 바라보는 김내경의 표정 신 등이 다 연결돼 있지만 그걸 촬영할 때는 다 따로 찍는다. 수양대군이 걸어오는 거 따로, 그걸 보는 거 따로. 아 근데 그때 송강호 선배의 연기는 정말 백미였다. 클로즈 업 장면에서 눈이 막 흔들리는 장면 같은 건, 그가 정말 얼마나 자기가 맡은 역에 대한 해석이 뛰어난 배우인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한 감독이 김종서의 편인지, 수양대군의 편인지 좀 헷갈린다. 의도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쪽에도 안 서겠다는.

“난 이 영화가 정치적 입장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얘기하신 것처럼 정치적으로 좀 모호하다는 얘기 혹은 비판을 받는다. 근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장르의 표피가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아한 세계>를 찍을 때는 누아르가 이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 고들 했다. 그렇다면 이런 역사극을 만들 때도 정치적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모두가 패자들이다. 승자의 얘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모두가 패자인데 어느 쪽 입장에 선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영화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느끼게 해서 좋았다. 송강호의 마지막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흐름을 봤어야 했거늘, 파도만 봤다 고 하는 장면.

“그렇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그 얘기를 하려 했다. 우리는 파도를 만드는 바람의 흐름을 봐야 한다. 근데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영화를 보신 후 만약 그 점을 생각하게 된다면 이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은 셈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배우와 스태프들과 무엇보다 관객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영화 <관상> 스틸컷, KWAVE 김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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