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이 후배 발라드가수들에게 던진 메시지

[엔터미디어=노준영의 오드아이] 그야말로 자극에 반응하는 시대다. TV에서 가장 핫 한 프로그램들은 일명 ‘섹드립’을 시전하고 있고, 방송불가 수위를 넘지 않을 만큼의 아슬아슬하고 야한 대화들이 브라운관을 가득 채운다. 성적인 코드가 넘치는 ‘19금’을 맞이하는 건 이제 그리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런 경향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보다 야릇한 수위를 자랑하는 가사들이 많아졌고, 음악 방송에서는 살색 비주얼이 눈앞에서 작열한다. 음악 자체의 코드도 좀 더 자극적으로 변한 게 사실이니 음악에서도 ‘자극’이 난무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시점에, 또 10월 음원 대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컴백이 밀려드는 이 시점에 합류한 신승훈과 케이윌은 다소 자극과는 거리가 먼 아티스트들이다. 물론 음원 차트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버스커버스커도 원초적인 자극에는 최적화된 아티스트가 아니지만, 발라드를 주력 장르로 택한 두 남자는 버스커버스커보다도 자극 포인트가 적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음원 발매와 동시에 차트 1위를 차지하며 한 남자는 음원 차트의 강자임을, 다른 한 남자는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임을 입증했다. 자극의 시대, 음원 차트의 향방을 사로잡은 두 발라드 가수의 전략은 도대체 무엇인가?

신승훈은 그동안 ‘Radio Wave’와 ‘Love O’clock’을 통해 무려 6년 동안 긴 실험의 여정을 걸어왔다. 미디어 음감회에서 그는 이 과정을 ‘실험적 단편영화’라고 표현했다. 과거의 자신과 새로운 배움을 겪은 자신을 축약해 제시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Radio Wave’에서부터 그동안 자신을 정의해 주었던 전형적인 발라드 넘버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는 결말을 피해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종착역이 바로 앨범 ‘Great Wave’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선공개곡 ‘내가 많이 변했어’를 통해 변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어쿠스틱 사운드에 힙합 비트를 가미하며 최신형 트렌드와 자신의 정체성을 결합하는 시도를 택한 것이다. 이 곡의 작업을 위해 택한 주인공들도 다이나믹듀오의 최자와 작곡가 슈퍼창따이다. 자신의 기반을 바탕으로 새로운 감각을 흡수하겠다는 의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가 발라드 가수로서 택할 수 있는 최대의 미덕이 바로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는 ‘오픈 마이드’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발라드란 장르는 가요계에서 소위 가장 ‘먹히는’ 음악 중 하나였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 음악이었다. 특유의 감성 자체를 비트는 시도로는 발라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승훈은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발라드 자체를 살짝 움직이는 시도를 택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승훈은 내버려 둔 채 다른 장르와 섞어가며 새로운 느낌을 창조한 것이다. 덕분에 그를 잘 모를 수도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음악이 만들어 졌다. 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과감한 ‘흡수 정신’이다.

새로운 음원의 제왕으로 떠오른 케이윌은 조금 다른 방식을 택했다. 지난 앨범은 계절적인 특성에 맞게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Will In Fall’은 변화 보단 케이윌의 정체성을 공고하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다른 말로 정의하면 비슷한 지점에서 장점을 찾아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좀 더 큰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는 이번 앨범에 어쿠스틱 사운드와 애시드 재즈, 그리고 레트로 R&B 등 발라드의 감성과 가장 비슷한 지점을 가지고 있는 장르들을 들여오며 자신의 보이스가 가진 강점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센스를 발휘했다. 섣불리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보다 자신의 결과물에 안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굳히기를 시도한 것이다.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음악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케이윌은 예상보다 무덤덤해 보이지만 오히려 흡입력은 두 배가 된 느낌이다. 거센 파도를 일으키지 않고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어 더 짜릿한 파동이 밀려오는 듯 하다.

케이윌 역시 발라드 가수라는 틀 안에 머물지 않고 벽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가수다. 이 바닥에서 생존하는 법이란 꾸준히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같이 자극에 반응하는 시대라면 더더욱. 그가 택한 이 시대의 해법은 ‘빼고 더하기’다.

음원 차트를 돌아보면 음원 차트에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는 발라드 가수들이 많다. 대부분 요즘은 발라드가 대세가 아닌 시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대중들을 사로잡는 아티스트들은 분명이 있다. 완성도와 허술함의 차이가 극명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한 번 쯤 잘됐던 장르에 대한 제작자들의 기준은 지나치게 관대하다. 결과물에 주목하기 보단 만드는 데 신경을 쓴다. 앞선 선례가 있으니 잘 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도 잊지 않는다. 이런 안일한 생각들이 보여 후에 부정적 선례가 된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대중들의 눈도장을 한 번 받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게다가 자극에 반응하는 시대는 점점 더 대중들의 중심을 ‘시선’으로 내몰고 있다. 발라드의 도전과 정체성 찾기가 이어져야 하는 이유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90년대식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도 도처에 널려있다.

발라드 전설이 보여준 개방적 마인드와 신흥 강호가 선보인 장점 쌓아올리기는 그래서 주목할 필요가 충분하다. 남의 사례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명확한 키워드를 잡아야 롱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단발적인 기획과 고정적인 틀 안에서 생존할 수 없다. 철저하게 분석하고 멀리 내다보는 계획을 짜야만 답이 나온다. 발라드 앨범을 기획하는 수많은 회사들이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신승훈은 미디어 음감회에서 믹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최고의 사운드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몇 번이나 믹싱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완성도와 변화에 대한 그의 책임감이 앞으로 데뷔할 발라드 가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많은 지금이다. 왜냐고 묻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때다.

칼럼니스트 노준영 nohy@naver.com

[사진=SBS, 도로시컴퍼니, 스타쉽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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