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를 둘러싼 몇 가지 오해와 진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필자 기준으로 보더라도 치사하고 심술궂은 글을 쓰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쓴 영화 리뷰의 지엽적인 몇몇 단어와 문장들을 건드리며 시비를 걸 생각이다. 그래도 그래야 할 이유가 있으니, 그 문장에서 가볍게 넘기는 말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SF 장르 팬들이겐 상당히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몇몇 것들은 아무리 지적해도 돌아오는 메아리조차 없다. 이러니 누군가가 아무 거나 잡고 지적을 해야 한다.

오늘 표적이 되는 글은 씨네21에 실린 영화 <그래비티>의 특집 기사인 '<그래비티>에서 3D 기술과 서사의 결합은 우리를 어떻게 매혹시키는가'이다. 전문의 링크는 여기(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4814) 있다. 전체 내용에 대해서는 될 수 있는 한 건드리지 않는다. 오로지 몇몇 단어들과 문장들만 지적하겠다.

☑ '우주에 중력(gravity)이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상식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우주에서 중력이 닿지 않는 부분은 없다. 성간공간을 떠도는 수소 원자 하나에도 중력은 작용한다. <그래비티>의 무대가 되는 허블 망원경의 궤도에는 엄청난 중력이 작용한다. 물론 그 높이까지 돌을 수직으로 던지면 당연히 떨어진다. <그래비티>의 주인공이 허공을 떠도는 건 그 곳에 중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중력과 원심력이 상쇄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비티>라는 영화에서 중력은 없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영화 내내 주인공 라이언 스톤은 그 중력의 영향 아래 있다.

하찮은 지적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간단한 개념 착오 때문에 영화의 의미 자체가 달라져버린다. <그래비티>라는 제목이 품고 있는 해석의 가능성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두 도시 이야기>에서 프랑스 혁명을 지워버리는 것만큼이나 손해가 크다.



☑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선보인 블록버스터 우주오페라(space opera) <그래비티>는 이와 같은 원초적인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그래비티>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아니다. 이 단어는 <버라이어티>나 <롤링스톤>의 멀쩡한 비평가들도 <그래비티>를 언급하는 데에 써먹고 있는 모양이라 차마 한 사람만 지적해 비난하기도 민망하다. 그래도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비티>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아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단어는 1940년대에 SF팬이자 작가인 윌슨 터커가 만들어낸 조롱섞인 별명이다. 이 단어는 실제 오페라와 상관없다. 통속 연속극을 지칭하는 '소프 오페라'를 비튼 것이다. 터커가 지적한 것은 당시 SF의 옷을 입고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던 멜로드라마틱하고 유치하며 비과학적인 우주 모험담들이었다.

원래 명칭과 장르가 그렇듯,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도 지금은 터커가 이 단어를 발명할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수많은 작가들이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 안에서 진지한 책들을 쓰는데, 종종 그러는 동안 상당한 수준의 하드 사이언스를 넣기도 한다. 지금은 하드 SF의 대표작으로 알려지는 래리 니븐의 <링월드>와 같은 소설들도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일의 설정을 배경으로 한다. 얼마 전에 작고한 이언 M. 뱅크스의 <컬처> 시리즈나 데이비드 브린의 <업리프트> 시리즈도 작정하고 쓴 스페이스 오페라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 성격은 여전히 남는다. 실용적인 우주 여행이 가능해진 머나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모험담인 것이다.



<그래비티>는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우선 이 영화의 배경은 현재이다. 정확하면 아직 스페이스 셔틀이 현역이던 과거와 중국의 우주정거장이 완성된 미래가 섞여 있는 막연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다이 하드>와 같은 일반적인 액션 영화에도 허용되는 설정이다. 영화에 사용되는 기술과 과학은 모두 지금 존재한다.

여기서부터 나는 <그래비티>가 SF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려 한다. 이건 그리 대단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인간은 20세기 중반부터 우주로 나갔고 지구 궤도 정도는 더 이상 SF의 공간이 아니다. 이미 우주개발 열풍이 일었던 과거를 무대로 한 우주 역사 영화들이 있다. <아폴로 13>, <필사의 도전>, <지구에서 달까지> 미니 시리즈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제작 당시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개연성 있는 모험담을 그린 영화들이 있는데 'Marooned', '스페이스 카우보이'와 같은 작품들이 있다. 제작 당시를 무대로 했지만 비교적 융통성 있게 과학기술을 과장한 <스페이스 캠프>와 같은 영화를 어디다 놓느냐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

어떻게 보더라도 <그래비티>는 <스페이스 캠프>가 있는 회색지대에 있지 않다. 과학의 과장과 왜곡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비티>의 배경인 지구 궤도는 <다이 하드>에 나오는 나카토미 빌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나카토미 빌딩에서 일어난 일들 중 상당수는 <그래비티>에서 일어나는 일들만큼이나 과장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스페이스 오페라도 아닐뿐더러 SF도 아니다. 쿠아온이 종종 언급하는 것처럼 '우주 영화'일 뿐이다. SF팬으로서 무척 탐이 나는 영화이고 영화가 곳곳에서 SF적인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 '우주오페라이긴 하나 <그래비티>는 어떤 면에서 보면 우주 자체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 여기서부터 필자의 의견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꺾여버리고 만다. 물론 난 여전히 <그래비티>에서 필자가 무엇을 읽었는지에 대해 간섭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는가.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서 이 영화를 보았는지 난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언론 시사회는 왕십리 CGV 아이맥스관에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이맥스 상영의 장점이 쓸데없이 과장되어있고 <그래비티>처럼 돌비 애트모스에 사운드가 최적화된 스코프 비율의 우주배경 영화는 메가박스 M2관이 훨씬 좋은 조건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하지만 (광고 아니다. 두 체인점 모두 나에게 보태준 거 하나 없다) 그래도 당시 상영을 보고 나서 '이 영화는 우주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라는 감상을 가지고 나왔다면 그 필자는 도대체 영화의 어디를 본 것일까?

물론 영화에서 인간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인간이 보편적으로 중요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아직까지 우리 능력으로는 인간의 눈과 뇌로밖에 우주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액션이 인간을 중심으로 놓는다고 해도 영화는 여전히 인간이 보고 인간이 맞서 싸우고 인간이 포용하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이건 <백경>을 읽고, "이건 바다가 배경이긴 하지만 인간의 무익한 복수심과 광기에 대한 이야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그것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왜 바다를, 고래를 빼먹어야 하는가? 이 부분은 너무 황당해서 필자가 뉴웨이브 SF 비평의 과장된 패러디를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지만 그럴 리가 없다.

이는 수많은 SF 작품들 그리고 자연과학적인 대상을 소재로 한 작품에 대한 인문학적 비평의 지독하게 클리셰적인 태도라서 도저히 지적을 안 할 수가 없다. 장르 예술가들도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긴 한다. 하지만 그건 이야기를 풀기 위한 당연한 기본조건이다. 하지만 이야기꾼이 인간 주인공을 우리에게 낯설거나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끌고가는 것은 그 미지의 영역이 인간과 우리가 사는 현재의 은유이거나 상징이기 때문이 아니다. 여기에는 부인할 수 없는 세계의 중요성이 있다. 알폰소 쿠아론이 그 고생을 해가며 우주를 만들고 주인공을 거기까지 끌고 갔는데 그걸 본 관객이 '우주는 중요하지 않군'이라고 웅얼거린다면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 모비 딕 없이 에이허브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없듯, 라이언 스톤의 이야기에서 우주를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적어도 <그래비티>에서 스톤의 이야기는 거의 전부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대한 답은 맨 앞에 있다. 공부를 하자. 최소한 사방에서 터지는 불평들에 귀를 기울이는 척이라도 하자. 인간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제발 관심을 기울이자. 다른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버릴만큼 인간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그래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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