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이 사우나> 연출가 여신동 [인터뷰]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지원 창작자 무대 미술가 여신동의 <사보이 사우나>는 목욕탕이란 공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식하는 과정을 무대미술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배우도, 무대도, 아닌 배우와 관객이 직접 반응하는 여러 형태의 감각이다. 중추신경계 및 말초신경계를 자극하여 정신을 맑게 하고 감각을 일깨우겠다는 취지다. 그래서 <사보이 사우나>는 드라마터그(정수진) 외에도 무브먼트터그(이소영)가 함께 작업한다.

■ 여신동만이 할 수 있는 새롭고 낯선 공연 <사보이 사우나>

-실제 다녔던 목욕탕(사보이 사우나)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 다녔던 목욕탕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느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여탕을 다니다, 9세 이후로 아버지와 함께 남탕을 가게 됐다. 벌거벗고 여럿의 타인들과 함께 목욕을 하는 공중 목욕탕에서 ‘여자다’ ‘남자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오감들은 그 곳에서 탄생하였고, 나와 나를 만나게 해주었다.”

-<사보이 사우나>는 목욕탕 이야기인가? 목욕탕이란 소재로 금기와 욕망의 감각을 이야기하는 작품인가
“목욕탕이라는 공간이 모티브가 됐지만, 목욕탕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디디에 앙지외의 <피부자아>란 책을 읽으며 더 많은 영감을 받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생기는 자아 그리고 감각이라는 것이 공감됐다. 그러다 내 과거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내 감각을 다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목욕탕으로 본 거다. 인간의 감각이 최대치 살아나는 공간이 목욕탕 아닌가”

-완결된 대본이 없다. 내러티브들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연습을 하면서 내러티브가 생겼다. 목욕탕안 장소인 매표소, 탈의실, 이발소, 보일러실, 피부 관리실에서 일어나는 일등을 보여준다. 특별한 메시지는 없다. ‘관객이 어떻게 볼까’ 신경 쓰면서 만든 공연이 아니다. 다만 ‘너도 그런 적 있잖아’ ‘거봐 망설여지잖아’ 란 느낌을 담아냈다. 관객들은 이번 작품을 보며 민망한 느낌이 들어 얼굴이 붉어질 수도 있고, 다른 것을 상상할 수도 있다.”

-관객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미인가
“관객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공연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관객이 중요하지 않나. 특별한 메시지가 없다는 말은 어떤 ‘목표치를 정해놓고 공연을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재 사람들이 여신동 연출가라고 칭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무대 미술가로서 내가 알고 있는 만큼 표현하는 작업이니 말이다. <사보이 사우나>를 연극이라고 불러야 할지 다원작품으로 불러야 할지, 미술 작품으로 칭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무대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다 첫 연출로 데뷔하게 됐다. 이 작품을 위해 드라마나 연출 작법을 공부했는가.
“따로 배우진 않았다. 멘토링을 받기도 했지만 이해는 되지만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연화 시켜보자 마음먹은 만큼 새롭고 낯선 공연을 만들고 싶다.”

-여신동만이 할 수 있는 새롭고 낯선 공연이라?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는데 운 좋게 기회가 닿아 두산 아트랩으로 첫 선을 보이게 됐다. 학창 시절에도 이상한(?) 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 수업과 엮어서 <나비 미용실>이란 개인 프로젝트를 연 적이 있다. 말 그대로 학교 안에 작은 미용실을 만들었다. ‘미용실을 오픈했으니 놀러와라’는 식으로 글을 써서 포스터도 붙였다. 직접 미용기술도 배워 손님들 머리를 잘라주고 미용비도 받았다. 비포, 애프터 사진도 찍어 걸어놨다. 어찌보면 특이한 미용실인데 꽤 재미있었다. 그 때 당시 어머니가 미용실을 해서 그런지, 미용실이란 공간이 친숙했다. 돌이켜보니 학창시절부터 이런 걸 꿈꾸었나 보다.”

-미용실에 이어 목욕탕이란 특별한 공간을 무대로 불러왔다. 추후엔 어떤 공간을 불러올 생각인가
“머릿속에 구상중인 콘셉트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음엔 군대, 예배당, UFO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모두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독특한 공간들이다.”



■ 은밀하게 봐야 더 감각이 충만 되는 <사보이 사우나>

-19금 관람이던데, 두산 아트랩 때와는 달리 배우들이 완전 노출을 하는가
“두산 아트랩 공연 땐 노골적으로 벗지 않고 살색 속옷을 입고 나왔다. 개인적으론 속 시원하지 않았다. 솔직하지 않은 기분도 들고. 그래서 이번엔 출연 배우들 모두가 벗기로 했다. 배우들이 (작품 취지를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벗겠다고 했다. 연극 배우(김정훈)도 있지만 20대에서 60대까지 남자 누드모델들도 있다. 신체가 오브제가 되는 거다. 이번 공연은 오로지 남자배우들만 출연한다. 다만 노출씬 때문에 연습실 공개를 할 수 없는 게 아쉽다. 연습 시간엔 여자 스태프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실제 공연 때 느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사보이 사우나>는 인간의 숨겨진 감각들을 다 드러내는 공연인가
“은밀하게 봐야 더 감각이 충만 되는 작품이다. 사람들이 흔히 그러지 않나. 은밀해질 때 모든 감각이 열리면서 감각이 돋아난다. ‘촉이 튀어나온다’는 말도 그럴 때 쓰고. 많이들 욕망을 감추고 산다. 욕망을 드러내면 뭔가가 뒤바뀌고 문제가 발생할 거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드러내지 않아서 아니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많다. 그런 숨겨진 욕망을 담아냈다. 예산만 더 있었다면 칸막이 독서실처럼 좌석을 만들고 싶었다. 어떤 방해도 없이 오로지 그 장면에 몰두 할 수 있도록.

-여자 관객과 남자 관객 중 누가 더 흥미를 보일까
“흔히 남자는 시각적으로 더 많이 느끼고 여자는 감성적으로 다가가 청각으로 더 많이 반응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공연은 시청각 모두로 접근하니 성별에 관계 없이 모든 관객의 감성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뭔가가 ‘각인’이 되는 공연이 될 것 같다.
“<사보이 사우나>안에는 대서사시 혹은 드라마틱한 내용도 없다. 언어로 뭔가를 전달하지도 않는다.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로메오 카스텔루치 <창세기>, 로베르 르빠쥬의 <안데르센 프로젝트>, 피나바우쉬의 무용처럼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 됐으면 한다.”

-정재일 음악감독이 라이브로 연주를 들려주나
“아직 정해지진 않았다. 얼마 전 우연히 즉석에서 정 감독이 피아노 연주를 하며 연습을 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느낌이 좋았다. 마음 같아선 그대로 쭉 갔으면 했다. 같이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데, 난 보는 감각인 시각이 발달해 디테일을 캐치해내는 감이 좋다. 음악작업을 하는 사람인 정 감독은 청각이 상당히 발달했다. 같이 밥을 먹거나 할 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소리에 바로 반응을 하더라.”



■ “무대 디자이너는 공기처럼 유연하게 존재해야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를 졸업한 여신동은 뮤지컬 <빨래>로 무대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빨래> 작업이 계기가 돼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지원 아티스트로 뽑힌 그는 두산아트센터 기획공연의 무대디자인을 대부분 맡아했다. 이후 <쑥부쟁이>로 밀양연극제 무대예술상(2009), 연극 <소설가 구보 씨의 1일>로 동아연극상 무대기술·미술상(2010년), 뮤지컬 <모비딕>으로 한국뮤지컬대상 무대미술상(2011), 연극 <꽃이다>로 대한민국연극대상 무대예술상(2012)을 받았다.

연극 <구름>, <히스토리 보이즈>, <말들의 무덤>, <나는 나의 아내다>, <리어외전>, <뻘>, <목란언니>, <디 오써(The Auther)>, <인어도시>, <잠 못드는 밤은 없다> , <헤다가블러>, <878미터의 봄>, <소년이 그랬다>, <벌>, <그자식 사랑했네>, <예술하는 습관>, <응시>, <햄릿>, <기타맨>, <죽이는 수녀들>, <이오카스테>, <춘천거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모란꽃 피는 시장>, <젊음의 행진>, <검고소리>, <총각네 야채가게>, 창극 <메디아> 등이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곧 공연예정인 연극 <필로우맨>과 <레드>도 그의 손을 다시 한번 거친다.

-연출가나 배우가 아닌 무대 디자이너로서 이름이 이만큼 알려지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요즘 가장 핫한 무대 디자이너다.
“처음에 상을 받고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상을 받는다는 게 좋긴 하지만, ‘왜 내가 받았을까?’ 생각해보니 운이 따라줘서 그런 것 같다. 추민주 연출의 <빨래>, 박근형 연출의 <잠 못 드는 밤은 없다>로 관계자분들이 많이 주목해줬다. 당시 무대 디자인을 꼭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무대 미술보단 독립적인 작가가 되고 싶었나
“미술은 독립적인데 공연은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무대 미술은 아트(Art)가 아니라는 인터뷰도 봤다. 낯선 사람들과의 작업이 쉽지 않았다. 한편의 공연 안에서 무대 디자이너는 기능 역할로 들어가게 되는 게 현실이다. 정말 말 그대로 스태프다.”

-‘내 작품이 아니다’란 생각도 들었겠다
“무대에서 무대 디자이너의 색을 보여주면 그 작품은 망치게 된다. 오히려 그냥 자연스럽게 묻어나야 한다. 무대에서 중요한 건 배우이니까. 처음으로 (작가 겸 무대 디자이너 겸 연출자로 참여하는) <사보이 사우나>는 무대미술이 독립적으로 한 작품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될 것 같다.”

-미술이나 음악 전공자들이 대개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나
“‘아티스트’ 하면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할 것 같아 폐쇄적인 분위기가 그려지기도 하지만 성향은 다 다르다. 다만 정치적이다 폐쇄적이다 분류 이전에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신동의 색깔은 어떤 색인가
“‘예쁘다. 디테일하다’ 란 평이 있다고 했을 때, 그 것도 모두 내 색깔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은 감이 잘 안 잡힌다. 마블링 색깔일지, 흙탕물일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무대 미술에 목숨 거는 사람은 아니란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폭이 넓게 디자인을 할 수 있다. 미련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작업을 하는데 이 점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무대 미술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저 사람은 지키는 게 없나?’ 란 의미로 보여질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난 무대 디자이너라는 명함에 힘이 들어가는 게 싫은 거다. 내 스타일, 내 정신만을 밀고 나가다보면 프로덕션 내에서 너무 힘들어진다. 무대 디자이너는 공기처럼 유연하게 존재해야 한다. 힘을 빼야 자기 색깔이 나온다. 내 작품을 만들었다는 생각보다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선물한다는 자세가 더 적합하다.”

-무대 미술과 함께 해온 그 동안의 시간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저장됐나
“스스로 풍부해지는 시간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을 보고 있는 것, 눈으로 보고 있는 거 안에 뭐가 있는지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미술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본다’란 행위가 남다를 것 같다. 뭘 봤을 때 가장 행복하던가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작업적으로 이야기하면, 가끔은 ‘본다’ 또 ‘본다’란 이런 행위를 너무 하다보니 토할 것 같다. 많이들 감각적 영상이나 영화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하는데 요즘엔 그런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이 너무 좋다. 그래서 작년엔 아줌마들처럼(웃음) 단풍놀이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설악산이 주는 장관에 압도당했다. 잡념이 없어질 정도로. ‘사람이 줄 수 없는 걸 자연이 주는구나’란 생각이 들자 너무 좋았다.”

여신동 감독은 본인의 작품 세계에서 관객들이 “낯선 이미지를 받아갔으면 한다”고 했다. “친숙한 느낌보다는 ‘저런 사람이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낯선 느낌이 좋다. 팬이 생기는 것도 원치 않는다. 팬이 생기면 안티 팬도 분명 생길거니 말이다. 가까이 다가가기 보다는 적당한 거리에서 눈길을 주는, 그렇다고 헤어지면 후회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다짐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두산아트센터, 정다훈]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