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석·윤종신에게 배우는 리더의 지혜

[엔터미디어=노준영의 오드아이]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반응을 얻었던 프로그램 ‘WIN’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A팀과 B팀으로 나뉘어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과연 양현석의 YG 일원답다는 평가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결국 A팀이 승리하며 승자와 패자가 가려졌지만, 그 보다는 모두가 열심히 했다는 쪽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냉정하게 말을 한다 해도 두 팀 모두 출중한 실력을 갖춘 멤버들이었기에 승자와 패자보다는 데뷔 순서의 차이가 갈렸다는 정도로 보는 게 좋을 것이다.

‘WIN’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지만 ‘성인식’으로 유명했던 박지윤은 오랜만에 컴백을 선언했다. 7, 8집에서 셀프 프로듀싱을 택하며 인디 아티스트의 행보를 따라갔던 그녀는 다시 회사의 품에 안기며 타인의 프로듀싱을 받는 방향을 택했다. ‘성인식’ 이후 그만한 대중적 호응을 받지 못했던 그녀이기에 이런 컴백이 부담스럽기도 했을 것이고, 대중들 또한 머릿속으로 ‘박지윤?’이라는 말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에 오르며 성공적인 복귀를 선언했다. 상당한 공백기가 그녀의 흔적을 지워버렸음에도 말이다. 필자는 이 전혀 관련 없는 두 케이스를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스스로를 낮추는’ 리더의 매력이다.

‘WIN’이 조금 더 빛날 수 있었던 건 아티스트의 개성을 강조하는 YG 특유의 육성법 때문이었다. YG에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소속 아티스트들이 모두 그렇지만, YG는 리더가 무언가를 강요하기 보단 자연스런 환경에서 벌어진 개성 있는 결과물들을 내놓는다. 시스템적인 측면에 맞췄다면 독보적인 그룹 빅뱅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며, 자유로운 에너지를 가진 2NE1 또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가요계의 시스템적인 측면에 끼워 넣는다면 이하이 열풍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걸 다 내버려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개인의 특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일은 없었다. 리더가 앞에 나서서 모든 걸 통제하지 않는 여유, 그게 YG의 정체성을 만든 신의 한 수였다.

‘WIN’에서도 이런 경향은 계속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상 기획과 구성이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처럼 모든 것이 짜여있는 상태에 A팀과 B팀을 몰아넣진 않았다.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찾고, 자유로움 속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는 깨닫는 과정이었다. 파이널도 마찬가지였다. 승자와 패자가 정해져 있는 서바이벌의 마지막 순간을 들이밀지 않았다. 승자와 패자보단 그 길을 위해 미친 듯 걸어온 참가자들을 독려하고, 참가자들의 스타일과 열정을 존중하는 분위기로 끝을 맺었다. 그래서 데뷔와 실패라는 이분법 개념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 한 팀의 즉시 데뷔와 다른 한 팀의 추가적인 준비기간 정도로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 스스로를 너무 드러내지 않고 콘텐츠를 직접 ‘실행’하는 이들을 존중하는 낮춤의 미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오랜만에 컴백을 선언한 박지윤에게서도 이런 경향을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지난 두 번의 앨범에서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인식’을 통해 남다른 섹시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그녀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 아니겠는가? 하지만 후속타는 ‘성인식’ 만큼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변화가 필요했던 시점에서 그녀는 인디적인 감성을 꺼내들었다. 이후의 행보가 무척 기대되는 그녀였는데, 다시금 메인스트림의 기획사인 윤종신 사단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의 심리가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윤종신에게 있어서도 그녀와의 첫 프로젝트는 상당한 부담감과 기대감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박지윤은 신인이 아니다. 중견급 이상의 경력을 가진 그녀이기에 변화 과정에서 조차 많은 고민을 해야 했음에 틀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건 역시 ‘낮추기’의 마인드다. 그는 자신의 전면에 나서서 그녀를 움직이기 보단 프라이머리와 함께 머리를 맞대는 방법을 택했다. 안으로 굽는 팔보다는 밖에 있는 팔이 나은 법이다. 좀 더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할 수 있었던 그의 도움과 함께 박지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고 돌아왔다. 음원 차트 1위라는 호성적이 이를 말해준다. 여기서도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리더의 전략이 통한 것이다.

싱어송라이터를 제외하고선 음악적 기획의 측면에서 모든 걸 해결하고 나서는 리더가 꼭 좋은 법은 아니다. 시간은 단축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완성도까지 담보하진 않는다. 만드는 사람, 선보이는 사람 따로 있는 상황에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소요소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을 붙여내는 것도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를 조금 낮추고, 감출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음원 홍수 시대에서 이런 여유로운 상황 바라보기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게 곧 해답이라는 인식이 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한번 해봤던 틀에 맞추면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은 더욱 줄어든다. 그러니 쉽게 가기 위해서 프로듀서나 리더가 더욱 더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콘텐츠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유 까진 아니더라도 결정권을 혼자서 흔들지 말고, ‘리더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기획과정에 이를 반영해야만 한다. 대중들은 아티스트가 매몰되어버린 콘텐츠를 알아채는 데 능하다. 결국 스스로를 낮추지 못하는 건 궁극적으로는 대중들을 기만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WIN’이 남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기억된 것도, 오랜 공백을 깬 박지윤이 음원 차트를 호령하는 것도 이들을 감싸고 있는 각각 양현석과 윤종신이라는 리더가 한 발짝 물러났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설 타이밍, 나서지 말아야 할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급한 이야기, 통제권에 대한 담론에 매달려 있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음악판에서도 자애로운 리더가 통하는 시대가 왔다.

칼럼니스트 노준영 nohy@naver.com

[사진=SBS, Mnet, YG엔터테인먼트, 미스틱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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