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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단 한순간도 지루할 틈 없는 이유
기사입력 :[ 2013-10-30 12:58 ]


‘비밀’ 어떻게 묵은 소재로 대세 드라마가 됐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드라마 <비밀>의 첫 장면은 상류층 젊은이들로 보이는 인물들의 심야 풀장 파티가 배경이다. 클럽 음악이 요란하고, 색색의 칵테일 잔이 돌고, 춤추는 이들의 매끈한 다리 그리고 공허한 웃음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익숙하다. 재벌가가 주배경인 영화나 드라마에 한번쯤은 꼭 등장할 법한 그런 장면. 어쩌면 몇몇 시청자들은 첫 회부터 <비밀>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겠다. 재벌가와 가난한 여자의 사랑을 다루는 단물 빠진 이야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드라마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때 <비밀>의 첫 장면에서는 다른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장면이 이어진다. 바로 파티장에 난입한 한 대의 미니카다. 누군가가 조종하는 미니카는 파티 피플의 다리 사이를 재빠르게 돌아다닌다. 결국 그 미니카는 한 남자를 넘어지게 만들고 그 때문에 파티는 단숨에 엉망진창으로 망가진다. 그때 파티장 한 귀퉁이에 앉아 있던 미니카를 조종하던 재벌가의 아들 조민혁(지성)은 나른한 미소를 짓는다. 파티장은 여전히 난리법석이고 미니카는 교통사고를 당한 차량처럼 뒤집어진 채 헛바퀴만 돈다.

이 첫 장면에 등장하는 미니카와 미니카의 교통사고는 드라마 <비밀>에 대해 꽤 많은 것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첫 장면에서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지만 이 비밀스러운 드라마 <비밀>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교통사고, 그러니까 우리는 교통사고에 대해 드라마적으로 해석한 명대사를 알고 있다. 바로 작가 노희경의 작품 <거짓말>에서 성우의 어머니가 했던 그 대사 말이다. “사랑은 교통사고와 같은 거야. 길가다 교통사고처럼 아무랑이나 부딪칠 수 있는 게 사랑이야.”

드라마 <비밀>에서는 아예 대사가 아니라 첫 회에 직접적인 교통사고 장면이 등장한다. <비밀>에서의 교통사고 장면은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큰 축이지만 <거짓말>의 대사에처럼 사랑만을 은유하는 것이 아니다. <비밀>의 교통사고는 사랑은 물론이고 증오, 배신, 학대, 폭력, 욕망, 집착, 두려움, 아쉬움 같은 수많은 인간의 감정들이 폭발시킨다. 그리고 그 수많은 감정을 표면에 드러나지 않게 덮어씌우는 베일을 바로 사람들은 비밀이라 부른다.



드라마 <비밀>은 기존의 드라마에 보여준 닳고 닳은 ‘내 남자를 나 몰래 빼앗은 너’나 ‘점하나 찍고 다른 사람 되었어요’, ‘미워하다 알고 보니 내 자식이네’ 류의 식상하고 황당하고 얄팍한 텅 빈 비닐같은 비밀을 말하지 않다. 이 드라마는 비밀이란 베일을 들추고 그 안에서 들끓는 수많은 감정의 실체에 대해 낱낱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이 드라마가 시청자를 옭아매는 이유다.
<비밀>의 여주인공인 성실한 대리운전 기사 강유정(황정음)은 이제 막 검사가 된 남자친구 안도훈(배수빈)에게 프러포즈를 받는다. 그날 밤 강유정을 데려다 주던 안도훈은 운전 중에 그만 교통사고를 내고 만다. 두 사람은 다행히도 큰 부상을 입진 않았지만 안도훈은 자신이 운전한 차가 한 여자를 치었다는 걸 발견한다. 물론 안도훈은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강유정에게 거짓말을 한다. 우리 차에 부딪친 건 드럼통이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 비밀은 쉽게 탄로가 나고 결국 안도훈의 죄를 뒤집어쓴 강유정은 유죄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한다.

하지만 강유정은 죗값을 치렀건만 강유정과 안도훈이 함께 엮인 그 껄끄러운 비밀은 밝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안도훈은 그 비밀을 더 단단히 봉인하려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비밀들을 하나하나씩 더 만들어간다. 결국 성실하고 믿음직한 검사였던 남자가 점점 안개같은 비밀의 베일에 쌓여가며 점점 상종 못할 인간으로 변해간다.

한편 <비밀>의 첫 장면에 등장했던 조민혁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강유정과 안도훈의 차에 치여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그는 울퉁불퉁 얄미운 개떡 같은 성격의 주인공답게 끊임없이 강유정을 괴롭히고 또 괴롭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미워하고 경멸하던 강유정이 어쩌면 진짜 강유정의 모습이 아닐 거라는 걸 깨닫게 된다. 더불어 그 순간부터 특유의 개코같은 감각으로 강유정과 그녀의 과거 연인인 안도훈 사이의 모종의 비밀에 대해 파헤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그 자신의 내면에서는 또 다른 비밀이 자라난다. 그건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도저히 말도 안 되는 비밀이라 차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비밀이다.



“대리!”
대리운전기사였던 강유정을 부르던 조민혁의 호칭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강유정을 다시 찾아낸 뒤에 조민혁은 그녀를 이렇게 부른다.
“강유정.”

경멸했던 대리에게 다시 이름이 붙여지면서 조민혁은 자신의 비밀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강유정 역시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안도훈이 어쩌면 자신을 구렁텅이로 계속 떠밀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눈치챈다. 그리고 그 상황을 기점으로 강유정, 조민혁, 안도훈이 품고 있는 비밀의 축은 또 다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처럼 드라마 <비밀>은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지만 사실 그 매력이 새로움에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상당히 묵은 드라마적 감성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뒷바라지하고, 그 남자를 위해 교도소까지 갔다가 결국 배신당한 여자의 이야기라니. 70~80년대부터 방화나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오다 이제는 맥이 끊긴 이야기다. 사랑하는 여자를 배신하고 성공하기 위해 상류층의 여자에게 집적대는 남자라니. <청춘의 덫>과 <젊은이의 양지>의 이종원하면 떠오르는 남자주인공들이다. 자신과 환경이 다른 가난한 여자와 재벌가의 남자의 사랑 이야기라니. 지금도 많이 양산되고 있는 드라마의 유형이다.

하지만 <비밀>은 이 모두를 다 갖고 있지만 중반부를 넘어선 지금까지 식상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지닌 일종의 드라마적인 활기 때문이다. 과거 단순히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인물들에게 이 드라마는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비밀>의 강유정, 조민혁, 안도훈은 모두 비밀을 만들고 비밀을 풀어헤치면서 그 사이에 수많은 변화를 겪는다. 악인이 선인이 되기도 하고, 선인이 악인이 되기도 하고, 선인이 악인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한다. 또한 비밀이라는 큰 베일 아래에서 감정들이 미묘하게 변화해가는 모습이 멜로와 스릴러와 로맨틱코미디까지 섬세하게 그려진다.

작은 드라마 <비밀>이 화려하지만 정작 볼 것 없는 파티장을 휘젓는 미니카처럼 스타작가와 스타배우들의 드라마 사이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비밀의 이유는 거기에 있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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