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윤은혜보다 걱정되는 고두심·최명길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월화드라마 <미래의 선택>은 미래의 미래인 큰미래(최명길)가 현재의 미래에게 나타나 그녀의 인생을 바꿔주려 애쓰는 이야기다. 방송작가로 등장하는 미래(윤은혜)는 아나운서 김신(이동건)과의 결혼으로 인생의 쓴맛을 본다. 그래서 큰미래(최명길)가 과거로 돌아가 어떻게든 둘의 결혼을 막으려고 애쓴다.

과거 고소영의 복귀작 영화 <언니가 간다>가 언뜻 떠오르는 작품이다. 물론 표절이라 보기에는 애매하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도와준다는 설정이야말로 가장 고전적인 이야깃감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이야깃감으로 어떤 작품은 풍미가 우러난 진국이 되고 또 어떤 작품은 밍밍하거나 느끼한 맹탕이 되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언니가 간다>가 고소영의 성공적인 컴백작은 아니었다. <미래의 선택> 역시 스타들의 괜찮은 컴백작품이 되지는 못할 것만 같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윤은혜와 이동건 모두 이 드라마를 통해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낭랑18세> 시절의 인지도를 회복하기란 무리다. 아무래도 현재까지는, 더구나 미래도 그리 밝지는 않아 보인다.

<미래의 선택>은 무엇보다 너무 가볍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그 가벼움에 동참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 짐작된다. <미래의 선택>은 생각보다 무거운 소재들을 다룬다. 비정규직의 재계약 문제라던가, 갑의 위치의 횡포 같은 것들 말이다. 최근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지하철 화재 사건이 등장하기도 했다. 아무리 무거운 사건이 등장해도 문제점들을 정확히 집어내고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 시청자들에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건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미래의 선택>은 이 무거운 소재들을 웃음을 위해 너무나 가볍게 처리한다. 슬랩스틱 코미디의 장면처럼 풀려가는 이 사건들의 해결장면을 보노라면 웃음이 나기보다 오히려 씁쓸해진다.



또 하나의 문제는 <미래의 선택>의 붙여넣기들이다. <미래의 선택>은 90년대부터 최근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등장했던 클리쉐의 연속 붙여넣기처럼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흐름은 빠르고 익숙하지만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인상적인 장면들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로코물 특유의 달달한 사랑스러움? 이미 딴 드라마에서 많이 먹었다 아이가, 그만해라.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재미없으면 채널을 돌릴 수나 있다. <미래의 선택>에서 가장 안타까운 이들은 이 드라마에 출연한 두 명의 주연급 중견배우 최명길과 고두심이다. 두 배우는 어떻게 보면 고전적일 정도로 정극연기에 충실한 배우들이다. 연기의 폭이 넓지는 않지만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고를 보여준다.

과거 최명길의 히트작인 드라마 <그 여자>나 그녀에게 낭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장밋빛 인생>을 보면 그녀가 지닌 특유의 색깔을 이해할 수 있다. 최명길은 부박하고 촌스러운 세계의 중심에 있지만 그 안에서 결코 묻히지 않는 어떤 우아한 정서 같은 것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배우다. 물론 최근 <금나와라, 뚝딱>에서는 우아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밉살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하기도 했다.



고두심은 그녀의 대표작 <꽃보다 아름다워>를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가 증명하듯 억척스럽고 가난한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다. 물론 가끔 변신을 하기도 한다. <사랑의 굴레>에서처럼 “잘났어, 정말”을 천박하게 토해내는 속물스러운 상류층의 여자의 모습 같은 것들.

하지만 두 배우 모두에게 <미래의 선택>은 위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 최명길은 귀엽고 가볍고 생각 없는 캐릭터인 큰미래를 연기한다. 고두심은 냉철하고 이기적인 YBS의 회장 이미란을 연기한다. 두 사람 모두 지금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캐릭터였기에 이 작품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래의 선택>에서 큰미래와 이미란은 캐릭터만 있을 뿐 그에 어울리는 대사나 성격에 맞는 행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드라마 상에서 두 사람 모두 그저 뜬금없고 산만하고 뻔뻔하게 그려질 따름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연기로는 흠 잡힐 일 없던 두 중견배우 역시 갈피를 못 잡는 것이 고스란히 화면에 드러난다. 두 사람이 기존해 해왔던 정극연기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법한 대사와 상황들이 이어지니 말이다. 오히려 이동건과 윤은혜의 경우에 자신의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한다. 대개의 가수 출신 연기자들이 그러하듯 판춘문예 댓글 같은 대사들을 날것의 감정 그대로 읽으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명길은 귀엽고 방정맞은 캐릭터를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것이 눈에 보여 오히려 더 어색해진다. 결국 내뱉는 대사는 “망해요, 망한다고요.” 정도가 전부인데 말이다. 그 “망해요”를 어떻게든 의미 있게 연기하려 애쓴들 거기에 무슨 의미를 얼마나 담을 수 있을까?

고두심의 경우는 갑의 위치에 있는 무자비한 이미란을 그리려 애쓴다. 하지만 드라마 내에서 이미란의 캐릭터는 그저 무식하게 어깃장만 놓는 인물로 보인다. 그러니 이 드라마에서 이미란을 연기하는 고두심보다 오히려 회장실에 걸려 있는 거대한 액자 속 이미란의 사진이 더 멋있게 보일 따름이다.

<미래의 선택>은 미래에서 온 미래가 현재의 미래를 도와주는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는 드라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를 선택한 두 중견 여배우가 <미래>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뭘까? 큰미래가 이미란을 데리고 서둘러 미래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겠지만 그거야말로 <미래의 선택>에선 불가능한 일이겠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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