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탑팀’ 볼수록 커지는 위화감의 실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반(反)▲. 의학드라마는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장르이다. 신데렐라 스토리나 출생의 비밀 등 뻔한 설정의 멜로드라마에 비하면, 그나마 의학드라마는 이색적인 볼거리와 전쟁영화를 보는 듯한 긴박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의학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진 탓에 새로운 설정이나 캐릭터가 없이는 식상함을 피하기 힘들어졌다. <굿 닥터>의 경우,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데다 환자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마음을 지닌 주인공을 내세우면서도 그것이 이상적인 의사가 아니라 장애에 의한 것이라는 설정은 매우 참신했다. 좋은 의사의 덕목으로 실력이냐 휴머니즘이냐는 낡은 이분법에서 벗어나 의료윤리에 대해 더 깊이 숙고하면서, 장애를 지닌 주인공의 성장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색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 협진인가 독단인가

MBC 수목드라마 <메디컬 탑팀>이 내세운 새로운 설정은 '협진'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서로 다른 전공의 의사들이 팀을 이루어 환상의 팀워크를 통해 개별 과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고난이도 질병에 대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꽤 재미있는 설정일 수 있다. 그동안 메디컬 드라마들이 일반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소아외과 등 일개 전공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질병의 유형이 단조로운 단점이 있었다면 협진이라는 시스템을 표방하는 이 드라마에서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질병 사례를 더 재미있게 다룰 수도 있고, 협진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물들 간의 관계도 오밀조밀하게 그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메디컬 탑팀>은 협진을 표방해놓고 스스로 부정하는 우를 보여준다. 탑팀에서 부각되는 것은 주인공인 박태신(권상우)의 독단과 독주이다. 그는 최고의 실력과 최고의 휴머니즘을 지닌 의사로 이상화되어 있다. 그는 아주 특별한 재능과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실력에 대한 확신으로 팀의 결정사항을 혼자서 뒤집으면서 행동한다. 팀이나 병원 내에서 갈등을 유발하지만 결국 그의 결단이 옳은 것이었음이 판명된다.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그는 점점 더 특출한 인물이 되며, 협진의 의미는 빛을 잃는다. 그렇다면 굳이 '탑팀'이 왜 구성된 것일까. 모든 과를 망라해 모든 질병에 해박한 천재 의사 박태신의 활약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필요했던 것일까.



◆ 의학적 필요인가 경제적 필요인가

최고의 전문의들이 포진한 '탑팀'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애초의 설정과 달리 갈수록 아리송해진다. 사실 '탑팀'의 결성에는 동상이몽이 존재한다. 각과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질환이나 희귀난치성 질환의 치료를 위한다는 의학적인 목적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부원장(김영애)으로 대표되는 병원재단의 입장에서 '탑팀'의 결성은 VIP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로열 메디컬센터' 건립을 위한 전초사업으로 지원된 것이다.

의학적인 필요와 경제적인 필요는 상호 모순되며 박태신과 부원장을 대립시키는 축으로 작용하는 듯 보이지만, 매 환자사례에서 정확한 대립각이 그려지진 않는다. '탑팀'이 맡은 첫 번째 환자는 복합질환을 가진 환자이긴 했지만 더 두드러진 특징은 병원재단에 영향력을 미치는 재벌2세로 VVIP였다. 두 번째 환자는 의학적으로 협진이 필요한 고아소녀였지만 박태신을 병원에 영입하기 위한 조건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책임지기로 한 환자였다는 점에서 역시 VIP인 셈이다. 세 번째 환자는 병원재단의 자금운영본부장으로 의학적 필요는 없지만 회장의 명령으로 '탑팀'에 맡겨진 VIP이다. 네 번째 환자는 복합외상을 입어 의학적 필요에 의해 '탑팀'에 맡겨진 환자로 전공의와 안면이 있을 뿐 유일하게 VIP가 아닌 환자였는데 유일하게 죽는다.

지금까지 '탑팀'이 진료한 환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탑팀'은 의학적 필요에 의해 선정된 환자들보다 병원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VIP환자들에게 수혜를 준 셈이다. 이는 '탑팀'의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존재목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무관하게, 앞으로 '탑팀'이 어떻게 활용될지를 암시하는 결과이다.



최고의 협진팀이 구성되어 의학적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살리고, 이를 통해 의학의 발전을 꾀한다는 것은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는 한정된 의료자원이나 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가능한 일이며, 웬만한 공공의료 기관에서도 실현하기 힘든 기획이다.(가령 서울대병원 등이 이런 시도를 해봄 직하지만, 현실적 여건상 못하고 있다.)

하물며 자본의 이윤동기가 뚜렷한 민간의료 기관에서 최고의 의료 협진팀이 구성된다면 그것이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는 명확하다. 그것은 부원장의 요구처럼, 의학적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병원홍보를 위한 전시성 사업으로 활용되거나 특권층을 위한 로열 메디컬 센터의 전신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탑팀' 뿐 아니라, 로봇수술이니 원격진료니 하는 등의 의료의 질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기획되는 대부분의 시도는 지금과 같은 의료시스템 하에서는 애초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상업적인 동기와 욕망에 흡수되어 갈 수밖에 없다.

<메디컬 탑팀>은 이처럼 매우 명확한 한계와 운명을 앞에 두고서, 주인공에게 순수한 이상과 의도를 지키기 위해 싸우라고 하는 '미션 임파서블'을 부여하며, 시청자들에게는 그의 특별한 능력과 도덕성에 감탄할 것을 강요한다.



◆ 매력적인 인물도 없이, 위화감만 느껴져

<메디컬 탑팀>은 애초에 설정한 가치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형국에 놓여있다. 게다가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매력적이지 못하고, 인물들 간의 관계도 맥이 빠져 보인다. 박태신은 비현실적이고, 한팀장(주지훈)의 역할은 애매하기 그지없으며, 서주영(정려원)과 장과장(안내상)의 관계는 전문직여성을 가로막는 유리천정의 실상을 리얼하게 보여주지만, 반복되는 묘사가 짜증스럽게 느껴진다. 최아진(오연서)과 김성우(민호)의 캐릭터나 관계는 매우 피상적이며, 부원장(김영애)의 존재감은 너무 도드라진다. 주·조연을 통틀어, 마음을 잡아끌거나 감정이입을 하고픈 매력적인 인물이 없으며, 인물들이 흩뿌리는 신파적인 감정선도 진부하기 짝이 없다.

<메디컬 탑팀>은 꽤 야심차게 출범함 기획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공감을 받는데 실패 하였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이상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감동을 강요하고, 전문의 한명에게 제대로 된 '선택 진료'를 받기도 어려운 의료현실에서 최고의 전문의들이 모여 한명의 환자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VIP들을 위한 로열메디컬 센터의 전신'이 아니라는 선긋기도 하지 못한다.(할 수가 없다. 결국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청자들에게 남는 건 기묘한 위화감이다. 어느 병원에서든 '탑팀'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의학적인 필요에 의해 쓰일 것인지, 사회경제적 필요에 의해 쓰일 것인지는 드라마가 말하기 전에 시청자들이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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