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트로바토레> 라벨라 오페라단 단장 이강호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베르디의 대작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가 8년 만에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다. 베르디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중기의 걸작으로 중세의 남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트로바토레(음유 시인)에 얽힌 15세기 스페인의 사랑과 복수의 비극적 이야기가 담겨있다. 스토리의 전개와 맞물려 돌아가는 베르디의 드라마틱한 음악 역시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다.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공연되는 라벨라오페라단의 <일 트로바토레>는 소프라노 이화영, 이윤아, 김지현,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김소영, 김지선, 베이스 박준혁, 양석진 등 국내 실력 있는 성악가들과 80여 명으로 구성한 메트 오페라 합창단,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이뤄진다. 또한 유튜브 영상 '레 밀리터리블'에서 이병 장발장 역으로 주목받았던 테너 이현재가 루이즈 역으로 오페라에 데뷔한다. 전 출연진은 물론 스태프까지 국내팀으로 꾸려 뚝심을 엿보게 한 이강호 단장의 오페라에 대한 꿈을 들어봤다.

◆ “벨칸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베르디 작품”
"베르디 200주년을 맞이해 제가 사랑하는 친구 양진모 지휘자와 어떤 작품을 올릴까 생각을 하다 <일 트로바토레>로 결정을 하게 됐어요. 베르디 중기 작품인 <일 트로바토레>는 벨칸토의 아름다움은 물론 4명의 주인공 모두가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오페라입니다. 흔히 소프라노 혹은 테너만 주역으로 나오는 작품과는 다르죠. 8년 전 서울시오페라단이 올린 후 오랜만에 올라가는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는 많이 공연되지 않은 작품이죠. 큰 규모는 물론 <일 트로바토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수가 많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성악가들은 물론, 스태프와 제작진 모두를 국내 팀으로 꾸렸어요. 주변에선 어떻게 이렇게 다 뛰어난 분들을 모아놓을 수 있었냐고 놀래기도 했어요. 물론 쉽지 않았죠. 특히 루나백작과 만리코 역 성악가 분을 캐스팅 하기가 힘들었어요. 우선, 나이가 적어도 마흔은 넘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어요. 어린 사람도 분명 할 수 있지만 이번 작품 속 캐릭터들은 연륜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요. 그렇게 고심 끝에 독일에서 수차례 <일 트로바토레> 무대에 섰던 테너 박기천 선생님, 이태리 무대 경험이 많은 윤병길 선생님은 물론 일본에서 20회 이상 공연한 김충식 씨를 선택하게 됐어요. 이번에 루나 백작으로 나오는 장성일 선생님은 실력에 비해 저 평가 된 분 중 한 명입니다. 바리톤 장유상 장성일 박경준 선생님 모두 실력들이 좋아요.”

◆ “연출 콘셉트요? 직접 와서 볼 것”
“정선영 연출가는 공연 콘셉트를 설명하기 보다는 공연을 직접 와서 보라고 말하세요. 단장이 연출에도 관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희는 다른 단체와 달리 간섭을 안 해요. 모든 부분을 연출자에게 맡겨서 마음대로 뜻을 펼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운명의 힘> 작업 전부터 이야기가 됐던 작품이라 이미 차근차근 진행시켜 나고 있었어요. 연출님이 고집이 확고하신 분이라 질릴 정도로 봄부터 준비했어요. 궁금함을 자극하는 콘셉트입니다.”

프로그램 북에 있는 정선영 연출가의 노트를 옮기면, “수천, 수백 번의 차갑고 단단한 칼끝의 감촉을 나는 기억한다....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대해 생각해본다. 다른 이를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 기억에서 기억으로 이어지는 아픔, 그것을 담은 시, 이런 것들도 칼로 재단할 수 있을까? 현란한 칼질을 조소하는 방랑시인의 노래가 유유히 숲을 물들여간다.”

◆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무대”
“만화가 이현세 씨의 딸이기도 한 이엄지 씨는 지난 해 올린<돈 조반니>에 이어 같이 작업하는 분입니다. 이현세 씨가 <일 트로바토레> 포스터를 재능기부로 그려주기도 했어요. <돈 조반니>는 저희 단체가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올리는 작품이라 연출자는 물론 무대 디자이너에게 너무 상징적으로 가지 말자고 했어요. 이번만은 사실적으로 가자고 했죠. 그렇잖아요. 오페라 관객이 없다고 하는데, 또 생각할 거리를 던져두면 도망가지 않을까요. 상징적이고 유럽적인 무대는 조금 더 오페라에 익숙해지면 만들자고 했죠. 그런데, 이번엔 좀 더 도전을 합니다. 연출자는 물론 무대디자이너에게 권한을 다 줬거든요.”

(이엄지 씨는 오페라 무대 디자인 뿐 아니라 2013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 무대 슈퍼바이저로 활약했던 분이다. 다른 쪽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지나가던 이엄지 씨가 직접 무대 콘셉트를 이야기해줬다)“처음에 기본으로 잡은 건 ‘인간의 본성 이야기’입니다. 외부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인간들은 무기를 들어요. 남을 향해 들기도 하지만 나를 향해 들기도 하죠. 상처를 입히고. 흉터가 생기고 또 새로운 상처가 반복 되는 이야기죠.

사질적인 걸 배제하고 상징적인 무대로 만들었어요. 작품 전체적으로 쓰일 오브제를 굉장히 날카로운 쇳조각으로 풀었어요. 무대를 보면, 서로를 밀다 못해 파고들어가는 쇳조각이 박혀있어요. 쇳조각이 겹겹이 쌓인 나무 느낌이 날 수도 있어요. 우리 본질과 반대로 가면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 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녹이 슬고... 이런 상태가 계속 돼요. 집시장면을 보면, 20~30 년이 넘은 아주체나의 (내면을 알 수 있게 하는)쇳조각은 녹슬어 있어요. 억압받는 자들의 한은 사회를 다 뒤흔들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공격적이죠. 우리 인간 하나 하나를 대표하고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사회구조를 이야기하기도 해요. ‘아주체나’란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분노. 이와는 반대로 감싸 안으려는 ‘레오노라’의 본질도 담겨있어요.”



◆ 소프라노 이윤아가 부르는 베르디 음악이 궁금하다
한양대학교와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줄리아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줄리아트 음악원 오페라단원으로 활동한 소프라노 이윤아는 1997년 뉴욕 시티 오페라단의 <라보엠> 미미로 미국 21도시 순회 공연을 가진 리릭 소프라노이다.

2005년 스위스의 베른 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인공으로 유럽 무대 데뷔를 한 뒤 지금까지 120회 이상 <나비부인>의 초초상을 연기했다. 국내 무대 데뷔는 2007년 국립오페라단의 <라보엠>의 미미이다. 2008년 대관령 국제음악제의 솔리스트로 한 차례 더 국내 관객을 만난 그녀는 5년 만에 다시 국내 무대에 서며 첫 베르디 오페라에 도전한다. 2014년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나비부인>에 합류할 예정이다.

“오랜만에 국내 무대에 오르게 됐어요. 그 동안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서 오지 못했어요. 그런데 저의 레퍼토리를 새롭게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일 트로바토레>는 꼭 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푸치니, 모차르트 작품 혹은 불란서 오페라 작품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한정된 레퍼토리에만 갇히다보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미국에선 소리도 두껍고 체격도 큰 그런 소프라노를 우선 순위로 둬 동양 사람이 레오노라 역을 맡기 힘들어요. ‘레오노라’란 역은 강하다는 이미지가 선입견처럼 있나봐요. 하지만 전 왜 꼭 그렇게 드라마틱한 소프라노만 해야 하나? 의문이 생겼어요. 제 목소리로도 충분히 캐릭터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률적으로 질러대는 소리가 아닌 따뜻한 소리를 지닌 레오노라를 그려내고 싶어요. 저라는 사람은 베르디를 어떻게 부르는지 확인하러 오세요.”

“레오노라의 심정이 이해가 되냐고요? 레오노라는 만리코에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죽음을 택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만리코는 레오노라의 행동이 루나 백작에게 몸을 바치기 위함이 아닌지 의심해요. 지금의 현실에선 이해가 안 되는 캐릭터일 수 있어요. 하지만 <투란도트>의 류, <나비부인>의 초초상 모두 그 베이스는 똑같다고 생각해요. 목숨까지 바치는 여자의 순정이 숭고하고 아름다워요. 스토리 자체는 삼류 막장이란 지적도 있지만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요. <마술피리> 내용만 놓고 보면 누가 감동하겠어요? 음악이 감동으로 이어지게 만들죠.”

◆ 왜 국내 성악가들이 설 무대가 없는가
“이미 우리나라 예술인들은 실력 면에서 세계정상에 선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못한 외국연주가들을 선호하는 잘못된 인식이 클래식계에 만연해 있어요. 우리나라에 오페라가 들어온 지 65년이 됐지만 조역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외국 가수들만 찾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까워요. 그도 아니면 연줄로 무대에 세우는 경우가 많죠. 그런 시스템을 바꾸려고 해요. 외국 가수를 선호하는 첫째 이유는 기업 스폰을 받기 위함이고 둘째는 오래 연습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죠. 외국 가수들이 오면 2주 만에 와서 합을 맞춰요. 반면 국내 가수들과 작업하면 3개월은 연습을 해야 하거든요. 인건비가 계속 나가는 거죠. 대한민국에서 오페라 한 편을 올리기 위해선 사명감이 없으면 안돼요. 사립오페라단은 후원 없이 오페라 올리기 힘들다고 서로 죽는 소리를 해요.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보다 사명감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요.”

◆ “클래식계의 SM을 만들기 위하여”
“5년째 ‘라벨라 성악 콩쿠르’와 ‘라벨라 오페라 학교’”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어요. ‘라벨라 오페라 학교는 유학을 갔다 왔든 지방대학을 나 왔든 상관 없이 무료로 가르쳐 주는 학교입니다. 발성은 발성 코치가, 연기는 연출가가, 음악은 음악코치가 가르쳐주는 학교죠. 그 친구 중에 한명이 <돈 조반니>로 데뷔를 하기도 했어요. 베이스 양석진 씨인데 이번에 <일 트로바토레>의 ’페란도‘로도 출연해요. 저희 오페라의 조역들은 다 오페라 학교 출신입니다. 라벨라 오페라단은 오페라 트레이닝을 받은 그 가수들로 채워갈 것입니다. 본질은 잘 지켜 나가면서 클래식의 SM 엔터테인먼트가 돼야죠.

‘오페라 가수 캐스팅은 연줄로 간다’는 풍조가 있는 걸 보며 그렇게 가지 않는 오페라단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한 가지 더 ‘정당한 개런티를 주자’는 게 제 입장입니다. 작년에는 첫 대형 오페라라 표를 팔아주는 가수들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표를 팔아주는 풍토 없이 조역들까지 다 개런티를 줬어요. 제가 부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지인들한테 투자를 받은 거죠. 앞으로 5년 뒤 매니지먼트 사업을 해 나갈 생각입니다. 내년엔 300만원 이상씩 개런티를 주고 대신 공연 준비 한 달 동안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방침을 내 세울 계획이에요. 지금은 1년에 한 번씩 그랜드 오페라를 올리고 갈라 콘서트. 가곡의 밤 등 소소한 연주를 이어왔어요. 조금 더 자본이 되면 봄 가을로 두 차례씩 그랜드 오페라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 “믿고 보는 오페라단을 꿈꾼다”
“라벨라 오페라단이 믿고 보는 오페라단이 된다면 좋겠죠. 그렇게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할 겁니다. 단장들은 자본을 구하러 다녀야 해요. 전 기업을 찾아가서 자본을 달라고 말하지 않아요. 정당한 투자를 받아야 하는 거죠. 저희는 도움 받는 단체이긴 하지만 정당하게 콘텐츠를 파는 단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업가를 처음 만나서 ‘오페라는 어려워서’라는 말부터 꺼내는 사람과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아요. 백이면 백 그런 사람들은 오페라를 한 번도 안 본 사람이죠. 오페라를 본 사람하고 이야기 해야지 이야기가 통할 것 아닙니까. 오페라는 가장 우월한 콘텐츠입니다. 왜 돈을 달라고 불쌍한 노릇을 보여야 하나요? 콘텐츠로 대접을 받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당당해집니다.”

◆ “지금은 돈을 벌 때가 아니라 투자를 해야 할 때”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이 매진 됐죠. 관객들도 4시간이 넘는 공연보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국립이라는 타이틀도 있었고 바그너 오페라 국내 초연작이란 메리트도 있었지만, 우리도 그런 매진 될 수 있는 오페라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전 국민의 1%만 오페라를 보는 시대라고 해요. 저희 오페라단도 좋은 작품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수 관객이 70%인 공연을 만들자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을 벌 때가 아니라 투자를 해야 할 때이죠.”

“뮤지컬은 장기공연이 가능해요. 티브이광고를 해서 알리는 것도 많죠. 티비스팟 광고에 대해 알아봤더니 1억 5천만원이라고 하더군요. 그 돈이면 제작비에 보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 않았어요. 오페라 제작을 한 지 만 7년이 됐는데. 더더욱 느끼는 건 자본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 “흥행은 되지 않았지만 행복해요”
“이런 말들 자꾸 하기 싫은 데 우리 오페라계가 기형적이 됐어요. 저도 외국 팀이 와서 하는 공연들을 싫어하지 않아요. 그러나 무조건 외국 이름만 내 걸고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프로덕션을 데리고 와야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미국), 로얄오페라 (코벤트가든), 라 스칼라(이탈리아) 팀 등을 데려오라는 거죠. 그런 다음 표를 50만원 받는 것에 대해선 아무 말 안 해요. 저희 오페라단은 3년 후에 그렇게 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번 <일 트로바토레> 표가 많이 팔리진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공연되는 유명 작품이 아니라 관객들이 더 안 오는 것도 있었겠죠. 흥행은 되지 않았지만 행복해요. 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 하거니까요. 이번에 소년소녀 가장 들을 위해 1000석을 기부했어요. 오페라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자 오페라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이 됐으면 해요. 그 중에선 나중에 사업가 돼 오페라에 투자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가수가 될 수도 있는 거고, 또 다른 문화 충격이든지 여러 가지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봤어요. 내년엔 도니체티 오페라 <안나볼레나>를 올릴 생각입니다. 한국초연이 될 건데 차근차근 성악가를 캐스팅 나가야죠. 장사꾼들 빼고 같이 끝까지 갈 사람들과 계속 꿈을 이뤄나갈 겁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라벨라 오페라단, 정다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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