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세 자매’ 연출가 문삼화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지난 8일,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2004년 체호프 서거 100주년 기념 <갈매기>(지차트 콥스키 연출)와 2008년 유리 부드소프의 <갈매기>, 2010년 지차트 콥스키의 <벚꽃동산>에 이은 예술의전당 기획 제작 체호프 연극 3탄이다.

모두 4막으로 구성된 <세자매>는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모스크바를 떠나 러시아의 지방 소도시에 정착해 사는 세 자매와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사랑과 삶, 희망과 좌절을 그린 이야기다.

‘우리시대 세 자매의 ‘모스크바’를 향한 유쾌한 여정‘이란 부제가 붙을 만큼 살아있는 세 자매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실력파 배우 우미화, 김지원, 장지아가 세 자매로 나선다. 유능한 교수가 되는 꿈을 잃은 뒤 시의원이 된 것을 자랑으로 삼고 사는 안드레이 역엔 오민석, 극 중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인 안드레이의 부인 나따샤 역은 김시영이 열연한다. 이 외 마샤의 남편이자 교사인 꿀릐긴 역 이현균, 베르쉬닌 역 이우진, 할아범 역 유순철, 세브뜨이낀 역 임홍식, 숄로늬이 역 한철훈, 뚜젠바흐 역 문병주 이렇게 모두 11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2013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 평택 기지촌 할머니들의 아픔과 슬픔을 담담하게 담아 낸 <일곱집매>에 이어 체호프 연극 <세자매>를 마음에 품은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 대표 문삼화 연출을 만났다.

■ “무대 위의 세 자매, 그 후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프레스 리허설이긴 했지만 전막을 다 공개했다. 연출가로서 기분이 어떤가?
“정식 공연은 내일이긴 하지만 지금도 떨려요. 어떻게 나올지. 먼저 본 기자들 반응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어요.”

-‘문삼화 연출과 체호프가 만났다.’ 이 사실만으로 기대하는 게 있을 거 같다.
“음...뭘 기대할까요?”

-공연소식을 듣고 먼저 든 생각은 ‘체호프 작품이 잠이 안 올 것 같다.’였다.
“‘비극적인 마지막을 어떻게 설정했을까’ 궁금해 하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봤어요? 오늘 분위기를 보니 1막과 2막은 ‘까르르 까르르’ 웃으면서 보는 것 같아요. 인물들이 시끄럽고 수다도 많이 떨어요. 3막과 4막은 1막과 2막에 비해 무거워요. 제 기준으로 무겁다는 의미인데, 무겁게 봐주지 않으신 것 같아요.“

-<세 자매>에 내재된 코미디적인 부분에 주목했다.
“<세 자매>은 연극인이라면 대부분 다 알고 있는 작품이죠. 그런데 전 체호프 공연이 지루해서 싫어했어요. 체호프 원작은 재미있는데 공연이 지루한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아는 사람이 아니면 일부러 찾아서 보지 않았죠. 코미디적인 부분은 1,2막에서 살렸어요. 각 등장인물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복잡한 정서와 감정을 모두 현실 속에 살아있는 인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살아있는 세 자매’를 해보자고 마음 먹었어요.”



-마지막을 비극으로 풀지 않아 좋았다.
“<세 자매>를 체호프 본인은 코미디로 봤다고 하는데, 막내 이리나가 내일 결혼할 남편(뚜젠바흐)을 죽여 놓고 그게 코미디라는데 말이 안 된다고 보는 측면도 있긴 하죠. 어떤 관객은 비극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도 있을 건데 전 비극적이지 않게 풀어내고 싶었어요. 오늘 간담회에서 ‘가볍게 안 풀고 울음과 웃음이 다 있어 좋았다’는 평도 나오기도 했고요.

제 안에 네 남매가 다 있어요.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노처녀 올가, 현재 구속이 싫어 불륜을 저지르는 마샤, 철없는 이리나, 완전 속물 안드레이까지 다 있거든요. 드라마는 끝나지만 세상 어딘가에 있을 세 자매의 삶은 진행형일거다란 생각을 했어요. 난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싶어요. 그래서 비극으로 풀고 싶지 않았어요. 이들 네 남매의 모습이 내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다 있는 하나 하나의 것 아닐까요. 공연이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닌 데 왜 비극으로 규정 하냐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살아가야 하는데 말이죠. 제가 프로그램에도 썼어요. ‘무대 위의 세 자매, 그 후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 합니다’라고.”



■ 살아있는 세 자매, 아니 네 남매 이야기

-예술의전당에서 <세 자매>공연을 의뢰받은 건가, 아님 자유롭게 공연을 선택한 건가
“'2013 자유연극시리즈 III'로 현재 고인이 된 신호 연출님, 그리고 김현탁, 저, 류주연, 장우재 연출이 선정 됐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연출을 선정해 논 다음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가지고 오라고 했어요. 디자이너, 캐스팅, 작품 선정 등 모든 권한을 다 줬어요. 전폭적인 지원 아래 작업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한 일이죠.”

-왜 체호프의 <세 자매>에 끌렸나
“체호프 작품은 언젠가 하고 싶었어요. 그 중에서 <세자매>가 가장 끌렸어요. 체호프 작품 중 드라마가 제일 약한 작품입니다. 몇 년 동안 마음에 품었는데... 왜 <세자매>였냐? 글쎄요. 기억이 안나요. 여자들 이야기인 것도 있었을텐데.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에 대한 물음도 있었을 텐데 정확히 말을 못하겠어요. 꽤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것 밖에.”

-얼마 전에 LG아트센터에서 올려진 레프도진의 <세 자매>의 이미지를 머릿 속에 그리며 찾아오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이미 예술의전당에서 <세 자매>를 올리기로 결정 한 상태에서 엘지아트센터 공연을 보러 갔어요. ‘레프도진 연출과 겹치는 거 있으면 안해야지’란 생각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막상 공연을 보니 레프도진은 ‘문학적인 세 자매’란 인상 이었어요. 저희 작품은 거칠게 표현하면 ‘상스런 미친 세 자매’ 인상도 줘요. ‘살아있는 세 자매’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도진은 올가 마샤 이리나 그리고 새언니인 나따샤까지 한 자매로 본 ‘네 자매’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라면, 문 연출은 올가 안드레이 마샤 이리나 ‘네 남매’에 초점을 둔 인상이었다.
“그렇게 구분한다면, 전 나따샤를 구지 세 자매 사이에 끼어주고 싶지 않았어요. ‘네 남매’에 포커스를 맞춘 게 사실이구요. 전 나따샤를 현대에 가까운 인물로 봤어요. 콘셉트로 본다면, 세 자매가 70년대 인물이라면 나따샤는 2000년대 인물인거죠. 70년대 사람들이 현재 힙합바지 등 의상을 입고 있는 우리를 보면 얼마나 이상하겠어요?. 연출의 시각이 달라서 비중을 달리 했다기 보다는 현재라는 게 좋은 건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평가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따샤가 상징하는 게 ‘좋다 혹은 나쁘다’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세 자매는 ‘모스크바로’를 외치지만 떠나지 못한다. 그들에게 ‘모스크바’는 어떤 의미인가?
“철딱서니 없는 이리나는 모스크바에 브래드 피트가 있다고 믿어요. 연습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전남 구례에 사는 아이가 미국만 가면 뭔가 달라질거라 생각하고, 멋진 남자가 생길거라고 믿는 것과 비슷하다고. 세 자매는 ‘주머니 속의 모스크바’는 못 보고 멀리 있는 모스크바만 보려고 해요. 세 자매는 ‘모스크바’를 외치지만 끝끝내 그곳에 가지 못해요. 그들에게 모스크바는 ‘보류된 행복’인거죠. 멀리 있는 모스크바를 보느라 당장의 행복을 보류했다면 주머니 속의 행복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눈에 띄는 배역은 원로배우 유순철 선생님이 하는 ‘안피사’ 역과 컬러풀한 보라색 바지를 입고 나와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고 딱 선생님스런 말투를 취하는 ‘꿀릐긴’이였다. 꿀릐긴 역 이현균 배우는 공연시작 전과 인터미션에 방송도 하더라. 대개 작품의 주인공들이 안내방송을 하는데 말이다.
“노역 안피사 역에는 유순철 선생님이 참여해 깊이를 더해주고 계세요. 실제 노인 역은 남자 하인 ‘페라뽄뜨’와 노인 ‘안피사’, 이렇게 두 인물을 합친 것입니다. ‘나 냅 두지 말라’란 는 대사는 안피사의 대사이고, 원작에는 없는 안드레이의 등에 업히는 장면은 이들의 어린 시절을 합쳐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현균 배우가 안내 방송하게 된 건 저도 뒤늦게 안 사실입니다. 연출적으로는 고지식한 교사 ‘꿀릐긴’을 기존 작품들과 다르게 그리고 싶었어요. ‘찐타’라고 하죠. 대개 바보같이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눈에 보이는 형식만을 인생의 기준으로 삼고 사는 인물입니다.”



■ 연극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연출도 그렇고 배우들의 열의가 대단한 거 같다.
“연습 때부터 실제 무대에서 이용 될 단을 세우고 연습했어요. 연습 때부터 무대에 익숙하도록 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연습실에 무대 세운 거 처음 봤어요. 그걸 보면서 ‘여건이 안 됐어’. 이런 핑계를 될 수가 없겠구나 란 생각도 들더군요. 정말 잘 만들어야겠다. 재미있는 거 중요한 게 아니라 ‘정확한 나의 시점을 보여줘야 겠구나’ 란 생각도 들었고요. 부담이 돼요. “

-극단 작업했을 때와는 또 다른 부담인가
“예술의 전당 팀이 그만큼 움직여줘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인데, 갑자기 이 많은 사람들이 투입돼서 전폭적인 서포트를 한다는 게 무서워졌어요. 그러면 난 그 만큼 퀄리티를 내야 하는 거 잖아요. 예전엔 ‘잘못 하면 내가 망하는 거고. 수입이 나도 내가 버는건데’ 란 생각이 더 컸던 거 같아요. 알고 보면 지원금도 모두 국민 세금으로 하는 건데. 공연을 한편 올린다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거죠. 그 동안 무책임한 거 아닌데. 이번 연극 제작 과정을 보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책임감을 느꼈어요. 그만한 ‘돈 값을 해야겠다.’란 생각도 커지구요.”

-연출가로 살아온 지 10년이 넘었다. 여전히 연극이 재미있는가
“99년도에 극단 유에 입단하고, 공식 데뷔는 2003년도에 연극 <사마귀>로 했어요. 만 10년 차가 됐네요. 아직은 재미있어요. 전 분명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 둘 것 같아요. 연극 안 하면 뭐 할까. 결국은 연극을 통한 뭔가의 일이겠죠. 요즘엔 김천 교도소 소년원 수감자 아이들을 데리고 연극을 하고 있어요. 점점 그런 일에 관심이 많아져요. ‘연극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거기엔 <일곱집매> 영향이 컸어요. 터닝 포인트가 된 거죠. 대한민국에서 연출가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미래 방향을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죠.”

문삼화 연출은 “나의 시각이 궁금해지는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10년 전 <라이방>을 올릴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쿨한 연출가, ‘여자야?’라면서 한 번쯤 돌아보는 연출가란 말도 있지만 여성 연출가, 남성 연출가로 구분해서 보기보다는 배우가 보이는 연출가, 작품이 보이는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와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있었다. “여태까지가 연극 문법을 알아가는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나의 시각이 궁금하다고 만드는 연출가가 되고 싶어요. 사실 공연이란 게 연출의 시각이 투영되는 것들이잖아요. 아직은 그런 연출가가 아니지만...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사이에 제가 나이 든 것도 있겠지만, 이번 <세 자매>작업을 하면서 많이 성장한 기분이 들어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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