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알란 칼손이라는 스웨덴 노인이 100세가 됐어. 알란은 100회 생일에 양로원을 탈출해. 그 자신도 딱히 뭐라 설명하지 못할 충동적인 행동이었어. 하지만 평생 세계의 격변을 현장에서 겪은 그는 시골 양로원을 인생 최후의 장소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야.

알란은 다시 세상에 뛰어들기 직전, 그러니까 버스 터미널 대합실에서 갱단 멤버 ‘볼트’와 마주쳐. ‘네버어게인’ 조직원 볼트는 알란에게 자기가 큰일을 보는 동안 잠시 제 트렁크를 지켜달라고 명령하는 투로 말해. 알란의 충동이 다시 꿈틀대지. 그는 곧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타. 버스 기사 도움을 받아 트렁크를 짐칸에 싣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얘기는 이렇게 시작해.

알란은 정처 없이 나선 길에서 일행을 만들게 돼. 트렁크에는 무엇이 들어 있으며, 그 트렁크를 도난당한 볼트의 운명은 어찌 되는지, 소설은 빠른 속도로 내달려. 마침내 보스가 직접 나서서 알란 일행을 추격하지. 보스는 차량 충돌로 부상하지만 결국 알란 일행을 붙잡아. 권총을 든 보스가 일행을 앞에 일렬로 세우고 “트렁크의 내용물이 얼마나 줄었는지에 따라 너희 생사를 결정하겠다”며 딱딱거리는 상황에서 반전이 일어나는데….

책은 아직 절반이나 남았어. 하지만 난 여기서 책을 딱 덮었어. 그리곤 도서관 창구에 반납했지. 재미가 없어서는 결코 아니야. 이날은 일요일이었어. 토요일을 지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어. 금요일 만들어둔 술자리에서 마셔댄 술값을 치러야 했지. 전날 밤 술과 안주 가격은 돈으로 계산했지만, 과음한 뒤 숙취는 다음날까지 몸으로 때워야 하잖아. 그래서 토요일은 축 처진 상태였지만 술술 흘러갔어.

다음날은 막막했지. 한동안 일요일이면 가족과 점심을 느긋하게 먹은 뒤 집 근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어. 하지만 그날엔 읽고 싶은 책이 없었어. 그래도 뭔가 재미난 거리가 있을까 하고 간 도서관에서 알란 노인을 만난 거야. 그런데 다음 장면이 궁금해 책장을 슥슥 넘기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큭큭거리게 되는 거야. 알란 노인의 기상천외 모험담은 ‘아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다음 일요일, 혹은 그 다음 일요일을 위해서.

이날 난 깨달았지. 시간이 나면 하고 싶은 일을 정해두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남으면 마저 할 재미난 일을 여럿 만들어 남겨두는 편이 더 낫다는 걸.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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