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시’ 중세적인 세계관을 지닌 SF스릴러라니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열한시>는 국내 최초의 시간이동을 소재로 한 스릴러이다. <광식이 동생 광태><시라노 연애 조작단> 등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 온 김현석 감독이 연출을 맡고 정재영, 김옥빈, 최 다니엘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 <열한시>는 블랙홀사이의 웜홀을 통과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지구에 블랙홀을 만들기 위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코어에너지(지구 핵에너지)’의 활용으로 얻는다는 설정을 취한다. 우석(정재영)은 러시아의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섬 주변에 중력이상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하고, 러시아 대기업을 설득하여 심해에 코어에너지연구소를 만들게 하고, 그곳의 일부를 임대하여 3년 동안 시간여행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투자기업은 연구소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러시아 직원들을 철수시키고, 우석의 연구팀에게 연구를 중단하라고 통보한다. 하지만 우석은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집념으로 투자기업에게 제한된 시간 동안의 시간여행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보이겠다고 한다.

우석은 지완(최다니엘) 등 연구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은(김옥빈)과 함께 정확히 24시간 후인 ‘내일 11시’로 이동하여, 15분간 머물다가 다시 돌아오겠다며 타임머신에 탑승한다. 우석과 영은은 무사히 ‘내일 11시’에 도착한다. 그러나 둘은 연구소가 파괴되고 연구원들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우석은 황급히 CCTV파일을 챙겨 돌아가려는데 영은이 탑승하기 전에 타임머신의 문이 닫힌다. 귀환한 타임머신에서 문틈에 낀 영은이 발견되지만 한동안 깨어나지 못한다.

우석은 연구원들에게 연구소가 파괴된 것을 알리며, 가져온 CCTV 파일을 보여준다. 그러나 파일의 대부분은 훼손되었고, 몇 개의 장면들은 오전 6시에 연구소에 불이 난다는 것을 알려준다. 팀원들은 당장 연구소를 떠나거나 세이프 룸에 숨어 있자고 말하지만, 우석은 화재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면 연구소의 파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우석과 연구원들은 CCTV에 찍힌 끔찍한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SF물이 만들어졌다는데 의미를 두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색다른 시도인 것은 맞다. 하지만 호의적으로 보아주기엔 만듦새가 너무 허술하다. 초반의 어수선한 너스레는 SF적인 설정을 설명하기 위한 불가피한 장치로 이해한다 쳐도, 중반이후의 진행도 매끄럽지 못하다. 우석처럼 예정된 사고를 막아서 미래를 바꾸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뒤늦게 깨어난 영은에 의해 상당부분 복구된 CCTV 파일을 보고나서, 화면에 나오는 미래의 장면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하는 행동을 취했어야 한다. 가령 화면 속에서 흉기를 휘두르는 연구원은 최소한 격리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우석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이는 실수라기보다는 일종의 선택으로 보인다. 왜 이런 선택을 취하는가? 사실 그 이유가 영화의 허술한 만듦새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닌다.

영화는 “영은이 깨어나면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라고 하면 되겠네”라고 말하는 장면이 보여주듯이, 미래의 파국을 본 연구원들이 평정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온전한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열한시가 다가오면 다들 미쳐 갈거예요”라는 대사가 말해주듯, 영화는 최고의 과학자들이 ‘미래의 파국’이라는 수수께끼를 앞에 두고 시간에 대한 존재론적 함수를 정교하게 풀어가며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SF가 아니라, 폐쇄 공포에 휩싸인 주인공들의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예정된 미래’와 ‘현재의 조각들’을 짜맞추어가기를 원하는 스릴러이다.

영화 <열한시>에서 인물들의 개인사가 많이 나오고, 심각한 상황에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해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영화는 이들을 냉철한 과학자가 아니라 관객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일반인들로 보이게 하는데, 이것 역시 실수라기보다는 일종의 선택으로 보인다. 영화는 이들을 최고의 이성을 갖춘 존재가 아니라, 불안정한 감정이나 개인적인 상처에 의거해 행동하는 한계적인 존재로 그린다. 즉 <열한시>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다 나약한 존재일 뿐이며, 우주만물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 해도 가족의 죽음이 남긴 상처에나 붙들려 있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인간관을 품고 있다.



◆ 고약한 중세적 농담 같은 악무한의 시간지옥

<열한시>는 시간여행이라는 발랄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세계관은 다분히 고답적이다. 심지어 시간여행에 있어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인 ‘과거 혹은 미래의 자신을 직접 만나는 문제’까지 등장시키면서도, 시간에 대한 정교한 사유 대신 투박한 운명결정론으로 모든 틈을 메운다. 요컨대 ‘운명은 결정되어 있어서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꿀 수가 없으며,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자가 더 크게 걸려 넘어질 것이다’라는 완고한 믿음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즉 시간여행이라는 미래창조과학부적인 설정에 웅장한 세트와 물리학 박사의 자문 등을 내세우지만, 이 영화의 정신은 숨이 막힐 듯한 중세적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에 의하면 시간을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단 하나의 정해진 길이 있을 뿐이며, 베르그송의 ‘시간의 원뿔’이나 들뢰즈의 ‘잠재성의 시간’ 등이 품고 있는 우연과 사건과 인간 존재와 행위에 관한 무한한 가능성들은 압살되고 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들이 재난을 맞게 된 것은 시간여행을 하여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24시간 후의 파국을 보고 돌아와 그것을 막으려고 행동하다가 불이 나고, 연구원들이 미쳐 돌아가고, 그러다가 건물이 약해지고, 시스템이 망가지고, 딱 24시간 후가 되자 어제 출발한 타임머신이 도착함과 동시에 붕괴하는 것이다. 이들이 애초 시간여행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에 파국의 무한 루프가 따라붙는 셈이다. 이를테면 앞으로 가나 뒤로 가나 ‘파국이라서 파국’인, 원인과 결과가 맞붙은 재난의 폐쇄회로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나? 미래라는 신의 영역을 탐한 자들에게 피할 수 없이 내려지는 징벌이다. 시간은 신의 뜻으로 결정된 단 하나의 굵은 직선인데, 여기서 인간이 한 치라도 빠져나와 신의 영역을 엿보려고 하면, ‘파국이어서 파국’인 악무한의 지옥으로 빠지게 된다. 하나의 굵은 시간의 직선 안에서 인간들이 발맞춰가다가 오만한 자들이 옆으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 보풀처럼 작은 시간의 루프가 형성되어, 개미가 개미지옥에 빠지듯 그곳에 자동으로 빠져 자멸하게 된다.

이건 마치 이런 식이다.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 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라는 질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자들을 위한 지옥을 만들고 계셨지’ 라고 답하는 중세의 농담과 비슷하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라는 잠언의 구절을 영화의 맨 앞에 박아 넣는다.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보다 솔직할 영화도 없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열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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