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는 어떻게 이민호·김우빈을 빚어냈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SBS 수목드라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은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걸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물론 그건 <상속자들>의 구성이나 대사, 상황에서 오는 재미가 아니다. <상속자들>의 구성은 지극히 평면적이다. 여주인공의 위기, 왕자님의 등장, 그 둘을 바라보는 준주연급 남녀의 시선이 전부다. 가끔 들어가는 기업 내의 형제간 암투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황금의 제국>을 시청한 이들에게는 소꿉장난과 다름없다.

<파리의 연인>부터 <시크릿가든>을 통해 달달하면서도 오글거리는 대사로 유명해진 김은숙 작가이지만 <상속자들>에서는 아니다. 기존 그녀 드라마에서 답습해온 방식의 말투와 유머 탓인지 재미보다 과거 드라마의 기시감이 더 크다. 그러다보니 너무 달아서 혀가 오그라드는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순정만화적인 구도의 드라마가 식상해지지 않도록 작가가 새롭게 배합해낸 인물 캐릭터의 설정은 눈여겨 볼만하다. <상속자들>의 성공은 그 부분에 있지 않을까 싶다. 단순한 악녀라기보다 모든 걸 가질 수 있으나 사랑만은 갖지 못하는 십대 소녀의 정신붕괴를 보여주는 유라헬(김지원)이나 재벌가 사모님 분위기에 순정만화 같은 발랄한 성격을 더한 한기애(김성령)의 캐릭터가 작가의 솜씨가 돋보이는 캐릭터들이다. 여주인공 차은상의 어머니인 박희남(김미경) 역시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보지 못한 쿨하디 쿨한 입주 가사도우미 캐릭터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캐릭터라면 역시나 김탄(이민호)과 최영도(김우빈)일 것이다. 이 두 남자의 캐릭터는 사실 <꽃보다 남자>보다는 70~80년대 모든 여학생들의 책상에 늘 꽂혀 있던 소녀들의 성경 같은 순정만화 <캔디캔디>에 기댄 바가 많다.



<캔디캔디>는 가난하지만 씩씩한 고아소녀 캔디의 성장담 만화다. 아니,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캔디가 순정만화 타입의 다리 긴 남자주인공들에게 사랑받는 만화다. 이 만화에서 캔디는 두 명의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외모에서부터 귀족집안의 혈통이 줄줄 흐르는 친절하고 반듯한 미소년 안소니, 그리고 여배우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귀족집안의 서자이자 반항적인 매력을 지닌 장발의 테리우스. 여기에 캔디를 키다리아저씨처럼 늘 돌봐주는 앨버트아저씨가 있다. 물론 이 아저씨 역시 <캔디캔디>의 마지막쯤 캔디와 사랑에 빠진다. 심지어 누나 이라이저와 함께 캔디 괴롭히기 일인자를 자처했던 니일 역시 <캔디캔디>의 후반부에 캔디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캔디와 연인까지는 아니지만 이 만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캔디를 아껴주고 귀여워한다.

각설하고 언뜻 생각하기에 김탄이 안소니라면 최영도는 니일에 가깝다. 이걸로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캔디를 괴롭히다 짝사랑에 빠지는 심술쟁이 니일이 어떻게 날 때부터 반듯한 왕자님인 안소니를 이기겠는가? 하지만 작가는 이 게임에 하나의 승부수인 테리우스를 던진다. 어떻게? 쪼개서. 그래서 김탄(안소니+테리우스), 최영도(니일+테리우스)라는 조합이 만들어진다.

이 조합 역시 실제로는 게임이 안 될 것 같다. 순정만화 매력남의 양대산맥인 안소니와 테리우스가 하나로 합쳐진 캐릭터가 김탄이니 말이다. 김탄은 기본적으로 안소니처럼 친절하고 달콤한 타입의 남성인물이다. 하지만 백허그 장면의 연출이나 서자 출신의 콤플렉스를 지녔다는 설정에서 김탄은 분명 테리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 결과 김탄은 순정만화 남자주인공 완전체로 탄생한다. 이민호의 연기와 비주얼 역시 안소니와 테리우스 두 가지 모습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 때로는 친절함으로 때로는 건방진 모습으로 때로는 아름답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순정만화 완전체를 대중들에게 설득시킨다.



하지만 니일과 테리우스의 조합인 최영도 역시 만만치 않다. 작가가 최영도에게 부여한 테리우스 매력 때문이다. 최영도는 비뚤어진 성격과 건방진 태도, 우울한 분위기를 지녔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캔디캔디>에서 테리우스가 지닌 매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강하고 제 멋대로지만 어딘지 우수에 차 보여서 왠지 마음이 끌리는 나쁜 남자주인공. 여기에 니일 캐릭터 특유의 콤플렉스 기질까지 합쳐졌으니 찌질남이 거부할 수 없는 순정만화 변형체로 탈바꿈한다. 물론 이 최영도 캐릭터 자체를 자기 식대로 자기의 대사방식으로 소화하는 김우빈의 능력도 한 몫 한다. 여기에 전형적인 조각미남인 이민호와 대비되는 김우빈의 조각공룡 같은 외모 역시 최영도란 캐릭터에 힘을 부여한다.

이 순정만화 완전체와 순정만화 변형체 캐릭터가 비등비등한 힘을 지니면서 <상속자들>의 긴장감과 재미는 살아난다. 하지만 <상속자들>의 의미는 딱 거기까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라는 부제에 어울리지 않게 아무리 무거운 척을 해도 여전히 이 드라마의 왕관은 황금이 아닌 금박지 은박지로 만든 알록달록한 왕관 같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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