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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노무현 미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기사입력 :[ 2013-12-10 10:24 ]


‘변호인’, “국가는 국민입니다”라는 말의 의미
이제는 ‘정면으로’ 말할 수 있다! ‘변호인’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 초 부산에서 자수성가한 변호사가 개인적인 성공을 누리며 살다가 우연히 맡은 시국사건의 변론을 통해 시대의 아픔에 눈뜨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변호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가 실존인물의 삶을 모티브로 삼았고, 그 실존인물이 매우 유명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것은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 노무현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변호인>은 영화가 공개되기도 전에, 이 영화가 노무현을 미화한 ‘친노 영화’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조선일보 온라인 판에는 주연을 맡은 송강호에게 “급전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조롱 섞인 기사가 실리기도 하였고, 인터넷 포털에는 보지도 않은 평점을 깎아내리는 이른바 ‘평점 테러’가 자행되는 등 영화 외적인 논란이 분분하였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되고, 이례적인 전국시사회를 통해 일반관객들에게 공개된 후로는 이러한 움직임이 잦아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변호인>은 영화 외적 논란이 무색해질 정도로 높은 서사적 완결성과 뛰어난 만듦새를 지닌다. 관객들은 송강호의 친숙한 얼굴이 이끄는 대로 80년대 초 부산이라는 향수어린 시공간에 들어와, 할리우드 영화들에서도 흔히 보아왔던 익숙한 성장드라마의 서사에 몰입할 수 있다. 영화는 주인공과 함께 30년 전 실제로 벌어졌던 참혹한 사건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관객은 주인공과 함께 놀라고 분노하면서, 잊고 살았던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즉 영화는 1980년대라는 첨예한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한 한 인물의 성장극을 통하여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을 일깨운다.

<변호인>의 주인공은 故 노무현 대통령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영화 속 주인공은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인물’이지만, 그의 삶은 이미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삶은 특정인물의 삶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삶은 그 시대를 함께 살았거나, 아예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불의한 권력의 폭압과 맞닥뜨린 전 인류의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



가령 이 영화의 배경을 80년대 남아공이나 2000년대 초 미국, 또는 현재의 리비아 등으로 옮긴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서사이며, 근대국가에 사는 전 세계 어느 나라 관객들이 보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논하면서 故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를 자꾸만 문제 삼는 것은 영화의 가치에 흠집을 내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와는 달리 故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를 재평가하도록 만들거나, 그에 대한 애도와 향수를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부디 자중하기 바란다. ‘반노무현’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영화 속 주인공은 노무현과 무관하다고 말하거나 노무현이란 이름이 가급적 언급되지 않도록 하는 편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 평범했던 한 인간의 각성을 담은 성장극

영화 <변호인>이 세계 어느 나라 관객들이 보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는 이유는 평범했던 한 인간이 각성해나가는 성장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민주주의의 가치를 알았던 사람이 아니다. 상고출신으로 막노동을 해가며 독학으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된 그는 법조계라는 상류사회에 그다지 어울리지 못하였다. 짧은 판사 생활을 접고 고향인 부산에 돌아온 그는 체면 따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돈 되는 일을 열심히 하여, 꿈에 그리던 아파트도 사고 공짜 밥을 얻어먹던 국밥집을 찾아가 묵은 빚을 갚을 정도로 소시민적인 성공을 이룬다.

그는 자수성가한 사람 특유의 자만심과 열등감이 가득했다. 그는 명문대 출신 변호사들을 제치고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자신을 뿌듯해하며,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조차 부유한 명문대 출신들의 잘난 척으로 치부하였다. 국밥집 싸움 시퀀스는 그가 지닌 인식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출세한 촌놈’ 처럼 우쭐거렸고, 명문대 생들의 시위나 언론인 친구의 고뇌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가 친구들과 한바탕 싸우고 나서 국밥집 아들에게 돈을 건내다 국밥집 아주머니에게 “쌍놈의 새끼”라고 욕을 먹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이 영화가 지향하는 윤리를 정확히 보여준다.



<변호인>은 흔히 생각하는 고상함과 천박함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고상함과 천박함이 무엇인지 사고하게 해준다. 주인공은 명문대 출신들의 ‘고상함’을 허세로 여겼다. 물론 그런 ‘고상함’은 허세가 맞다. 그러나 그의 열등감은 진정한 의미의 ‘고상함’도 놓치고 있었다. 그가 국밥집 아들에게 돈을 내밀며 거들먹거리는 장면은 진정한 의미로 ‘천박한’ 것이었고, “묵은 빚은 돈으로 갚는 게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의 ‘고상함’을 지닌 아주머니는 정확히 그 지점에서 “쌍놈의 새끼”라고 욕을 퍼붓는다.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그가 요트를 보여주며 국가대표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해 나라를 빛내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그는 자신을 “속물 세법 변호사”라고 말하며, 시국 사건 수임을 거절한다. 엄혹한 시대에 국가에 대한 그의 인식이 얼마나 나이브한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소탈하고 정도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인식은 개인에 매몰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지닌 바로 그 소탈함과 정으로 인해, 그는 국밥집 아주머니의 간청을 모른 채 할 수가 없었고, 눈앞에 벌어진 엄청난 불의를 못 본 척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건 아니지 않나?”며 올곧게 분노하며, 일체의 타협 없이 그 분노를 밀고 간다. 그는 고뇌하는 지식인이라기보다는 노동계급출신의 우직함으로, 누구보다 용감히 불의에 맞선다. 영화는 그 놀라운 변화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담아낸다. 이는 물론 송강호를 비롯하여 모든 배우들이 보여준 호연과 데뷔작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감독의 연출력이 빚어낸 빛나는 성취이다.



◆ “국가는 국민입니다” 라는 말의 의미

법정영화의 장르에 속하는 <변호인>에서 가장 백미는 역시 공판 장면이다.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전두환 정권은 E.H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비롯한 교양서들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이 책들을 돌려 읽으며 여공들에게 야학을 가르쳤던 대학생과 교사들의 모임을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단체로 몰아, 살인적인 고문을 통해 허위로 짜 맞추어진 자술서를 증거로 재판을 해나간다. 법정은 울분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며, 냉철한 법리가 충돌하다가 어이없는 권력의 논리에 막혀 좌절된다.

그 중 가장 핫한 장면은 주인공이 공안경찰(곽도원)과 맞붙는 장면이다. 공안경찰은 영화 <어퓨굿맨>의 잭 니콜슨처럼 공안논리의 민낯을 드러낸다. 주인공은 그에게 “국가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어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조항을 들며 “국가는 국민입니다”라고 스스로 답한다.

이 대목은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 장면으로, 영화 <실미도>에서 “중앙정보부가 국가입니까?”라는 반문보다 훨씬 진전된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을 담고 있다. “중앙정보부가 국가인가?”를 반문하는 것은 비정상국가에서 정상국가로 가기 위한 갈망을 드러내지만, 국가의 통치성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즉 제대로 작동되는 정상국가가 민주적 절차를 통하여 국민에게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에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대사가 비교적 정상국가에 도달했다고 생각되는 참여정부 때 개봉한 <실미도>를 통해 들려질 때, 이는 오히려 민주정부의 통치성을 긍정하는 것으로 작용하며,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국가의 통치성에 대하여 아무런 저항성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입니다”라는 대사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말하며, 국가와 국민 간의 제헌적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급진성을 지닌다. 이 대사가 민주주의의 기본정신과 시민의 공적 권리가 급격히 훼손당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 때 개봉한 <변호인>을 통해 들려지는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에필로그로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저항하는 주인공과 그에게 연대하는 수많은 변호사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는다. 이 장면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책상위로 올라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차례차례 보여주었던 엔딩만큼이나 울림이 크다. 이 에필로그는 “국가는 국민입니다”라는 대사와 더불어 특별한 의미를 산출한다. 즉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체는 87년 민주화투쟁에 의해 만들어진 9차 개헌의 산물이며, 헌법전문에 명시된 3.1운동과 4.19민주이념 뿐만 아니라, 87년 민주화운동의 저항성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일깨운다. 언제든 국민은 저항을 통해 다시금 제헌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때엔 지금과 다른 정치체가 출범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변호인>은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르지 않게 우리에게 도착한 영화이다. 87년 체제의 끝자락에 놓인 한국 사회는 이제야 비로소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정공법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났다. <화려한 휴가>처럼 유머의 당의를 입혀야 대중에게 소통될 것이라는 강박도 없고,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처럼 제풀에 지친 지식인의 자의식이 뿜어내는 냉소나 환멸도 없이, 80년대를 말한다. 그것이 엄연한 역사이자 현재형이기도 한 시대정신이기에, 이제는 ‘정면으로’ 말할 수 있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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