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이별하며 살았던 서른, 매일 맞이하며 살게 된 마흔



"또 하루 멀어져간다-" 서른 즈음에 고 김광석 가객이 '서른 즈음에'를 불렀다면 마흔을 갓 넘긴 정덕현 칼럼니스트는 우리에게 '마흔 즈음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김광석 가객의 '서른 즈음에'가 서른에 대한 어떤 상실의 느낌을 부른 반면, 정 칼럼니스트의 '마흔 즈음에'는 마흔에서야 누릴 수 있는 삶의 넓어진 폭과 깊어진 질을 말한다. 도대체 우리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이토록 모르고 살아왔던가.

일상 속에 숨겨져 있던 자잘한 사건들(?)에 예민한 촉수를 드리운 저자는 늘 "나는 괜찮다"고 해온 아버지에게서 어떤 시대적인 비극을 읽어내고는 자신은 아버지처럼 괜찮지 않은 삶을 "괜찮다"고 말하며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어느 날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가버린 친구의 빈자리를 느끼며 갑자기 가속도가 붙어버린 시간을 긍정한다. 그리고 한 때 '27살 클럽'을 꿈꾸었던 청춘의 열정을 떠올리며 지금 중년에도 여전히 불타오르는 열정을 얘기한다.

'숨은 마흔 찾기'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그래서 숨겨진 것처럼 여겨져 온 마흔을 다시 보게 만드는 에세이다. 무엇보다 글로 먹고 사는 칼럼니스트의 공감어린 마흔에 대한 이야기들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파고드는 책이다. 구체적이고 아마도 실제 경험담이었을 생생한 우리 시대 마흔의 이야기들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어느새 보물처럼 숨겨져 왔던 그 마흔을 다시 찾게 되는 기적 같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

작가가 말하듯 "마흔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늘 건강하게만 멈춰 있을 것 같던 부모님의 연세를 실감하게도 되는 그런 나이"다. "참 열심히 살았지만 어딘지 허탈감이 느껴지는 그런 나이에 대한 절절한 공감과 위안을 보내고 싶었다"는 작가는 이 어딘지 쓸쓸해지는 마흔이라는 삶이 "얼마나 귀하고 값지며 앞으로도 창창한 것인가"를 이른바 '마흔의 역설'로 풀어낸다.



마흔은 오히려 조금은 편안해지고 조금은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조금 힘을 뺀 시기에 우리는 비로소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성이나 나이를 뛰어넘는 소통과 공감의 경험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또 실감하지 않았던 죽음이 이제 삶의 한 부분으로 들어오는 이 시기부터 어쩌면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도 말한다.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에서 깨어나 이제는 그 영원함이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 순간의 소중함을 매번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나이가 바로 마흔이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이기도 한 저자는 현재 마흔을 살아가는 중년들의 '봐왔던 삶'과 '살아가야 할 삶' 사이의 괴리를 포착해낸다. 즉 개발시대를 살아내면서 자신의 진정한 삶을 저당 잡혀온 아버지를 바라봤지만, 이제는 성공보다는 행복을,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성별로, 학력으로, 지역으로, 세대로, 이념으로 구분하고 분류하면서 대립하던 삶에서 이제는 차이가 아니라 동질성을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즉 이 분기점에서 '새로운 중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맞이하느냐는 것은 중년들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앞으로 중년을 맞게 될 청년들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숨은 마흔 찾기'는 그렇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마흔이라는 중년의 미친 존재감을 찾게 해주는 책이다.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때론 가슴이 먹먹해지고 때론 웃음이 절로 나는 그 공감의 경험을 통해 어쩌면 당신은 숨은 마흔을 찾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마흔 즈음에, '매일 이별하는' 삶이 아니라, '매일 맞이하는' 삶을 찾게 될 지도.

엔터미디어 최명희 기자 enter@enter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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