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배수빈·오창석, 그들이 성자가 된 사연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2013년 올해 드라마 속 남자배우들의 캐릭터에는 유독 독특한 지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쁜 남자, 멋진 남자, 착한 남자, 예쁜 남자가 아닌 성자가 된 남자들의 캐릭터가 존재했다는 점이었다. ‘성자’는 말 그대로 지혜와 덕성이 있는 사람으로 남이 보기에 따르고 믿을 만한…… 아니 요즘은 그렇지는 않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성자가 올해의 대세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13년 세 편의 드라마에서 대중들은 인상적인 세 명의 성자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이 성자가 된 이유는 조금씩 다르다. 다만 공통적으로 그들은 성자에 어울리는 외모와 분위기, 그러니까 종교사원 옆에서 무표정하게 사진을 찍으면 어울릴 법한 그런 이미지를 지녔다. 물론 더 세밀하게 들어가면 세 남자배우의 분위기는 성자라는 공통분모로만 묶일 뿐 특유의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다.

우선 올해의 성자로 손꼽을만한 배우로는 <스캔들>의 주인공 하은중을 연기한 김재원을 들 수 있겠다. 이 드라마에서 작가는 처음부터 하은중을 성자로 설정한 것 같다. 겉보기엔 잘 안 씻고 추레한 몰골의 형사지만 그 성격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김재원이 연기한 하은중은 타고난 성자다. 잔뜩 찌푸린 표정을 짓더라도 환한 미소만 보여주면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은 하은중 앞에 무릎을 꿇고 무너진다.

작가는 드라마 후반부에 하은중의 성자로서의 면모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친아버지이자 냉혈한 기업가에 살인교사까지 저지른 친아버지 장태하(박상민)의 회개를 위해 하은중은 스스로 죄를 덮어쓰고 경찰에 자수한다. 이른 바 살신성인의 성자 유형 주인공을 보여준 셈이다. 결국 친아들의 희생 앞에 장태하는 스스로 무릎을 꿇고 처음으로 자신의 지난 과거를 회개한다.



반면 <비밀>의 안도훈을 연기한 배수빈의 경우는 작가가 성자를 의도해서 쓴 캐릭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배수빈의 연기에는 어딘지 종교적인 절절한 감정 폭발이 서려 있었다. 그것이 선인이건 악인이건 간에 말이다. 드라마 초반부 선한 인간에서 악한 인간으로 넘어가는 안도훈의 모습에선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모습 같은 비열함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이 비열한 안도훈이 한순간에 성자로 변하는 순간이 <비밀>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안도훈은 강유정(황정음)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죽지 않고 살고 있고 자신의 어머니에 의해 입양되었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친아들과 직접 마주하는 장면에서 안도훈은 강유정의 한 마디 말에 회개한다. “오빠가 나한테 빼앗아 간 걸 봐. 오빠 인생에서 놓치고 간 걸 봐봐.” 사실 그렇게 악독한 인간으로 변했던 안도훈이 아들과의 재회와 전여친의 한 마디 말에 회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배수빈은 이 말이 안 되는 장면을 성스러운 연기 하나로 명장면으로 바꿔놓는다. 이 장면은 세 개의 안면근육 감정 변화로 구성된다. 첫 번째, 냉혈한이 된 냉철한 안도훈의 얼굴. 두 번째, 스스로 뺨을 때리며 냉철한 얼굴을 무너뜨리는 과정, 세 번째 완전히 회개하며 울부짖는 무너진 인간이 있다. 그리고 이후 교도소에 복역하는 안도훈의 얼굴은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성자로 변한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것도 정말 그럴 듯하게. 배수빈은 정말 종교적인 연기를 하는 흔치않은 배우가 틀림없다.



세 번째 올해의 성자가 된 배우는 <오로라 공주>의 주인공 황마마를 연기한 오창석이다. 황마마가 성자가 된 이유는 작가의 의도도 배우의 열연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 황마마의 죽음이 성자의 죽음처럼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초반부에 황마마는 사실 멋진 남자였다. 현실세계의 작가들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언제나 멋지기 마련인 조각미남 작가 설정에 여주인공 오로라(전소민)와 사랑을 쌓아가는 장면 역시 알콩달콩 귀여웠다. 배우 오창석은 반듯한 얼굴에 슬픈 눈으로 성자에 어울리는 외모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드라마 초반부에 황마마가 성자처럼 여겨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황마마는 드라마 조연출의 세계에 입문하더니 거의 글은 쓰지 않았다. 글이 잘 써지네, 안 써지네 하는 핑계도 그냥 투덜거림으로만 여겨졌다. 그 후 황마마는 누나들의 치마폭에 감싸인 전형적인 시스터보이로 묘사되었다. 결국 황마마는 오로라의 결혼을 반대하는 누나들과 싸우려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려고 했지만 그래서 성자로 보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때부터 황마마는 많은 시청자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오로라와의 결혼 이후 이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황마마는 줏대 없는 모습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결국 오로라와 설설희가 결혼한 이후 황마마는 설설희의 부탁으로 간병인으로 들어간다. 이때부터 황마마는 간병인 화타로 변신하면서 1년 만에 설설희를 암에서 회복시킨다. 물론 그 이유로 황마마가 성자로 보인 것은 아니다. 결국 드라마 상에서 황마마는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으로 허무하게 인생을 끝냈다. 그런데 지극히 가볍게 여겨질 것 같은 죽음이 어딘지 묵직하게 다가왔다.

황마마의 죽음은 작가의 의도나 배우의 연기에 상관없이 어딘지 삶에 대한 허무감을 느끼게 한다. 그건 이 드라마가 끊임없이 많은 인물들을 죽음으로 처리했거나 아니면 이 드라마에서 오창석이 부른 OST의 제목 <살고 싶어>에서 느껴지는 씁쓸한 아이러니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아무리 드라마의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작가의 손놀림에 따라 인생 공수래공수거가 느껴지는 허무의 성자로 세상을 마칠 수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로라 공주> 후반부에 오창석의 큰 눈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맥없는 성자처럼 슬퍼보였던 건 그래서일 수도 있겠다.

잠깐, 그런데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한다고 가정한다면 2013년은 <스캔들>과 <비밀>로 점철된 <오로라 공주>의 시대였던 걸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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