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4’ 제작한다면 빼놓지 말아야할 것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1994년 고교생이었던 필자는 2004년에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4년은 대학 졸업 후 백수 시절로 허덕거리던 때였다.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의 뻐드렁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소심한 나날이었던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그 해의 추억이라 할 만한 것이 그리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은 양지에 있을 때는 주변의 풍경들을 둘러보지만 음지에 있을 때는 고개만 푹 숙이고서 꼼지락대는 발가락만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2004년이 필자에게는 그런 발가락의 해였다.

10년이 지난 후 필자가 강의하는 교실에는 06학번부터 12학번까지 대학생들이 수업을 듣는다. 그 무렵 어디에도 속해 있지 못했던 필자와 달리 이 친구들은 2004년 10대의 시절을 보냈다. 언제나 그렇듯 10대들은 당대의 문화들을 빨리 흡수하고 오래 기억하기 마련이다. 유행하는 모든 것들이 살갗이 아니라 뼛속 깊이까지 파고드는 시기이니 말이다. 그래서 강의 마지막 날 짬이 난 틈을 이용해 2004년의 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2004년에게 무얼 응답해 주고 싶어요?”
“에이, 2004년에는 별 것 없어요. 2002년이 한일월드컵이라 추억거리가 훨씬 많을 걸요.”
한 학생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때 다른 학생이 뒤쪽에서 말했다.
“그때는 올림픽 있었는데. 아테네 올림픽.”
“문대성, 문대성 금메달도 따고 잘생겨서 진짜 유명했는데.”
물론 그때의 문대성은 금메달보다 복사기가 더 친근하게 여겨지는 지금의 그 문대성이 아니었다.
“올림픽 때문에 애들끼리 학교에서 양궁 같은 것도 했어요.”



어떻게 활도 없이 양궁을 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어쨌든 무언가를 이용하여 양궁시합을 한 모양이었다.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는 곧 2004년의 킥보드와 인라인스케이트의 유행으로 퍼져갔다.

“진짜 인기 있는 건 운동화에 바퀴 달린 힐리스였어요. 복도에서 힐리스 신고 달리는 애들 많았어요. 그러다 자빠지고.”
“샤기컷도 그때 유행한 것 아닌가요?”

그 무렵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칼로 툭툭 끊은 듯한 헤어스타일의 학생들이 많았다. 아마 샤기컷의 스타로는 SG워너비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또 그해 겨울 방영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의 임수정 역시 층을 낸 샤기컷의 헤어스타일이었다. 학생들 중 한 명은 아버지가 이발사셨는데 샤기컷이 유행하는 바람에 이발소 문을 닫아야 할 상황까지 이르렀다며 그때 기억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2004년 샤기컷보다 더 유행했던 것이 바로 아디다스 트랙탑이었다고 남학생들이 알려주었다.
“그때 아디다스 트랙탑이 나라별로 나왔거든요. 브라질, 프랑스, 영국 뭐 이런 식으로.”
“그 중에서도 잘 나가는 애들은 체코 이런 나라 것 많이 입었어요. 체코가 문양이 사자모양이라서 좀 강해 보이고 뭐 이랬으니까.”
당시 아디다스 트랙탑 코디의 롤모델은 클릭비의 김상혁이었다.

이어 2004년 추억의 아이콘들은 계속 학생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효리의 <텐미닛> 춤을 학예회 때마다 따라했다거나, 이승기가 <내 여자라니까>로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몰이를 했다는 것. <동방신기>의 등장으로 확고한 사생팬의 시대가 열렸고 문희준과 오이로 대변되는 극성 안티팬의 시대가 열리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 모든 스타들의 노래를 시디가 아니라 음원으로 공유할 수 있는 소리바다와 음원들을 한곳에 담을 수 있는 아이리버가 등장했던 때도 이때였다. 물론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아직 우리나라에 확고하게 자리하지 못해서 수많은 공짜음원들이 컴퓨터 하드에 빡빡하게 차 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또한 2004년은 지금인 사라진 포털 프리챌의 유료화 이후 싸이월드 미니홈피로의 대이동이 완전히 마무리되던 때였다. 도토리와 미니홈피와 1촌공개와 눈물셀카로 이어지는 싸이월드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이 바로 이때였다. 셀카 찍기에 최고인 가로본능 폰이 인기를 끌었던 때도 2004년 무렵이라고 학생들이 알려주었다.

한편 중고생들이 <우리들의 천국>과 <남자셋 여자셋>을 보며 대학생활에 대한 말도 안 되는 환상을 품은 건 90년대만이 아니었나 보다. 그때도 장나라 양동근에서 시작된 <뉴논스톱>에서부터 시작해 다음 시즌들까지 대학교 배경의 시트콤 논스톱 시리즈가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걸 보면.



극장가에서는 <아라한 장풍대작전> 같은 영화가 학생들 사이에 큰 인기였다고 알려주었다.
“그 영화가 그렇게 유명했었어요?”
“네, 학생들 사이에서는 진짜 인기 많았는데.”
성룡의 시대도 아닌 건만 장풍 역시 10대에는 여전히 흥미로운 기술인 모양이었다. 하긴 손바람 한번으로 세상이 뒤집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애나 어른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2004년은 장풍보다 더 빠른 KTX가 개통되던 해이기도 했다.
“가족들하고 KTX 타기 전에 그 앞에서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는데.”
강의가 끝난 뒤에 한 학생이 시큰둥하게 웃으며 말한 기념사진이란 단어가 자꾸 기억에 남았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추억이란 어떤 걸까? 아직 한 장의 기념사진 같은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었다. 찍어두고 그냥 접어두거나 잊기 마련인 것. 이 친구들은 아직은 과거보다 미래에 기념할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그런 나이이니까.

하지만 언젠가 이들도 시간이 지나고 발가락 같은 시절을 보낸 뒤에 추억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위안이 되는 순간이 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이들에게 2004년이 지금과는 다른 해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2004년에 추억만이 아니라 잊지 말아야 할 어떤 순간들이 존재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 찾아올는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나무엑터스, 삼성전자, 코레일, 영화 <아라한장풍대작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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