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뮤지컬 <풍월주> 배우 조풍래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가족을 잃고 삶의 의지가 없어져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열의 손을 잡아준 이가 사담이었어요. 자신에겐 담이 밖에 없다고 생각한 열은 담이와 함께 있고자 한 의지가 커지고 그와 함께 사는 게 인생 목표가 돼요. ‘진성여왕’이 재력적으로 필요했다면 ‘사담’은 삶의 이유로서 필요한 존재인거죠. 열과 사담은 주변에 항상 있는 바람, 어두운 상황에서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는 달과 같이 서로를 생각해요. 좋으면 그 이상의 스킨십을 원하는 관계가 아니라, 죽마고우처럼 전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다 줄 수 있는 그런 관계입니다.”

사극 뮤지컬 <풍월주>(작가 정민아 작곡 박기헌)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꾼 신라시대 남자 기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2011년 CJ문화재단의 창작 지원 프로그램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 선정된 것에 이어 2012년 초연 평균 객석점유율 90%를 돌파했던 화제작이다. 배우 정상윤과 함께 운루 최고의 풍월 ‘열’로 분한 배우 조풍래를 만났다.

■ 가지려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사랑 그리고 소유 <풍월주>

-처음엔 ‘열’이 아닌 ‘사담’이란 인물로 오디션을 봤다고 들었다.
“<풍월주> 초연을 보지 못하고 우연히 노래만 듣고 끌려서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대본은 구하지 못하고 요점정리 식으로 시놉시스와 인물에 대해 들었어요. 평상시에 서울예술단 (박)영수 (김)도빈 (이)시후 선배랑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절 외부에서 보면 강한 이미지로 인해 ‘열’에 가깝고 성격적으론 ‘사담’에 가깝다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 ‘가지고 있는 겉모습으로 가야 하나, 성격적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성격적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사담’ 역으로 오디션을 보게 되었죠. 그런데 오디션 현장에선 ‘사담’역할을 준비했다고 미리 말을 했는데도 ‘열’ 역할만 시켰어요. 2차에 이어 3차까지 갔는데 계속 ‘열’ 역할만 해 보라고 해서 안됐다고 생각했는데, <잃어버린 얼굴> 공연을 하던 중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어요.”

-본인의 어떤 점이 ‘사담’의 성격과 가깝다는 말인가?
“속으로 끙끙 앓는 성격인데, 사담의 그런 면과 공감이 됐어요. 고민이 있어도 혼자 속으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내놓지 않는 편이거든요.(사담의 마지막 선택도 공감이 되는가) 어쩌면 저도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란 마음이 들었어요.”

-<풍월주>의 내용을 '세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으로 보기도 하고, ‘사랑의 방법과 형태' 혹은 ’관계와 욕망의 이야기‘로 보기도 한다. 작업에 참여하는 배우로서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가지려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소유할 수 없는 그 무엇’일 것 같아요. 사담, 열, 진성여왕, 운장까지 네 명이 주요 인물인데 각자 한마디가 다를 것 같아요. 이게 지저분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코(딱지)를 팔 때 한 번에 딱 빠지면 시원한데, 안으로 들어가면 답답하고 짜증나는 그런 기분과 감정과도 비슷할 수 있다고 봐요.(웃음) 소유의 길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멀어지는 이야기요.”

-‘열’은 ‘사담’을 소유하려고 하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유라는 단어가 둘의 관계에 적절한지는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열이 사담을 사랑한다고 보는 입장은 아닙니다. 사랑과 우정사이 그 어떤 애매모호한 단어가 있으면 좋겠어요. 소유는 아니더라도 뭔가 옆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 아니였을까요. 열이 힘들었을 때 그 현장에서 옆에 있어줬던 이가 사담이잖아요. 열이 사담을 지켜준 게 더 크다고 볼 수도 있지만, 둘이 함께 있고자 한 의지가 컸다고 이해했어요.”

-사담과 열이 ‘풍월’에 들어오기 전 이야기도 자세히 말해달라
“초연 땐 사담과 열 모두 거지였다는 말을 전해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예전 우리’란 넘버가 새롭게 추가 돼 둘의 관계를 가사로 명확히 보여주고 있어요. 열의 집안은 부유한 귀족 집안이었는데 역적으로 몰려 몰락하게 돼요. 열이 옆에는 당시 종이었던 사담이 있었고요. 집도 있고 차도 있던 아이가 한순간 길거리에 내 몰리게 된 거죠. 없다가 있어도 힘든데 있다가 없어진 거니 훨씬 힘들었을 겁니다.

저 같으면 가족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데, 가족을 잃었으니 (열의)삶의 의지가 없어졌다고 봤어요. 그렇게 의지할 데 없고 죽음까지 갔을 때 내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준 이가 담이었어요. 자신에겐 담이 밖에 없다고 생각한 열은 담이와 사는 게 주목적이 되었을 겁니다. 같이 살기 위해 운루에 들어가는 거죠. 열이 운루에서 일하는 건 운루에서 평생을 살겠다는 게 아니라, ‘담이랑 나가서 살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여유가 생길때까지’인거죠. 그런데 어느 날 여왕이란 존재가 등장해서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아요. 열이는 (담이와 사는 것)그것만 생각을 했는데 안 되니 무너지는 거죠.”

-‘목숨보다 소중한 소울메이트’로 서로를 지독히 챙겨 주는 두 사내 열과 사담, 그 둘의 관계는 어떻게 구축해나갔나?
“운루에 들어오기 전에는 주인과 종의 관계였지만 풍월에선 동등한 입장이 됐다고 봤어요. 그런 건 있어요. 동등한 입장인데 생활적 버릇은 분명 달랐을 거다. 열이 귀족으로 살아와서 음식이나 옷 글쓰기 등 거기서 차이점이 보일 수는 있다고요. 늘 도시락만 싸 와서 먹던 사람과 비싼 호텔에서 밥을 먹던 사람은 버릇이 다르듯 말이죠. 열이 생활 리듬적으로 좀 더 깔끔했을거라 생각한거죠.

열과 사담이 똑같이 평등해졌으면 뭘 보여줘야 할까? 친한 관계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건 동등한 관계였기 때문 아니었을까.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했어요. 그래서 동영상을 찍어서 보면 사담과 열이 친구관계처럼 보일 때도 있고 제가 조금 어려보일 때도 있었구요. 어떤 경우엔 열이 형으로 보이지만 형인 척 하는 동생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전 제가 형처럼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 삶의 이유로서 필요한 ‘사담’ & 재력적으로 필요한 ‘진성’

-다시 ‘소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진성여왕은 열을 소유하려는 건가?
“제가 개인적으로 느꼈을 때는 그런 것 같아요. 여왕이 옷을 줬을 때도 느끼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느끼는 것 같아요. 맨 마지막 담이가 죽고 난 뒤 여왕을 찾아갔을 때, 담이를 이해하려는 게 더 우선시 되지만, ‘이 여자가 내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감정의 변화가 생기게 되요.”

-열에게 진성여왕은 어떤 존재인가?
“진성여왕은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입니다. 운루는 직장이고, 목적성이 있는 거죠. 거기 오는 가장 큰 손님이 진성여왕이죠. 삼각관계 아닌 진성 혼자 열을 사랑하고 있어요. 셋이 사랑하는 게 전혀 아닙니다. 진성이란 여자의 입장에선 정말 외로운 혼자만의 싸움이죠. 극 중에서 ‘말뿐이지 그렇지?’란 대사가 두 번 나와요. 여왕에겐 ‘그저 따를 뿐이죠.’라고 답하지만, 사담에겐 말없이 고개만 흔들어요. 그게 열의 마음이지 않을까요. 진성의 발을 닦아주며 열이가 ‘그 아이는 건들면 안됩니다’라고 말해요. ‘진성여왕이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해할 수도 있다’란 생각에 조금의 무서움이 있는 거죠. 잠시 두려움도 생기지만 (날)좋아하니까 그렇게 하지 않을거야 란 마음이 함께 들어요.”

-열은 진성에 대한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연민을 느끼지 않나
“진성을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 중간일 것 같아요. 좋아하는 감정과 ‘연민’ 둘 다 필요하지만, ‘필요’의 뜻이 여러 가지 있듯이 진성은 재력적으로 필요하고 담이는 삶의 이유로서 필요하다고 봤어요. 그 의미가 다른 거죠. 진성을 좋아하는 마음은 아니지만, 불쌍하게 생각해 도와주고 싶어해요. (담이와 살기 위한)나중을 생각하면 필요의 존재가 되고요. 갈수록 불쌍하다는 게 심해져 연민의 마음을 꾸준히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열은 담이만 좋아해’를 설명적으로 말 하는 게 아닌 직장 내에서도 더 나아가 길거리에서도 누군가 불쌍해 보이면,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어 ‘참 안 됐다’ 생각하잖아요. 좋아하진 않더라고 연민이나 공감대 형성 은 될 수 있다고 봤어요.”

-진성에게 열은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특별한 존재이다. 여자 진성의 입장에서는 열이란 아이는 참 좋으면서도 나쁜 남자이다. 진성은 열이 왜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였을까.
“작품 표면적으로 보면 ‘열이가 뛰어난 외모를 지녔음은 물론 춤을 잘 춰서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여왕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남자는 주변에 많았을겁니다. 그렇다면 열이 주변의 남자와 뭐가 달랐을까요? 피부병으로 짓무른 상처도 거침없이 만져주고 ’진심으로 다가오는 따뜻한 눈빛‘이었겠죠. 다들 잘 보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여왕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대하는 것. 첫 만남부터 이름을 불러준 에피소드도 진성여왕에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았을까요. 가장 큰 것은 (열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간에 심적으로 뭔가를 줬기 때문에 진성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또 다른 의미로 보면 열은 귀족신분이었어요. 그래서 더 진성의 고민을 이해하지 않았을까요. 극 중 여왕이 ‘천한 것’이란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 속으로 웃음이 나와요. 열이도 어쩌면 여왕의 위치 정도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거기에 놀러오는 귀족들과 비슷한 급으로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원래 내가 여기서 일할 사람이 아니라 놀러왔어야 할 사람인데’란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와요.

보다 쉽게 말해 일반 사람들은 청와대 근무하는 사람들의 어떤 패턴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고민을 말해도 공감할 수 없고요. 그것처럼 귀족이었던 열은 왕의 생활, 고민 등 을 더 잘 공감했을 거라 생각해요. 아무리 잘 생긴 하층 기생을 데려다놔도 그간 살아온 게 있어 몸에서 보여지는 게 귀족과는 다르잖아요. 반면 귀족을 데려다 놓으면 ‘이 곳에선 이렇게 해야 돼’란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다르게 행동했겠죠. 그래서 열이 운루의 에이스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어요.”

-열이 진성과 그 외의 귀족 여인들을 보는 눈빛과, 사담을 보는 눈빛이 다른가?
“상대에 따라 내 눈빛을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의도 보다는 처음엔 담이랑 있을 때랑 운루에서 일할 때 목소리 톤을 다르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톤이 정리 안 된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 있어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하나의 색깔로도 가보고, 다르게 하려고도 해보고요. 그러다 일부러 다르게 하지 않아도 운루에 왔을 땐, 왕과 나의 상하 관계가 정확히 정해져 있는 상태를 보여주게 됐어요. 편한 상대인 담이와는 자연스럽게 장난을 치고요. 저절로 바뀌는 어떤 표정과 눈빛, 목소리 톤이 나오게 된거죠.”

■ 담이만 보고 살아 온 열의 ‘너에게 가는 길’

-감정적으로 가장 몰입되는 장면이나 넘버가 있다면?
‘초혼의식’의 춤추는 장면에서 감정적으로 많이 쏟아내게 되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술에 취한 꿈’을 부를 때 춤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결국 안 보여줘서 담이 혼자 춤을 췄는데... ‘보여줬으면 참 좋았을텐데’란 생각이요.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건데, 죽고 나서 이렇게 보여줘야 하다니. 나 때문에 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지금까지 담이 때문에 살 수 있었는데. 담이만 보고 살았는데...담이가 없는데 누구에게 의지하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란 생각이 계속 드는 장면입니다.

넘버 중에선 ‘너에게 가는 길’ 이 좋아요. ‘바람이 되서 너를 지나가고 달빛이 되서 너를 지켜준다’는 말이 나와 바람과 달의 주인이란 제목의 의미도 떠오르고요. 바람은 항상 주변에 있는 거고, 달은 제자리에서 비춰주는 존재죠. 예전 시골에선 달빛 하나로 주변이 환해져 사람들이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었듯이 어두운 상황에서 달 하나가 날 비춰주는 장면이 떠올라요. 달빛이 돼서 담이에게 가는 길도 그려지구요.”

-사담과 열의 ‘너에게 가는 길’은 다르다. 그 넘버엔 각자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포구에서 만나자’고 하고 둘은 일어나요. 열은 ‘내가 진성여왕 때문에 힘든 건 있지만 니 옆에서 있어줄게.’ ‘곧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담과 잘 살게 될 거야’란 생각으로 들떠 있다면, 사담은 그렇게 해주지 못해 다른 길을 택해요. 열이 이승에서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이야기한다면, 사담은 다음 생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이야기하니 상반된 길을 담고 있어요.”

-초연 무대는 진성이 가둬 논 세상이란 의미가 강했다면, 이번 새로 바뀐 무대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
“열과 사담, 진성여왕, 운장 이렇게 네 명의 길이 교차하고 엇갈리는 길을 상징하고 있어요. 각자의 길에서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며 행동하는지, 이런 사람들이 서로 부딪쳤을 때 나오는 에너지들도 담겨 있고요. 이들이 만나는 건 회전하는 원형의 중앙 무대인데, 윤회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극중 운장과 궁곰이란 존재는 어떻게 이해했나?
“열에게 있어 운장(임현수 최연동)은 진성여왕보다 더 무서운 분이죠. 직장상사가 무섭지 대통령이 무섭지 않잖아요.(웃음) (그런 의미로 보면 직장 상사의 여인에게 사랑을 받는 위험한 위치다) 작품 안에 운장의 대사로서 ‘좋아해’는 없지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열의 입장에선 운장이 ‘마마를 잘 챙겨주면 담이랑 잘 살게 해줄 거다’란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런거라 이해했습니다. 궁곰(김보현)은 친한 친구죠. 열이가 진성여왕에게 불려가 없을 때 담이를 도와주는 친구요.”

-두 명의 진성인 전혜선 김지현, 두 명의 사담인 신성민 배두훈은 각각 조풍래 열에게 어떻게 다가오던가?
“두훈이는 정말 경주마처럼 주변을 가려 논 아이 같이 착하고 순박한 느낌입니다. 무대 안에서 열과 사담으로 만났을 때, 두훈 사담이 어려보이고 귀여워 보이는 그런 느낌이라면, 성민 사담은 친한 친구 같은 그런 느낌이죠. 수건 던지는 것도 그렇고 ‘내가 언제 이 아이 위였나?’ 란 생각이 들 정도로요. 두훈이도 친구 같은 사담이란 느낌이 많이 들어요. 실제로도 둘 다 친하고요. 지현누나는 외강내유 인상이라면, 혜선누나는 강하지 않은 데 강한 척 하는 진성여왕처럼 느껴져요. 외모적으로 보여지는 게 아닌 저에게 다가오는 느낌을 말한겁니다.”



■ 조풍래 만의 또 다른 ‘열’을 창조하다

-연습과정에서 캐릭터와 ‘나’ 사이에 부딪쳤던 지점은 없었나?
“사담에게 가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속마음을 숨기면서 붓글씨를 쓰는 장면이요. 뭔가를 숨겨야 한다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열이라면 이야기 할 것 같은데’란 생각도 했구요. (이종석)연출님과 이야기 하면서 의문을 풀어내며 맞춰나갔어요. 고민을 하게 된 건 ‘<풍월주>란 작품과 그 안의 캐릭터 속에 정답이 있다고 했을 때, 너가 하려고 하는 게 뭔지 알겠는데 그걸 하게 되면 좋아하는 사람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풍래 배우가 생각하는 열과 관객들이 이미 머릿속에 그려 논 열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는 의미인가?
“제가 그린 열, 제가 그린 사담의 그림이 있는데, 리딩 공연, 초연 본 공연, 일본 아뮤즈뮤지컬씨어터 극장 공연, 이번 동숭아트센터 공연까지 네 번의 공연이 올려지면서 ‘열’의 캐릭터는 이렇다는 식으로 고정관념이 있으신 것 같았어요. 일반적으로 열은 남성미가 부각 돼 강하다는 생각, 사담은 여리다는 식으로 대비되는 이미지요. 열이 운루의 에이스니까 ‘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 열이 (기생으로서)여성적이고 사담이 강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종이었던 사담이 남성미가 넘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을 열어놓은거죠. 정형화 된 틀을 따라가고 싶지 않았어요.”

-관객들의 피드백이 즉각적이었나
“사인회 때 보면 이것저것 질문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대학로에서 워낙 히트 쳤던 작품인데다 (관객들이 원하는)고정된 열의 캐릭터가 있는데 제가 그대로 보여주지 않아 화가 나는 경우도 있었나봐요. 초반에는 믿고 와 준 분들이 많이 있었다가 돌아선 관객 분들도 있었고, 그에 반해서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 제가 보여 준 것과 일치한다고 해서 온 분도 있었고요. 궁금증을 갖고 ‘왜 그렇게 하신거요?’란 질문을 하면 답을 해주기도 했어요. 그러면 제 의미를 이해해서 편하게 돌아가신 분도 계셨고요.

주변에선 여태까지 해 왔던 공연 그대로 한다면 훨씬 인기를 얻고 더 좋아질 거란 말도 들었어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그렇게 하는 게 제 고집이란 말도 있고, 더 이상 고집 부리지 말란 말도 들었지만, 이렇게 그려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창작 작품에 정답은 없잖아요. 사실 저 혼자만의 고집을 부려 여기까지 왔다고 볼 수도 있는데, 저 만의 열을 좋아해주시는 모습도 생겨서 조금씩 힘을 얻고 있어요.”

-동성애 코드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해 특히 남자 관객들이 꺼려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언뜻 보면 그렇게 다가올 수도 있다고 봐요. 사회적인 분위기가 여자랑 여자가 팔짱 끼면 이상하지 않는데, 남자랑 남자가 그러면 거부 반응이 오는 것처럼 말이죠. 저 만해도 남자랑 살이 닿는 걸 자체를 싫어하니까요. 그래서 초반엔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사담과 열은 좋으면 그 이상의 스킨십을 원하는 관계가 아니라, 죽마고우처럼 전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다 줄 수 있는 그런 관계입니다.

연극 뮤지컬 하는 주변 친구들이 많이 보러왔어요. 신기한 건 남자들만 오면 재미있어 하는데, 여자들과 같이 오면 재미없어 했다는 점이요. 남자 넷이 와서 울고 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남자랑 여자랑 같이 오는 경우는 극에 안 빠지고 함께 온 여자에게 빠져서 그런지 재미없어 하더라구요.(웃음)”



■ 끊임없이 변화하는 배우 조풍래

-서울예술단 배우로서 첫 외부 작업을 했다.
“제가 군대를 갔다와서 늦게 학교를 들어갔어요. 중앙대학교 창작공연학부 음악극과 4학년 재학시절 첫 오디션에 붙어서, 2011년부터 서울예술단 소속으로 무대에 서고 이번에 처음으로 밖에 작업을 하게 됐어요. 외부 작업이 대개 힘들거란 생각을 많이 하는데, <풍월주>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너무 잘 해주셨어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전 외부 배우나 스태프들을 몰라 겁을 먹은 것도 있었는데 주변 환경이 너무 좋았어요. 여기 팀에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생각을 할 정도로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요. 그렇지만 하고 싶었던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행복하죠.”

-<풍월주> 공연을 하며 팬까페(cafe poongactor)도 생겼다
“<잃어버린 얼굴> 공연 때 팬 클럽을 만든다는 말이 나왔는데, 주인공도 아닌데 하지 말라고 말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이렇게 만들어지게 됐네요. 팬들의 관심이 감사해요.”

-직설적인 질문이다. 배우로서 본인의 얼굴이 미남이라고 생각하나?
“아니요. 잘 생겼다가 아니라 이국적으로 생겼다. 한국적이게 안 생겼다고 생각해요. (뚜렷한 이목구비가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에선 단점으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 전 여러 가지 역할을 다 하고 싶은데 시각적으로 보여줘야 하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어떤 작품에서 전 장난 끼 많은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은데, 무대에서 멋있게 서 있으라는 지시가 떨어진다면 힘들겠죠. 제 평상시 생활이 멋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모든 건 제가 하기 나름 아닐까요. 외모적인 것을 깰 수 있는 분장의 도움도 받구요. 뮤지컬 뿐 아니라 리얼리티적으로 힘들어도 성장할 수 있는 연극 작품들을 많이 하고 싶어요.”

-어떤 연극 작품들이 좋았나
“예술단 스케줄이 정해져서 마음대로 외부 작업을 할 수 없지만 오디션도 보고 공연도 많이 보러 다니려고 해요. <트루 웨스트>, <거미여인의 키스>, <나쁜자석>처럼 유명한 연극도 하고 싶지만, 유명하진 않지만 대학로에서 인생을 바친 연륜 있는 배우들이 나오는 연극이 좋았고 꼭 함께 작업 하고 싶어요.”

긴 인터뷰를 마치며 조풍래 배우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똑같은 회사에 출근하지만 ‘안녕하세요’란 한마디가 매번 (미묘하게)바뀌듯이 100회 공연을 한다면 다 다르게 하고 싶어요. 같은 레퍼토리지만 같은 공연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위해서는 계속 변화하는 배우가 돼야겠죠. 난 ‘뮤지컬 배우이다. 연극 배우이다. 영화 배우이다’ 식으로 구분 하지 않고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좋아하는 황정민 배우처럼 어느 한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배우요’ 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 편의 공연이 지겨운 삶에서, 반복된 생활리듬에서 또 다른 리듬을 찾게 해 준다고 생각해요. 나와 교집합이 되는 부분이 있으면 다른 데서 찾지 못했던 해답도 찾게 해주죠. 생활의 활력소인 공연을 분석하기 위해 보러 오지 않고 즐겁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허영옥, CJ E&M, 간 프러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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