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연, 하이틴스타서 저돌적 여배우 되기까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1980년대 후반 이미연은 사랑과 행복이란 단어와 함께 브라운관과 스크린에 등장했다. 1988년 <사랑의 기쁨>이란 KBS 일일드라마에서 그녀는 깍쟁이 여고생으로 출연했다는데 지금의 대중들이 기억하는 그녀가 이 여고생은 아닐 것이다. 그 해 12월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소녀가장 미영으로 등장한 그녀가 지금껏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이미연이란 스타의 시작이다.

이후 A급 신인연기자의 출연료가 300만 원이었던 시절 1,100만 원이란 파격적인 개런티를 받고 이미연은 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 출연한다. 이 영화에서 이미연은 수험생 은주를 연기하면서 스크린에서도 큰 인기를 끈다. 이른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아우르는 80년대의 마지막 하이틴스타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이미연의 이미지는 기존의 하이틴스타들과 살짝 달랐다. 이상아나 하희라 등의 80년대 하이틴스타들이 발랄했다면 이미연은 그늘지고 쓸쓸하고 슬펐다. 눈빛에는 늘 눈물이 어려 보였고 목소리는 울음을 머금은 듯 막힌 목소리였다. 다만 그 쓸쓸함이 처량하기보다 너무 아름다웠기에 그녀는 단숨에 수많은 남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마 <건축학개론>의 수지가 국민첫사랑으로 단번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절과 엇비슷한 인기였을 것이다.

이렇듯 이미연은 사랑과 행복이란 단어가 들어간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작품 내에서 그녀를 움직였던 감정은 사실 슬픔이었다. 작품 속 여주인공들의 삶 역시 한창 발랄할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나 행복과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인물들이었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겨울나무>편에 처음 등장한 소녀가장 미영은 그녀에게 반한 남자주인공 의대생 현우(최수종)의 도움으로 병원 간호조무사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가난하고 학벌도 변변치 못하다고 느끼는 미영은 현우의 사랑을 계속 거부한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만 드라마 내에서 그 사랑을 결국 꽃피우지 못한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지금은 떠날 때> 편에서 미영은 현우에게 먼저 결별을 선언한다. 현우와의 사랑 속에서 신데렐라콤플렉스에 빠져 있기보다 당당한 여자로 살고 싶다는 이유였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의 은주는 미영보다 더욱 불행한 주인공이었다. 입시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유서를 쓰고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인물이 은주였다.

하지만 당대 책받침 여신이었던 이미연의 하이틴스타로서의 인기가 그렇게 길었던 건 아니었다. 혹은 그녀 스스로가 하이틴스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90년 그녀가 <사랑이 꽃피는 나무2>에 출연하면서부터 그 조짐이 보였다. 전작의 박리미 작가가 아닌 일일드라마 <밥줘>로 유명한 서영명 작가가 펜을 잡은 <사랑이 꽃피는 나무2>에서 이미연은 자의식 강한 철학과 여대생 수인을 연기한다.

수인은 딸만 다섯이지만 아들을 바라는 보수적인 집안에 반기를 들고 나와 선배와 자취 중인 인물이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이 드라마에서 수인은 다른 인물들 사이에서 겉도는 인상이었다. 결국 그녀는 자의로 이 드라마에서 도중하차한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2>에서 수인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했다. 영화감독에게 시나리오를 건네받은 수인은 홀로 있는 시간에 극 속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펼친다. 그 상상의 장면을 끝으로 이미연이 연기한 수인은 <사랑이 꽃피는 나무2>에서 사라진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2> 이후 이미연은 주로 스크린을 중심으로 과거의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와는 다른 유형의 인물들을 연기한다. 그 인물들은 드라마 <숲속의 바람>이나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모텔선인장>에서처럼 날카롭고 히스테릭했다. 물론 그 인물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그렇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슬프지만 아름다워 보이는 스타 이미연은 좋아했지만 슬픔 때문에 히스테릭한 성격의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 이미연은 다소 불편해했다. 오히려 <넘버3>에서 코믹한 캐릭터로 변신한 현지(이미연)를 보고 모두들 재미있어하기는 했지만.



이후 이미연은 2천 년대 초반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 스포트라이트의 계기가 된 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이혼 이후 그녀가 촬영한 컴필레이션 앨범 연가의 재킷이었다. 2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연가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추억의 가요들을 모아놓은 앨범이었다. 그리고 앨범 재킷에 실린 눈물이 그렁그렁한 이미연의 얼굴 역시 대중들이 아름답게 추억하는 하이틴스타였던 그녀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이 <연가>의 이미지 덕에 다시 단숨에 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거기에 더해 KBS 사극 <명성황후>의 여주인공 명성황후를 맡으면서 그녀는 오랜만에 브라운관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물론 그녀가 끝까지 이 드라마를 이끌지는 못했으나 드라마 속에서 이미연은 여걸로 여겨지던 명성황후를 여성스러우면서도 강인하고 슬픔이 있으면서도 슬픔 속에 매몰되지 않는 인물로 표현한다.



2014년 이미연은 tvN <꽃보다 누나>에서 그녀의 익숙한 배역 속 얼굴이 아닌 날것의 얼굴을 보여준다. 대중들이 좋아하고 기억하는 이미연은 여전히 눈물이 아름다운 여인이다. 하지만 이 예능프로그램에서 이미연은 호탕하고 저돌적이며 때론 친근하고 사회성 좋은 이대리 님처럼 다가온다.

<꽃보다 누나>에서 비춰진 이미연의 그런 모습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함께 여행하는 선배 연기자들과 친근하게 우정을 다져가는 그녀의 모습은 어떤 드라마에서보다 자연스럽고 사랑스럽다. 그러니까 이미연은 이 예능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사랑이 꽃피는 행복한 나무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그녀의 정지된 슬픈 표정만을 기억하던 이들에게 <꽃보다 누나>는 이미연이 사랑스럽고 활력 있는 표정이 넘치는 배우라는 걸 알려주는 그런 계기인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꿈아이엔지컴퍼니, KBS,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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