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아무도 모른다>로 12세 소년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겼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으로, 2013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흔한 가부장적 아버지가 될 운명이었던 엘리트 남성이 우연한 사건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진정한 양육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린다.

◆ 자본주의 가부장제 하의 모범적인 중산층 가정에 떨어진 날벼락

영화는 명문사립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가족면접 장면으로 시작한다. 료타는 아들인 케이타의 단점이 무엇이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자신과 달리 승부근성이 없다는 점을 말하고, 케이타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아버지와 캠핑을 갔던 추억을 꾸며서 말한다. 이 짧은 장면은 평이해 보이지만, 가족의 미세한 갈등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료타는 잘나가는 건축회사 간부로, 아들에게 일류교육을 시키고 싶어 한다. 명문사립초등학교와 피아노교육은 그의 각별한 교육열을 대변한다. 케이타 역시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아들이다.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료타는 주말에도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이 없다. 육아는 전적으로 엄마에게 맡겨둔 채, 가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참석해주고, 늦게 들어와 아이의 성과를 점검하고, 부족한 점이 있을 땐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투로 훈육하는 아버지이다.

그런 료타에게 어느 날 케이타가 병원에서 뒤바뀐 아들이고, 친자는 따로 있다는 사실이 날벼락처럼 전해진다. 병원은 뒤바뀐 아이의 양쪽 부모를 불러놓고, “이런 경우 100% 교환을 선택한다”고 말하며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빨리 교환하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어찌 그것이 말처럼 쉽겠는가. 양측 부모는 친자와 자연스럽게 만나는 적응기간을 갖기로 하고, 케이타와 료타의 친자 류세이를 서로의 집에 오가게 한다.



처음에 료타는 상대편 부모에게 돈을 주고, 자신이 두 아이를 모두 데려올 수 없을까 생각한다. 상대편 가정은 지방에서 작은 전파상을 하는 서민이고, 병원으로부터 받을 보상금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료타는 ‘빈둥거리는 아버지와 자주 화를 내는 어머니’인 상대편 부모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하기야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바쁘게 돈을 버는 아버지와 상냥한 어머니, 그리고 말 잘 듣는 아이로 구성된 료타의 가정은 모범적인 중산층 가정의 모델처럼 보인다.

그러나 몇 차례 아이들의 왕래를 거친 후, 상황은 료타의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케이타는 가난하지만 형제도 있고 아버지도 함께 놀아주는 류세이의 집을 점점 좋아하게 되고, 류세이는 료타의 ‘호텔 같은 집’에서 혼자 노는 것을 무료해한다. 류세이는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않으면서 규칙을 일러주고 지키게 하는 료타에게 정을 느끼지 못한다.

◆ 허깨비 같은 아버지에서 진짜 아버지로 거듭나는 삶

료타에게는 ‘아버지 콤플렉스’가 있다. 료타의 아버지는 도박과 주식에 빠져 엄마와 이혼하고 새엄마와 재혼하면서 자식에게 큰 상처를 줬다. 료타는 아버지에게 정이 없으면서도 모처럼 만난 아버지의 말을 토씨하나 바꾸지 않고 자신의 생각인양 말할 정도로 아버지의 영향권 아래 있다. “케이타는 점점 저쪽 아버지를 닮아갈 것이고, 저쪽 아들은 점점 너를 닮아갈 것이니, 빨리 핏줄을 찾아주어야 한다.” 료타는 결국 혈연을 쫓아 두 아이를 바꾸기로 한다.

하지만 아내 생각은 다르다. 료타의 아내는 케이타가 친자인줄을 몰랐던 것을 모성에 대한 결핍으로 자책할 만큼, 완벽한 모성에 대한 강박이 심하다. 6년 동안 거의 혼자서 케이타에게 모든 정성을 기울여 키워왔는데, 이제와 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헤어져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료타의 아내는 료타가 자신처럼 우수하지 않은 케이타에게 실망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며 분노를 표한다.



류세이를 키워 온 엄마도 아이를 교환해야 한다는 논리를 찬성하지 않는다. 그녀는 “혈연이니 하는 것은 아이를 직접 키우지 않는 남자들의 논리”라고 일갈한다. 케이타의 외할머니나 료타의 새어머니도 혈연보다는 정이 더 중요하지 않냐고 말한다. 심지어 남의 자식을 키워야하는 스트레스로 이 일의 발단을 만들었던 간호사도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의붓아들과 돈독한 모자관계를 형성한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정을 쌓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유전자를 확인하고 성과나 점검하면서 금지나 규율을 알려주는 존재인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허깨비 같은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료타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아버지를 미워하며 자랐지만, 영화는 상대편 아버지의 입을 통해 “계속 그런 아버지 흉내를 내며 살 필요는 없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지내는 절대 시간이 중요하며, 아버지 일도 어떤 업무 못지않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서 일러준다.

료타는 그토록 몸 바쳐 일했던 회사에서 좌천을 겪으면서, 자신이 케이타에게도 류세이에게도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는 점을 깨닫는다.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던 남자였던 료타가 “나는 졌다”고 말하며, 케이타가 남기고 간 사진기 속의 잠만 자는 자기 모습에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는 캠핑 장비를 사는 등 노력하여 류세이의 마음을 여는데 가까스로 성공하지만, 류세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원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료타는 류세이를 데려다 주러 온 집에서 자신을 보고 도망치는 케이타를 발견한다. 케이타는 자신을 보내면서, “그쪽 부모가 널 더 사랑할 것”이고 말하며 정리된 마음을 보여주었던 료타에게서 버림받은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료타는 처음으로 케이타의 상처받은 마음에 공명하며 진심으로 사과한다. 자기 유전자를 확인하고 성과를 점검하며 규율을 알려주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을 쌓고 아이의 부족한 점을 사랑으로 다독여주는 ‘양육자인 아버지’가 되어 케이타를 껴안는다. 료타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영화는 진정한 아버지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잔잔한 드라마를 통해 통렬히 일깨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객석에서는 나지막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료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남자들이 그렇게 많이 운다. 그들 역시 진정한 아버지가 되는 길에 한걸음을 뗀 것이리라.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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