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준 “‘타락의 굴레’에 감염돼 운명처럼 끌려들어갔다”
[인터뷰] 연극 <스테디레인> 대니 배우 이석준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대사와 독백만으로 이뤄진 2인극 <스테디 레인>(작가 키스 허프(Keith Huff))은 사방이 늪지대인 범죄의 도시, 시카고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두 남자의 필연적 몰락을 그려낸 작품.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비워낸 무대 공간위에 선 두 명의 배우 만으로도 가장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을 전달하는 점이 매력 포인트이다.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법과 규율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고 믿는 경찰 ‘대니’로 분한 배우 이석준을 만났다.

■ ‘신의 한수’를 경험하게 한 김광보 연출의 심리적 시계

-대본을 들고 끝까지 안 쉬고 읽으면 작품을 선택한다고 들었다. <스테디 레인>도 처음 받은 대본을 끝까지 읽어서 선택한 건가.
“대본을 끝까지 읽었던 점도 있지만 김광보 연출님과 꼭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점이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어요. 대한민국에 극작과 연출을 겸하는 분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본인만의 색깔을 내는 분이 많죠. 그런데 김광보 연출님은 작 연출이 아니다 보니 작품마다 다 다른 색깔을 보여주세요. 작품 본연의 색깔을 살리시는 분입니다.

제 와이프(배우 추상미)가 연극 <프루프>때 김 연출님을 처음 만났는데 그 때 연출님 칭찬을 많이 했어요. 곧 올라가는 <은밀한 기쁨>으로 와이프가 연출님과 두 번째 만나게 됐어요. 와이프와 제가 코드가 비슷해서 연출님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었거든요. 언젠가 꼭 한번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요.”

-실제로 같이 작업 해보니 어땠나?
“분명 지문 같은데 전체가 다 대사로 돼 있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어요. 불가능해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브로드웨이에서 유명 배우 휴잭맨이 무대에 나와도 졸았다는 말이 들렸는데 과연 안 졸리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게 궁금하기도 했어요. 막상 함께 해 보니 배우들에게 정말 신뢰를 주시는 분이었어요.

작품 본연의 색깔을 주입하기 위해 걸음걸이까지 다 터치 하는 연출도 많은데 그러지 않았어요. 연출은 굉장한 선장일텐데 말이죠. 배우들의 개성이 드러나야 작품의 본질이 산다고 보시고 그 사람에게 맞는 걸 억지로 입히시는 분은 아니라고 볼 수 있어요. 제가 ‘와’ 하며 놀랐던 점은 배우가 만들어낸 부분에 대해 ‘좋다 아니다’에 대한 굉장한 신뢰를 준 점이요. 연습 중간에 어디 계신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어서요. 그런데 ‘잘못 됐다’는 저의 순간적 느낌과 맞아 떨어져요. 배우가 무언가 의구심을 갖고 선택 했을 때 ‘그게 맞아. 틀려’에 대한 굉장한 확신과 신뢰감을 많이 주신 분이죠.”

-연출의 내공을 느꼈던 순간을 좀 더 말한다면?
“‘심리적 시계’가 있으신 분 같아요. 기억나는 건 항상 연습과정을 재미있게 보세요. 정말 일반 관객이 앉아있는 것처럼요. 끝나고 나서는 또 솔직하게 말 하세요. ‘재미있다. 너무 재미없다. 혹은 어제보단 재미없다.’ 그 다음에 디테일한 부분을 이야기보다는 항상 거대한 이야기를 하셔요.

배우가 할 수 없을 때 ‘신의 한수’를 제시하는 분이랄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통 내공이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에서 꼭 보여줘야 하는 게 ‘상식과 비상식’에 대한 거예요.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조이에게서 보여지는 것 이면의 서브 텍스트는 동시 다발적으로 변할 수 있어. 하지만 배우가 읊어대기만 하다 보면 관객들은 ’정보만 쏟아지는구나. 다른 표현으로 똥만 쏟아졌구나‘ 라고 느낄 수 있다.’고요. 배우가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특별하게 기억 남는 디렉션이 있다면
“어느 날은 연습이 너무 잘 돼서 좋았는데 ‘너무 익숙해졌다’는 코멘트를 하시는거에요. 그러다 갑자기 1,2,3장까지 진행돼 격해져 있는 상태인데 그대로 ‘1장으로 가봐’라고 말 했어요. ‘이게 무슨 의미이지’란 생각으로 연습을 끝냈죠. 그렇게 끝내놓고 하시는 선생님 말씀이 ”(배우가)‘우리 시작합니다.’ 느낌으로 뭔가를 주면 정보가 하나도 안 들어와“ 였어요. 배우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발단 전개를 지나 절정이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이 작품은 어느 순간 뚝 잘라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점들이 어렵기도 했지만 많은 도움이 됐어요. 배우들도 연습 중 첫 장이 안 풀리면 5.6장부터 연습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 잘못된 상식 위에 ‘가정’이란 정의를 뿌리 내린 남자 대니

-말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연극이다. 반면 배우 입장에서는 상대배우와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한 2인극, 엄청난 분량의 대사들, 몇 페이지가 넘어가는 기나긴 독백 장면 등이 도전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프레스콜 때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요. 여타의 대본에서는 지문으로 쓰여져야 할 부분까지도 다 대사로 이루어져있어요. 그것을 관객들의 머릿속에 그려내게 하는 것이 저희 배우들의 임무인데 쉽지 않았죠. 염력수행을 하듯이 대본을 외웠어요.”

-가장 힘든 점이 뭐였나?
“대부분의 공연은 안에 있는 인물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게 많은데, <스테디 레인>은 듣고 있는 대상의 형질을 자꾸 바꿔야 하는 점이요. 안에서 이뤄지는 상황을 보여주다 곧 밖에서 이뤄지는 상황으로 바뀌는 식이요. 관객들과 시공간에 대한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풋과 아웃풋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는 작품인 거죠.

예전에도 2인극은 물론 무대에서 나가지 않는 작품을 많이 해봤는데, 이 공연만의 흐름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아요. 그날의 호흡을 찾아야 하거든요. 개인이 가지고 있는 흐름이 있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흐름이 따로 있어요. 상반된 흐름이지만 또 맞아야 해요. 틀어지면 난리가 나요. 대사 양 때문에 치이는 게 아니라 민감한 공연의 흐름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매일 아침 공연의 흐름을 잡아놓지 않으면, 민감하게 반응해요. 전 맞다고 생각했는데 뜨는 경우도 생기구요. 게다가 더블로 진행되는 시스템이라 며칠 공연을 쉬게 되면 더 고민이 돼서 감을 되찾기 위해 계속 대사를 읊어요.”

-공연을 보기 전, 다혈질에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남자란 이미지적으론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스탠리, 작품의 수많은 메타포를 찾아가야 한다는 점에선 <건메탈블루스>의 샘, 배우의 다양한 능력치를 요구한다는 점에선 <39계단> 해니가 떠오르기도 했다. 공연을 본 뒤엔 이 모든 걸 뛰어넘는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뜻 보여지는 게 제가 했던 다른 작품의 인물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전 한 번도 비슷하다고 느낀 적 없어요. 지금까지 했던 인물 중 제일 센 역할로 느껴져요. 표현력이 가장 강하죠.”

-<스테디레인>은 정상과 비정상,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비상식적인 대니의 눈으로 비상식적인 사회를 바라보게 했다. ‘도대체 여기서 상식이란 건 어디 있는 거죠?’ 라며 ‘상식’이라는 말을 자주 내뱉는 대니는 스스로를 상식적인 남자라고 생각하는가?
“‘대니’는 상식적이고 싶어하겠죠. 법이란 게 이게 ‘상식’이다 고 정해놓고 나면 그게 상식이 돼 버리잖아요. 지금 사회 자체가 부조리 하다는 게 ‘상식’이구, 이 사람 머리엔 가족 밖에 없어요. 대니가 5장에서 ‘사람은 자기 가족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이야기 하는데, 대니에겐 이게 ‘상식’입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건 모든 건 ‘대니가 정해 놓은 상식’이란 미명 아래 상식적일수 있다고 봤어요.”

-그렇다면 대니 입장에서 ‘조이’는 상식적인 인물인가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누기 보단 결핍된 사람이라고 구분했어요. 대니에겐 모든 상식의 기준이 내 울타리, 즉 가족 안에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광에 버려진 것 같은 조이는 결핍 된 존재이자 비상식적인 인물로 보여질 수 있어요. 대니는 친구 조이를 상식의 범주와 울타리 안으로 집어 넣으려고 해요. 상식적인 가정은 닐슨 조사 기관에 선정 될 수 있는 표준 가정인데 조이는 거기서 벗어나려는 친구이죠.”

-대니에게 조이는 가족과 같은 존재인가. 아니면 가족 바로 아래 단계의 중요도를 지닌 존재인가
“생명을 위험한 상황에서 부모가 가족을 구할 때 아이를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부인을 구하듯 우선순위는 정해져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조이는 가족과 같이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조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 알고 있으면서 조이에게 자신의 가족을 맡기지는 않았겠죠.”



■ 상식이란 이름으로 애써 외면해왔던 ‘타락의 굴레’에 감염된 대니

-대니는 잘못 된 상식 위에 ‘가정’이란 정의를 내려 삶 전체가 뒤틀린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대니가 창녀 론다의 뒤를 봐줘서? 론다를 집에 데려다 줘서 잘못 됐다? 집안으로 총이 날아오지 않았다면? 아이가 다치지만 않았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 모든 건 추측일 뿐이고 어떤 식으로든 이미 폭발직전에 놓여있던 사람들이었다고 봐요. 애써 덮어놨던 것 뿐이죠. 정작 커다란 문제는 밑바닥에 깔려 있던 건데, 그걸 들여다보지 않아 다른 게 터져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근원적인 게 ‘악 혹은 악행’일까요. 정확하게 규정짓진 않았지만 ‘내 안의 악마라도 들었냐’란 대사에 조이가 민감하게 반응해요. 대니와 조이 서로의 마음에 ‘악마’가 있어요. 대니가 ‘가정’이라는 미명하에 지키고자 했던 게 그걸 빌미로 터져 나와요. 총알 사건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터지지 않았을까요.”

-작품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지만, 대니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갈 때도 거기서부터 접근해나갔나
“인물을 만들 때 서브 텍스트 안에서 제가 하려고 했던 건 대니의 잘못된 것을 옳다고 믿게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그걸 믿지 않으면 대니라는 인물이 구축이 안 될 것 같았어요. ‘대니 자체가 미국이다’고 가정했을 때 모든 게 풀리기 시작 했어요. 많은 사건 속에서 사람들이 죽지만 옳았다고 믿게 만드는 게 대니란 인물이잖아요. 자국민(시카고)을 위해 일 하는 게 대니(미국)였고, 옳다고 믿는 무언가의 인물이 되지 않으면 괴로워했을테니까요. 역으로 잘못됐다고 돌아오는 순간에 폭발해요. 대니의 성격과 통하는 부분이 있죠.”

-미쳐 날 뛰는 대니가 ‘감염’된 건 뭔가?
“대니는 “모든 게 감염됐어. 내 안에 있는 것 때문에”라고 말해요. 저희들도 ‘악, 악마, 악행이다. 불운이다’ 등 거기에 대해 의견이 많았는데 ‘운명’이라고 결정했어요. 이게 그러니까 대니는 지금까지 애써 외면해왔던 거죠. 상식과 정석, 합리화란 이름으로. 흔히 ‘타락의 굴레’에 빠진다는 말을 하는데 그게(운명) 따라오는 걸 무시했던 거죠, ‘나에겐 안 묻었어’란 말로. 그래서 그 ‘감염’ 장면을 그동안 외면해 왔던 걸 솔직히 드러내는 장면으로 생각해서 총체적인 의미로 ‘감염 됐어’ 라고 말한다고 봤어요.”

-제목인 <스테디 레인>(A Steady Rain)도 ‘감염’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였나
“제목인 ‘비’에 대해 정의한 적은 없는데 비극적으로 치닫는 운명이라 생각했어요. 대니와 조이의 운명의 단초요. 론다가 빌미가 됐을지언정 잘못 된 판단을 내린 두 인물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끊임없이 비가 내리죠.”

-대니의 ‘그 새끼가 가장 골 때리는 문제일 수 있다’에서 유추할 수 있듯 대니는 조이의 속 마음을 알고 있다. 대니는 언제 옆의 악마를 알게 되는가?
“3장에서 수리 센터 사람들이 도착해서 (창문으로 날아온 총알 때문에 산산조각 난)유리창 갈아 낀다고 나갔다 집에 들어왔는데, 대니를 보자마자 와이프 코니와 친구 조이가 동시에 떨어져요. 그 때 둘 사이의 마음을 알았겠죠. 그런데 1장은 그 사건이 벌어진 이후이기 때문에 대니는 처음부터 알고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 자석에 끌려가듯... 대니의 또 다른 자아 조이에 대해 궁금한 것들

-조이가 대니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이해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대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건 대니이고. 조이가 그걸 방치했다고 봤어요. 조이가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있어요. 그런데 조이는 자신은 ‘대니의 꼬붕이었다’면서 합리화 시켜요. 의심이 걸리는 부분을 방치 한 거죠. ‘이 모든 게 조이가 계획한 거 아닌가?’ 란 의문이 생긴다는 의견도 들었는데, 조이는 대니가 그런 환경까지 몰려가도록 흐름을 막아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대니는 더 이상 끌고 나갈 수 없는 마차 운전대를 조이에게 넘긴 것이고요.”

-조이는 내부의 악마인가?
“누구에게나 악마가 있어요. 코니에게도 월터에게도 있어요. 그걸 인지하게 만드는 작품이 <스테디 레인>이고요. 이 모든 걸 쌓아놓고 갔어요.”

-대니가 사리지고 대니의 자리에 선 조이는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대니가 죽고 난 뒤 조이도 대니와 마찬가지로 살았을거라 생각해요. 표면적인 건 다를지 몰라도 근본은 똑같겠죠. 요리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 전에 대니도 요리를 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성격상 대니가 와일드하고 조이는 내성적으로 드러나는 게 다를 뿐이죠. 그 내면에 가족을 지키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그걸 인지한 상태에서 또 시작인거죠. ‘그게 상식이다’고 믿는 것.”

-대니란 인물도 만만치 않지만 조이의 캐릭터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대니는 대니에게 일어난 일을 화술하고 있지만 조이는 친구에게 벌어진 일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결국엔 본인에게 침투해 오는 걸 이야기 하고 있어요. 결국 조이가 대니 자리에 앉고 ‘가족을 위해서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해요. 저희 페어는 두 가지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조이가 대니의 또 다른 자아일 수 있다는 점, 조이가 대니 자체에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요. 조이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비판하면서 동경해요. 얻어터지면서 대니의 힘을 동경하고 부조리한 대니의 생활하는 걸 알면서도 동경하며 같이 경찰이 돼요. 물론 서브 텍스트 엔 ‘저렇게 살면 안 돼’란 감정이 있어요. 하지만 자석에 끌려가듯 끌려가요. 조이는 독설을 내 뱉으면서 다른 감정을 보여줘야 해서 어렵죠. 연출님도 ‘지금 이 상황이 불합리한 것은 알겠는데 서브 텍스트에 깔려 있는 조이 너의 입장은 뭐야?’란 질문을 던졌어요.”

-그래서 조이란 인물이 매력적이면서도 관객 입장에서 ‘이 인물의 진짜 마음은 뭔가’란 생각을 계속 들게 만든다.
“배우가 ‘조이’란 인물을 완벽하게 구축한다는 생각만으로 접근하면 표현적이 돼버려요. 그렇게 되면 ‘조이’ 자체가 날아가게 돼요. (조이의 악마 같은 마음이)전혀 안 그렇다 생각하고 있는데, ‘드러났다 감췄다 드러났다 감췄다’를 계속 보여줘야 해요. 그러다 끝에서 보여주는 게 있고요. 그렇게 되면 인물이 다각화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간단한 예를 들어서 불우한 가정에서 지냈던 조이는 대니의 가정을 동경하며 (남편을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하는)코니한테 대니는 가정을 지켜야 하는 게 우선이었다는 말로 대니의 속마음을 대변해줘요. 또 동시에 대니는 ‘투 잡 쓰리 잡 뛰지 않았다.’고 말해요. 코니가 조이에게 안기는 순간 코니를 사랑하는 본심도 드러나요. 그런데 이 모든 게 한 센텐스 안에 들어있어요. 정말 어렵죠.”

-대니, 조이 둘 다 해보고 싶었나?
“이 텍스트가 머리에 들어왔다는 게 기적적입니다. 그런데 양쪽 대본을 다 외울 순 없을 것 같아요. 하하. 조이 내면에 깔린 뒷 배경을 알수록 놀랍기도 하고, 그걸 찾아내는 게 무궁무진한 매력이 있는 건 분명해요.”

-페어를 섞어도 재미있겠다
“회식 때 연출님이 ‘섞어도 재미있겠다. 분명 섞고 싶었는데. 섞을 수가 없구나’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이미 캐스팅 공지도 다 뜨고, 배우들 스케줄도 있어서 힘들겠지만 글쎄요. 종원이랑 명행씨는 같이 한 무대에 서는 걸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현준씨랑 저는 연습 때 두 번 정도 맞춰 본 결과 블로킹만 정리하면 될 것도 같아요.”



■ 승자의 깃발을 조이에게 넘겨 준 대니 & 비겁한(?) 최후의 승자 조이

-대니가 즐겨했던 ‘최후의 승자’ 놀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설명한다면
“푸에트리코 남자 사고 후에 대니는 ‘논쟁의 유일한 생존자, 최후의 승자는 나였다’고 말해요. 그 뒤 맨 마지막에 조이가 말하죠. 돌로 하는 술래잡기 놀이를 ‘최후의 승자’라고 불렀다고. 대니가 잔인한 놈이죠. 결국 돌로 던져서 맞으면 죽는 게임이었으니까요. 남는 자 가 승자라고 하는데 대니 맘대로 생각하는거죠. ‘그걸 안고 넘어간 건 대니라고’ 조이 말 속에 녹아있어요. 그 의미는 승자의 깃발을 조이에게 넘겨주고 죽었다는 말이죠. 대니 말대도 ‘넌 복직 될 거고 나쁜 놈을 처리 한 대가로 승진할 꺼야. 여기서 나쁜 놈은 대니이구요. 대니가 말한대로 조이는 승자가 된 거죠.”

-그 말대로 하면 조이가 승자가 된다
“마지막에 남은 놈은 조이죠. 연출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조이는 치사한 인간이다’고. 조이는 손도 안대고 코를 푼 격이죠.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방치했던 놈입니다. 조이는 자신의 일부였던 대니가 날라가자, 일부를 버리고 일부가 갖고 있던 전부를 취한 거죠. 남은 사람이 나머지를 갖게 됐다고 이해할 수 있죠.”

-조이는 나쁜 놈인가
“조이 말을 들으면서 사건 전말을 풀어보면 이게 진짜 같고, 대니는 이걸 덮어놓으려 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누구 말이 진짜인지 알 수 없어요. 대니의 시체를 화장처리 했다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이 새끼는 제일 친한 친구의 무덤도 안 만들고 흔적조차 없애버려? 무덤에 돈 들이는 것도 싫어했다? 완벽하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 란 생각도 들어 이상한 놈 아니야 극한의 나쁜 놈이란 생각도 들 수도 있어요.”

-다른 한편으론 조이를 나쁜 놈으로만 볼 수 없다.
“조이도 또 다른 대니이기 때문에 아닌 건 걷어내면 된다고 생각해요. 조이도 대니와 마찬가지로 ‘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범주 안에 들어가니까요.”

-대니와 조이는 언젠가 ‘스타스키와 허치 같은 형사 콤비’가 될 거라고 말 한다. 스타스키는 행동파 대니와 허치는 온건파 조이와 닮은 구석이 있다. 대비되는 두 사람이 점차 동화된다는 점도 그렇고. 형사 콤비 설정 말고는 작품 안에서 특별한 의미는 없는가?
“제가 어릴 때 TV에서 했던 드라마를 통해 봤었어요. 아주 어린 시절 봤던 거라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아요. 연출님은 정확히 본 세대이죠. 만화 <톰과 제리>처럼 유명했던 드라마구 인물이죠. 백인과 남미 쪽 형사 이야기인데 연출님이 작품 속 의미와 연관해서는 전혀 이야기 하지 않아 크게 의미를 두진 않았어요.”

-<스테디 레인>에서 거칠게 욕을 내뱉는 대니와 달리, 실제 이석준은 ‘욕’이 익숙하지 않은 착한 남자란 말도 있던데?
“욕을 못하는 남자는 거의 없을걸요.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라면 다 욕을 해요. 남자고등학생 시절이 욕의 절정이죠. 착하게 살면 배우를 못해요. ‘착한 남자’란 건 그냥 보이는 이미지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봉사를 하는 것도 자기 만족이구요. 이디오피아 봉사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에서 욕을 많이 연습했어요. 하하. 실제 대본에선 이 정도로 욕이 많지 않아요. 원본에는 시카고 사투리 비슷한 슬랭(속어) 이 많이 나와요. 말장난식으로 비아냥거리는 게 많은데 그런 빈 부분을 저희들이 첨가한 겁니다. (극 중)종원씨와 욕도 다르게 쓰는데 전 대사를 다 수식어로 만들어 놨어요. 흔히 ‘좋은 거 보면 좆나 좋아. 멋있는 사람 보면 좆나 멋있어’ 이런 식으로 쓰는 말투들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 욕을 너무 많이 써서 집에서 본의 아니게 역으로 욕을 먹고 있습니다. 집에 고지서가 날라왔는데 돈이 너무 많이 나온 걸 보고 ‘씨발 이렇게 돈이 많이 나왔네’ 란 말이 튀어나와 부인이 ‘욕이 입에 붙었다’면서 뭐라고 하더라고요.”

■ “일상의 부조리, 그게 읽혔을 때 무대와 객석이 같이 폭발할 것”

-욕 말고도 문종원 지현준 페어랑 이석준 이명행 페어의 디테일한 해석들이 다른 건가
“굵은 건 같지만 세세한 것들은 달라요. 초반 공연 이후로 그쪽 페어 공연을 안 보고 있어요. 페어마다 템포가 달라 말려 버릴 수 있겠더라고요. 프레스 콜 때 특히 그랬죠. 저희 페어는 다른 페어에 비해 1.2.3 장이 빠르다면, 4.5.6장 템포가 느려요. 다른 페어는 그 반대이구요. 결국 러닝타임은 비슷하게 나올 겁니다. 그런데 프레스콜 때 전반이 느린 지현준 문종원 페어가 시연을 하고 후반이 느린 저희 페어가 나머지를 시연했어요. 결국 느려터진 애들을 그대로 붙여 논 꼴이 되었죠. 하하.

관객 몰입도가 높아지는 부분이 4.5.6장인데 저희는 브레이크를 걸어요. 상황을 푸는 것보다 내러티브를 풀어가는 것에 더 중심을 둔 거죠. (5장 주유소에서 사라진 조이를 찾던 대니가 코니한테 전화를 건 상태)‘조이 이 새끼가 전화를 받더라고요’ 그 포즈를 즐겨요. 6장에선 그 동안 절대 건드리지 않고 있던 권총을 들죠. 또 그 동안은 다리를 절뚝거리지도 않아요. 이야기의 화자인데 그동안 얼마나 아팠으면...총 들고 보여주는 장면에서 모든 걸 드러나도록 한 거죠. 거기 까지가 2.3분이 더 걸려요.”

-객관적으로 관객으로서 봐도 재미있는 연극인가. 대사의 홍수를 견뎌내면 재미있다는 말도 있다.
“워낙 말로 이뤄진 연극이라, 우스갯소리로 ‘섹시한 휴 잭맥이 무대에서 팔을 살짝 걷어올렸을 때 관객들이 깼다더라.’란 말도 있어요. ‘소리를 버럭 질러야 하나’란 생각까지 들었다니까요. 무대에서 객석을 보면 자는 분도 있고 잔잔한 기운이 흘러요. 오죽 불안했으면 페이스 북이랑 홈페이지에 ‘피곤하신 날 극장에 오면 주무시거나 딴짓 할 수 있으니 정신 멀쩡할 때 오세요’ 란 글도 올렸어요.

지문이 대사로 쓰여진 작품이니 관객들이 다 상상해서 그림을 봐야 해요. 실제로 보여지는 것 보다 관객들의 상상으로 그려내야 재미있어지는 거죠. 그런데 관객들이 상상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2시간 가까이 ‘이랬어요. 저랬어요’ 란 대사가 흘러나오고, 론다는 벗고 있는 상태라는데 벗고 있는 당사자는 무대 위에 없어요. 배우들이 다 설명을 해야 하는데 관객으로선 정신적 피로도가 밀려오겠죠.

특히 (탈선의 구석탱이 이야기)4장에서 피로감이 폭발하나 봐요. 그러다 5장에서 (네이팜 기습 폭격 때 홀딱 벗고 뛰어오던 아이가 떠오를 정도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 대니에게 뛰어왔던 열세네 살로 보이는 베트남 남자아이)‘리야오’가 죽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 애가 누구야?’라고 반응하는 관객도 있었대요(웃음). 그렇게 되면 그 관객 분은 4장을 완전 날려 먹게 되는거죠. 그런 부분들을 견뎌내면 정말 재미있을 작품입니다. 평상시 느끼는 일상의 부조리, 그게 읽혔을 때 이 작품은 같이 폭발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실제 한 가족의 가장이라 대니의 마음을 더 잘 표현할 수도 있겠다.
“대니란 인물이 상반된 스케일을 벌이는 사람이라 저와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족이 주는 무언가 확 와 닿는 게 있어요. 싱글이었을 땐 못 느꼈던 그런 것이요. 예전엔 ‘내가 가장이다’란 말을 하면, 와이프가 ‘가장 병’ 이 걸렸다고 말했는데. 이번 공연을 보고 와서는 ‘얼마나 가장이 되고 싶었으면... 밥이라도 잘 해줘야겠다’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 할 정도였어요.

-<스테디 레인> 배우 이석준에 대한 평이 좋다.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평을 좋게 받았어요. 역대했던 모든 공연 보다 가장 완벽한 평을 받았어요. 물론 모니터링 하는 사람을 따로 부르지도 않고 관객 평을 그대로 다 믿지도 않아요. 하지만 딱 한 사람 믿는 사람이 와이프 입니다. 저에 대해 칭찬을 자주 하지 않는 편인데 제가 한 이번 공연을 너무 좋아했고, 배우로서 칭찬도 많이 해서 어안이 벙벙했어요. 모든 이들이 다 아니라고 평해도 단 한 사람 좋다고 하면 그걸 믿고 가요. 그게 와이프이구요. 단 한 사람이 너무 좋다고 해서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그게 유일한 힘 입니다. 공연 때 마다 죽을 것 같지만“



■ “좋은 배우란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배우”

-95년에 데뷔해서 내년이면 배우인생 20년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고 그 때 이루고 싶었던 꿈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어려워 죽을 때까지 꿈을 이루지 못할거란 생각도 들어요. 제 공연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버거워요. 작품만 해도 하나를 알게되면 더 큰 세계가 보여요. 찾았다 생각하면 더 큰 게 있더라구요. 신인들이 척척 만들어내는 거 보면 부럽고... 배우로서 자신과 싸워 나가는 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배우에겐 완성이란 게 없잖아요.”

-그동안 뮤지컬 작품을 많이 해서 뮤지컬 배우란 칭호가 익숙하지만, 뮤지컬, 연극, 드라마 등 다방면의 배우이다.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 계속 무대에 섰어요. 뮤지컬 <아이다> 이후 연극 <이아고 와 오셀로>로 한태숙 선생님과 작업을 해서 많이 배웠고요. 연극 <썸걸즈>,<디너>, <벚꽃동산>등 맨씨어터 작품도 많이 했어요. 연극열전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도 거쳤는데, 한 장르를 뛰어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뮤지컬 배우가 연기를 못한다는 편견과 싸워야 했고, 뮤지컬을 했던 사람들이 영화 나 드라마로 옮겨가면 오버해서 연기 한다는 편견에 부딪쳤어요. 전 이해를 못하겠어요. 장르만 다를 뿐 배우라는 바운더리 안에 함께 있는 거잖아요.

비유적으로 (배우의) 기초훈련은 같으나 (연극이나 드라마 작업을 하는 건) 골프나 창던지기 같이 다 다른 종목 아닐까요. 쓰는 근육이 다르고 새로운 걸 배워야 하지만 뮤지컬이란 장르는 다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호흡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뮤지컬 배우를 어떻게 해요? 노래의 호흡 없이 연극의 긴 템포를 끌고 갈 수 있을까요?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연극의 배경 음악을 깔 수 있나요? 다 연관 돼 있어요. 연극과 뮤지컬, 뮤지컬과 TV드라마 이런 식으로 뭔가 구분을 할 게 아니라 뭐가 읽혔느냐가 중요한 거죠. 앞으로도 제가 선택해서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 할 생각입니다.”

-한번 작업했던 배우든 스태프든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 같다.
“작업하면서 부딪치며 정을 쌓았던 사람은 잠재된 가족들로 계속 남아있어요. 살갑게 챙겨주는 스타일이냐? 글쎄요. 다른 작품에 정신없으면 살가운 게 옅어지는 것도 있겠지만 때때로 만나면 그 때 생각 새록 새록 나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모르겠어요. 저와 인연을 맺었던 이들과 웬만하면 가족처럼 지내고 싶어요. 그런데 저에게 이중적인 면이 있나 봐요. 새해가 되면 인사 같은 걸 잘해야하죠. 전 연락 오는 것만 답해주고 끝내는 경우가 많아요. 하하.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시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그분을 존경한다고 말하면 놀라요. 제가 선생님께 연락도 안 드리고 하는 걸 아니까요.”

-눈 여겨 보는 신인 배우가 있나?
“우수한 인재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최근 본 작품 중엔 연극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에 나왔던 이승주 배우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태권도를 했다는 분이 왜 이렇게 잘 해요?(웃음). 그 분 말고도 영리하고 너무 잘 하는 배우들이 많아요. 뛰어난 젊은 배우들이 2,3년 정도 맷집을 어떻게 기르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나는 것 같아요.”

-배우의 맷집이란 게 뭔가
“계속 도전하는 거죠. 난 ‘연극배우에 어울린다. 난 뮤지컬 배우에 어울린다’ 는 식으로 미리 판단할 게 아니라 오디션에 도전해야죠. 상업 비상업을 구분 하는 게 배우의 몫이 아니라 엎어지고 자빠져 봐야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인생을 알 수 있겠어요? 배우의 껍질을 까서 나와야 알 수 있죠. 우리가 음을 반키 올리는 데도 6개월이 걸려요. 발레리나도 발의 굳은 살이 없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어요? 무용수 강수진도(현 국립발레단 단장) 발톱이 수 없이 빠지는 고통을 겪고 지금의 그 사람이 있게 된 거죠. 박살나보지 않은 배우가 어떻게 성장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가끔 맷집을 키우지 않고 절뚝거리는 배우가 보여요.”

-절뚝거리는 배우란 어떤 의미인가. 배우들 사이에서 자주 쓰는 용어인가
“개인적으로 제가 자주 쓰는 말입니다.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만 붙었다’는 의미로 ‘다리를 절었다’는 단어를 붙였어요. 하루 일과가 끝나고 베개를 베고 자는 순간에도 아쉬웠던 게 떠오르면 ‘아 그거 할 걸’ 하고 생각나는 건 배우인데 인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부서져야죠. 능력이 없으면 채워가는 게 배우이구요. 그런데 두려워서 잘 할 수 있는 것만 선택하는 배우들에게 안타까움이 생겨요. 수도 없는 실패를 거치지 않으면 배우로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해지죠. ‘절었다’는 건 선택을 잘못했다는 뜻입니다.”

-선택을 잘못했다? 배우들이 ‘배우는 선택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 데.
“선택 받기 전에 배우 스스로 오디션을 봐요. 자기가 선택한 거잖아요. 그런데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선택을 받게 만들어주는 게 배우의 몫이죠. 선택을 못 받았을 땐 배우의 이미지 실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돈이나 상업적 마인드에 휘둘려 가는 건 제작사들의 싸움이구요. 배우에겐 분명 선택의 순간이 와요. 내 의지와 노력이 중요한 거죠. 그 때 순간 선택을 잘못해서 ‘이게 나한테 맞아’라고 말 하는 건 제가 보기엔 비겁한 태도입니다. 그게 절뚝거리는 게 맞구요. 배우가 욕 좀 먹는 게 어때요. ‘니꺼 아니였어’ 그런 이야기 듣는 건 또 어때요? 땀 흘리며 최선을 다했다는 게 중요하죠. 이 모든 경험이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닌 다른 역에서 엄청난 무언가로 나올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부딪치는 게 중요한 거죠.”

-젊은 시절, 이석준 배우도 여러 번 절뚝거렸나
“정석대로 가지 않고 먼 길을 돌아서 한참 간 적이 있어요. 제 배우 인생을 다른 곳에서도 말 한 적 있는데 길게 다시 말하긴 그렇고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갈 때 ‘죽어야겠다’란 생각에 한강다리 위에 섰다가 ‘공연 한번 해 보고 죽어야지’ 란 마음을 먹고 돌아 선 적이 있어요. 어린이 뮤지컬과 다른 뮤지컬 지방순회공연을 거쳐 그 다음에 제안이 들어 온 게 뮤지컬 2003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알베르트’ 역이었어요. 항상 ‘베르테르’ 역이 들어오다 ‘알베르트’ 역이 들어오니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내가 생각했던 걸 벗어나서 다른 길도 가보자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어요. 저에게 역으로 왔던 축복들이죠. 그런 의미들이 쌓여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이석준은 ‘좋은 배우란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배우이다’고 말했다. “배우는 잘난 척 하다 무너지는 것도 필요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도 필요해요. 내면을 그리는 배우라면 무너졌을 때 자신의 한계치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절망하느냐 즐겁게 일어서느냐 모두 자신에게 달려있어요. 그렇게 다시 일어난 배우라면 엄청 좋은 배우가 분명해요. 좋은 배우라면 무너지는 상황을 실제로도 달갑게 받아들이구요. 정말 지지 않고 열심히 부딪치다 보면, 단점을 상쇄할 정도로 장점이 많은 배우가 되겠죠.”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노네임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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