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미술을 이야기한다기보다 인생을 이야기하는 연극”
[인터뷰] 연극 <레드> 로스코 배우 강신일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그림을 파는 건 앞 못 보는 아이를 면도날로 가득한 방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 같은 거야. 그 아인 아플 텐데, 고통이 뭔지 몰라, 전에 다쳐본 적이 없어서.” -연극 <레드>의 로스코 역 배우 강신일 대사

“연습 동안, 쌓아왔던 인물이 다치지 않도록 매번 노력하는 게 배우의 기본적인 임무이다. 연극과 함께 해온 시간들을 애정이라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소중한 시간이자 내가 살아온 시간 전부이다. 이건 애정을 뛰어넘는 것이다.”-10년 전 <빈방 있습니까>로 만난 배우 강신일 인터뷰 중에서

연극 <레드>(작 존 로건)는 혁신적이면서도 탄탄한 작품의 산실로 유명한 런던의 ‘돈마 웨어하우스 프로덕션’이 제작, 2009년 런던에서 초연되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제 64회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연출상 등 주요 6개 부문을 휩쓸며 토니상 최다 수상의 영예를 얻은 수작이다. 2011년 오경택 연출에 의해 국내 초연 된 뒤 2013년 김태훈 연출이 합류해 재연 공연을 이끌고 있다.

다양한 붉은 색의 향연으로 추상표현주의 시대의 절정을 보여준 러시아 출신 화가 마크로스크와 가상인물인 조수 켄의 대화만으로 구성된 2인극이다. 이들은 로스코의 예술세계와 ‘미술’이라는 공통 영역을 놓고 언쟁을 벌인다. 그들의 언쟁은 비단 예술의 영역뿐 아니라 세대간의 격차, 기존의 것이 새로운 것에 정복당하는 것, 바로 순환되는 인생에서 성숙하고 쇠퇴하고 소멸되는 세대간의 이해와 화합을 이야기한다. 이전의, 그리고 현재의, 앞으로 올 모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인 것.

2011년 초연에 이어 다시 한 번 ‘로스코’로 분한 배우 강신일을 만나 그의 ‘레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정직하게 <레드>에 다가가기

-초연 때와 <레드>란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혹시 달라진 게 있나?
“느낌이 달라진 건 아니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던 대가의 내면세계, 예술, 철학, 인생 등을 담아내기에 내가 턱없이 모자란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 겁이 났다. 초연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고민했던 예술 세계에 발끝도 다다르지 못하겠지만, 배우니까 최대한 그 사람 인생의 고민이 어떠했을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막연하지만 찾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 처음엔 실존인물이 있는 캐릭터인데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나? 틀리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금은 맞고 틀리고를 떠나 연기자로서 내가 갖고 있는 고민, 이런 것 들이 어느 정도 상호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거기서 위안을 삼고 절실하게 느껴지는 걸 표현하려했다.”

-다른 수식어 다 빼고, 초연 때 보다 무대 위 강신일 배우가 편안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초연 후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내가 느끼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성장한 게 있었을 것이다. 그 2년이란 세월을 거치며 내내 이 작품을 생각한 건 아니지만, 2년이란 세월동안 작품과 함께 살았다는 점이 여유로움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또 하나는 공간의 안정감이 그런 인상을 줬을 거라 생각한다. 이해랑 예술극장도 정말 좋지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 <레드>란 작품을 하기엔 더 좋았지 않았나. 서로 좋은 조건이 매치 돼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로스코가 늘 중요시 생각했던 게 관객이 작품을 들여다보고 사색하고, 그림이 살아움직이게 하는 공간과 장소이다. 이 작품이 그런 공간을 제대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배우로서도 편하다.”

-조수 켄은 강필석 한지상 배우 이렇게 더블인데 로스코는 단독으로 무대에 선다. 두 배우와 호흡을 맞춰야 해서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을텐데 원 캐스트를 고집 한 다른 이유가 있었나?
“더블이나 두 팀으로 나눠서 하는 것보다 (두 배역 모두) 원 캐스트로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작사 측이나 배우들도 고민이 있었을 거다. 워낙에 두 친구 다 이 작품을 하고 싶어 했고, 두 친구가 바쁘기도 했고, 두 친구들이 젊으니까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나 역시 고민했지만 ‘로스코’를 더블로 하다 보면 <레드>란 작품은 물론 ‘로스코’란 분에게 실례를 범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원 캐스트로 가길 원했다.”

-다른 배우가 그려 낸 ‘로스코’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
“더블 캐스트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만약 로스코 역을 더블로 진행했을 때 내가 과연 이 공연을 보게 될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봐도 아마 안 보게 될 거 같다. 물론 ‘다른 배우는 분명 다른 식으로 표현하겠지’에 대한 느낌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걸 (다른 배우에게)다시 그 느낌을 받아서 뭘 하는 게 발전이라고 보지 않는다. 어떤 이는 그게 ‘발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게 한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다른 것으로 존재해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현 시점에 이 작품을 만나서 배우가 고민하고 표현하는 게 다 이어져야 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 모자라든 넘치든, 각도가 틀어져있든 그게 정직한 거라 생각한다. 특히 이 작품에 있어선 그런 마음이 더 강하다.”

-다른 활동은 접고 <레드>에만 전념하고 있나?
“여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2년 전에는 너무 번잡함 속에서 작품을 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다 힘들었다. ‘이번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란 생각을 하고 여타 다른 일정들은 공연 2주전까지 정리했다.”

-로스코란 인물을 만들 때 개인의 상처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나. 켄의 트라우마를 알고 난 뒤 로스코도 러시아에서 살 때 겪었던 충격적 사건과 스스로 유대인 태생임을 이야기한다.
“로스코란 인물이 태생적으로 유대인이어서, 혹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남아서 그렇다는 쪽으로 접근을 하면 지나치게 가벼워 질 수 있다 생각했다. 이 작품을 접하고 고민했던 건 ‘로스코는 나이 70이 다 돼서 왜 자살했을까?’이다. 그게 ‘결핍’에서 오는 건 아니다. 자기가 생각했던 미술세계와 예술세계의 한계에 부딪쳐서 그렇지 않았을까.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리는 예술적 한계 말이다. 철저하게 예술적으로 접근해야지. 개인적 상처로 가면 너무 단순화 시키는 게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켄의 결핍은 어떻게 바라봤나
“켄도 마찬가지로 봤다. 어린 시절 부모가 피가 범벅이 돼서 난도질당한 채 죽어있는 걸 목격했고, 그 아이에게 엄청난 상처인 건 분명하다. 만약에 그런 상처가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올바르게 살아지겠나. 하지만 예술가의 할 일은 그걸 넘어서야 하는 거라 생각한다. 결국 켄도 넘어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로스코가 켄을 세상에 내 보냈다고 봤다.”

-로스코가 켄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게 변하나
“처음엔 전혀 관심이 없다. 2년을 데리고 있으면서 밥도 한 번도 안 사주는 고용인이다. 감정적으로 엮일 일이 없다고 생각 한 거다. 그러다 ‘레드’를 보고 피로 연결하고 카펫으로 연결하는 켄의 그런 반응이 흥미롭게 다가왔을 거다. 로스코 입장에서 자기가 추구하는 ‘숙명’ 과는 다른 반응이지 않나. 그래서 이야기를 캐내게 된다. 색면을 통해서 처음으로 켄이 자기 상처를 끄집어 낼 수 있게 한다. 사실 그런 생각도 든다. 그 장면에서 로스코가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캔을 치료한다는 의미도 있는데 켄의 ‘결핍’은 거기서 치유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 “로스코는 젊은 켄을 통해 자기 현 위치를 깨닫게 된다”

-로스코는 뉴욕 맨해튼 시그램 빌딩에 들어설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화를 의뢰받고 작업을 하지만 결국은 계약을 파기한다. 일명 ‘시그램 사건’을 통해 로스코는 어떤 생각을 갖게 됐을까
“로스코는 그림의 순수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예술은 대중적이어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상업주의와 결탁해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신념에 위배되는 상업적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나서는 거다. 물론 거기에 대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 상업적 빌딩 그 곳을 성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행동을 미화시키고, 어떤 식으로 변명을 하더라도 대중과 영합한 건 맞다. 로스코는 젊은 아이 켄을 통해서 자기 현 위치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벽화 계약금도 돌려준다. 그렇게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고 자기가 추구해왔던 미술, 거기에 다시 집중하게 된다.”

-로스코는 "아버지는 존경하지만 살해하고 몰아내야 하는 존재"라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새로운 사조를 '예술 비즈니스'라 경멸한다. 어찌보면 이중잣대를 들이민다고 볼 수 있다.
“이중잣대라? 그 말은 기회주의자고 이중인격자란 의미인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로스코가 그런 사람은 아니다. 로스코가 하는 이야기 중에 들어 맞는 게 많다. ‘예술가가 어떠해야 하는 가’에 질문을 던져주는 이야기들 말이다. 예술이 간절히 바라는 열망을 추구하고 있나. 이런 질문이 요즘 세대에 와 닿는 게 있다. 작품을 보면 신세대 캔에게 도전 받은 로스코는 사그러든다. 지금은 켄의 입장이 커졌다. 다시 거꾸로 보면 이미 매장됐다고 여긴 로스코의 생각들이 이 시대의 우리에게 뭔가 경종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마크 로스코는 예술로 인간의 비극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로스코가 하는 이야기는 예술이 너무 상업주의로 가고 있다는 거다. 그게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대중적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모든 것이 밝고 일시적이고 그 쪽으로 내 닫고 있으니 사람들은 무조건 모든 게 좋다고 말을 하고 있다. ‘안목’이라고 말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것은 무관심일 수도 있고, 비겁할 수 있는 말, 정확하지 못한 말들이다. 지금 시대를 봐도 TV에선 웃기는 것만 보여주고 행복한 것만 보여준다. 실은 사는 게 그런 게 아닌데 갈등하고 부딪치는 그런 과정 속에서 예술이 태어나야 하는 건데 말이다.”

-미술 전공은 아니더라도 평상시 미술을 좋아했나? <레드>를 통해 미술 쪽에 관심을 갖게 된 건가
“미술에 문외한이다. 공연을 찾아다니는 관객들이라면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다고 볼 수 있다. 관객들은 공연을 보면서 공부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오히려 난 관객들의 미술적 소양에 못 미칠 거다. 초연 때 간략하게 미술사의 흐름이나 당대를 대표했던 화가들을 짤막하게 공부했다. 박명선 경희대 교수님의 소개로 화가의 작업실에 직접 가서 캔버스 틀을 제작하는 과정, 거기에 캔버스를 고정시키는 과정, 물감을 섞는 과정, 물감을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 붓잡는 법 등을 실습했다. 재미있는 경험들이었다. 음악하시는 분, 그림을 그리시는 분, 예술 하시는 모든 분들이 존경스럽다.”

-<레드>엔 여러 가지 미술 작품 이야기가 나온다. 마티스의 레드 스튜디오, 카라바지오의 사울의 회심, 렘브란트의 ‘발타자의 만찬’ 등 로스코에게 있어 특별한 작품들이 많다. 포시즌에서 추구하려는 느낌과 닮아있는 피렌체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도서관도 그렇고. 로스코의 열망이 담긴 ‘마티스에 대한 경의’도 마찬가지다. 혹시 직접 원본 작품을 본 적이 있나
“여유롭게 미술관 갈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학창시절에 몇 번 미술관에 간 적이 있고 초연 공연을 준비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미술관에 다녀왔다. 그 그림들은 책자로만 본 게 다다. 오랜 지인인 일본인 친구가 2년 전에도 <레드>를 보고, 지난 여름에 영국 런던에 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가서 직접 로스코 작품을 보고 며칠 전에 다시 연극 <레드>를 보고 갔다. 초연 때도 감명을 받았다고 했는데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난 뒤 연극을 보니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그림이 고동치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로스코를 연기하는 배우가 그 작품을 실제로 보지 않았다는 게)말이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술을 이야기한다기 보다 미술 작품 안의 인생관 그리고 예술관을 이야기하는 작품, 그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다음에 <레드>란 작품을 또 하게 될지 모르고... 그거와 상관 없이 로스코의 그림을 실제로 한번 보고 싶다.”



■ <레드>는 로스코의 연극이 아닌 켄의 연극?

-<레드>는 인생을 이야기하는 연극이다고 말했다. 좀 더 쉽게 그 안에 담겨 있는 말을 설명해준다면?
“이 안에 담겨져 있는 말? 글쎄. 고고하고 철학적이고 화려한 수사들이 난무하지만 알맹이는 하나인 것 같다. 어떤 면에선 지극히 통속적이고, 신파적이다고 느껴진다. 이 안에 있는 미술사적 용어는 다 접어두고 노인과 신세대를 열어가는 젊은이 둘의 만남을 통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 노인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젊은 친구는 고리타분 노인네를 통해서 성숙 해지고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 내용은 딱 그것이다. 관객들이 너무 어렵게만 접근한다.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따지고 고민하다보니,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사실 몰라도 되는데 말이다.”

-노인의 제자리는 뭔가
“로스코가 끊임없이 이야기 했듯 인정하는 거다. 세대는 사라지고 모든 가치 있는 것은 종말을 맞게 되듯 우린 영원한 과정 중에 있다. 로스코는 영원한 순환을 이야기하면서 자기는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말 했지만 결국 이런 걸 받아들인다. 그게 제자리다.”

-처음에 볼 땐 켄의 입장에서 극을 관람했다면, 두번째는 로스코의 입장에서 관람하게 됐다.
“젊은 친구들이 대개 캔의 입장에서 이 연극을 본다. 그러니 로스코가 예뻐 보일 수 없다.(웃음) 로스코는 애만 쓸 뿐 <레드>는 켄의 연극이라고 말 하는데 안 믿는다. 그런데 가만 보면, 로스코가 정말 불쌍하다. 제가 동의를 구하고 있는 건가?(웃음) ‘선생님이 이야기한 예술과 벽화는 정 반대의 논리’라면서 어린애가 나이든 사람을 몰아 세운다. 젊은 아이가 고민했던 그 부분을 설마 로스코가 몰랐겠나. 분명 그런 고민을 했을 거다. 그런데 젊은 아이가 막 대들고 그러니 얼마나 속이 찌릿 찌릿했을까? 하지만 어른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너 이제 사람 됐다’ 이야기한다. 그게 어른인 것 같다.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레드>는 슬픈 연극이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관객들이 맨 마지막 장면에서 운다고 들었다. ‘도대체 왜 울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배우의 싸인을 받기위해 기다리고 있는 관객을 봤다. 나 보다는 젊은 배우들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보이니 얼떨결에 사인을 요청했을 거다.(웃음) 그러다 한 관객이 ‘마지막에 폭풍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왜 울었어요. 뭐 때문에?’란 질문을 했는데 관객이 말을 못 했다. 며칠 뒤 그 관객이 엽서를 보내 왔다. 그 때는 내가 갑자기 그 질문을 해서 당황했다고 하면서. ‘운전을 하면서 집으로 가는 내내 울었는데 그게 결국 자기 아버지와 자기의 모습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로스코는 결국 켄을 인정했지만, 자기 아버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 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말 슬픈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 “레드를 근원이라고 봤을 때 블랙은 근원이 흔들리는 것”

-‘레드는 열정이고 삶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제목인 <레드>의 의미는 뭐라고 봤나?
“레드가 담고 있는 의미가 많다. 심장박동, 혹은 열망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난 ‘레드는 본질, 근원 이다’ 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극 중에서 젊은 친구(켄)는 계속 해돋이, 레드 와인, 붉은 장미. 붉은 립스틱. 당근. 튤립. 고추, 사과, 토마토, 토끼의 코, 산타클로스 등 사물에 입혀진 색깔들을 나열하는데, 로스코가 내뱉는 레드는 동맥에 흐르는 피, 생명 같은 뭔가에 연관 돼 있는 정신을 담고 있다. 드레스덴에 대한 야간 폭격, 루소의 태양, 들라크루아의 깃발, 엘 그레코의 망토 같은 그 화가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것들에서도 유추 할 수 있다. 로스코가 왜 레드에 천착하게 됐을까. 그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근원을 찾아가려 하지 않았을까.”

-로스코는 블랙이 레드를 삼킨다는 걸 두려워한다. 이 문장은 어떤 의미로 해석했나
“레드를 근원이라고 봤을 때 블랙은 근원이 흔들리는 거다. 그런데 화가의 내면을 생각하면 거기에 대한 정의가 어렵다. 배우는 공동체로 움직여야 한다. 상대가 있어야 하고 팀이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덜 외롭다. 그런데 그림은 혼자 작업해야 한다. 자기 정신세계를 담아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일 때 정말 막막할 것 같다. 배우는 무대에서 홀로 서지만 배우 혼자 할 순 없다. 배우가 있기까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에 각자가 존립해 있어선 안 되고 서로 정신이 교류가 돼야 한다. 크게 보면 결국은 그림을 그리는 거나, 배우로 무대에 서는 게 궁극적 차이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화가의 그런 외로움은 있었을 것 같다. 그 마음이 극중에서 블랙이 레드를 삼킨다는 두려움으로 드러난 것으로 봤다.”

-배우로서 언제 외롭다고 느꼈나?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사람이 섞여 있을 때 외로운 적이 있다. 글쎄. 뭐라고 딱히 규정할 순 없는데 <도마의 증언>이란 연극 할 때가 떠오른다. 젊은 나이인 21세에 드라마센터에서 공연을 할 때였는데,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도마 역을 했다. 주인공을 빼고 나머지는 엑스트라 식으로 거의 대사가 없는 작품이다. 그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독백을 하는데...그 어린나이에 세상에 혼자 남겨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느낌이지?’ 무서웠다. 간혹 가다 분장실에 혼자 앉아있을 때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 예술의전당 분장실은 크지만 조그만 분장실에 앉아 있다 보면, 거미줄이 계속 연결 된 게 보인다. 그 거미줄이 교차하는 꼭지점들이...그 하나 하나의 점들이 나 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뭘까. 아마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외롭다. ‘지금 내가 내가 아니다’란 생각.”



■ “배우로서 길들여지지 않으려 한다”

-로스코는 상업적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갈등을 겪게 되는데, 배우로서 상업 연극 제안이 들어온다면 어떨 것 같나?
“‘상업 연극이다 아니다’에 대한 구분을 잘 모르겠다. 제 기준이 있다면, 연극을 통해서 남에게 위안이나 기쁨, 치유를 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자이다. 어릴 때 그런 목적으로 극단 증언에서 연극 작업을 시작 했다. 그 다음엔 이 시대의 고민을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연극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선택한 단체가 극단 연우무대였다. 이 조그마한 반도의 땅덩어리에 태어나서 이 땅의 뿌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는 집단들과 연극을 하고 싶었다. 번역극 보다는 창작극이 우리네 정서와 맞다고 생각해서 그게 작품 선택의 기준이 됐다. 기획사가 난무하면서 작품을 선택할 때 예전의 동인제 시스템, 공동체적인 작업 환경은 많이 사라졌지만 내 기준은 변함 없다.

영화가 자본의 논리로 움직인다고 말 하는데 연극도 그렇게 가고 있다. ‘연극이 어떠해야 하나?’ 어려운 고민거리이다. 어디까지가 상업주의인가? 잣대도 애매하다. 기본적으로 연극은 재미있어 한다는 원칙엔 변함 없다. 진지함을 추구하는 연극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재미있어야 한다. <레드>에서 두 남자가 어려운 말들을 1시간 40분 동안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어서 재미없을거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절대 재미없는 작품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쉰세대와 신세대의 부딪침 그 속에서 뭔가가 찾아질 거다. 로스코의 말이 어처구니 없고 어이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뭔가가 있다.”

-모 연극 배우가 요즘 볼 만한 연극이 없다고 말했다. 연극 배우로서 요즘 올려지는 연극에 대해서 한마디 한다면?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그런 코드에 맞게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예술가들이라면 그것 말고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 봐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아마도 그런 작품을 선택 하려고 애를 쓰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작업을 하는 걸 나쁘게 바라보는 건 아니다. 단 누구를 의식해서 만드는 작업 말고, 정작 나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보여 주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다들 보기 편한 연극을 올리는 어느 한 편에서는 또 다른 작업을 하는 극단이나 공동체들이 꾸준히 있어줬으면 한다. 그런데 그 연극 배우에게 연극 <레드>보라고 말하지 그랬나.(웃음)”

-10년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연극을 통해 끈질기게 묻고 싶은 건 ‘초등학교 바른생활에 나와 있는 ‘자아실현’ 즉 인간이 되고자 한다.‘고 답했다. 다시 10년이 흘렀다. 연극을 통해서 끊임없이 묻고 싶은 화두는 그대로인가
“내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창피하다. 배우를 하는 건 나란 존재에 대한 확인이다.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내가 평상시에 드러내는 행동이나 말투가 나로 규정지어질 수 있을텐데. 정말 그게 그 사람인가? 그 사람의 본질인가? 남들이 인식하고 있는 그 모습이 나인가? 에 대한 고민이다.

배우를 하는 건 흔히 다른 인생을 살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하는데 어떻게 다른 인생을 살 수 있겠나. 어쩌면 배우가 보여 주는 그 안에 그 사람이 (감춰놨던) 성격, 성향, 인생, 등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활규범이나 행동양식, 행동반경의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밖에 살 수 없었던 거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틀을 벗어난 각자 안에 존재하고 있는 성향, 성격, 열망, 의지, 그런 것들을 ‘배우’를 통해서 표출을 해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러면서 그 밑바닥에 있는 나란 존재에 대한 근원 같은 걸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배우 일을 하고 있다. 로스코도 그런 생각이지 않았을까.”

40대에 만난 강신일, 50대에 만난 강신일은 같은 듯 달랐다. 단단한 심지는 그대로지만 좀 더 부드러운 여유가 넘쳤다. 10년 뒤 다시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배우 중 한 명이다. 인터뷰 말미 강신일은 ‘배우로서 길들여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에 비해 날 알아봐주는 사람이 많아졌다? 스스로 유명해졌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의미도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스타대접을 받고 찾는 사람 많아지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을거다. 그런데 길들여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인간이란 게 복잡하고 마음은 미묘하게 요동치니 한결 같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은 그거지만, 늘 복잡한 이 마음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 계속 그 마음을 눌러 다스리고 갈등을 가라앉히려고 애 쓴다. 연극을 하면서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거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허영옥, 신시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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