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뮤지컬 <위키드> 엘파바 배우 박혜나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대극장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았는데 부담되진 않느냐?’란 질문을 받아요 ‘과연 어떻게 잘 하길래?’란 의미로도 볼 수 있는데... 글쎄요. 제가 캐릭터가 안 잡히고 준비 되지 않았다면 분명 부담이 됐겠죠. 그런데 다른 의미의 부담이라면 비생산적인 걱정 아닐까요. 중요한 건 <위키드>란 작품이 잘 만들어지도록 하는 건데, 그 외 다른 걱정은 배우가 배우 자신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죠. 처음엔 이런 공연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감격이었어요. <위키드>란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뻤고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공연의 막이 오른 뒤에는 끝까지 하루하루 최상의 공연이 나올 수 있도록 ‘엘파바로서 살아야 해’, ‘변질되는 게 없게’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했어요.”

2003년 10월 브로드웨이 초연 이래 현재까지 10년째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뮤지컬 <위키드>는 평생 한 번도 극장에 발을 들여 놓지 않은 사람조차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금세기 최고의 히트작이다. '8세부터 80세까지 사랑 받는다'는 <위키드>의 ‘8 to 80’, 법칙 또한 유명하다.

54번의 무대 체인징, 350벌의 의상, 11.4m의 거대 ‘타임 드래곤’의 화려한 매커니즘은 물론 고전 ‘오즈의 마법사’를 뒤집은 센세이셔널한 스토리와 깊이 있는 인생철학까지 담아낸 상상력의 산물, 그래미상 수상은 물론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한 중독한 강한 음악의 완벽한 하모니가 오랜 기간 사랑 받는 이유다. 2013 <위키드> 한국어 초연이 확정됨에 따라 세간의 화제가 된 엘파바 역 배우 박혜나를 만났다.

■ 넘버 이상으로 드라마가 좋은 작품 <위키드>

-<위키드> 내한 공연을 보며 무슨 생각이 먼저 들었나
“넘버가 좋다. 무대가 화려하다. 처음엔 그런 면이 더 임팩트 있게 다가왔어요. ‘라이선스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부담되지 않느냐?’란 질문이라면, 이런 공연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 감격이고 존재 자체로 기뻤다고 말 할 수 있어요. 관객이 아닌 배우로서 작품과 함께 하고, 한국어 대본으로 보면서는 ‘이게 이런 내용이었어?’ ‘10년간 1위를 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위키드>가 넘버 이상으로 드라마가 좋은 작품이었구나’란 생각을 갖게 됐어요.

전 공연의 뿌리는 드라마라 생각하는데 정말 <위키드>는 드라마가 단단한 작품입니다. 내한 공연을 보면서는 아마도 저 또한 그런 기존의 뮤지컬처럼 흘러가듯이 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면, ‘한국어 버전 <위키드>는 위키드 내용 자체를 더 잘 전달 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한국 공연장에서 한국에서 태어난 배우들이 한국말로 하는 공연이니까요. 그렇게 때문에 ‘한국어 버전이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겠구나. 그 안에 들어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잘 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 위키드 대본을 공부하면서 새롭게 마음속에 들어온 장면이 있다면
“흘러가는 대로 이해를 했다는 게 흐름만 알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깊게 알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배우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내용은 다 이해하면서 봤어요. 직접 이 작품에 발을 담그고 하다보니, 이 전엔 ‘엘파바와 글린다가 춤을 추면서 서로를 이해했구나’로 바라봤다면, (직접 엘파바로 무대에 서면서는)진짜 글린다의 눈빛을 보고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그녀가 이 춤을 따라해주길 바라고, 사과를 받아달라고 온 몸으로 표현한다는 식으로 좀 더 깊이 표현하게 되는 거죠. 드라마의 구멍 그런 건 없었고요. <위키드> 안에서 살다보니 점점 더 깊이 있게 들어가는 것도 있어요. 상황도 더 구체적인 것을 만들어 제 안에서 타당성과 정당성을 찾아갔어요. 제가 비어있는 상태로 무대에 서면 관객들도 못 느낄 테니까요.”



-엘파바란 캐릭터를 만들어가면서 어떤 이미지를 먼저 그려봤나?
“아웃사이더요. 엘파바가 처한 상황에서 비뚤어진 면이 없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초록색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고 집안, 그리고 밖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해요. 그런 평가를 받으며 삶을 살다보면 ‘비뚤어짐’이 생기겠죠. 또 정의롭고 똑똑하고 용기 있고 동물을 사랑하는 인물, 약한 자를 사랑하고 자기가 믿고 있는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인물이요.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뚤어짐’이 열등감에서 오는 삐딱한 행동, 신경질적이고 화가 나는 행동과는 다른가?
“엘파바에 대한 다른 이들의 평가가 한두 해 이어져 온 게 아니에요. 이 아이에겐 익숙한 일이었겠죠. 하지만 초록색 피부를 지녔다고 해서 스스로 꿀릴 게 없는 아이죠. 엘파바의 시선에는 그들이 그다지 높게 보이지 않아요. 자기가 인정하지 않는 그들이 본인을 따돌리고 무시한들 그다지 피해 받거나 상처받는다 생각하지 않는 거죠. 자기 나름의 자아가 그로 인해 자아가 더 단단해졌다고 할까요. 물론 자기가 인정하는 사람이 무시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겠죠.

극중에서 엘파바는 계속 책을 읽어요. 동선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엘파마의 중요한 캐릭터를 알게 해준다고 봤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엘파바는 책을 읽었을 겁니다. 책을 통해 다방면으로 지식을 쌓았겠죠. 타인과 교류가 없어 직설적인 게 있는데 틀린 면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놀리는 듯한 시선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걸 뛰어넘고 신경 쓰지 않은 인물로 봤어요. 신경질적인 아이라기보다는 똑 부러진 아이죠. 타고난 성격도 강한 인물이구요.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란 노래를 부르고, 앞날에 불행이 뻔히 보이는데 어려운 결정을 내리잖아요. 분명 바꿀 수 있었음에도... 편한 길이 있었을텐데. 옳지 않은 길은 절대 따라가지 않아요.”

-엘파바가 인정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그녀가 처음으로 소통하고 인정했던 인물은 딜라몬드(조정근) 교수님이죠. 그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도 그렇고, 처음으로 맞닥뜨린 곳은 쉬즈대학교입니다. 기회의 공간이죠. 하지만 곧 ‘쉬즈 학교 또한 다를 바 없구나’란 걸 알게 돼요. 믿고 의지하고 동경했던 마법사들에 대한 배신감이 더 컸겠죠. 그래서 아이들한테 따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학교에서 유일한 동물교수인 딜라몬드와 소통하게 돼요. ‘엘파바 말이 맞다’며 처음으로 인정받는 장면도 있죠. 또 교수님도 유일한 존재이고, 엘파바도 초록색의 유일한 존재잖아요. 사제기간보다는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들어요.”



■ 묘하게 닮은 세 친구, 엘파바와 글린다 그리고 피에로

-글린다(정선아 김보경)도 엘파바가 인정하는 인물이다.
“무도회에서 춤을 출 때 엘파바는 글린다를 인정하게 돼요.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인 동생 네사로즈(이예은)가 글린다에 대해 칭찬을 하잖아요. 너무 감사한 사람이라고. 처음엔 동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줘 글린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졌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글린다에 대한)내 생각이 틀렸나? 돌아보게 됐겠죠. 엘파바는 늘 동생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요. 초록 피부를 가진 엘파바가 태어나자 엄마는 또 그런 딸이 태어날까봐 걱정이 돼서 임신 중 우유 꽃을 계속 씹어서 동생이 다리가 불구로 태어나요. 엘파바는 거기에 죄책감이 있어요. 물신양면으로 동생을 도우며 그렇게 동생 곁에서 살아온 언니죠. 아무리 부모가, 또 가족이 사랑해준들 고쳐지지 않고 나아지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그런 동생을 옆에서 계속 지켜봤겠죠. 그러던 중 동생이 계속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 거죠. 그러니 당연히 글린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죠.

물론 그 장면에서 처음에 글린다는 장난을 치며 마녀 모자를 줘요. 하지만 글린다는 악한 인물이 아니라 어쩌면 단순한 인물일 수 있어요. 글린다도 싫어했던 엘파바 도움을 받아 자기가 원했던 마법 수업을 받을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런 과정을 거치며 두 친구는 서로의 진정성을 느낀거죠. 그 춤 장면에서 서로의 진심이 통하게 되요. 그 진심으로 인해 둘의 마음이 교감하게 되고요. 같은 방을 쓰게 되면서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 하게 되요.”

-엘파바와 글린다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엘파바를 초반엔 싫어했지만 글린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엘파바 아니었을까요. 엘파바 입장에서도 지금까지 글린다처럼 다가온 친구가 없었어요. 글린다는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지 않아요. 둘은 묘하게 닮은 부분이 있고 다른 부분이 있어요.”

-엘파바와 피에로(이지훈 조상웅)는 어떻게 인연의 끈이 이어지게 되나
“엘파바에게 있어서 피에로는 많은 무리의 학생 중에 그냥 잘생기기만 한 부자이자 멍청해 보이는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동물이 위험에 처했을 때 피에로가 먼저 동물 우리를 들고 도망을 쳐요. 나중에 ‘엘파바는 사악한 마녀이다’고 다들 그렇게 말해도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고 밝히려고 해요. 어쩌면, 피에로는 엘파바에게 자신이 감춰 논 진정한 모습을 들켜서 인연의 끈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대사 중에 그런 게 있어요. ‘아니면 네가 이렇게 불행하겠어?’ 란 엘파바의 말에 피에로가 놀라요. 다른 친구들은 자신을 보고 ‘최고, 숭배, 잘 놀아’ 같은 그런 대사를 하는데 엘파바만 피에로 내면의 쓸쓸함을 본 거죠. 자신의 진정성을 본 사람을 처음 만났다고 느끼고 거기서부터 둘의 교감과 인연이 시작됐다고 봤어요. 그녀가 한 선택에 피에로도 자극을 받았고. 그녀가 한 행동들을 보며 그녀의 매력에 빠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더블 캐스팅 된 배우 옥주현과는 디테일한 해석이 다른 것 같다.
“연습 때는 같은 역 하는 배우 연기를 보게 되는데, 막이 오른 뒤엔 다른 스케줄도 있고 해서 많이 보지 않았어요. 초반엔 저 또한 캐릭터를 완성해야 하는 시기라 외국 공연도 보지 않았고요. 자기 캐릭터가 세워지기 전에는 남의 것을 따라하지 않도록 신경 썼거든요. 좋은 예로서 참고할 수도 있는데, 제 것이 단단해지지 않았을 때 보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봤어요. 창작 작품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몰라도 인물 안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걸 찾아내서 완성시키고 싶었거든요. 그런 점이 각자만의 인물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요.”



■ “엘파바의 진심은...글린다가 내 삶에 위로가 되어줘서 감사”

-첫날 공연 커튼콜 때 울었다.
“지금까지 준비해 온 걸 잘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는데 관객들 반응이 잘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안 보고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커튼콜에서 전원이 기립 박수를 보내주는데 그 첫 공연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커튼콜 나가기 전 뒤에서 모니터를 보는 데 거기서부터 눈물이 났어요. 사실 제 팬들이라고 해봐야 앞 두 세 줄도 안됐을 텐데 말이죠. 첫 공이라 많이 부족했을텐데 감사했죠. 연습이 빡세서 힘든 기억도 떠올랐고요. 브로드웨이에서 원 캐스트를 놓고 7주 연습을 하는데, 저희는 더블인데다 충분하지 않은 시간 동안 해야 할 게 많았어요. 첫 공연에서 실수도 없었고, 다친 분도 없었고 관객 분들도 많이 와 줬고....다 감사했어요. 빠듯한 일정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첫공을 무사히 올렸다는 게 기쁘고 첫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도 없었어요. 관객들도 응원해주는 느낌이 들어 감사했죠. 어깨가 무거워지고 책임감 많이 생겼고요.”

-해외 크리에이티브 팀들과의 연습이 힘들었나
“수많은 노트와, 외워야 할 대사, 연기, 댄스 등 저희에게 너무 많은 소스들이 오는데 몸에 익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올해가 10주년이라 곳곳에서 <위키드>가 공연되는 만큼, 리사 구일 연출님을 비롯해 안무 등 해외 크리에이티브 팀은 한국뿐만 아니라 멕시코, 일본 등 세계를 돌아다녀야만 했어요. 물론 음악은 켈리 음악감독 한 분이 계속 가르쳐주셨고요. 크리에이티브가 상주해 있는 게 아니라 파트별로 돌아가면서 오는 상황이라 배우들이 힘든 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디테일한 디렉션을 주고 따뜻하게 챙겨줘서 오디션부터 연습까지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을 받았어요.”

-<위키드>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장면을 꼽자면
“엘파바의 여정을 살아봐서 그런지 듀엣곡 ‘포굿(for good)’ 장면에서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데 혹시 글린다를 보내기 싫은 마음이 눈물 속에 포함 돼 있나)보내야 해요. 보내기 싫진 않아요.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아요.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담겨있는 눈물이에요. 그 장면 자체가 엘파바가 굳은 결심을 하고 그리머리(Wicked GRIMMERIE) 마법서를 전달해주면서 글린다에게 책임을 지워주는 장면이에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엘파바의 마음이 복잡해요. 다만 ‘이 삶을 살면서 너란 존재가 곁에 있어줘도 너무 행복했다. 너란 존재가 나랑 만나 우정을 나눠서, 친구가 되어줘서, 내 삶에 위로가 되어줘서 감사하다.’란 의미죠. 표현의 한계가 있어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마음이 들어요. 그 장면에서 관객 분들도 많이 울어요. 관객들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어서 더 눈물이 나요.”

-슬픈 공연을 보면 몰입해서 우는 편인가
“일부러 관객이 울도록 만들어 논 드라마를 보면 화가 나면서도 눈물이 날 때가 있긴 해요. 작품 안에 진심이 있으면 울어요. 남이 울면 같이 우는 것도 있고요. ‘포굿’ 장면에서 글린다가 울긴 하는데 저도 꺽꺽 목이 메어서 노래 부르는 게 힘들어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뮤지컬이란 게 음표 하나를 더 기가 막히게 부르는 것 보단 진심이 더 중요하잖아요. 노래 자체가 중요하다면 콘서트가 더 낫지 않을까요. 물론 그걸 부르는 이유와 감정이 잘 전달 되어야 하죠. 감정에만 치중해 노래를 못 들어줄 정도로 하면 절대 안 되죠. 그건 기본이구요.”

-배우로서의 능력치 외 필요한 건 진심이라는 의미인가
“배우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심을 가지고 임해요. 자기 일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말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일 자체를 하면서 진심이 우러난다고 생각해요.”



■ “대극장 주역 부담...배우가 자신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쓸데없는 걱정”

-뮤지컬 배우를 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춤 노래를 좋아하던 아이였지만, ‘이런 건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 내 일이 아니다’란 생각이 있었어요. 저희 집이 공무원 집안으로 평범해요. 예체능 아이들은 소위 잘 노는 아이들처럼 달라보인다는 선입견도 있었나봐요. 뮤지컬이란 장르에 대해 모르는 대개 평범한 인문계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원하는 대학교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면서 뮤지컬 워크샵을 접하게 되고 구소영 음악감독님을 알게 됐어요. 노래와 연기를 다 배울 수 있다는 말에 워크샵에 가게 된 거였죠. 그 계기를 통해 뮤지컬에 대해 잘 알게 되고 대학교도 국민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열정이 가득하신 제갈윤 선생님 수업에 빠져들어 4년간 지냈고, 제가 잘 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처음 만났어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제 의지로 다 온 건 아니지만 원하는 대학을 가서 재수를 안했다면... 그 분을 못 만났을 것이고. 저에겐 다 감사한 인연인거죠. 삶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뮤지컬은 저에게 운명처럼 다가왔어요.”

-대학교 졸업 후에도 계속 뮤지컬 배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생긴 건가
“대학교 졸업 후에는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뮤지컬 배우라는 게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불확실성이랄까. 공무원 아버지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죠.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 하지만 생각 할수록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져야지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최선을 다한다면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일을 하다보면 돈이 따라오는 것이지 좇아가는 게 아니잖아요. 모든 분야에서 열심히 하면 돈은 따라오고, 더 중요한 건 제가 잘 하는 걸 하는 것.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꿈이 있다는 것. 인간으로서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게 됐어요. 모든 상황들도 좋게 맞아 떨어져서 감사한 부분도 있고요.”

-중소극장 주연 혹은 조역 배우 경력은 쳐주지 않나. 2006년 <미스터 마우스>로 데뷔해서 9년차 배우이다. 박혜나 배우가 신인도 아닌데 <위키드> 캐스팅이 발표되고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었다.
“‘대극장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았는데 부담되진 않느냐?’란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저에 대해 모르는)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잘 하길래?’란 의미로도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해 왔던 역할들도 하나의 역할이었고. 장소가 다른 것뿐인데 부담이라면? 글쎄요. 제가 캐릭터가 안 잡히고 준비 되지 않았다면 분명 부담이 됐겠죠. 그런데 대극장 작품이고 유명작품이라서 걱정 아닌 부담을 느꼈냐. 신경이 쓰이냐. 이런 의미의 부담이라면 비생산적인 걱정 아닐까요. 중요한 건 <위키드>란 작품이 잘 만들어지도록 하는 건데, 그런 걱정은 배우가 배우 자신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죠. 물론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연습 스케줄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위키드>란 작품을 하는 것에 기뻤고 준비하는 데 바빴던 시간들이었어요.”

-다른 시각에서 보면 박혜나 배우가 대극장 뮤지컬 주인공으로 섰던 배우라 이젠 중소극장 공연에선 잘 서지 않을 거란 우려도 가질 수 있다.
“중소극장 무대에 안 선다? 분명 그러지 않아요. 그 의미가 뭔지 알겠죠? 좋은 작품이 있는데 그걸 마다하겠어요? 박혜나가 김혜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전 <위키드>의 엘파바를 한 배우이거든요. 배우는 무대에 서는 게 중요하지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크기나 사이즈 보다는 그 작품이 좋은 배우들과 팀원들과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샤롯데 씨어터가 대극장치곤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요. 관객들 동공도 다 보여요. <위키드>가 대극장 작품이지만 소극장 만큼 긴밀하게 전달이 되는 작품이라 좋아요.”



■ “변질되지 않는 엘파바로 살아야 해!”

-<위키드>가 개막하고 한 달 반 정도 시간이 지났다.
“연습 때부터 달려와서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첫 연습부터요. 물론 쉬운 연습은 없겠지만 이 작품 정말 쉽지 않았거든요. 초반엔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러다 공연장에 들어와서 어느 정도 시간이 생기다보니 체력적으로 좋아졌어요.

이 공연은 ‘나쁜 마녀라고 알려진 초록 마녀가 선한 마녀가 아닐까?’란 생각의 전환을 한 작품인데 그 안에 많은 내용이 담겨있어요. 한 길로 흘러가는 위키드만의 이야기죠. 대사 하나 하나에 전달하는 게 많기 때문에 내적으로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안 돼요.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어요. 집중하기 위한 긴장이죠. 해 내야 할 게 많아서 공연 전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물론 그건 공연 전 상태이고, 작품이 워낙 잘 짜여져 있어서 어느 순간 2막이 끝나고 커튼콜 시간이 돼 있더라고요. (웃음) 이젠 힘들기보다 끝까지 하루하루 최상의 공연이 나올 수 있도록 컨디션 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엘파바로서 살아야 해’, ‘변질되는 게 없게’ 이런 생각이요.”

-인터미션에도 배우가 쉴 수 없는 공연이다.
“큐가 정말 많아요. 무대감독님 책자를 보면 두께가 어마 어마해요. 무대 감독님에게 감사드려요. 배우들은 인터미션 시간에 의상, 가발과 메이크업 체인지를 하느라 바빠요. 엘파바는 2막에선 조금 더 세월이 지나서 그동안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흔적을 보이기 위해 분장을 조금 진하게 해요. 인터미션을 그렇게 보내는데 분장 끝나면 바로 2막이 시작하죠. 그런데 전 2막 때 엘파바가 더 예뻐 보여요. 그런 점도 재미있어요.”

-엘파바랑 조금 더 가까운 성격인가
“생각, 걱정, 고민이 많은 스타일이에요. 종교적인 이유도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친절 하려고 노력해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와의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우연이든 필연이든 누군가를 만나게 된 건 그 사람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인간 박혜나로서 깊게 관계를 맺을 땐 신중한 거 같아요. 그 차이가 있어요. 관계가 깊은 사람이 저에게 뭔가 잘못을 했다면 아마 그 사람에게는 상처를 받을거에요. 반면 다른 분이 실수를 저질렀을 땐 상처받지 않아요. 그게 마음을 열었나 안 열었나 차이인가? 제가 마음을 열고 깊게 다가간 사람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는 것 같아요.”

-활발하기 보다는 내성적인 편인가
“내성적인 게 아니라 항상 침착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런 성격을 말로 표현하면 그렇게 될 수 있겠네요. 소심 내성적인 사람이라? 음. 소심해서 삐진 적은 없어요.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배우가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다? 제 생각엔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 배우란 일을 못한다고 보진 않아요. 소심하고 내성적인 데 남들 앞에서 말을 못하거나, 공황장애가 있으면 배우를 못하겠지만. 내성적이고 침착한 성격이 배우를 못하진 않겠죠.”

박혜나는 ‘한 편의 공연을 통해, 캐릭터를 통해서 자기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뮤지컬을 보고 <위키드>란 작품을 보러 가는 이유요? 일단은 호기심 아닐까요. 인간의 발전은 호기심에서 온다고 보는 입장이거든요. 흔히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지만 공연은 그렇지 않잖아요. ‘관객에게 여기만 보세요. 저기만 보세요’ 할 수 없죠. 관객들이 자신의 눈으로 판단하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게 공연이란 장르 같아요. 진심으로 살아있고. 그런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전달 받을 수 있어요. 무대를 통해서 뭔가 대신 해소 해주는 인물도 만날 수 있어요. 감성적으로 충만해지고, 마음에 있던 응어리 어떤 것들도 해소되고 그래서 극장에 오는 게 아닐까요. 무대, 기술, 노래, 연기 메카니즘이 잘 조합된 장르가 뮤지컬이죠. 좋은 뮤지컬은 사랑 받는 이유가 분명해요. 저희 <위키드> 공연을 보면서 충분히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자기 삶을 되돌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설앤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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