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엔 욕망의 해방감을 주는 로이가 있어요”
-[인터뷰] 뮤지컬 <아가사> 로이 배우 박인배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타인의 고통에 아파하던 아이인 아가사가 성인이 돼 살인을 다루는 추리소설가가 돼요. 빨간색은 두려움과 욕망을 동시에 담고 있는 색인데 그런 의미에서 건맨이란 존재가 그녀에겐 ‘길티 플레져’로 다가왔을거라 봤어요. 로이란 인물은 아가사가 가지고 있는 결핍에서 출발해요. 한번쯤 해보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욕망’에 가깝죠. 아가사에게 로이는 마약 같은 존재에요. 마약이 약이기도 하지만 많이 쓰면 독약이 되듯이, 어떤 해방감을 주기도 하면서 중독되면 위험한 존재요. 누구나 마음속에 로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정직하게 대면하고 인정하는 부분이 어려운거죠. ”

김수로 프로젝트 8탄 뮤지컬 <아가사>(한지안 작가, 허수현 작곡, 김태형 연출, 안무 이현정)는 추리 소설계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궁 속 실종사건을 다룬다. 추리극을 내세우기 보다는 ‘로이’란 존재를 등장시켜 한 여인의 내면 세계를 따라가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추리 소설가를 꿈꾸는 소년 레이몬드가 아가사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숨겨왔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독 전문가 로이 역 배우 박인배를 만났다. 흥미로운 점은 로이 역 배우 박인배가 “오페라 <라보엠> 속 ‘마르첼로’를 꼭 한번 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내 비쳤다면, <아가사>를 함께 관람한 마르첼로 역 오페라 가수는 “‘로이’란 인물을 꼭 연기 해보고 싶다”고 말한 점이다.

■ “로이는 가까이해선 안 될 것 같지만, 가지고 놀고 싶어지는 존재”

-본 공연에 들어가기 전 프리뷰 기간 동안 수정 과정을 거쳤다고 들었다. 로이 넘버가 추가된 건가?
“곡을 조금 수정한 부분은 있지만 없던 곡이 생기진 않았어요. 또 로이의 빨간 의상이 바뀌었어요. 애착이 갔던 의상인데 바뀌어서 조만간 나오게 될 새로운 의상을 기대 하고 있어요.”

-‘로이’의 빨간 의상에 애착이 갔던 이유는?
“처음 그 의상을 받고 걱정이 많이 됐던 게 사실입니다. 기괴함을 극한까지 몰아붙인 디자인과 재질 그리고 컬러까지, 누가 입어도 소화하기 힘든 디자인이지만 괜히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이 녀석, 나 박인배가 한번 소화해주겠어!"라는 생각이요. 애착보다는 집착에 가깝다고 봐야죠”

-처음 대본을 읽고 ‘로이’란 인물과 닮은 유명 캐릭터 혹은 이미지 같은 게 있었나?
“내면의 욕망이 분열된 인격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제일 먼저 지킬박사의 또 다른 인격인 하이드가 떠올랐어요. 또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파우스트 박사에게 세상의 온갖 쾌락을 맛보게 하는 메피스토 가 떠오르기도 하더라구요. 주체와 분열된 대상의 성별이 다르다는 점에서는 영화 <싸이코>의 노먼 베이츠도 약간 연상됐어요.”

-‘로이’란 인물을 만들어 나가기 어렵진 않았나?
“어려운 점이라기 보다는 ‘매력적인 남자, 치명적인 매력남’ 이런 수식어가 붙어있는 역할을 맡을 때 불편 한 게 있어요. 연습 들어가는 단계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죠. '스스로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 연기가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로써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죠. 살면서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어 본 적은 있지만 그 방식이 모두에게 통한다고 생각하진 않기에요.”

-로이란 인물은 밀고 당기기 즉 ‘밀당’을 잘 해야 한다.
“그런 성격이 아니라 실제 연애를 잘 못해요. 수용 형도 마찬가지로 그런 게 고민이단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밀당을 하면 줄이 끊어져요. 너무 세게 당겨 줄이 끊어지거나 아님 줄을 놓쳐버려요. 그래서 연습 과정에서 어렵긴 했지만 다행히 관객들이 ‘로이’를 매력적으로 봐주셨어요.”

-배우들이 대체적으로 학창시절에 인기가 많던데
“배우들 중엔 이성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은 친구들이 많아요. 외향적인 성격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배우를 하는 경우도 많구요. 중고등학교를 남학교를 나와서 이성친구들을 접할 기회도 별로 없었고 여자가 마냥 두렵기만 했는데, 대학에 입학해보니 나를 좋아해주는 여자도 생기고 편지 같은 것도 받아보면서 '아 다행히 내가 그렇게 흉하진 않구나' 라고 안심하게 됐죠. 어릴 때도 그랬지만 누가 저를 좋아해준다면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거지 멋있거나 섹시해서 좋아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게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난 참 멋있고 섹시해’ 이게 얼마나 밥맛없는 생각입니까 ”

-로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로이가 상징하는 게 ‘독’이라고 생각하는데, 뭔가 가까이해선 안 될 것 같지만,
가지고 놀고 싶어지는 그런 존재요.“

-김태형 연출은 로이는 각자 마음 속의 살의, 욕망, 두려움 총체가 투사 된 존재라고 봤다. 아가사(배우 배해선 양소민) 에게 로이는 어떤 존재일까.
“글쎄요. 어려운 질문인데 마약 같은 존재 아닐까요. 마약이 약이기도 하지만 많이 쓰면 독약이 되듯이, 어떤 해방감을 주기도 하면서 중독되면 위험한 존재요. 이 작품에서 로이가 아가사에게 준 경험들이 일종의 환각일 수 있는데, 로이가 현실적인 존재가 아니다 보니, 마약이 주는 경험과 비슷할 것 같아요. 많은 이들이 엑스터시를 경험하고 싶은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요.

마약을 해보지 않아 어떤 기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간혹 마약 경험 사례를 읽어 보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질문의 해답을 주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미국에서 마약 붐이 불었을 때 그 시점인데 재미있는 사례들이 많았어요. 강력한 환각제인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를 투여하고 시각적인 왜곡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두뇌활동이 활발해진 경험을 얻기도 한 대요.

배우 브래들리 쿠퍼, 로버트 드니로가 나왔던 영화 <리미트리스>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와요. 뇌를 100% 사용할 수 있는 약을 먹은 작가가 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요. 쉽게 말해 천재가 되요. 약이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 두뇌를 끌고 온 거라고 볼 수 있죠. 또 어떤 건축학자가 약을 복용하고 지난 백 몇 년간 풀지 못한 건축학적인 수학적 난제를 풀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

로이를 그렇게 마약에 비유한다면, 아가사도 로이를 통해서 자기가 항상 갖고 있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험을 해요. 작가로서 필요한 실마리도 찾게 되구요. 아가사에게 로이는 마약 같은 존재인거죠.“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영화나 책 등을 통한 자료 서치를 많이 하는 편인가?

“경우에 따라 굉장히 많이 하기도 하고 전혀 안하기도 합니다. 신화 혹은 고전적인 주제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나 문학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캐릭터를 연기할 경우엔 최대한 많은 자료를 읽어보려고 노력을 해요. 왜냐하면 유명한 캐릭터일수록 배우가 표현해줘야 하는 보편적인 기대치가 존재하거든요. 그걸 알아야 그걸 뛰어넘는 나만의 색다른 해석도 가능해지는거죠. 또 어떤 경우엔 캐릭터가 이야기 속 한 인물로써 존재하는 걸 넘어서서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적 알레고리나 시대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왕이면 그런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 “아가사에게 건맨은 길티 플레져”

-로이는 왜 기괴한 빨간 색 의상을 입고 나온다고 생각했나? 스트리크닌이란 환각제를 먹은 아가사가 로이를 환영으로 깨닫게 되면서 빨간 옷으로 입고 나온다고 보나?
“제가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로이가 꼭 약을 통해서 나온 건 아니라고 봤어요. 공연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작품초반에 심인성 기억상실증에 관한 흐릿한 영상이 나와요. 우선 그 정보에 무게감을 실어주기 위해선 아가사 크리스티가 11일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이유는 약물이나 외부의 영향이 아니라 극심한 스트레스 혹은 정신적 충격이 원인이었다고 보는 게 맞기 때문에 저 또한 스트리크닌에 의해 나타난 환각이 11일간 이어진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리고 건맨의 의상이 빨간 색 인 이유는 어린 시절 아가사의 기억과 연결 돼 있는 부분이죠. 추측해 보자면 타인의 고통에 아파하던 아이인 아가사에게 죽음과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은 즉각적인 불안함을 불러일으키는 색 이었겠죠. 그러나 살인을 다루는 추리소설가가 된 성인의 아가사에게 빨간색은 어찌보면 두려움과 욕망을 동시에 담고 있는 색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맨이란 존재가 그녀에겐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죄책감과 쾌감이 동반하는 일)로 다가온 것으로 봤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빨간색 의상은 이제 무대에 등장하지 않아요.“

-무대 위에서 로이 일 때와 건맨일 때 설정을 다르게 두었나?
“베일이 벗겨지면서 정체성이 드러나는 캐릭터라 당연이 구별되는 지점이 있긴 해요. 그런데 말투나 테크닉적인 구분을 두는지는 애매해요.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패턴이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분석을 하는 부분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기 보다는 무의식 속에서 그렇게 된 부분이 있어요. 직감에 의존하는 부분도 있는데 배우들마다 직감의 형태가 달라요. 본능적인 연기라고도 표현 할 수 있는데, 이걸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말문이 막히네요.”

-걸음걸이나 호흡 등을 바꾼다는 배우 스스로의 설정 같은 건 없었다는 의미인가

“애매한 질문인데 결과적으론 구분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어느 정도 의도했는지 정확히 말하기가... 아직도 더 찾아가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로이가 100퍼센트 구축 됐다고 말하기 보다는 뭔가 변화의 여지가 있어요. 어느 정도 구별을 해야 하나? 아직은 찾아봐야 하는 부분입니다. 공연을 하다보면, 스스로도 변화하는 것도 있는데 그 부분이 딱 그 지점이에요.”

-마지막에 로이가 사라지는 건가?
“대사에도 있지만, 로이는 쉽게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런데 ‘로이’로서 제가 하고 있는 설정은 아가사한테 패배했다고 생각하고 잠깐 물러나는 거죠. 아가사가 건강한 정신력으로 절 무찔렀고, 전 아가사를 집어삼키는 데 실패 한거니까요. 하지만 로이는 언제든 아가사한테 나타날 준비가 돼 있어요.”

-연출은 아가사가 매번 작품을 쓸 때 마다 로이가 나왔을 것 같다는 말도 했는데, 로이 입장에선 어떤 생각이 드나
“그 이후의 아가사와 로이의 관계는 꽤 친해졌을 것 같아요. 일방적으로 휘둘린다기 보다는 공생관계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건 지금 생각난 이야기입니다.”

-그 말이 아가사가 좀 더 창작을 즐기면서 했다는 의미인가?
“계속 나왔다고 한다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품 끝에서 그렇게 암시를 해요. 어차피 로이가 외부존재가 아니라 아가사 내부, 즉 일부분이기 때문에 아가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통제 가능한 부분인거죠. 그래서 자기 마음속의 욕망, 괴로움, 이런 걸 정직하게 대면한다면, 그 순간부터는 통제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점에 누구나 마음속에 로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인정하는 부분이 어려운거죠. 누구나 다 그런 걸 갖고 있다고 봐요. ‘각자의 믿음’이란 것만 봐도 자기 체면을 오랜 기간 걸아놔서, 내가 나에게 속아있는 경우를 종종 봐요. 네. 그런 것도 일종의 로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옳다고 굳게 믿고 있는 거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믿지 않고 있었던 내면의 다른 마음이요.”

-배우로선 내면의 로이를 만난 적이 없나?
“그런 생각 보다는 ‘작품을 어떻게 만들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어요. 로이란 인물은 아가사가 가지고 있는 결핍에서 출발 하는데 전 그게 두려움보다는 ‘욕망’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한번쯤 해보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하고 싶은 거 웬만해선 거의 다 하고 사는 편이라 전 딱히 없었어요. 오히려 로이처럼 살고 있어요. 누구를 죽이거나 그런 게 아니라, 별로 일반적인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요.

저에게 (내면의)로이는 딱히 없어요. 가끔씩 그런 건 있어요.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가끔은 자기 안의 폭력성을 분출시키고 싶어해요. 그런 점에선 또 완전 로이네요. 아주 미운 선배나 날 괴롭히는 친구가 있다고 했을 때, 현실에서 주먹을 날릴 수 없지만 상상을 할 순 있겠죠. 상대에게 의자를 던진다거나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창피를 준다거나 하는 상상이요. 이런 상상들이 억압 아래서는 더 커질 수 있는데 전 그 상상이 제게 영향을 미칠 만큼 거대한 억압은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자유로운 집안에서 성장기를 보낸 것 같다.

“집안이 비교적 자유로웠어요. 또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서 어렸을 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진 않았어요. 물론 사람이니 스트레스를 받긴 받았겠지만 친구들을 통해 치유를 많이 많았어요. 같이 좋은 음악도 돌려 듣기도 하고, 미국 영화도 같이 보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것 같아요. 특별히 사춘기를 독하게 겪진 않았어요.”



■ 문학적인 세련미가 느껴지는 작품 <아가사>

-<아가사>란 작품의 어떤 점이 매력적 이던가
“작품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보니, 그런 점에서 반전의 열쇠가 되는 임팩트가 있어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너무 좋았던 건 대사가 상당히 문학적이고 고급스러움을 갖추고 있던 점이었어요, <셜록홈즈>에도 출연했지만 그것도 서스펜스가 있는 작품이고 플롯의 재미가 있어요. 이 작품은 문학적인 세련미가 느껴지는 대사들이 좋드라구요.

한국에서 드라마를 보면 너무 1차원적인 이야기만 오고간다든지, 너무나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들이 불만스러울 때가 있어요. 영어권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위트랄까. 이를테면, 우리는 옆구리 살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할 때 그들은 러브핸들이라고 말하죠. 일상 언어 곳곳에 위트가 숨어있어요. 저는 그런 언어적 사치를 부리는 게 당연한 사회에서 사는 걸 꿈꾸거든요. 그런 아름다움을 저희 대본에서 발견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죠.“

-<아가사>의 대사가 좋았다는 말인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 대사들이 있나

“대사가 꽤 아름다웠어요. 특히 아가사가 레이몬드(박한근, 김지휘, 윤나무) 에게 말하는 ‘미궁이라든지, 실뭉치라든지’ 하는 대사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작가가 추리소설을 쓰는 과정을 미궁에 들어선 용사에 비유한 부분이 특히 좋았어요. 아가사가 로이 앞에서는 맥을 못추지만 레이몬드 앞에서 만큼은 굉장히 멋지거든요. 어른스럽고 지적이고 유머러스함까지 느낄 수 있어요.

저는 작가들이 이야기의 기본적인 내용을 만드는 것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얼마나 문학적으로 또 시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뼈대를 만든 뒤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 건지, 그게 중요해요. ‘그 지점에서 저희 대본이 다른 작품보다 그런 아름다움이 있지 않았나’ 로이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에 이끌렸던 것도 있는데, 그 점에 끌렸어요. “

-아가사랑 왈츠 출 때 어렵지 않나? 어떤 생각을 하는가
“배우로서 어려웠냐는 질문이라면, 춤을 잘 추는 배우가 아니다 보니 어려웠어요. 모든 춤이 어렵긴 하지만 왈츠가 어려운 춤이고 귀족들 춤인데 그걸 아름답게 추려면, 정말 오래 연습 해야 할 것 같은 춤이라 생각했어요. 한 두번 연습 해서 우아하게 할 순 없겠던데요. 작품 안에서 로이로서 추는 왈츠에 대해 물어보신거라면, 굉장히 로이다운 춤 같아요. 즐거워요. 탱고를 출 땐 더 즐겁죠. 인간 박인배 입장에서 일단 쉬운 건 탱고 쪽이고, 하면서도 탱고가 좀 더 즐겁긴 해요.”



■ 3인3색 로이의 매력을 발견하는 시간

-오페라 가수랑 함께 <아가사>를 봤는데 박인배 배우 칭찬을 많이 했다
“칭찬 받을만한 행동이요? 글쎄요. 배우라면 많이들 그렇겠지만 저 역시 제 연기에 만족하지 못해요. 자신이 공연하는 영상이나 중간 모니터 영상을 보다 보면 다 바꾸고 싶을 때가 있어요. 자신이 자기 노래를 들으면 못 듣겠다는 그런 의미요. (진)선규 형이랑 (김)수용 형이 하는 ‘로이’를 보고 있으면 난 못하고 있다는 상대적인 그런 생각이 들어요. 칭찬을 해주셨다니 기분이 좋긴 하네요.”

-배우로서 더 발전하고 싶다는 의미인가
“배우가 (무대 위)자기 모습을 들여다볼 수 없어요. 태성적인 핸디캡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화가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고,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바로 읽어 볼 수 있듯 배우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물론 카메라가 배우를 바로 찍어줄 순 있는데, 즉각적 모니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렇다보니 전적으로 자신을 믿는 수 밖에 없어요. 어려워요. 다른 사람이 할 때 더 멋있어 보이구요. ‘나는 어떤가?’ 그런 반성의 의미입니다.

오랜 시간 배우로 살아온 분들을 보면, 자기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체크하고 있는 게 보이는 배우가 있어요. 자기 신체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그럴 때 굉장한 카리스마를 느껴요. 전 아직 그런 통제까지는 잘 안 되고 있어요.“

-수용 배우와 선규 배우가 좋은 본보기로 다가오나 보다.
“수용 형은 외모자체가 벨기에 사람 같아요. 진짜 서양사람 같이 보이죠. 그게 매력적인 요인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뭔가 무대 위에서 통통 튀는 매력이 있어요. 같은 대사를 해도, 제가 하면 느끼한 느낌이라면, 수용 형이 하면 청량감이 느껴져요. 또 선규 형이 하면 되게 살갑고 친근한 느낌을 줘요. 두 분 다 연기에 믿음이 가는 그런 느낌을 주는 배우죠.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볼 수 있지만, 배우들이 워낙 잘 하시고 있으니 제가 반성을 하게 돼요. 두 분 다 자기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아는 배우이고, 사람이 워낙 천사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어요.”

-선배들에게 ‘로이’란 캐릭터를 만들어 갈 때 도움을 받았나
“같은 역할을 하는 배우라면 기본적인 경쟁 심리가 깔려 있을텐데, 그런 마음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로이들 셋 모두 굉장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트리플 캐스팅 배우 모두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어요.

연습 때 보면서 상대의 좋은 걸 보면 바로 바로 말해줘요. ‘그 부분 재미있었다’고. 형들만 말 하는 게 아니라 ‘방금 형 좋았어’ 이런 식으로 저도 형들에게 바로 이야기해 줘요.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주는 분위기에서 연습하고 있어요. 서로 영향을 받고 많이 도움을 받아요. 물론 워낙 색깔이 다른 배우들이고, 자기만의 색깔만큼은 고집하면서 만들어갔어요.“



■ 오페라 <라보엠> 속 ‘마르첼로’에 대한 꿈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어쌔신>, <맨오브라만차>, <투란도>, <지킬앤 하이드>, <쉬 러브즈 미>, 연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등에 출연한 배우지만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진 적이 있다고 들었다.

“한 때 성악가가 되고자 3년 정도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어요.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뒤 성악과 입시준비를 한 거죠. 그런데 합격은 했는데 진학은 하지 않았어요.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다시 대학교 4년을 다녀야 한다는 게 갈등이 됐어요. 거기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다른 한 편으론 성악 트레이닝이 뮤지컬 배우로 살아가데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소원풀이는 했어요. 데뷔를 <세빌리아의 이발사>(바람둥이 백작 알마비바 역)라는 오페라로 시작을 했거든요. 이게 아이들을 위한 오페라였는데 그래도 아리아나 레치타티보를 원작 그대로 불렀어요. 뮤지컬과 비교도 안 되게 너무 어려웠어요. 또 어린이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오전 11시 혹은 오후 1시에 공연을 시작하는데, 배우들이 그 시간에 노래를 한다는 게 쉽지 않죠. 그 땐 젊었으니까 할 수 있었는데 지금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낮게 깔리는 음성이 배우로서 메리트가 될 것 같다. 저음이 성악 트레이닝 영향도 있는 건가
“성악을 배우면서 바뀌는 것도 있었겠지만, 어렸을 때 ‘성우해도 되겠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어요. 녹음된 자료가 없어서 스스로 검증은 안 해봤지만요. 무대 위에서 제 목소리가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극장 규모가 커질수록, 얼굴보단 소리가 가깝게 들리잖아요. 분장을 하면 얼굴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럴 때는 목소리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어요. 오히려 걸림돌이 될 때가 있기도 하지만요. 영화나 그쪽 매체에서는 너무 정제된 저 같은 소리가 다른 배우랑 안 섞이는 경우가 있어서 꼭 좋게만 보지는 않더라구요”

-영화 쪽 작업도 해보고 싶은가
“오디션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닌데 오디션 기회가 있어서 가본 적이 있어요. 그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직은 그 쪽에 큰 욕심은 없어요. 제 목소리와 연기를 다양한 매체와 적응시키는 것, 배우로서 뛰어넘어야 할 숙제죠.”

-오페라 가수의 꿈은 접은 건가?
“오페라 싱어의 꿈을 포기했다는 말이 아니라 기회가 되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누구나 이태리어 딕션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발음을 공부 해야겠지만, 아직은 진입장벽이 높은 것 같아요. 오페라 싱어가 되려면 성악 전공자여야 하고, 그 쪽은 유학파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데 연기는 그런 장벽이 없어요. 오페라 가수가 뮤지컬 배우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뮤지컬 배우가 오페라 가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어느 정도 열려있는 분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오페라 <라보엠>을 좋아해서 마르첼로 역을 꼭 해 보고 싶어요. 지금은 현실적으로 먼 나라 이야기죠.”
-좋아하는 작품이라 오페라 <라보엠>을 자주 보겠다.
“<라보엠> 뿐 아니라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도 좋아해요. <라보엠>은 매년 챙겨 보는 편입니다. 정명훈 지휘자님이 함께 한 국립오페라단 <라보엠>은 봤는데 연세대 야외에서 했던 라보엠은 보지 못했어요. 프로덕션마다 다 느낌이 달라요. 또 우리나라 성악가들 기량이 훌륭해서 이탈리아 성악가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꼭 큰 제작사가 아니라 중소규모 오페라 제작사들의 작품을 봐도 너무 훌륭한 작품이 많아요. 오페라 음악이 너무 좋아요. 오페라 가수가 연기를 잘 해준다면 감사하지만, 멜로디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해 음악을 듣는 것 만으로 좋아요.”

-5월 달에 서재형 연출이 국립오페라단 창작 오페라 <천생연분>을 올리는 데 거기에 참여 해 봐도 좋겠다.
“그 소식은 몰랐어요. 오페라에서 연기자로 참여하는 건 크게 원하지 않지만, 창작 오페라이고 이태리어가 아닌 우리말로 노래하는 거라면 의미가 달라질 것 같은데요.”

박인배는 ‘마술적인 환상을 안겨주는 공연이 좋다’고 말했다. “디지털 일색으로 진화하는 시대지만 아날로그 예술 장르들은 여전히 존재가치를 지녀요. 공연은 실재하는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감상하는 예술형식이다 보니,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그것에 비해 마술적인 환상이 훨씬 크게 다가와요. 무대 위의 다양한 미술적 장치와 빛의 활용 그리고 배우들의 움직임을 경제적이면서 아름답게 활용하는 공연을 볼 때마다 거대한 감동을 받게 돼요.

그리고 소규모로 제작되는 모든 공연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소위 대학로 소극장 연극과 뮤지컬들은 공연을 향한 애정을 담아 시간과 금전적인 투자를 통해 관객 앞에 당당하게 내놓은 작품들입니다. 개별 작품을 누군가는 상업적이다, 예술적이다 진부하다, 참신하다, 재미있다, 재미없다 등으로 평가할 순 있겠죠. 하지만 그런 평가와 관계없이 아니 좋은 공연인지 아닌지를 평가받기에 앞서 그 자체로 박수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모든 노력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용기 있는 창작행위잖아요. 저희 같은 배우가 이 땅에서 꿈을 키울 수 있게 한 밑거름이기도 하구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허영옥, 아시아브릿지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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