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김태희보다 소중했던 ‘비진아’ 콜라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애석하게도 비는 더 이상 일방적인 사랑을 받는 스타가 아니다. 한때는 월드스타로 불리며 국내 최정상 남자 솔로 가수로 군림했었고,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JYP와 함께한 눈물겨운 성공 스토리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다 옛날이야기다. 정상의 자리를 유재석처럼 스캔들 없이 유지하긴 여간 어려운 게 아닌 법. K-pop의 뉴웨이브라 할 만한 아이돌의 공습과 주식관련 구설수와 연예병사 관련 문제로 사회면에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월드스타’ 대신 ‘아닐 비’자를 쓴 비호감이란 수식어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불과 5~6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그랬다. 그는 김태희를 얻었지만 인기와 호감을 잃었다. 파파라치 보도에 의해 당대 톱스타인 김태희와 연애설이 났지만 언론사의 기대와는 달리 하루짜리 반짝 이슈로 끝났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열애설 당시에도 사람들의 이목을 끈 건 김태희와 함께 있는 비의 모습이 아니라 휴가 중이었던 비의 군모 착모여부였다. 열애설 보도는 엉뚱하게 연애병사의 규율과 특혜의 사회 문제로 번졌고, 여기서 불붙은 여론의 횃불은 김태희와의 열애설을 그냥 집어삼켰다.

그런 비가 제대 후 오랜만에 대대적인 복귀를 단행했다. 국내 최고의 솔로가수 자리를 되찾기 위한 포부가 엿보인다. 전략은 두 가지다. 여전히 최고의 무대에서 멋진 오빠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월드스타와 구설수로 멀어진 대중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특히 TV와 시청자들의 거리가 지극히 가까워진 지금 시대에 대중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선 정서적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친밀감 회복은 비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녹슬지 않은 실력은 기본이요, 시청자들이 느끼기에 내 곁의 스타로 돌아가는 것은 이번 컴백의 목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비는 원래 귀엽고 장난스러우면서도 무대에서는 섹시한 멋진 오빠였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했다. 홍콩에서 열린 <2013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 전용기를 타고 가 멋진 무대를 보여주는 동시에 <1박2일>에 게스트로 출연해 망가지고, 엠넷 리얼리티쇼 <레인 이펙트>를 통해 일상을 노출하며 인간 정지훈의 모습을 방출해 거리감을 좁히고자 노력했다. 문제는 친밀도 이전에 음악에 대한 반응이었다. 여전히 죽지 않음을 보여준 몸매와 춤, 왠지 저 어디 잘 노는 동네 물을 먹은 듯한 스타일을 선사했지만 이미지 차원에서 회복해야 할 여지가 많은 데다 음악은 의문부호를 남겼다. 노래는 실험적이긴 하나 귀에 감기지 않았고, 아이돌을 압도할 퍼포먼스나, K-pop의 새로운 흐름 제시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이돌 음반에서도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내던 평단은 비의 이번 음반을 의욕이 앞선 나머지 전체가 다 ‘투머치’ 하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시장 상황은 아예 죽을 쒔다고는 볼 수 없지만 함께 활동 중인 B1A4만큼 히트치진 못했고, 신선함은 ‘썸띵’으로 돌아온 걸스데이에 못 미쳤다. 화려하게 컴백했지만 국내 최정상 솔로이자 아이콘의 자리는 여전히 GD에게 머물러 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론은 더 심각했다. 뺀질거리는 듯 자신감으로 가득 찬 짧은 가사와 ‘라’라는 후렴구로 점철된 타이틀곡 ‘라송’은 태진아가 부르는 것 같다며 음악 위에 태진아의 무대를 합성한 패러디물이 더 화제가 됐다. 비를 놀리는 이런 영상물들을 본 사람들은 싱크로율이 절묘하다며 조소를 흘렸다.

그러자 비는 지난 주말 이렇게 외쳤다. “선생님 나오신다. 소리질러!” 금요일 KBS2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토요일 MBC <쇼 음악중심>, 일요일 까지 방송 3사 무대에 아예 태진아를 모셔와 함께했다. 인터넷 여론에 대한 즉각적인 대답이었다. 정도와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악플에 김가연은 단호한 어조와 태도로 똑 부러지는 반박 글과 법적 조치를 강구하는 것으로 적극 소통했다면, 비는 쏟아지는 비아냥을 위트와 여유로 맞받고, 조소를 웃음으로 비껴냈다. 웃는 얼굴로 통 크게 나오자 그의 패러디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은 일순간 머쓱해졌다.



비는 그냥 같이 놀았다. 소통의 확인이자, 삶을 기반으로 한 맥락 있는 성숙한 코미디였다. 이 무대를 보고 그 누구도 ‘라송’에 대해 장난을 치면 촌스럽게 됐다. ‘비진아’의 무대도 갈수록 좋아졌다. 태진아가 너무 코믹하게 등장했던 <뮤직뱅크> 이후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는지 점점 ‘투머치’한 것들을 덜어내고 세련된 의상과 무대를 연출했다. 이는 얼마나 대중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이렇듯 ‘비진아’의 합동무대는 SNS시대, 대중문화가 가진 소통과 유희라는 측면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친밀감을 만드는 또 하나의 동아줄을 발견한 것이다.

지난 주 <무한도전>은 응원단 아이템을 통해 오랜만에 일반 시민들 곁으로 다가갔다. 시청자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모든 시청자들의 일상에 직접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은 자신의 일상에 <무한도전>이 ‘난입’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방송을 즐긴다. 그리고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수다를 떨고, 그 수다는 인터넷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의 수다로 이어진다.

비의 전략은 이런 시대에 딱 들어맞았다. 그는 이 경직된 사회에서 자신과 반대에 선 사람들과 유머라는 윤활유로 소통을 했다. 스타라고, 연예인이라고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무대로 보여줬다. 물론, 호감도가 높아졌다고 그의 앨범에 향한 이런 저런 평가가 바뀌진 않겠고, 노래의 음원이 더 팔리진 않겠지만 비에게 향했던 비호감의 제스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 기획으로 인해 비의 호감도는 몇 단계 더 상승했다. 놀림과 비아냥을 호감으로 바꿨다는 점에서 SNS시대의 대중들과 성공적으로 소통한 의미 있는 사례다.

TV 및 연예계와 우리 일상의 거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 익숙한 그림은 여론이 TV와 연예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는 부정적인 여론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분위기를 전환했다. 초유의 사태에 모두가 어리둥절해하고, 또 즐거워했다. 비는 대중과의 소통하는 재밌는 방식을 개척한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큐브엔터테인먼트,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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