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 터지듯 걸 그룹 노출전쟁, 어쩌다 이렇게 됐나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무대에 누워 야릇한 눈길로 사타구니를 만지고, 옆트임이 된 치마를 열어 젖혀 허벅지 은밀한 부위를 드러내며, 옷인지 천 쪼가리인지 알 수 없는 착시를 일으키는 옷을 입고 엉덩이를 흔들어대고 심지어는 성행위 동작을 연상케 하는 춤을 춘다... 요즘 걸 그룹들의 무대를 보다보면 과거 80년대 성인나이트에 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섹시 경쟁이라는 단어는 이제 너무 순화된 느낌이다. 19금 경쟁을 넘어서 심지어 가수라기보다는 쇼걸을 보는 듯한 그 동작들을 보다보면 실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다. 나이 어린 소녀들 입장에서도 어찌 민망함이 없겠는가. 하지만 여기저기서 19금 콘셉트의 동작들이 경쟁적으로 등장해 대중들의 시선을 일시적으로나마 붙잡는 걸 목격한 기획사들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게다.

신곡 ‘썸씽’으로 걸스데이가 음원 차트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는 사실은 19금 경쟁에 불을 지필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의 치마를 들추고 깃털로 맨 다리를 쓸어내리며 바닥에 엎드려 엉덩이를 튕기는 등의 동작들은 곧바로 달샤벳, AOA, 레인보우 블랙 등의 19금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B.B.B’로 돌아온 달샤벳은 가슴을 묘하게 문지르는 듯한 안무를 선보였고, AOA는 치마의 지퍼를 열거나 무대에 누워 몸을 쓸어내리는 동작을, 또 레인보우 블랙은 핫팬츠를 입고 다리를 찢는 동작을 보여주었다.

봇물 터지듯 걸 그룹의 19금 퍼포먼스가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자 방송사 입장에서도 그 수위에 당황하는 모습이다. 지상파 방송3사는 과한 동작들의 수정을 요구했지만, 수정된 동작들이 과연 순화된 결과인지는 미지수다. 과거의 섹시 콘셉트라고 하면 주로 노출 의상에 관한 것들이 많았다. 따라서 그것은 여전히 춤의 느낌의 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노출 의상에 가미된 동작들은 이들의 무대가 춤이 아닌 선정적인 포즈로 느껴지게 만든다. 걸 그룹이 점점 쇼걸처럼 여겨지는 건 그 때문이다.



쇼걸화되는 걸 그룹의 문제는 가수가 아닌 퍼포먼서로서만 인식된다는 데 있다. 그것도 야한 동작만을 의도적으로 선보이는 퍼포먼서다. 당연히 노래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네 감각이라는 것이 시각에 집중되는 만큼 청각이 둔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무대 위에서 동작들을 하고 보여주고 있는 건 알겠는데 그들이 무슨 노래를 하고 있는지 잘 구분이 안 되는 건 그래서다.

게다가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19금 경쟁 동작들은 이들 걸 그룹들 사이에 변별력을 지워버린다. 누가 해도 상관없는 동작들로 뭉뚱그려져 그저 ‘야한 무대’로 여겨질 뿐, 그것이 그 동작을 하는 걸 그룹에 대한 인지도나 매력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19금 경쟁에 들어온 걸 그룹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한꺼번에 무너질 위험성도 있다. 이러한 쇼걸화된 19금 경쟁에 식상해지게 되면 더 센 동작을 하지 않는 한 시선을 끌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제살 깎아먹기의 반복이다.

자칫 일부 걸 그룹들의 19금 경쟁은 K팝 걸 그룹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섹시 콘셉트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지만 거기에 함몰되어 몰 개성화된 걸 그룹들은 심각한 문제로 지목된다. 소속사 관계자들은 “더 자극적이고 야해야 살아남는다”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말하지만 그것은 같이 사는 길이 아니라 같이 죽는 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걸 그룹들이 가수가 아니라 쇼걸로 점점 인식되는 상황은 이 위기의 징후를 이미 보여주고 있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드림티엔터테인먼트, FNC엔터테인먼트, DSP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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