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방송 출연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아라시 멤버 마츠모토 준이 혼자 타고 있었대요. 니콜 언니가 멤버 중에 지영이가 마츠모토 준을 제일 좋아한다고 얘기했더니 이미 알고 계신다고 하더래요. 그런데 제가 아쉽게도 거기에 없었어요. 어린 게 죄지. 일본은 미성년자는 9시 넘으면 일을 할 수 없거든요. 그 방송이 11시까지였고 그래서 저는 9시에 집에 돌아갔던 거예요. 너무 아쉬워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SBS <강심장>을 통해 활동을 재개한 걸 그룹 카라. 이런저런 이유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게 된 그간의 속사정을 털어놓는 시간이었지만 떨어져 있어보니 멤버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다소 틀에 박힌 얘기뿐인지라 크게 마음에 와 닿는 구석은 없었다. 그런데 막내 강지영이 무심히 던진 ‘미성년자’라는 단어 하나에 순간 가슴이 뜨끔해졌다. 그렇다. 무려 멤버 중 미성년자까지 있는 나이 어린 처지에 온갖 질시 가득한 추측성 보도를 오롯이 견뎌내야 했으니 이 얼마나 딱한 일인지. 게다가 누가 누굴 왕따를 시켰느니, 누가 누굴 흘겨보고 밀치기까지 했느니, 증거 사진에 동영상까지 첨부돼 온 인터넷이 들끓기도 했다.

솔직히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형제자매지간에도 박 터지게 싸우다 못해 심지어 몇 달 씩 말 한 마디 않고 사는 일이 허다하건만 생판 남인 다섯이 몇 년 씩 함께 지내는 동안 왜 우여곡절이 없었겠는가. 차라리 형제자매라면 방송에 나와 ‘우리 비오는 날 먼지 날 정도로 싸운다’라는 우스개도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아이돌들은 언제 아무 때라도 사이좋은 척을 해줘야 하니 이리 답답할 데가 있나. 이번에도 오해가 풀려 다시 사이가 돈독해졌다며 눈물을 글썽거리고들 있었지만 사실 멤버들 사이에 분란이 있었던 건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들이 크게 부끄러워할 까닭도, 밖에서 나무랄 이유도 없지 않을까?

실제로 답답한 건 이처럼 한일 양국을 뒤흔들도록 일이 확대 재생산되는 사이 대체 주변 어른들은 뭘 했느냐는 거다. 데뷔 4년 차라면 대부분의 멤버가 미성년일 때 활동을 시작했다는 얘긴데 과연 그 긴 세월, 카라 멤버들은 미성년자로서 보호를 제대로 받았을까? 물음표일 수밖에 없다.

보나 안 보나 불을 보듯 빤해서. 일본은 9시 이후엔 미성년자의 방송 출연조차 불가라는데 우리나라는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행사 무대가 좀 많은가 말이다. 필경 아슬아슬 곡예 운전을 하는 차에 실려 여기저기 행사를 뛰었을 수도 있다 싶어 마음이 짠하다. 더구나 정글 같은 예능 제작환경은 또 오죽 열악한가. 듣자니 날밤 새우는 일이 다반사라 하고 심지어 미성년자의 섹시 댄스까지 요구하는 상황이 아닌가.



그래놓고 어른끼리는 이해타산을 놓고 줄다리기에 싸움판까지 벌이다니 원. 문제는 이와 같은 일들이 너무나 비일비재하다는 사실. 도처에서 서커스 소녀 신세가 되어 동분서주하고 있을 아이돌 그룹들, 그리고 그들을 앞세워 돈벌이에 혈안인 어른들을 생각하면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이게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인지 보건복지부 소관인지 알 수는 없지만 미성년자 연예인에 관한 법령 좀 제대로 갖춰주길 바란다. 애들 두고 벌이는 밥 그릇 싸움 구경도 이젠 지겹고, 배신이니 아니니, 출연 하느니 못하느니 진흙탕 싸움 하는 사이 멍드는 아이들의 가슴을 생각해보란 말이다.

더불어 카라를 비롯한 아이돌 그룹 주변 어른들에게는 MBC <최고의 사랑> 시청을 권하는 바이다. 특히나 한물 간 걸 그룹 전 멤버 구애정(공효진) 아버지(한진희)의 행태를 유심히 보시길.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