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 과잉 ‘감격시대’, 언제부터 달라지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KBS 수목드라마 <감격시대-투신의 탄생>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드라마는 아니다. 영화 <장군의 아들>이나 <야인시대>가 성공하긴 했으나 이런 시대물이 과연 2014년의 시청자들에게 환영받을까 다소 의아했다. 더구나 어마어마한 몸값의 대형스타들이 출연하는 드라마도 아니었다. 그러니 아예 시작 전부터 <감격시대>가 소문날 드라마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감격시대>는 기대이상이다. 상다리기 휘어지게 차린 잔칫상 같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 허투루 차려진 음식이 없는 잔칫상이다. 촬영기법이나, 배우들의 역할, 그리고 힘을 주어 신경 쓴 대사 하나하나까지 모두 정성이 들어가 있다. 비록 시청률 면에서는 실패했지만 작년 KBS의 사극 <칼과 꽃>처럼 장면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아도 아름답다. 아마 <감격시대>가 <장군의 아들>이나 <야인시대>와 변별점을 두는 지점이라면 이 세련된 멋스러움일 것이다. 무협드라마가 아름다워 보는 이들을 감탄시킬 수 있다는 걸 <감격시대>의 제작진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멋스러움에 배우들의 연기 역시 한 몫 한다. 아역들의 연기도 호연이었으나 성인으로 바뀐 뒤에도 작품의 흐름은 그대로다. 이 드라마에서 주먹 센 정의로운 청년에서 투신으로 변해가는 주인공 신정태를 연기하는 김현중 역시 생각보다 드라마에 잘 녹아들고 있다.

<감격시대>의 김현중은 자기 성격에 맡는 혹은 자기가 연기하고 싶었던 캐릭터를 처음 맡은 배우 같다. 이전 <꽃보다 남자>에서 달달한 사탕 같은 대사를 톱밥처럼 무미하게 내뱉던 윤지후의 모습이나 <장난스러운 키스>에서 천재소년을 맥없이 연기하던 그때와는 다르다. 뭐랄까, 이 드라마에서 김현중은 신정태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또 어떻게 몸을 날려야 멋있게 보일지 아는 눈치다. 아무래도 김현중은 외모만 순정만화일 뿐 순정만화보다는 무협만화를 즐겨보던 그런 학창시절을 보낸 게 아닐까? 그렇기에 짧은 머리에 늘 얼굴에 상처가 가시지 않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김현중이 흰 양복에 바이올린을 든 김현중에 비해 더 살아있는 인물처럼 다가온다.



어딘지 영화 <킬빌>에 등장할 법한 여성캐릭터 가야 역의 임수향 역시 임성한 드라마 <신기생뎐>에서의 ‘청승가련형’을 확실하게 벗은 모습이다. 모일화 역의 모델 출신 송재림 또한 인상적이다. <투윅스>에서 다소 딱딱하고 어색했던 김선생에서 벗어나 모일화라는 신비로우면서도 내면의 상처를 지닌 두령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해낼 줄 안다. 항상 일일드라마의 나쁜 조연 미남 이미지가 강했던 조동혁 역시 신이치를 통해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는 악역 냄새를 풍긴다. 한편 다소 무거워지기 쉬운 드라마에 한량 모던보이 분위기 김수옥 역할의 김재욱은 잔재미를 더해준다. 이런 종류의 드라마에서 식상하지만 씩씩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여주인공 캐릭터 그대로인 김옥련 역의 진세연도 적역이다.

젊은 배우들이 <감격시대>의 살아 있는 멋진 그림이라면 조연급의 출중한 배우들은 이 드라마에 힘을 불어넣는다. <감격시대>는 사실 방영 전에는 주연보다도 조연진이 더 화려하고 기대가 되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일국회 회장 덴카이역의 김갑수를 비롯해, 최일화, 김뢰하, 박철민, 손병호 등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장년층의 조연들은 그 이름만으로 믿음직한 배우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짧지만 그 순간 드라마는 단숨에 긴장된다. 신정태가 몸담은 도비파의 두령을 연기하는 <똥파리>로 유명한 양익준 역시 형님의 뜨끈뜨끈한 의리를 보여주기에는 최적의 배우다. 그 외에 <감격시대>에서 온몸을 던져 싸우는 도비파나 다른 패거리의 일원들을 연기하는 배우들 역시 액션과 감정 모두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감격시대>는 조금 과해진 감이 없지 않다. 장면 하나하나 배우들 하나하나는 모두 훌륭하다. 다만 모든 인물의 등장에 힘을 주다보니 감탄은 나오지만 감격까지 가기 전에 다소 진이 빠진다. 한 인물의 감정에 집중해서 바라보기가 종종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또 멜로와 무협과 코믹과 드라마를 한손에 잡으려는 의욕 역시 종종 과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감격시대>가 최근에 나온 드라마 중 가장 세련되고 흥미로운 스펙터클을 지녔다는 건 분명하다. 지난 8회에 주인공 정태를 대신 최후를 맞이한 도비파의 둘째형님 풍차(조달환)의 죽음은 가슴을 찡하게 하는 명장면이기도 했다.

신의주 시절이 끝나고 당시 국제도시였던 상하이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옮겨갔을 때가 기대되는 건 그래서다. 아무래도 이 수많은 인물들을 보여주기엔 신의주가 너무 좁은 감이 없지 않다. 이 인물들이 큰 도시에서 부딪칠 때 거창한 이야기의 본격적인 맛이 드러나지 않을까? 더구나 넓은 상하이에서 신정태가 투신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에 탄력이 붙는다면 <감격시대-투신의 탄생>에서 감탄에서 감격으로 흘러가는 그 지점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격시대>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작가교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건 드라마가 상하이가 아닌 산으로 갈 위험한 도박일 테니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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