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뮤지컬 <글루미데이> 연출가 성종완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오는 28일 DCF 대명문화공장 비발디파크홀 1관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글루미데이>는 1926년 8월4일 현해탄에서 동반 투신한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사건에 ‘사내’라는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팽팽한 긴장감을 전달하는 작품이다. 우진과 심덕은 결국 바다로 뛰어든다. 여기까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역사 속 진실이다. 하지만 공연 속 진실은 ‘죽기 위해서가 아닌 살기 위해서’ 뛰어 든 것. 여기서 <글루미데이>의 숨겨진 매력을 감지할 수 있다.

뮤지컬 창작소‘불과 얼음’ 단원이자 뮤지컬 <글루미데이>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성종완을 만났다.

■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올바른 선택 길을 찾아가고 있다”

-작년 초연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글루미데이>가 예상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공연 기간이 짧아 처음엔 워크샵 개념, 더 나아가 워크샵 이상의 공모전 같은 공연으로 올리려고 마음 먹었어요.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창작팩토리(현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 사업) 그런 개념이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욕심이 나더군요. 처음에 콘셉트 사진을 너무 멋있게 찍었는데 그게 사단의 시작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사진에 대한 반응도 좋았는데 공연이 올라 간 뒤 여러 반응들을 보이니 고마웠고 기뻤죠. 물론 기대는 했지만요. 열심히도 했고요. 사실 극작 하면서 실패감을 많이 맛봤어요. 공모전만 20~30번 시도 했는데 안 됐어요. <글루미데이>로 실패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물론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시기도 하지만 작은 말들이 되게 큰 힘이 돼요.“

-초연 대본에서 많은 수정을 가했나?
“설명이 안 된 부분을 수정 하고 있어요. 템포 흐름에 맞게 최대한 넣어보고 있어요. 연출로서 기준은 ‘작품이 얼마나 재미있느냐’인데, 그걸 넣음으로서 재미있어지는 건 넣지만 억지로 넣진 않아요. 장면이나 넘버가 추가 될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게 너무 설명적이거나 늘어지면 안 돼서 계속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초연 러닝타임이 90분이 채 안 됐는데, 이번 본 공연은 95분 내지 100분 정도로 정리가 될 듯 해요.”

-제목이 비슷한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란 영화가 작품에 어떤 모티브를 준 게 있나?
“관계가 없지는 않아요. 대표님이 경상도 분인데 ‘우리나라엔 <글루미 선데이> 같이 굽굽하고(꿉꿉하다의 사투리) 비올 것 같은 날씨가 느껴지는 작품 없나?’ 란 말을 했는데, <옥탑방 고양이>를 쓴 박은혜 작가가 ‘있어요. 김우진 윤심덕이요.’라고 받아친거죠. 그렇게 대표님이 ‘김우진 윤심덕 이야기를 가지고 글을 써 달라.’고 제안을 한거죠.”

-<글루미 선데이>, <글루미데이>와 비슷한 정서가 성종완 작가에게도 흐르고 있나?
“코미디를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진짜 만나보지 못한 저의 내면은 조금 더 어두운 것 같아요. 작품을 하다 보니 좋아하는 작품들도 어두운 작품이 많네요. <글루미데이>는 비올 때 땅 파서 들어가고 싶은 그런 기분을 주기도 하죠.(웃음)”

-김우진 윤심덕의 이야기를 어떻게 극화시켰나?
“처음엔 박은혜 작가가 모티브를 제공한거죠. 작가로서 처음엔 시간 순으로 기술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프로듀서 분이 ‘조금 한정된 원 세트 공간, 한정된 시간동안 일어나는 일, 즉 배를 탄 5시간 안에 진행 되는 이야기로 해보자’는 숙제를 주셨어요. 바꾼 거죠. 마지막 5시간을 세팅해 놓고, 과거로 자주 돌아가지 말자. 첫 만남이 틀어지는 부분은 과거 이야기가 필요한 부분인데 많이 보여주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나머지는 관객들이 추측할 수 있게 블랭크로 놔두게 된 거죠. 물론 나름의 장치는 있지만 워낙 서브 텍스트가 많다보니 여러 가지로 이해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관객이 알고 보면 재미있는 부분도 분명 있어요. 이번엔 그런 부분을 넣어보려고 해요. 관객을 만나봐야 넣은 게 재미있는지 없는지 알게 되겠죠.”

-극작가 김우진과 그의 작품을 좋아했었나?
“극작가 김우진을 예전부터 좋아하진 않았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더 잘 알게 된 거죠. 좋아한다고 말 할 순 없고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구나’ 라고 짐작 하는 정도요. 작품만 놓고 봤을 땐 희곡의 완성도가 뛰어나진 않아요. 그런데 생각의 깊이가 제 손에 닿지 않을 만큼 깊다고 느껴져요.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런 글들을 쓰지? 이 사람 머릿 속엔 어떤 게 들어있을까.’ 란 생각이 이어지면서 김우진의 머릿 속이 궁금해졌어요. 그 의 생각들이 예상보다 훨씬 염세적이고 훨씬 비관적이거든요. 그냥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 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어 보였어요.

저희 극중에서도 희곡을 쓸 때 뭔가 장치가 있는데, 김우진이 실제 15살에 쓴 <공상문학>에도 비슷한 게 나와요. 신여성을 사랑해서 죽음에 이르는 마치 자신의 삶을 예언적으로 보여 준 이야기요. 다른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오긴 했지만 제가 애초 생각했던 세팅과 맞아떨어진 게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 윤심덕과 홍난파와의 관계도 흥미롭던데 극중 ‘사내’란 인물을 만들 때 홍난파에 대해서 생각한 부분이 있나?
“영화 <사의 찬미>에 홍난파는 조연으로 나와요. 홍난파와의 관계는 실제 극중 진실인거죠. 극작을 하면서 제 3의 인물이 필요 해 홍난파를 넣어볼까? 란 생각을 해 보긴 했어요. 그런데 홍난파도 이 둘의 로맨스를 다 아우르지 못했어요. <글루미데이>란 작품을 극화 하는 것엔 한계가 있어서 제외 됐어요. 결국 이 두 인물의 삶을 다 아우를 수 있는 인물로 ‘사내’란 존재가 필요하게 된 거죠.”

-김우진과 윤심덕의 실화들이 극 안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나?
“실화를 모티브로 했어요. 두 남녀가 바다에 몸에 던졌다는 게 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르지만, 기록에 나와 있는 진실이요. 그런데 공연으로 오는 과정에서 공연 속 진실은 윤색과정이 필요하게 돼요. 관객들은 극을 보며 실제 삶을 상상하겠지만, 공연은 극중 진실로 오기까지 중간 단계를 선보이게 돼요. 극중 진실이 더 탄탄하게 보일 수 있도록 고민을 했어요.”

-프리뷰 개념의 초연 공연이 본 공연으로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간혹 완성도는 높아질지 몰라도 기존의 풋풋한 느낌이 사라지기도 하던데.
“기존 세트는 그대로 가요. 풋풋한 느낌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경계는 하고 있는데. 극복해야 될 부분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초연을 그대로 할 순 없죠. 그 느낌이 사라질까봐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다는 말 밖에 안 되니까요. 우리 눈에 보인 부분, 주변에서 이야기해준 부분 모두 분명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길입니다.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겠죠.”



■ “사내는 우진과 심덕을 죽여야 하는 강력한 욕망을 가진 존재”

-사내의 정체성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 한다. 본 공연에선 ‘사내’가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나?
“그렇다기보다는 작품이 가진 불친절함은 그대로 유지하려고 해요. 연습과정에서 배우들과 조금 더 총체감 있게 대화를 나눴어요. 지난 프리뷰는 극작은 물론 연출적으로 스케치의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우리가 그림을 스케치하고 채색까지 한 느낌이랄까요. 이게 비유적으로도 그렇고 실제 보여지는 것도 그렇고요. 좀 더 색을 입히고 윤곽을 잡아내고 있어요.”

-과연 사내는 누구인지 규정하기 어렵다.
“제 안에선 규정 해 논 게 분명 있는데 입 밖으로 꺼내 놓는 순간 유치해지고 관극의 재미가 떨어지게 돼요. 그래서 작곡가에게도 배우에게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아요. 제가 규정 해 논 것과 별개로 이 공연을 선 보였을 때, 배우들이 이야기, 관객들의 이야기, 관계자들이 이야기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는 사내를 봐요. 출생과는 다른 신분의 사내요. 그런데, 제가 처음에 만들어 낸 디엔에이(DNA), ‘사내’와는 멀어지지 않았어요. 계속 성장해 가는거죠. 그래서 제가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소통할거리가 많아져요. 이 사내를 이해시킬 수 있는 그런 부분을 함께 만들어가는 거죠.”

-사내 역 배우가 사내의 존재에 대해 물어볼 때는 연출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 주나
“‘진짜 존재 하는거냐. 우진이의 망상이냐’ 란 질문이 들어오면, 구체적으로 말해줘요. 분명한 타자로 쓴 것이 맞지만 스토리텔링에서 착각하게 하는 것도 있다고요. 처음에 대본을 쓸 때 확신이 없었어요. 문학이 아니라 실제 공연이잖아요. 인물을 보여줘야 하는 배우 입장에선 확실하게 정리 해 줄 수 있는 뭔가도 있어야 하구요. 가상의 인물로도 생각할 수 있는 장치는 있지만 분명히 타자입니다. 여전히 힘든 건 있겠지만 드라마틱 액션, 그 부분은 알려줘요. ‘이런 의도로 행동하는 거다’면서요.”

-‘사내’에게서 두려움, 운명, 악마, 죽음, 욕망, 사회적 통념 등 여러 가지 모습이 비춰진다.
“흔히 ‘관객의 뒤 꼭지를 잡고 간다’는 표현을 쓰는데, ‘사내는 누굴까?’란 생각이 작품을 계속 보게 해요. 대단한 서스펜스가 있는 건 아닌데, ‘누구일까’ 란 궁금증이 작품을 끝까지 보게 하는 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 하나의 시각으로 보게 되면 관극의 재미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단 드라마 안에 들어왔을 땐 타켓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내’ 역 배우들에겐 ‘넌 이 아이들을 죽여야 하는 강력한 욕망을 가진 존재이다’고 말 해요.”

-죽음을 찬미한다는 점에서 뮤지컬 <엘리자벳>의 토드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요. 이런 능력을 가진 어떤 사람이 진짜 있지 않을까? 이런 사람이 2014년에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신이 있다면 그것도 괴팍한 신이 있다면... 우리는 태어나고 죽는 걸 선택하지 못해요. 사랑하고 이별하고 죽는 것 모두 우리가 절대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죠. 누가 만드는 걸까요? 간혹 드라마에선 신비롭게 그려지지만 실존 인물이 있지 않을까요?”

-‘로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이 나오는 뮤지컬 <아가사>가 우연의 일치로 같은 극장에서 올라간다.
“<아가사>는 아직 보지 못해서 어떻게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부분들이 창작들에게 영감을 주고 매력적이게 다가오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영화 <화이트>, <아이덴티티>, <뷰티블마인드>등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의 원전은 헤르만헤세 <데미안>이라고 생각해요. 헤르만 헤세의 소설 <황야의 이리>도 좋아하는데 연극으로 만들고 싶어요. 주인공은 하리 할리는 배우 최민식씨로 캐스팅 해서 LG 아트센터에서 하고 싶어요.”



■ 삶을 위해서 몸을 내 던진 남녀, 김우진과 윤심덕

-우진과 심덕의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간다는 의미로 쓰여진 건 알겠는데, 어떻게 보면 ‘체념’이란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면 곤란한데...그들이 살았건 죽었건 의미 없는데 살았다고 비쳐지길 원했어요. ‘내던진다’는 문장 하나를 꼭 잡고 만든거죠. ‘투신’했다는 건 몸을 내던지는거니, 살기 위해서 보트를 준비했다고 우리끼리는 생각했어요. 그런데 보트 하나로 살기 쉽겠어요? 어쨌든 그거마저도 안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이 배 안에서 배 밖을 나가 몸을 내 던져서 삶의 태도를 취하겠다는 의미인거죠. 두 사람을 극화할 때 모티브가 된 건 보봐르와 샤르트르 커플의 이야기입니다. 특이하게도 계속적으로 각자 다른 연인이 있었는데 100년 해로한 커플이죠. 1920년대 사람으로서 ‘여자들이여 삶을 위해서 내 던지라’ 그런 이데아를 같이 공유한 인물입니다. 그렇게 처음 모티브는 ‘내 던진다’는 의미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마지막 배 안에서 우진과 사내의 대결이 펼쳐진다.
“우진은 심덕이 자신을 총으로 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우진은 다섯 시간 안에 심덕을 설득한 뒤 탈출해 살아야 하는 게 목적이죠. 심덕은 사내의 제안대로 우진을 죽이고 사내와 탈출해야 해요. 사내는 아름다운 결말로 치닫게 하는 게 목적이구요. 우진은 죽음으로 삶을 가장하고 사내는 삶을 가장하고 죽음으로 이끄는 존재죠. 결국은 삶과 죽음을 위장한 두 남자의 대결 앞에서 심덕이 어떤 선택을 한 건지가 중요하게 돼요.“

-모든 일의 목격자인 사내는 뒤틀린 결말 앞에 서게 된다. 사내의 마지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비춰지는 모습의 사내라면 우진과 심덕을 쫓아가서 뭔 일이라도 해야 해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건 우진과 심덕이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 있지 않을까요. 우진의 입을 빌리면 사내는 계속 누군가를 죽인 인물입니다. 그런 사내로서도 예측 하지 못했던 면모를 보이는 인물이 바로 심덕이죠. 사내가 심덕에게 매혹되는 부분은 ‘찰나에 사는 사람, 순간의 기쁨을 원해’ 라고 할 때에요. 심덕은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그 순간에 사는 사람인거죠. 그래서 사내는 심덕에 대해서만 예외가 있어요. 우진은 계속 우진의 방법으로 사내에게 대결을 청해요. 천재적인 머리를 지녀 사내가 정해 준 결말까지 위장을 해주고 마지막에 뒤통수를 치죠. 사내의 마지막은 ‘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나?’ 결말에 다가가기 위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죠.“

-다시 돌아온 사내는 심덕의 음악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민이는 이태리까지 심덕을 따라 갈 것이라고 말 했어요. 로맨티스트인 (신)성민이는 난 보내줄 거라고 말 했어요. 성민이가 실제 로맨티스트인지는 잘 모르고, 연기적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저런 해석을 해서 그렇게 부른 겁니다. (이)규형이 대답은 기억이 잘 안 나요. 사실 규형이가 몸이 안 좋아요. 문성이도 그렇고 성한 배우들이 없어요. <나쁜 자석>이랑 <빨래>를 같이 하고, 저희 작업도 연습 하며 혹사 당한 거 같아 휴식 시간을 주고 있어요. 바뀐 부분은 연락해서 알려주면서 체크하고 있어요. 워낙 준비를 잘 해온 친구라 크게 걱정은 안 해요.”



■ “연출적으로 선을 그려주는 건 원하지 않아요”

-우진 심덕 사내 모두 트리플 캐스팅됐다.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역을 하는 배우들이 많다.
“초연 멤버였던 윤희석 배우는 드라마 일정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게 됐지만, 김경수 정문성 임병근, 곽선영 안유진 임강희, 이규형 정민 신성민 이렇게 9명의 배우를 보면,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수도 있다고 봐요. 배우들의 전작을 보면 성민이는 순수하고 여리고 예쁜 역할을 많이 했어요. 마찬가지로 강희씨랑 선영씨도 가녀린 역할을 많이 했어요. 규형씨도 깨알같이 개구지게 하는 역을 많이 했죠. 문성씨는 <나쁜자석>의 프레이저와는 다른 방향의 우진 역을 맡았어요. 그들을 좋아하는 팬들로서도 새로운 인상을 줄 거 같아요. 제작사에선 다음 시즌엔 역할을 바꿔서 해보자. 정민이, 규형이가 우진 역을 할 수 있는거고. 병근씨가 사내를 할 수 있는거고. 한번 봤던 사람이라면 흥미롭겠다. 가능하겠다. 그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연출적 마인드로 접근하는 배우들이 이야기할거리가 많이 있다. 인터뷰 상대로 추천 할 배우론 누가 있을까?
“다 좋아요. 성민이도 괜찮고, 정민이는 단순한데 좋아요. 매번 다양한 해석을 가져오는 문성이를 만나봐도 좋을 것 같아요.”

-연출의 눈에 비친 정문성 배우는 어떤 배우인가
“문성이는 연기를 너무 너무 잘해요. 매일 매일 깜짝 놀랄 정도로 캐릭터를 보완해서 와요. 최근엔 신종플루로 몸이 약해져 있어요. <나쁜자석> 공연 때 대사를 토해 내는데 에어콘 바람에 휘청거렸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우리 연습실에서도 못 서 있고. 주로 앉아있어요. 팬들이 보약으로 장어즙을 선물 했다고 하던데요(웃음)”

-정민 배우에 대한 애정도 느껴지는데 ‘단순한데 좋다’는 의미는?
“정민이가 극 안에선 키도 크고 이미지적으로 마초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아니에요. 무대에서만 그래요. 누나만 세 명 있는데 굉장히 수다스러워요. 함께 작업하면서 단 한 번도 화를 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낙천적인 성격입니다. 성격만 놓고 보면 ‘사내’랑 되게 안 어울려요.

연출을 하면서 깨달은 건 배우가 단순해서 좋은 것도 있다는 겁니다. 제가 배우로서 연기를 할 때 연출적 소양을 가지고 접근했어요. 그래서 ‘너무 객관적이야’란 말을 많이 들었어요. ‘배우가 극에 빠져야 한다’는 의미를 연출 하면서 깨달았어요. 연출이 첫 번째 관객으로서 객관적 시각을 유지한다면, 오히려 배우는 시야를 좁힐 필요가 있어요. 자기의 시각대로 부딪쳐도 봐야 화학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건데, 너무 객관적으로 균형만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죠. 내 욕망대로 부딪쳐서 심화되는 걸 보면 지켜보는 사람이 재미있어요. 불균형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드라마라 단순한 배우들이 더 좋을 때가 있어요. 극작가 오은희 선생님께서 모니터를 해 주셨는데 ‘성종완의 연출라인을 잘 살린 배우는 정민 배우였다’는 말을 해주시기도 했어요. 정민 배우와 이야기 해봐도 재미있을 겁니다. 그런데 포커스를 벗어난 이야기도 잘 해요.(웃음)“

-초연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역시 배우들의 라인을 존중해주는 것 같다. 연출적인 라인을 그려주는 걸 선호하지 않는건가?
“연출적으로 선을 그려주는 건 원하지 않아요. 이번에도 ‘사내’ 역 배우들이 표현하는 게 저마다 달라요. 워낙 가진 성격들이 다른 것도 있지만 역할로서 행동 방향만 일치한다면 존중해주고 있어요. 대극장과 소극장의 미학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인데, 대극장은 많은 메카니즘이 들어오기 때문에 연출이 어느 정도 세이프는 해 줄 필요는 있다고 봐요. 반면 소극장은 배우의 연기가 70~80 프로를 차지해요. 배우가 연기를 오롯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김동연 연출님에게서 배운 것인데, 역할로서 동기가 같고 배우들이 드라마틱 액션만 취하면 드라마가 진행되는 것에 하등의 차이는 없어요. 사람들을 같은 상황 갔다 놨을 때 다르게 행동하는 것도 그렇잖아요. 결국 이런 사내도 맞고 저런 사내도 맞다고 봐요.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배우 로버트 네버가 연기했던 ‘티백’이란 캐릭터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정말 기분 나쁜 악역인데, 지문에선 ‘위협적으로’ 써져있는 상황에서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잡아요. 악역이라면 위협적으로 뭔가를 했을 수 있는데, 그 배우는 다른 액션을 취해요. 동기는 물론 같죠. 연기라는 게 그 사람의 해석에 맞게 보여주고, ‘그 사람이 그 인물이다’고 믿고 가는 게 중요하잖아요.“



■ 집시를 동경했던 소년, 연극인이 되다.

-배우로 활동하기 전에도 극작을 한 건가?
“중앙대 연극학과는 배우랑 연출 구분이 확실하지 않았어요. <여보셔>(여신님이 보고 계셔) 박소영 연출이랑 한정석 작곡가랑 동기인데 소영이도 그 전엔 연극<책갈피>에 배우로 출연해서 연기를 했어요. 저 역시 자연스럽게 동기들하고 연기를 하면서 대학시절을 보냈어요. 여느 타과 학생들과 비슷하게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와 일단 배우 오디션을 봤어요. 그렇게 2006년도에 배우로 대학로에 나오게 됐어요. 그러면서도 연출 공부를 했어요.

극작은... 극을 직접 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2005년도에 뉴욕대 출신 이희준, 고성일 선생님들을 필두로 중앙대 워크샵이 있었어요. 1기에 성재준 연출, 김경엽 작곡가가 있었고, 전 2기에 작곡가로 지원을 했어요. 전공생이 아니라 안 된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 때 처음 배웠어요. 배우 데뷔보다 빨랐죠. 그 때 제가 대본이랑 작사를 맡아 고전 <햄릿>을 각색한 <라비다>란 뮤지컬을 올렸어요. 주연은 홍광호가 했는데 6회 공연이 전석 매진 됐어요. 2007년 CJ 쇼케이스 공연으로 양준모 안유진, 홍희원. 신의정, 원종환, 추정화 등 배우와 함께 했어요. 그 뒤에도 또 한 번 공연했는데 본 공연으론 막이 오르지 못했어요. 마음 같아선 꼭 다시 올렸으면 해요.“

-뮤지컬 작품을 극작하면서 신경 쓰는 부분은?
“뮤지컬 작품을 극작 하면서 제일 신경 쓰는 게 음악입니다. 워낙 음악을 좋아했고 뮤지션이 꿈인 이유도 있어요. 제가 다른 창작자들 보다 장점으로 삼을 수 있는 부분 역시 음악이구요. 재즈 아카데미도 다녔어요. 음악 쪽으로 깊게 공부를 했다기 보다는 조예가 있어요.

저는 뮤지컬 관련 어워즈에서 ‘베스트 넘버상’을 신설했으면 해요. 넘버 하나 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요. 뮤지컬이란 게 음악 하나만, 가사 하나만 좋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두 손이 딱 붙어있듯 화학작용이 잘 일어나야 하죠. 예를 들어 제일 좋은 원산지의 밀로 만든 밀가루. 청청지역에서 자란 좋은 닭에서 나온 계란, 7천만원이나 하는 젖소에서 나온 우유 이렇게 최고의 재료가 다 있다고 해도 최고의 빵이 항상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잘 조합된 빵을 만드는 게 좋은 뮤지컬이란 말이죠. 그래서 드라마와 가사와 음악이 잘 조합된 넘버를 만들어야죠. 주변에서 ‘음악 좋다’는 칭찬 들으면 김은영 음악 감독 만큼 저도 기뻐요.“

-<글루미데이>에서 베스트 넘버상 후보에 오를 넘버는?
“남자 두 명이 2중창 하는 ‘그가 오고 있어’ 란 넘버요. 좋아하는 넘버이기도 하구요.”

-관객들의 피드백을 다 챙겨보는 편인가
“<여보셔> 박소영 연출은 텐투텐 연습실은 물론 막이 오른 뒤 공연장에도 계속 있고 관객들 평도 매일 모니터 한다고 들었는데, 저는 유심히 찾아보는 편은 아닙니다. 배우들도 연출이 매일 보고 있으면 불편할 것도 같아서요. 전 매일 모니터 하기보다는 주변에서 이야기해주는 경우도 많구요. 저는 일단 공연이 오픈 되면 공연장을 매일 지키는 연출은 아니구요.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려고 며칠 뒤에 와서 봐요. 모니터링은 대표님도 해주고, 제작감독도 해주세요. 뒷심을 키우기 위해 같이 고민을 하죠.

-공연의 막이 오른 뒤 매일 매일 극장에 오지 않는다면 그 시간엔 뭘 하고 있나?
“딴 것을 쓰기도 하고...빨리 다른 것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제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많은 것 같아요.”

- 학창시절 문학 소년의 면모를 풍겼나
“솔직히 학창시절엔 아무 꿈이 없었어요.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발전 없이 점수 맞춰서 공대에 갔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은 좋아했어요. 전 어느 날 ‘이 길은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고 ‘내 꿈을 찾자’란 생각을 했어요. 막연하게 ‘연극과에 가야겠다’ 생각을 먹었고, 그 다음엔 연극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 시절 ‘연극인 윤석화’란 호칭을 TV에서 봤는데 그게 인상적이었나 봐요. ‘연극’에 관심 이 생기고, ‘연극인’이란 호칭이 되게 근사해 보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겉멋이었죠.

전 문학소년이 아니라 ‘집시’ 같다고 해야 할까요. <서울 시나위>란 드라마를 보면, 갤로퍼를 끌고 직업도 없이 돌아다니는 청년들이 나와요. ‘연극인’이란 호칭이 비슷한 냄새를 풍겼거든요. 진짜 연극인이 돼 보니, 꼭 그런 느낌은 아닌데 재미는 있었어요. 제 적성에는 잘 맞는 것 같아요. 결국 제가 동경 했던 건 자유였으니까요. 가수 김건모가 TV에 나와서 ‘새가 되는 게 꿈이었다’라고 말 했는데 전 그 말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 말에 많이들 웃었는데 전 웃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기억이 나요. 연극을 하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혹자는 연극과 뮤지컬을 다른 장르로 보기도 하던데 성 연출은 같은 선상에 놓고 보나
“저는 배우기를 뮤지컬 또한 연극의 한 장르로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게 정답은 아니지만요. 전 다 포함할 수 있는 ‘씨어터’ 개념으로 이해해요. ‘떼아뜨로’(teatro)란 단어처럼 모든 볼거리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인식 하는거죠.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제 정점에서의 꿈이라면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연출하는 겁니다. 그게 쉽지 않은 기회이겠지만 마음 속에 계속 꿈을 키우고 있어요.”

-인상적인 올림픽 개막식이 있었나
“2012년 런던 올림픽이 멋있었어요.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했는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 '대니얼 크레이그'와 함께 헬기를 타고 등장하고 영국의 자랑거리를 다 표현했어요. 마스게임만 봐도 지금까지 올림픽은 표정이 다 죽어있었는데, 배우들을 썼는지 다 캐릭터로 서 있었어요. 장예모가 연출한 중국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 스럽게 하늘을 날아다녔죠. 그런 것들을 보며 연출가의 정점은 올림픽 개폐막식을 연출 하는거구나. 언젠가는 전 세계 인구가 TV로 시청할 수 있는 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하고 싶어요.“

-이젠 배우 일은 하지 않고 극작과 연출에만 전념하나?
“배우 일은 2010년부터 안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연락이 와도 거절을 하죠. 연극 <환상동화>는 오랜 시간 해 왔던 작품이고 워낙 애착이 있으니 했던거구요. <환상동화>는 모든 배우들이 애착을 가지고 있어요.”

-배우 일을 하지 않기로 한 이유를 물어본다면
“처음엔 다 하기로 했어요. 고 박광정 선생님처럼 연기도 잘하고 연출도 잘 하고 싶었어요. 극작도 하고 배우도 한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 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거요. 하지만 워낙 출중한 배우들을 주위에서 보면서 한계를 느꼈어요. ‘과연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배우보다는 극작과 연출이란 답이 나왔어요. 그럼에도 그 중에서 제일 좋아하고 재미있는 건 배우입니다. 어른들이 왜 두 번째 좋아하는 걸 하라는지 알 것도 같아요. 제가 직업으로 여길 만한 건 극작과 연출인 것 같아요.”

성종완 연출가는 “공연을 하는 건 모두 다 가치 있다”고 말했다. “극장은 일탈의 공간이라 배웠고, 그 말에 공감했어요. 일탈은 일상을 위해 필요 한 거죠. 정말 극 사실극 이라고 해도 그 안에 판타지가 있어요. 그 힘으로 다시 일상을 살 수 있게 돼요. 좀 더 나은 일상을 살기 위해서 공연이 필요하고, 모든 예술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구요. 시청이 일탈의 공간이 된 2002년 월드컵을 의미 있게 봤어요. 사람들이 차 위에 올라가도 좋다고 ‘빵빵’ 경적을 울리고, 같이 어울리고 모두 행복했던 기억이요. 일상으로 돌아가면 안 좋은 일이 여전히 기다리고 있지만, 일상을 경험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다른 점이라면 내가 바뀐거죠. 그럼 바뀐 것 아닐까요.

모든 예술은 거창한 걸로 접근하면 안 좋은 결과가 온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공연이 작지만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어요. 전 아빠가 나오는 작품은 항상 울면서 봐요. 10년 전에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그 기억 때문이겠죠. 그것은 배우들의 연기가 특별히 좋아서, 혹은 스토리텔링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그걸 통해 내 삶을 반추하는 의미가 더 크죠. ‘나에게도 아빠가 있었지. 아빠를 그리워하지’ 공연이 어떤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거죠. 물론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공연이 재미도 있고 완성도도 높으면 금상첨화겠죠. 관객들이 이만큼의 시간과 돈을 들인 건 분명하니까요. 저희는 그걸 위해서 더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 허영옥, 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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