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아시나요’는 비극과 희극을 재미로 버무린 연극”
[인터뷰] 연극 <은하수를 아시나요?> 배우 명계남 박윤희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극단 완자무늬의 창단 30주년 작품 <은하수를 아시나요?>(Do you know milky way?)'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실종됐던 독일 병사 '샘'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에 돌아오지만 전사자로 처리되어 다른 이의 삶을 살면서 혼란을 겪는 과정을 그린 연극이다.

칼 비트링거의 <은하수를 아시나요?>는 극단 완자무늬가 30년을 기다려온 의미 있는 작품이다. 두 명의 배우가 13명의 출연자를 소화해야 하는 고난이도 연기와, 2인극 답지 않은 방대한 스케일,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부조리 하지 않은 듯 표현하면서도 그 모순을 풍자해야 하는 관록 있는 연기와 정교한 연출이 필요한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배우 명계남은 귀향청년 샘의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귀여운 늙은 악마를 1인 8역으로 소화 하며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모습의 캐릭터의 향연을 펼친다. 박윤희는 별을 찾아 흘러날다 떨어진 날개 꺾인 천사인 주인공 샘 역 외 1인 3역으로 변신한다.

배우 명계남과 박윤희를 함께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달라진 대학로 연극 환경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지금 이 시대와 닮아있는 연극 <은하수를 아시나요?>

-두 배우가 이 작품을 함께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명계남: 극단 완자무늬 연출자랑 적합한 배우를 찾기 위해 애를 썼어요. 그렇게 박윤희 배우를 발견하고 추천해주셔서 잘 만나게 됐어요. 내가 연극 쪽을 오래 떠나 있었고 나이 차이도 있어서 그런지 그동안 무대에선 마주칠 기회가 없었고 이번에 처음 만난 겁니다.

박윤희: 예전에 선배님께 인사는 드린 적이 있는데 무대에선 처음 만나요. 연극 때문에 숙소를 가까운 곳으로 옮겼는데 선배님과 한 블록 차이라 연습 끝나고 걸어가면서 이야기 하고 있어요.

-특히 명계남 배우는 <은하수를 아시나요?>란 작품에 대한 애정이 많던데 왜 그렇게 좋았나
명계남: 40년 전 장제훈 연출님과 연습을 시작하다 중단되었던 연극입니다. 73년 연극 <동물원 이야기>으로 배우 데뷔를 했어요. <은하수를 아시나요>도 같은 책 속에 실려 있어 연습을 한 적이 있죠. 이 작품이 전후 귀향 문학으로 써진 것도 있지만 인간성 상실이라든지 시대를 관통하는 게 있어요. 샘의 경우는 인간성에 대한 상실과 모멸을 겪지만 그럼에도 버텨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 은하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요. 이 세상을 흔하게 이분법으로 가른다면 상대 역 의사는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고 하겠죠. 그런 충돌을 그리고 있는데 작품 구조도 그렇고 지금 시대와도 닮아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영미 희곡 중엔 존 오스본의 <성난얼굴로 돌아봐라>, E.올비의 <동물원 이야기>, 일본 희곡 중엔 기노시다 준지의 <석학>도 좋았어요. 그런 전후 문학 전집 작품들이 젊은 시절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박윤희: 전 작품 제목을 보고 몇 년 전 <밀키웨이>란 제목으로 바꿔서 공연했던 동일 작품이 떠올랐어요. 작품을 직접 보지는 못했고 포스터가 붙어있던 것만 기억나요. 막상 대본을 보곤 일인 다역이란 점에 덜컥 겁이 나서 바로 하겠다는 말을 못 드렸어요. 그렇게 어려운 부분이 있었긴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랑 닮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고, 이건 연극만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연을 결정 했어요.

-박윤희 배우는 기자보고 조금 뒤에 공연이 무르익으면 보라고 했다.
명계남: 이 친구가 이렇게 진중해요. 빨리 보시고 나중에 또 한 번 보세요.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 더 공연이 무르익는 건 사실이겠죠. 그런데 이번 작품, 오랜 시간 동안 연습 했어요. 12월 초부터 시작해서 중순부터는 거의 낮부터 밤시간까지 풀로 채워서 연습했어요. 이 친구가 사려 깊고 진중해요. 막 저지르지를 못해요. 전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가는 성격인데 저와는 다르죠.

박윤희: 2인극은 한 번 연습하고 나면, 다른 공연 두 번 런쓰루 한 것처럼 진이 쭉 빠져요. 2인극은 처음이기도 한데 에너지 소비가 정말 대단해요. 누군가는 모노드라마가 더 쉽다는 말도 하던데요. 모노극은 혼자 이끌어가면서 관객이랑 포인트만 잡아내면 되니까요. 그런데 저희 작품은 2인극인데다, 제가 맡은 샘 역할 자체가 기간으로 치면 6개월에서 1년 동안의 인생 변화를 다 보여줘야 해요. 극 안에서 역할의 정체성, 심리적 변화를 잘 보여줘야 함은 물론이고, 타임 마다 해설자 겸 극 안내자로서도 관객과 소통을 해야 해요. 배우 입장에서 봐도 만만치 않은 역할이죠.

명계남: 전 정신과 의사 '노이로스' 역 외에도 20분 마다 인물을 바꿔서 제 3자로 무대에 서게 돼요. 시간마다 변화해야 하는 감정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쉽게 넘길 수 없는 역할들이죠. 다른 2인극보다 더 녹록치 않죠.

박윤희: 호되게 야단 맞으면서 연습 했어요.

-호된 야단을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명계남: 소리 높여 강압적으로 뭐라고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조용히 야단을 쳐요. 그런데 그게 더 무서운거죠.

박윤희 : 제훈 연출님이 조용히 한 마디 해주면 ‘이걸 놓쳤구나’ 란 생각에 부끄러운 기분을 많이 받았어요.

-1인 다역을 하는데 어떤 역이 가장 어렵나. 혹은 여러 역할 중 더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다면
명계남: 매 장면이 어려워요. 악마성을 상징하는 여러 역할을 보여줘야 하는데 테크닉적인 면이나 동작이나 몸짓의 변화를 주는 데 그걸 녹여내는 게 쉽지 않아요. 가짜로 보이지 않게 애를 쓰고 있어요. 개인적으론 박윤희씨 독백이 좋아요. 상대역인데 그 독백에 취할 때도 많고요. 역할로서는 제 3장에 나오는 살바토레 술집 주인 역이 끌립니다. 주인공 샘을 결정적으로 망가뜨리는데 일조 하는 악마 역이죠. '세상 그렇게 사는 거 아냐'하고 주인공을 훈계하고 조롱해요. 일명 ‘악마의 훈계’인데 그 장면을 좀 잘 했으면 좋겠어요.

박윤희: 인물로는 다 마음에 들어요. 연극 할 때마다 힘들지만, ‘잘 할 수 있겠구나’ 란 생각에 한 거잖아요. 샘은 별다른 건 없는데 극중극으로 들어와서 서막 정신병원 환자 역이 가장 어렵긴 해요. 자칫 하면 왜곡 된 정신병 환자를 보여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내가 이 사람을 과연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이 들어서 참 어려운 장면인 것 같아요. 말은 바르게 하는데, 정신병 환자 역이라 고민이 제일 커요. 그래서 결정한 게 순수함과 천진함으로 그 사람을 표현해보자로 마음 먹고 그렇게 하고 있는데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어요.

명계남: 윤희는 배우 입장에서 티피컬한 연기를 하면 안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죠. 미친 사람이 누가 본인을 미쳤다고 해요? 그런 지점들을 찾아내는 데 여러 가지 연습이 필요한 거겠죠. 그럼에도 배우가 어느 연기술을 택하든 관객에 전달은 될텐데. 이 성실하고 착한 배우는 계속 깊이 파고들어 고민하고 있어요.



■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별자리가 있어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은하수’ 의미를 무엇으로 봤나?
박윤희 :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 하고자 하는 것 등 인간 자체에 대한 본성과 마음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가?’ 이 곳이 사실 제 정신을 가지고 살기 힘든 곳이란 생각이 들어 원래 은하수에서 온 것이 아닌가하는... 그 점을 잊지 않고 하려고 했고요. 그것보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어요. 연출 선생님은 저에게 ‘처절하게 삶을 안 살아봤지’ 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고통스러운 말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난 그렇게 안 살아봐서 표현 할 수 있는 게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고, 더 망가진 삶의 모습, 그거 하나만 달라져도 성공 할 수 있다고 봤어요.

명계남: 그런데 윤희 배우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 해본 게 없어요. 배우는 인간으로서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 그게 중요한데 이 친구는 검도를 배우든 댄스를 배우든 뭐든 하려고 했더군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모범적으로 살아왔다는거죠. 망가져 본 적이 없다? 네. 착하고 좋고,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번에 자주 만날거니 상대 역할에서도 그렇고 제가 자주 망가뜨릴 생각도 있어요.(웃음)

박윤희: 그런 삶을 살아봤으면 샘이란 인물에 쉽게 접근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거죠.

명계남: 잘 찾았어요. 깡패든 조폭 역이든 꼭 배우가 직접 경험을 해봐야 잘 아나요. 상상력의 크기를 키워 나가는 게 중요하죠. 저도 윤희도 연기를 가르쳐 봐서 그게 어떤 건지 잘 알고 있고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걸 느껴요. 스승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상상력과 경험과 책을 통한 문학적 소양 등 여러가지를 강조하지만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거다...그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니죠. ‘은하수’의 의미는 제목이 의미하듯,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별자리가 있어요. 좋고 편하게 사는 길만이 아닌, ‘내 별은 있을까? 내 별은 어딜까?’ 그런 생각까지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명계남 배우는 스스로 평가하기에, 본인이 윤희 배우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고 보는가
명계남: 저는 잠수를 탄 적도 있고 맥없이 망가진 적도 많았어요. 사랑과 청춘 때문에 가슴이 끌린 대로 살아 본 적도 있죠. 다른 사람이 절 어떻게 볼 지 모르지만, 직업도 여러 가지를 했어요. 다른 사람이 날 이렇게 본다고 해서 그게 그 사람 잘못이 아니란 것도 알고요. 제가 생각하는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분명 시각의 차이가 있겠죠. 그런 점에서 윤희는 바른 생활맨인 거죠.

박윤희: 선배님, 저도 그렇게 착하지 않아요.

명계남: 깍듯하고 연습에 대한 성실성이 대단해요. 이런 배우를 본 적이 없어요.

-후배가 보기에 선배는 어떤가?
박윤희: 연극에 대한 새로운 마음으로 임하시고 있는 것도 있지만, 정말 후배들이 보기에 귀감이 되세요. 후배가 이런 말씀 드리기엔 그렇지만, 배우로서 재능이나 순발력은 제가 뺏어 가지고 오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 때가 많아요.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좋아요. 저도 긍정적인 편이라 대체적으로 수용하는 편인데 저보다 훨씬 그 마음이 커요.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박윤희: 맨 마지막 장면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어요. 부조리하면서 반전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재미있죠. 과연 누가 미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과장된 소리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 기가 막힌 연극의 매력, 그리고 험난함 여정

-‘연극’하니 좋은가
명계남: 힘들고 괴롭고 외로울 때도 있는데 좋아요. 할 줄 아는 게 이거에요. 연극이요. 연극이 하기 싫을 때도 있긴 하죠. 연극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유치한 이야기지만, 화가, 작가, 조각가 등 이런 예술가들은 안 풀리면 ‘에이’ 하고 머리 깨고 만들면 되요. 그런데 연극은 각자 배우들의 고민, 집안 고민도 다르지만 다 어울려서 해야 해요. 그게 하는 사람의 고통이 뒤따르기도 하지만 그 희열감이 달라요. 연극의 그런 맛이 정말 세죠. 돈도 안 되는 재능이라는 말도 있지만요.

-돈도 안 되는 재능? 재능 기부라고 말 할 수도 없다는 의미인가
명계남: 연출님은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비효율적인 재능기부도 없을거다, 란 말도 한 적이 있어요. 만약에 회사에 다니면서 일을 이렇게 열심히 했다면, 벌써 회장이 되었을 거다. 연극은 힘든 일인 건 맞아요. 주목 받고 잘 되는 연극도 있지만, 언론이고 티켓판매 업체든 잘 되는 작품만 주로 홍보하고 있어요. 인기 순위가 작품 선택의 기준이 되는 현 세태를 보면서 우리는 거기에 끼지 못한 건가. 그런 회의감이 들 때도 있어요. 오늘 하루 대학로 무대에 올려 진 작품만 150개는 족히 될 걸요.

-연극 배우든 관계자든 힘들다고 하지만, 연극은 끊임없이 올라가고 연극 배우를 하겠다는 젊은이들도 많다.
명계남: 지금도 내가 20대 때 그랬던 것처럼. 연극을 하겠다고 찾아와요. 오늘도 여기 정미소 극장 걸어오는 데 후드 티 입은 젊은이들 몇 명이 인사를 해, ‘그래 그래’ 이렇게 답했어요. 그런데 속마음은 ‘뭘 그래? 안녕하지 못하다. 너는 안녕하냐?’ 이런 거죠.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 연극 하는 젊은이들이죠. 그런데 앞으로 저들은 어떻게 될까? 손잡고 끌고 싶으면서도 많이 고통스러울 텐에 얼마나 버틸까 해서 안쓰럽기도 해요. 그러면서도 이게(연극) 기가 막히고 그렇다는 걸 언제 알게 될까 염려스러워집니다.

-대학로도 로맨틱 뮤지컬이 많이 올라가고 있다.
명계남: 일간지든 방송 매체든 뮤지컬 같이 큰 작품 위주로 관심을 보여요. 예전에는 없었던 오픈 런 작품에 밀리는 것도 있고요. 요새는 소셜 커머스에서 덤핑하는 연극들도 워낙 많으니까요. 국공립 단체 작품은 기존 고정 관객이 있을테고 매스미디어도 전폭적으로 붙고요. 그런데 게릴라 극장이나 헤화동 1번지 등 조그마한 소극장 공연은 알릴 방법이 없어요. 예전엔 배우 하는 젊은 친구들이 A4 용지에 대강 글 써서 부치고 다녔어요. 그런 뒤 밤새 연습했어요. 물론 술도 먹기도 하는데 홍보 방법이 없어요. 요새는 포스터 붙이는 것도 불법이라 용역을 써서 붙이고 벌금도 그 안에서 해결한다고 들었어요. 이 안에서 우리끼리 전쟁할 수도 없는 거라 힘들어요.

외국도 연극하는 사람들은 힘들어요. 뉴욕대에서 졸업식이 열리면, 연극학과 학장의 멘트가 정해져 있대요. ‘여러분들은 이번에 공식적으로 실업자가 됐다’ 그런 말이요. 할리우드 그 판으로 가고 싶어하는 외국 젊은 친구들이 미술 화랑 같은 곳에서 하는 연극을 본 적이 있는데, 제가 영어를 잘 모르는데도 기가 막히게 잘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연극은 첫 관객이 가장 소중한 연극계의 자원”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인기 대형 뮤지컬이 아닌 소극장 연극 관련 기사를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읽을까? 이 글이 꼭 필요한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 쓸 것인가. 소위 클릭률을 높여 줄 수천의 독자들을 위해 쓸 것인가. 고민이 된다.
명계남 : 그래도 써 주세요. 한 두 사람이 보더라도 이 연극 보기 잘 했어. 잘 골랐어.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좋은 연극에 대해서 써주세요. 예를 들면 태어나서 연극을 처음 보는 사람이 매년 많을텐데, 제대로 된 연극을 접하지 못하고 이상한 연극을 처음 만났다면 어떨까요. 연극은 첫 관객이 가장 소중한 연극계의 자원이 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전 처음 연극 보는 사람들이 정말 좋은 연극을 봤으면 해요. 그게 ‘연극’인지 알게 될까 봐 겁나요. 처음에 재미와 감동을 얻었다면 지속적 관심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는 보지 않겠죠.

-연극을 좋아하는 관객 분들은 화려한 뮤지컬 보다는 소박한 연극에 더 애정을 보이기도 한다.
명계남 : 많은 분들이 연극을 봤으면 하는 열망이 있어요. 우리 연극 뿐 아니라 대학로의 좋은 연극들을 찾아보는 분들이 많아요. 작가가 누구지? 연출은 누구지? 배우가 누가 나오지? 이런 것들도 일일이 다 찾아보시는 분들이죠. 정확한 통계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중요한 건 아직도 태어나서 평생 연극 한편 못 보고 죽는 사람이 많다는거죠.

박윤희: 누군가 저에게 연극을 보러 가려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해요? 란 질문을 하기도 했어요. 연극 자체를 어렵게 생각한다는 의미겠죠.

명계남: 그건 좀 더 나은 생각이라고 보는데. 그래도 뭔가를 갖춰서 입고 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연극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게 있어요. 뮤지컬이 샹들리에 로비 같이 화려한 그런 곳에서 만난다고 한다면, 연극은 다른 맛이 있어요. 조그마한 한쪽 켠에서 진지하게 만나는 작업인데 소중한 경험이죠.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알리고 싶어요. 연극의 3대 요소가 뭔가요. 배우 희곡 관객인데, 관객과 함께한다면 고마운거죠.

-소극장 연극은 관객이 없어서 공연의 막이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들었다.
명계남: 기억나는 일화로는 오래 전 <콘트라베이스>란 작품을 할 때 관객이 5명 왔어요. 그것도 3명은 초대권으로 온 관객이고, 2명은 아는 후배였죠. 그래서 관객들도 ‘뻘쭘’ 할텐데 ‘우리 오늘 술 먹자’고 했던 적이 있어요.

박윤희: 전 들은 이야기인데, 소극장뮤지컬 작품이었던데 선배님과 비슷한 수준으로 관객이 왔나봐요. 그 날 배우가 아닌 관객이 ‘우리 공연 하지 말고 술 먹으러 가자’란 일화가 있었대요.

-원래 관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연극은 올라가야 하는 건가
박윤희: 관객이 단 한 명이 와도 해야 한다고 보는 건 관객도 연극의 일부로 생각한다는 말이겠죠. 80년대엔 관객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관객이 있다면 공연은 올라가야 한다고 들었어요.

명계남 : 배우보다 관객이 더 많으면 해야 한다. 그런 말도 있어요. 그런데 연극의 일부인 관객이 혼자 객석에 앉아 불편해한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보실래요?’하고 관객의 의견을 물어봐야죠. 아니면 같이 막걸리 한 잔 하고, 다른 날 볼 수 있게 티켓을 주던지 기준이 다르죠.

영화는 극장에 손님이 없어도 상영 할 수 있어요. TV나 영화는 내 연기를 볼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카메라를 보고 연기를 해요. 하지만 연극은 제 연기를 볼 관객을 눈앞에 놓고 해요. 연기가 달라요. 배우로서 맛도 달라요. 보는 사람도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어머 송강호가 저랬어. 연기 잘 한다’ 이렇게 반응하겠죠. 반면 연극 <바냐 아저씨>를 보러 와서는 박윤희 배우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면서 아스트로포 역으로 점점 빠져드는 맛이 있죠. 이건 소중한 경험이잖아요. 연극은 관객과 만나는 지점이 달라요. 예술적 행위와 교감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죠.

연극은 공연 시작 전 ‘중간에 나가면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핸드폰 끄십시오’ 등 별 이야기를 다 해요. 영화는 그런 이야기 안 하죠. 물론 그런 행위를 하면 주변에 눈총을 받긴 하겠지만 연극처럼 공연 진행에 차질을 주지는 않죠. TV도 방안에 누어서 이것저것 이야기도 하고 이 방에 갔다 저 방에 갔다 하면서 봐도 누가 뭐라고 안 해요. 그런데 연극은 관극 자세가 다르니 미치고 환장하면서도 봐요.

-연극 중간에 과감하게 뛰쳐 나가는 관객도 있는데 무대 위 배우로서 이런 관객은 어떻게 바라보나
명계남: 배우로서 관객들이 등받이에 기대지 않도록 느슨하지 않게 하려고 해요. 만약 관객으로서 연극이 재미 없다면 그 인상이 강하게 남아 다시는 연극을 안 보겠죠. 영화는 잘못 선택했다면 생각이 들면, 아무렇지 않게 스르르 나갈 수 있어요. 소극장에서 중간에 나가기는 쉽지 않은데 바쁜 일이 생기셨다면 나가야죠. 공연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는지 되게 미안한 몸짓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긴 해요.

박윤희: 전 옛날에 중간에 관객이 나갔다는 말을 듣고 격분 한 적이 있어요. 그것도 연극하는 사람이 작품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다는 말을 듣고 ‘그러지 마라. 네가 무대에 있는 데 관객이 나갔다고 생각해봐’ 그건 정말 예의가 아닌거죠.



■ ‘연극인’은 과연 누구인가?

-호객행위 하는 연극들은 일반 연극인들과 달리 수입이 많다고 들었다.
명계남: 속칭 이상한 방법으로 관객을 호객하는 대학로의 모습을 보며 놀랐어요. 제가 20대 였던 70~80년대엔 연극 관객 대부분이 20대 초반 여성이 80%였어요. 그 중에서도 이화여대생들이 많았죠. 그 시절 대학로 풍경은 낙엽 떨어지는 마로니에 공원을 걷고 샘터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연극 한 편 보는 거였다면, 이젠 대학로가 저잣거리가 됐어요. 추잡한 거리가 된 거죠. 혜화역만 봐도 계단 전체를 도배한 대형 포스터들이 붙어있어요. 관객들 입장에서도 어떤 연극을 골라야 하나? 혼란스러울 것 같아요. 포스터에 유명한 사람들이 나왔으니 보러가? 호객 행위 하는 사람들이 권하는 연극을 봐? 참 혼란스럽다. 특별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요. 전 중간에 연극계를 떠나 영화를 했는데, 내 친구 김태수처럼 아직도 대학로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고맙죠.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과연 ‘연극인이라는 게 어디까지를 포함하는가’ 이다.
박윤희: 연극에 종사하는 사람 모두를 ‘연극인’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정확한 정의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전 연극을 빙자해 사업을 하는 일명 대학로에서 호객행위 하는 연극과 관련 된 일을 하는 그들은 ‘연극인’이라 부르고 싶지 않아요. 사단법인 소극장 연합회, 연극협회에서도 그런 행위를 없애려고 하는데 쉽지 않나 봐요. 제자가 비슷한 연극을 한 적이 있어서 그들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4팀 내지 5팀 배우들을 꾸려서 주말엔 공연을 3번씩 돌린다고 했어요. 배우들에겐 회당 2만원~3만원 정도를 준대요. 그 제자 말이 다른 공연 단체엔 오디션을 넣어도 안 돼서 다시 이런 연극을 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뤄진다는 말도 했어요.

명계남: (호객행위 하는)저 사람들은 저들대로 심각할거고, 우리는 우리대로 심각한 거고. 극장을 소유한 젊은 대표들이 옛날엔 없던 오픈런 공연을 올리고 있어요. 극단 완자무늬는 30년을 연극을 했지만 극장이 없어요. 대관료 없는데 극장 소유라니요. 그런데 저들은 그게 되니까 할 수 있는거겠죠. 2만원씩이나 배우들에게 줄 수도 있는 것도 그렇구요. 희곡도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하는데 희곡을 써도 돈이 안 되니 글 쓰던 젊은 친구들도 많이 없어졌어요. 연출자야 극단 대표도 겸해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자기 돈 들여서 뜻 맞는 배우들과 해요. 배우, 작가, 연출가 그런 사람들이 연극인이죠. 대학로에 있는 150개 극장에 있는 2천 명의 스태프 모두 연극인입니다. 듣기론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대학로로 들어오는 인원이 3천명이고 또 대학로를 나가는 인원이 3천명이란 말도 있어요.

(윤희 배우를 보며) 대학원 논문 쓴다고 했는데, ‘연극인은 누구인가? 어디까지 연극인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주제로 논문을 써봐. 서울연극협회 회원이라고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흔히 대학로가 오프 브로드 웨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한 장소에 씨어터가 이렇게 많은 곳이 없대요. 그런데 우리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피한거죠.

박윤희: 영화 오디션을 보기 위해 기다리다 보면 오디션 지원자들과 이야기 할 경우가 많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학로에서 연극하다 온 연극배우’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런데 들어보면, 거의 제가 모르는 제목의 작품을 했어요. 물론 그 친구도 내가 했던 작품을 전혀 모른다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요. 전 ‘내가 배우입니다’ 라고 말 한지 얼마 안 됐어요. 내가 바쁘게 연극 작업을 한 것도 아니고, 좋은 작품, 큰 작품을 자주 하지 못해서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그런 마음이 한 켠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내 입으로 연극배우라고 이야기 해도 되나?’ 그런 생각을 꽤 했어요. ‘진짜로 연극배우란 소리만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는데, 연극 한번 해 보고 다 연극배우라 말 한다는 게 좀 그랬어요. 그렇게 말해 놓고 영화 오디션 보고 못하면 전체 연극배우를 욕먹이는 꼴이 되는 거잖아요. 제 성격이 이렇게 생겨 먹은 탓도 있겠죠.

-마지막으로 <은하수를 아시나요?>는 어떤 작품이다,를 짤막하게 설명한다면
명계남 : <은하수를 아시나요?>는 무지하게 어려운 연극이 아니라 재미있는 연극이다. 비극적인 것과 희극적인 것을 재미로 버무렸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두 배우가 가진 연기술, 호흡, 무대, 음악, 이런 것들이 정교하게 짜 맞춰진 작품입니다. 지루하지 않게 진지한 우리들의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죠.

박윤희: 전 간략하게 말할게요. 혹시 힘드세요? <은하수를 아시나요?> 보러오세요.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다훈, 극단 완자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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