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배우 이현 안두호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2005년 12월 초연 이후 꾸준히 무대를 지켜온 소극장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사이>는 가톨릭 자선 병원을 배경으로, 연말 이웃돕기 TV 방송 출연 인터뷰를 하루 앞둔 척추마비 환자 '최병호'가 밤새 사라지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따뜻한 인간애가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

마음의 상처를 드레싱 해주는 닥터리로 분해 꽃보다 백배는 귀한 꽃씨를 마음에 품은 배우 이현, 그리움과 미안함을 노란 편지 속에 꼭꼭 숨겨 둔 최병호 역 배우 안두호를 만났다. 두 배우 모두 차근차근 성장하는 배우로서 올바른 마음자세를 제대로 감지할 수 있는 인터뷰였다.

■ ‘캐릭터로 다가갈까, 인물로 변신할까’에 대한 설전

-두 배우 나이차가 어떻게 되는지
안두호: 제가 83년생이고 형이 79년생입니다.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구요?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제 복이죠(웃음)

-두호 배우는 <나와 할아버지>, <아가사>에 출연 중인 오의식 배우와 동갑인가
안두호 : 83년생 돼지 띠 친구론 오의식 이규형 배우가 있어요. 전 인천에서 극단 ‘십년후에’로 배우 생활을 시작 했어요. 2008년에 대학로로 나와서 잠깐 멀티맨을 한 적이 있지만 2011년부터 배우 경력으로 치고 있어요. 이제 3년 됐어요. 저란 배우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의식이는 대학로에서 쭉 배우 생활을 했던 친구라 경력도 더 많고 또 워낙 잘 하는 친구이기도 해서 많은 이들이 좋아해요.

이현: 이런 단어가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두호는 처음 봤을 때 뭔가 찐한 느낌을 받았어요.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런 인상 말고 사람 자체가 깊고 찐한 느낌이요. 제가 <오 당신!>팀에서 제일 형이죠. 제가 동안이라기보다는 철이 없어서 이 나이에도 김종욱을 하고 있어요. <김종욱 찾기>에서는 저 보다 한 살 많은 (이)동재 형이 있긴 해요.

-두 배우 모두 오디션을 보고 이 작품에 합류하게 된 건가
이현: 두호는 1차 오디션부터 함께 해 값진 승리를 얻은 케이스죠. 전 콜을 받고 비공개 오디션을 봤어요. 이 전에 베드로 역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결국 작품이 좋아서 선뜻 온 거죠.

-이 작품 전에는 서로 친분이 없었나
이현: 전 두호를 뮤지컬 <빨래>의 배우로 먼저 알게 됐어요. <빨래>를 좋아해서 가끔 보고 싶을 때면 보러 가요. 제가 시즌도 다르게 3번을 봤는데, 그 때마다 두호가 나왔어요. 임창정, 이규형이 하는 솔롱고 등 여러 번 봤는데 그 때마다 ‘빵’ 역은 두호였어요. 그것도 눈에 너무 들어온 악역이었어요.

악역이 어려운 이유가 사람에게 뭔가 감동 혹은 특별한 감정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잖아요. 보통 사람은 악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두호는 ‘오죽했으면 저랬을까. 저 사람 심정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게 했어요. 길례 역 김국희 배우도 너무 잘해서 저 둘이랑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 당신> 배우 첫 미팅 때 모였는데 두 배우가 나와 있는거였어요. 처음엔 형이랑 누나인지 알았는데, 다 동생들이었던거죠.

안두호: 전 형을 그룹 ‘오션’ 활동 할 때 TV로 먼저 봤죠. 그 때 보고 여기와서 본 건데 만날 운명이었던거죠. 가수로 볼 때 뭔가 ‘쌔’ 했어요.

이현: 우리 이러다 <풍월주>, <쓰릴미> 하는 거 아냐. 함께하면 잘 할 수 있는데(웃음)

안두호: <퍼펙트맨>도 그렇고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안두호 배우는 뮤지컬 <빨래>를 언제부터 했나
안두호: 2011년 9차 투어팀부터 시작해서 12차 학전 마지막 공연까지 했어요. 배우 정문성 박종표 김종구 솔롱고 일 때 빵 역으로 함께 했어요.

-혹시 솔롱고 역으로는 오디션을 본 적이 없나
안두호: 사실 처음에 이봉련 누나가 솔롱고로 오디션을 넣으라고 한 적이 있긴 해요.
이현: 아! 봉련 누나가 마른 누나 맞지.
안두호: 형보다 어려. 그 누나가 밑져야 본전인데 솔롱고를 넣어봐. 전 구씨랑 솔롱고 두 역을 놓고 고민하다 제가 잘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든 구씨로 오디션을 봤어요. 그런데 막상 합격하고 나니 ‘네가 ‘빵’을 해 보면 어떻겠니?‘란 제안이 들어왔어요. 사실 ‘빵’은 워낙에 키가 높아 제 역으로 생각을 안 했어요. ‘책속의 길’란 넘버가 키가 너무 높거든요. 초연 ‘빵’이었던 이영기(이서환) 배우 키에 맞춰진거라 그래요. 뮤지컬 <날아라 박씨> <맨오브라만차>에 나왔던 배우요. 노래가 너무 높아 상상도 못했던 역입니다. 그 역할 한번 하고 나면 탈진할 정도입니다. 이미지 캐스팅도 분명 있기 때문에 솔롱고 역으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요. 워낙 경쟁률이 높은 배역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전 몽골인 닮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어요. 몽골인들은 멀리 봐야 돼서 눈이 작대요. 다음엔 솔롱고 역으로 도전해보도록 할께요. 제가 문성 배우를 좋아해요. ‘내 이름은 솔롱고입니다’ 란 대사를 할 때 오늘은 어떻게 하나 계속 옆에서 봤어요. 솔롱고 대사도 다 외울 정도로요. 항상 보면서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배우 욕심이죠. 제가 저 역할을 맡는다면, 나중에 하게 된다면 ‘나는 저렇게 풀어가야지.’ 그런 마음이요.



-이현 배우는 최병호 역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이현: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봐요. 배우라면 당연히 다른 역할도 해 보고 싶죠. 그런데 만드는 사람 입장도 있는거니까요. 우리나라는 이미지 캐스팅도 분명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직 배워가는 입장에서는 제 고집만을 내세우는 게 아닌 보다 넓게 보고 싶어요.

안두호 : 선생님이 ‘네가 하고 싶은 건 분명 있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선은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다‘란 말을 해 주셨어요. 질문의 의도가 무슨 말인지도 알겠고, 선생님의 말씀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 입장에서는 정확한 본인의 캐릭터가 필요해요. 배우를 선택하는 제작사 입장에서도 캐릭터가 있는 배우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고요. 캐릭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게 배우에겐 복이지만 그런 기회는 한정적이긴 해요. 물론 그게 그 사람의 능력인 건 맞아요. 배우 입장에서는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죠. 물론 배우의 그릇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제가 이전에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란 작품에서 버클리 유학파 젊은이 역을 맡았어요. 그 전에 ‘빵’ 역할이 굳어져서 그런지 ‘제게 웃기지 마’란 반응도 보이긴 했지만 배우라는 게 계속 그렇게 변화를 줘야 맞는거죠. 캐릭터로 가는 게 아니라 작품 속의 인물로 바뀌어야 하는 거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배우로서 안두호가 검증돼 있는 건 ‘빵’ 캐릭터란 거죠.

-배우를 소개할 때 어떤 수식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두 배우는 어떻게 소개를 하면 좋겠나.
이현: 전 앞에 붙는 게 없어요. 현이 오빠, 현 배우로 불리는 데 그게 담백하니 좋아요. 수식어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네요. 저는 현재 배우로서 연기를 잘 하고 싶은 생각이 커요.

안두호: 형은 현롱고 한번 하셔야죠. 전 요즘 두호 병호로 불리는 게 좋아요. 혼연일체가 된 느낌도 들고 라임도 맞지 않나요(웃음)

이현: 난 이씨라 닥터리가 될 운명이었던거야. <식구를 찾아서>에 나오는 이상은 선배가 초연 닥터리라 역할에 대해 물어 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열심히 알아서 해. 닥터리는 장치야’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알겠습니다’라고 답했어요. 닥터리는 다른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꺼내게 도와주는 역할인거죠.

안두호: 전 <오! 당신> 이전 차수 공연을 봤어요. 최호준 형이 남자 배우라면 베드로 역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막상 공연을 본 제 안에선 최병호랑 최민희 부녀가 주인공으로 다가왔어요. 오디션을 볼 땐 최병호 역이랑 베드로 역을 같이 준비했어요. 두 역할을 한꺼번에 준비하니 계속 힘도 들었는데 베드로 역은 보지도 않고, 최병호 연기만 해 보라는 지시가 왔어요. 결국 이렇게 최병호 역으로 무대에 서고 있네요. 전 오늘 인터뷰 한다고 와서 텐션 돼서 왔는데, 잘못 생각했군요. 인터뷰란 것도 사람과의 만남이고 생각을 서로 공유하고 그러는건데, 오늘 인터뷰 진짜 서로 대화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이현: 저도 인터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카메라로 ‘딱딱’ 사진 찍고, 딱딱하게 ‘뭐 어떠신가요?’란 질문하고 그랬는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좋네요.

■ “최병호는 원래 따뜻한 사람이라 세상에 대한 배신감이 더 컸을 것”

-최병호는 어떤 인물인가
안두호: 삶의 이유나 목적이 없이 병실에서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어요. 모든 걸 놔버린 사람이죠. 내가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무섭고 불쌍한 거잖아요.

-최병호의 대사는 그리 많지 않다.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썼는가?
안두호: 제가 담배를 끊은 지 2년이 됐는데, 병호 때문에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이 사람의 아픔의 깊이를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대사도 많이 없고, 대사를 하지 않아도 이야기는 진행돼야 해요. 눈빛, 고개 짓, 손짓 등 평상시 가만히 있어도 이 인물이 가진 아우라 만으로 저 사람은 아픈 사람을 표현해줘야 해요. 병호는 어디가 아픈 사람이냐? 마음이 아픈 사람입니다. 이런 포인트들을 많이 잡을 수 있도록 도와 준 게 즉흥극입니다. <오! 당신> 연습 하면서 즉흥극을 많이 했어요. 정말 힘들어요. 병호와 그의 가족들이 헤어질 때, 병호 다리가 다쳤을 때 상황을 즉흥극으로 계속 이어가요. 그 순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많이 느꼈어요.

이현 : 저희 즉흥극이 정말 강도가 세게 할 뿐 아니라 리얼하게 해요. 가족들에게 담배 뿜고 날계란 던지고...당사자 배우는 그 상황을 못 견디고 나가고 싶어 하는데 못나게 해요.

안두호 : 제가 보는 앞에서 빚쟁이들이 직접 마누라랑 딸을 패고 있어요. 그래서 아버지인 저는 소리 지르고 난리가 아니었어요.

-가족들이 와서 이 작품을 봤나?
안두호: 최병호 캐릭터는 모든 아버지들과 비슷한 점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가정이 불우했던 건 아니지만, 아버지를 바라볼 때 슬픔이 있어요. 저희 어머니가 공연보고 깜짝 놀랐던 게 ‘어이구. 지 아빠 아들 아니랄까봐. 똑같아.’ 라고 했대요. 영상이 흘러나올 땐 내가 우리 아빠를 보고 있는 그런 느낌도 들어요. 그럴 땐 제가 최민희 입장이 돼서 바라보는거죠. 그래서 딸 민희의 마음이 더 이해가 되고 아빠의 마음을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 둘의 아픔을 자연스럽게 쫓아가려고 노력했어요.



이현: 두호를 옆에서 보면 진짜 딸이랑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두호랑 딸 이주우 배우는 호칭도 달라요. 주우는 두호한테 ‘아빠, 아빠’라고 말해요. 진짜 가족 같아요.

-부정이 강하게 느껴져서 혹시 일찍 결혼한 배우는 아닌가란 생각도 잠시 들었다.
안두호: 제가 ‘유부남 아니냐?’ 란 소리도 들어요.(웃음) 그런데 병호는 원래 정이 많아서 사람들한테 정을 많이 줬던 사람 아니었을까요. 그런 따뜻함이 있었던 사람이니까, 나중에 막 차가워졌던 거고, 세상에 대한 배신감이 더 컸을거라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딸을 만났을 때 촛불 하나에도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었겠죠. 얼음 녹듯 화가 녹아요. 후반에 병원을 탈출하는 장면에서 병원 사람들이 원투쓰리 강펀치로 병호의 가슴을 때려요. 닥터리는 들어와서 체인 감았으니 가자고 해요. 숙자도 이미 저희 부녀가 무사히 나갈 수 있게 도와주요. 그 장면이 병호가 처음 잡아 본 세상의 따뜻한 손 아니었을까요.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만이 다른 이의 어려움을 알고 도와줘요. 아픈 사람들끼리 부대끼고 안아주는 장면이죠. 정신없는 길례 할미가 저금통을 가져가라고 할 때 확 와 닿는 게 있어요. 그 장면이 제일 많이 와요. 병호가 할머니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대사가 ‘똥 쫌 싸지마’ 죠. 사실 병호의 속마음은 ‘할매 고마웠어. 건강해’ 였겠죠. 숙자에겐 ‘술 좀 작작 먹으라’고 해요. 닥터리에겐 눈빛으로만 이야기 하는데 결국 ‘고맙다’는 눈빛이 담겨 있어요. 그동안 날 보살펴 준 사람은 닥터리였으니까요. 그게 따뜻함으로 비춰진다는 말도 있어서 병호의 성격대로 냉정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전 그건 못할 것 같아요.

이현: 사람마다 분석은 다르겠지. 어떤 장면을 봤을 때 모든 사람이 바라는 스토리의 객관성은 있어. 그런데 거기선 네 선택이 맞아. 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

안두호: 늘 힘들어요. 병호 캐릭터도 쉽지 않지만 공연기간이 6개월인 장기 공연 일 경우 배우들이 지치는 게 있어요. 저도 슬럼프가 왔던 적이 있어요. 그런 제 자신이 창피하고 확신이 없었는데 우리 팀 배우들이 늘 새로운 걸 찾도록 독려해줘서 이겨냈어요. 이 작품이 끝나면 정말 눈물 흘릴 것 같아요. 그렇게 가족 같은 배우들이랑 함께 하고 있어요.

■ 외모보다 마음이 멋있는 닥터리 이현

-프로그램 내 글에서 이지연 연출이 이현 배우는 연습벌레라고 썼다.
이현: 전 뭘 많이 해야 되는 스타일이라 그렇게 표현 하셨나봐요. 배우란 게 스스로 납득이 돼야 할 수 있잖아요. 내 안에 담아내고 뭔가를 끌어내야 해요. 전 두호처럼 극단 생활을 했던 것도 아니어서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했어요.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내공이라는 게 많지 않아요. 가수 활동을 하다, 우연치 않게 <사랑은 비를 타고)>(사비타)오디션에 합격 해 이 쪽에 발을 내딛게 됐어요. 프로 무대에 섰으니 그들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어요. 닥터리 역을 맡았을 때, 시간이 안 돼 꽃동네 까진 못가고 국립의료원 응급실에 직접 가서 관찰을 하고 온 적이 있어요. 배우들이 흔히 스펙트럼을 넓힌다는 표현을 하는 데 그런 의미죠. 제가 본 의사는 응급실에서 진료 후 잠도 제대로 못자고 피곤했는지 하품을 하고 나왔어요. 슬리퍼에 안경을 쓰고 머리는 곱슬머리였는데, 며칠 머리를 안 감았는지 떡진 머리를 하고 있었어요. 그 머리를 막 긁더니 담배를 피웠어요. 허공에 대고 담배를 피운 그 모습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녹록치 않은 의사로 뭔가를 느꼈다는 거죠. 그래서 저걸 모델링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작은 차이일 수 있는데, 제 닥터리는 머리를 헝클고 나와요. 닥터리는 깔끔하고 멋있어야 한다는 틀을 깨고 싶었어요. 처음에 제가 분석한 닥터리는 멋있지 않았어요.

안두호: 닥터리는 마음이 멋있는거지. 게다가 형은 자체 발광이 있어. 형은 수염 기르면 더 멋있어 져요.

-닥터리는 1인 5역을 한다. 닥터리는 각 캐릭터마다 확실한 이야기가 있다. 그 중 어떤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들어오던가
이현: 숙자의 나쁜 남자인 버터리요. 대본을 보면 닥터리가 메인인데, 연습과정에서 가슴에 담긴 캐릭터는 버터리입니다. 태어나서 즉흥극을 처음 해봤어요. 차청화 배우가 숙자를 했는데 그 시간이 놀라움 그 자체였어요.

안두호: 즉흥극에서 형이 그려 낸 버터리는 바람둥이가 아니라 실제 숙자를 사랑한 남자에요. 소위 의사 마누라에게 지쳐서 여기 와서 위안을 받아요. 거기서 숙자도 위안을 받고요. 그런 관계였는데, 그 의사 부인이 사주한 남자들이 와서 ‘네가 뭔데’ 이런 식으로 숙자를 몰아붙여요. 버터리가 ‘그래 도망갑시다’ 하고 함께 약을 먹으려고 하는데 본인도 잊고 있던 현실에 손을 놔버려요. 옆에서 보면 되게 슬퍼요.

이현 : 즉흥극은 대사가 없이 상황만 주어져요. 즉흥극을 할 때 숙자는 시골에서 온 아가씨로, 서울에서 옷가게를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일이 안 풀쳐 현실에서 튕겨져 나오게 돼요. 몰상식한 주인이든 속님이든 그들에게 속아서 우연치 않게 술집에 들어온 여자입니다. 처음엔 속아서 들어와서 그런 술집인 걸 몰랐는데,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들이닥쳐 멘붕이 온 거죠. 이런 상태에서 ‘닥터리가 숙자를 꼬시라’는 상황에 제가 놓여졌어요. 즉흥이니 저도 모른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하게 돼요. 숙자가 상처가 많은 사람인데 뭘 어떻게 꼬셔요? 제가 접근할 수 있었던 방식으로 위로를 해야죠. 그런데 그 상황에 완전 빠져들어서 청화가 눈이 갔어요. 청화는 이미 숙자로서 따귀도 맞고 무서운 상황을 겪고 나온거거든요. 전 옆에 딱 앉아서 아무 말 안하고 있다가, ‘이야기 좀 해요’ 이렇게 들어갔어요. 그런데 숙자는 대답도 안하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그래서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나도 쳇바퀴 돌아가는 삶에 너무 지쳐있고, 와이프도 누구도 날 이해 못한다.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싶어서 왔다. 터치 안하겠다.’ 그렇게 숙자에게 다가갔어요. 그게 첫 번째 즉흥이었고, 두 번째는 숙자가 술집에서 막 당하고 있는데, 의사인 제가 찾아오니 저랑 숙자만 방에 넣어줘요. 그 때 숙자가 물어봐요. ‘왜 날 찾아요?’라고. 그게 숙자의 한마디인데 ‘훅’ 들어왔어요. 그런 식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졌어요. 즉흥이 리얼이 된 거죠. 외롭고 공허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위안이 된 거죠. 그런데 버터리의 주변 상황이 이들을 가만 두지 않죠. 서로 의지하고 ‘우리 둘이 약을 먹고 죽자’ 마음 먹었는데 갑자기 국희가(극 중 버터리 아내 역) ‘여보’ 하는거예요. 숙자 애는 이미 약을 마셔버렸고, 순간 ‘어떡하지’란 마음이 들어요. 내 처자식 생각도 나죠. ‘하나, 둘, 셋. 여보’ 하는데, 버터리는 그 순간 진짜 갈등 하고 있는 포즈를 잡고 힘들게 일어나요. 여자가 봤을 땐 결과적으로 숙자를 망쳤으니 버터리가 개새끼는 맞아요. 다만 그 남자에게도 인간으로서 연민은 있구나. 그런 걸 느끼셨으면 다행인거죠.

-이 전에도 <오 당신!>을 봤지만, 이현 배우의 버터리를 만나고, 버터리가 마냥 나쁜 남자같이 느껴지지 않아 원 대본이 궁금해졌다.
이현 : 대본은 똑같아요. 제가 전사를 만든 거죠.

안두호: 배우가 전사를 만들어 내면서 내 색깔이 되는 거죠. 대본에 있는 여백, 그런 걸 채워가는 게 배우의 일이죠.

이현: 배우 생활을 오래 한 건 아니지만, 연기를 하면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돼요. 연기라는 게 내가 아닌 어떤 상태가 되는 건데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면 되게 이상 할 때가 있어요. 제가 보여준 연기 그것도 사실 나잖아요. 즉흥극을 할 때 비슷한 상황을 느끼기 위해 연습실 불을 다 꺼서 깜깜해요. 즉흥극이 끝나고 불을 켰는데, 콧물, 눈물 다 흘린 얼굴 표정이...청화가 날 보자 ‘개새끼야’ 라고 말 했어요. 연기였지만 미안한 감정이 들었어요. 되게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그 때 기억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많은 공연들이 본 공연 전에 <즉흥극>을 연습하나
안두호: <빨래>도 즉흥극을 한 적이 있어요. 잡지를 찢어서 나영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만들었어요. 종이로 전봇대, 슈퍼 등을 만들었어요. 빨래 줄도 만들어 거기에 옷들을 오려서 걸어놨는데 마치 소꿉장난 같은 놀이를 했어요. 처음엔 ‘뭐야’ 했는데 다 하고 나니 머릿 속에 나영이 동네가 다 그려지더군요. 배우가 빨리 캐릭터에 가까워지게 하고 싶은 연출님들이 즉흥극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추민주, 장유정, 위성신 연출님이 그러시는 것 같아요.

이현: 전 즉흥극을 <오! 당신> 때 처음 겪었어요. 안에서 배우들은 리얼 상태가 되는데 밖에서 연출은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정말 다른 세계 였어요.

안두호: 장두이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배우는 즉흥을 많이 해야 해. 그런 상황에 널 던져봐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인물로 입혀질 수 있다’

-이현 배우 연기를 보면서 ‘드레싱’ 의미에 대해서 더 확실히 알게 됐다.
이현: 드레싱이라는 말이 상처를 닦아준다는 의미죠. 닥터리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의사로서 상처를 치료해줘요. 제가 버터리로 들어오면서 ‘드레싱 해드릴까요?’란 말을 하는데 마음의 상처도 닦아준다는 의미가 담겨있는거죠. 물론 처음 봤을 땐 속 뜻을 느끼기 어려워서 표면적인 멘트만 느끼하게 받아들여 웃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버터리도 상처 투성인 남자잖아요. 절 보고 ‘버터리’라고 하는데 진지함보다 더 깊다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 “병호에게 편지는 그리움과 미안함, 소년 집배원에겐 꽃보다 귀한 마음”

-<오! 당신>은 ‘편지’의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기도 하다.
안두호: 병호에게 편지는 그리움이죠. 처음 관객으로 <오! 당신>을 보러 왔을 때 ‘설마 저 가방에 편지가 가득 들어있겠어’란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런데 가방을 확 깠는데 편지가 가득 들어있는거죠. 어질했어요. 수 많은 편지들 그게 그리움인거죠. 숨겨놓고 숨겨 논 그리움과 미안함이요. 병호의 많지 않은 대사 중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대사가 그 의미인거죠. 거기에 아빠로서의 사랑 과 그리움, 미안함이 다 담겨 있어요. 편지가 우수수 떨어질 때 이미지 적으론 그리움과 미안함이 바닥에 널려있는 것으로 바라봤어요. 그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딸은 그 편지를 받지 않으려고 해요. 할머니랑 숙자들은 고이 고이 가져가야지. 딸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같이 가져가야지란 의미로 편지 하나 하나를 가방에 담아줘요. 저에게도 최병호에게도 편지란 그런 의미입니다.

-이현 배우도 극 중 편지를 전달하는 집배원으로 분한다. 어린 집배원 소년의 편지에 담긴 의미도 남다르다.
이현 : <오! 당신>에서 닥터리는 제가 스토리를 이끌기 보다는 상대를 위로 해줘야 하는 역할을 해요. 봉사 하러 온 정연을 위로해줘야 해요. 길례 할머니 젊은 시절의 회상 장면에서 등장하는 소년 집배원으로서는 속된 말로 그 분 마음에 들어가야 하는 역입니다. 할머니가 남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가는 거죠. 옛날 분이라면 ‘바람났다’는 것에 더더욱 민감할텐데. 남들에게 쉽지 않은 캐릭터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어린 소년에게 편지는 ‘마음’이죠. 노래 가사에도 있는데 ‘꽃보다 백배는 귀한 꽃씨. 사연은 없고 꽃씨만’.이라고 말해요. 장유정 작가 겸 연출님이 이런 은유적 표현을 좋아해요. 소년이 혼자가 된 길례 누나를 사모하게 된 거죠. 그 시대의 사회적인 시선에선 큰일 날이었겠지만 설레는 마음에 누나를 보러가요. 편지를 부쳐달라고 누나가 주는 데 처음엔 내 것인지도 모르고 궁금해서 열어봐요. 그런데 꽃씨만 있어요. 꽃씨에 모든 게 담겨있는거죠. 씨앗이 마음인거잖아요. 거기에 꽃을 넣은 것도 아니고 씨앗을 넣었다는 건...씨앗은 어떻게 커질지 모르지만, 적극적인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진 못하지만 되게 솔직한 표현 아닌가요. 그걸 보고 소년은 감사해요. 봉투 안에 꽃씨 하나 있는데 행복했던 그 시절만 가능했던 서정적인 정서죠. 길례의 머리에 꽃을 꽂아주는 장면도 제가 그 의미를 발견해서 만든 건데요. 원래는 ‘이리와요’. 이렇게 말하고 한바퀴 도는 건데, 전 한 장면을 추가 했어요. 길례 할머니 머리에 핑크색 꽃이 달려있는 걸 보고, 제가 상징적인 의미로 만들어죠. 길례 역 배우 국희랑 이야기해서 말을 맞췄어요. 의미전달과 표현에 있어서 문제가 없어서 픽스 된 장면입니다. 다른 닥터리도 이 장면을 하냐구요? 앞으로 다른 닥터리는 이 장면을 할 지는 모르죠.

-이현 배우에겐 로맨틱한 면이 있나보다.
이현: 제가 누나가 있어서 남자만의 세계로만 살아오진 않았어요. <들장미 캔디> 만화 도 다 봤어요. 개구쟁이 친구들이 고무줄을 끊으면 ‘야’ 하면서 뭐라 하기도 하고 여자 친구들이 고무줄 하는 것 구경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그런 놀이만 한 게 아니라 스포츠를 너무 좋아해서 농구 선수도 했어요. 예체능 쪽은 다 좋아했던 것 같아요.

-혹시 두호 배우는 여자 친구들이 고무줄 놀이하면 줄을 끊었던 남자 아이 중 한 명이었나
안두호: 고무줄을 끊은 남자 아이는 맞긴 한데 바로 사과하고 미안해 한 아이가 저였어요. 미안한 마음에 바로 고무줄 잡아준 아이요. 2형제 중 첫째인데 어렸을 때 많이 개구졌어요. 많이 맞기도 했어요.

-이현 배우는 장유정 작가 겸 연출의 <김종욱찾기>와 <오! 당신>에 번갈아 가며 출연 중이다.
이현: 두 작품 모두 힘든 건 맞아요. 김종욱은 일단 체력적으로 힘들구요. 무대 위에 계속 있어야 하니까요. 멀티맨과의 조화도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스토리는 여자가 주인공이죠. 스토리 끌고가는 여자 옆에서 여자를 받쳐주는 역이죠. 작품 전체적으로 첫사랑의 아련함을 보여줘야해요. 그런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서 최대한 주인공 여자의 상태와, 여자의 변화를 관객에게 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만들어주기가 쉽지 않아요. 마지막에 이 사람과 여자가 사랑하게 되는 연결고리를 정확하게 느끼게 해줘야 하는 역이잖아요. 멀티맨은 웃겨야 하는 책임이 있고 남자는 누가 봐도 느끼하지 않게, 여자들이 ‘그래. 저럴 수 있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남자를 보여줘야 해요. ‘여자가 정말 원하는 남자가 뭘까’ 그렇게 멋있는 남자가 뭔지 몰라. 이번에 공연 하면서 계속 생각 했던 부분입니다. <김종욱 찾기>에 의미있는 말들이 되게 많은데 그걸 전달하는 건 배우 몫이죠. ‘사막에 오아시스가 없다면?’ ‘물과 나무만 있겠어요? 에이 설마. 그럴수도.’ 이런 대사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느낌을 전달해야 하는데 어렵죠. 상대방을 그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도요.

안두호: 저도 길례의 군인 남편 역이 힘들어요. 모든 작품이 그렇겠지만, 각자가 맡은 역할을 조금만 덜 보여주게 되면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동도 덜하게 되죠. <오!당신>은 그게 명확해요. 마치 톱니바퀴 물리듯 각 배우들이 표현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매번 신중히 해야 하는 역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배우 이현은 “<오! 당신>을 보러 오는 관객은 따뜻함을 느끼러 오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공연 전에 저희 팀 배우들이 손을 다 모으며 하는 파이팅 구호가 ‘사랑합니다. 사랑합시다. 오 당신!’입니다. 우리끼리 사랑하고, 관객을 사랑 하자는 의미인데 이런 따뜻함이 객석에서도 느껴질 수 있겠으면 좋겠어요.”

안두호 배우는 “<오! 당신>은 심장 속에 핫팩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이 뜨끈뜨끈한 작품이다”고 말했다.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마른 삶에 단비를 내려줄 수 있는 존재가 배우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영혼을 다루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깨끗해야 한다고 봐요. 이 모든 걸 포괄할 수 있는 단어는 ‘사랑’이겠죠. 그런 면에서 책임감을 느껴요. 요즘 관객들에게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요. 관객이 공연 전체를, 배우를 감싸주는 기운을 느낄 때 같이 공감하고 공유하는 거죠. 그렇게 배우들과 스태프, 관객들이 혼연일체가 돼 뜨겁다고 느끼는 날은 정말 행복합니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허영옥, ㈜NEO 연우무대,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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