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전지현의 몸 vs 비밀스러운 하지원의 몸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배우에게 ‘몸’은 단순히 초콜릿복근이나 S라인 같은 ‘몸매’의 의미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연극무대에서 배우의 몸은 동적인 아름다움이자 신비로운 오로라와 같은 장막이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그 캐릭터의 감정이나 개성은 물론 배우 특유의 분위기까지 살아난다. 무대 위에 선 배우의 몸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무대를 풍성하게 채워나가는 힘을 지닌 셈이다.

하지만 텔레비전화면이 평면으로 바뀌어도 움직이는 몸의 아름다움을 배우들이 살리기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달리고 뛰고 쌈박질까지 하는 남배우와 달리 여배우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그녀들의 움직임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여배우들은 미묘한 표정과 대사에 싣는 감정만으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하지원과 전지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언뜻 보기에 별 공통점이 없는 둘은 다른 여배우들과 차별화되는 공통점을 지녔다. 바로 TV속에서도 몸을 움직여 캐릭터의 매력을 혹은 배우 본인의 느낌을 살릴 줄 안다는 점이다. 물론 두 사람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하지원은 눈에 띄게 예쁘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미지로 각인되는 여배우는 아니다. 드라마 <학교>에서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던 김민희나 배두나 만큼 개성 있는 마스크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하지원은 현대극에서 주변에서 흔히 눈에 들어오는 평범하게 예쁜 캐릭터의 성격을 극대화시키기에 좋은 배우가 되었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이수정이 이런 하지원의 매력이 가장 빛났던 역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역사물로 넘어가면 하지원의 연기나 분위기는 현대극과 전혀 달라진다.

하지원에게 몸은 무기이자 비밀스러운 베일이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다모>에서 여형사 채옥을 맡았을 때부터 하지원은 액션배우처럼 몸을 써왔다. 드라마 <다모>나 영화 <형사>에서 하지원의 움직임은 힘에 넘치고 강렬하다. 그러면서도 무협에 어울리는 절도가 있다. 오히려 몸이 큼지막해 움직임이 다소 투박해질 수밖에 없는 사내들보다 더 날렵해서 남성적인 매력이 남자들보다 더 도드라질 정도다. 특히 영화 <형사>에서는 강동원의 섬세하고 우아한 움직임과 대조를 이뤄 이런 하지원의 매력이 더욱 빛난 경우다.



최근 그녀가 출연하고 있는 MBC 드라마 <기황후> 역시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에서 기황후가 되는 고려 여인 승냥이를 연기하는 하지원은 초반에 아예 남장으로 등장한다. 기존의 남장역할의 여배우들이 목소리만 깔고 머리만 짧게 잘랐던 것에 비하면 승냥이는 일부러 목소리를 과하게 깔지도 않는다. 그 동안의 무협물에서 하지원이 다져왔던 건들대는 남자의 동작을 그대로 보여주면 끝이다. 자연스럽고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은 남장역이다.

하지만 이런 하지원의 남성적인 움직임은 그녀 연기의 폭을 넓혀주는 무기이지만 동시에 비밀스러운 베일의 역할을 한다. 바로 딱딱한 남성스러운 팔다리의 움직임이 치맛자락과 길게 푼 머리에 가려질 때 여성스러운 매력이 드라마틱하게 피어나기 때문이다. <기황후>에서 승냥이가 당기세에게 여성임을 들키고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겨우 몇 분 전까지 보여줬던 남성적인 모습과 대비되면서 다른 여배우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하지원만의 매력이 극대화된다.

한편 전지현에게 몸은 악기이자 현란한 컬러다. 사실 무표정한 전지현의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지극히 정적이며 뚜렷한 색감 또한 없다. 한지에 선만 그려놓은 담박한 얼굴 같다. 이 슬픔의 감정조차 묻어 있지 않은 담박한 얼굴이 정적인 드라마나 영화와 만날 때 느리고 무겁게 가라앉는 분위기를 만드는 까닭은 그래서다.

하지만 얼굴에서 주는 정적인 분위기와 달리 그녀에겐 긴 팔다리와 매력적인 몸매, 그 몸을 악기처럼 리듬감 있게 연주할 줄 아는 재주가 있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걸음걸이, 팔을 뻗는 동작, 고개를 살짝 돌리는 지점까지 모두 사람들의 눈을 끈다. 때론 느리고, 때론 경쾌하며, 섹시해졌다가, 한순간에 우아해진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통해 전지현은 화면에서 가장 현란한 색깔을 지닌 배우로 돌변한다. 그녀가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1999년 삼성마이젯 프린터의 CF 카피가 “나는 컬러로 숨을 쉰다” 였듯.



전지현이 톱스타 천송이로 등장하는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배우의 매력이 극대화된 케이스다. 톱스타 천송이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 베이스에, 그 동안 <라네즈>, <엘라스틴>, <애니콜> 광고에서 보여준 전지현의 발랄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을 얹고, 거기에 영화 <도둑들>이나 <베를린>에서 보여준 성숙한 연기력을 맘껏 뽐낼 수 있을 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은 인물이다.

예상한대로 전지현은 오랜만에 출연한 드라마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마음껏 가지고 놀며 화면에서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더구나 망가질 때마저 예쁜척한다는 비난을 듣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전지현은 마음껏 망가져도 그녀의 몸이 그리는 움직임이란 화면에서 너무나 아름답다. 물론 그렇기에 <별에서 온 그대>가 아니라 모든 스타들이 빛을 잃는 <별에서 온 블랙홀>처럼 드라마가 흘러가는 기분이 들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초능력을 지닌 외계인까지 무릎 꿇린 전지현의 ‘천송이느님’은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가 느슨해지는 이 드라마에도 힘을 발휘한다.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드라마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은 착각의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SBS, 영화 <형사><엽기적인 그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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