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맨하탄' 인도영화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이 영화는] 생면부지의 나라 미국 뉴욕 맨하탄에 온 지 4주도 채 되지 않아 샤시(스리데비)의 마음은 폭풍전야가 된 상태다. 그건 꼭 영어 울렁증 때문만이 아니다. 이제 영어는 그녀에게 있어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해졌다. 아직 인도 뉴델리에 있는 딸 아이와의 전화 통화가 그녀의 마음을 뒤흔드는 도화선이 됐다. 딸 아이는 늘 샤시가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그래서 엄마 노릇을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해 왔다.

샤시는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배려와 존중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이곳, 맨해튼에서 그 동안 자신이 헌신해 왔던 남편과 두 아이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에 빠지기 시작하는 건 그 때문이다. 나는 과연 무엇인가? 게다가 샤시가 다니는 4주 완성 영어학원에는 프랑스에서 온 요리사 로랑(메디 네부브)이 그녀의 마음을 살짝살짝 건드리기 시작한다. 로랑은 샤시의 눈이 밀크에 떨어진 두 방울의 커피마냥 흑진주 같다고 생각하는 남자다. 그는 그녀에게, 한 마디로, 푹 빠져 있다. 샤시 역시 그런 로랑이 싫지만은 않다.

인도에서 ‘참하게’ 살아 온 중년 아줌마의 일상 탈출기, 혹은 영어완전정복기를 그린 영화인 양 굴지만 영화 <굿모닝 맨하탄>은 사실 그처럼 가볍고 경쾌한 보폭만을 갖고 있는 작품이 아니다. 여기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스스로들을 경계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소외시키는 문화적 차이와 편견에 대한 얘기가 담겨 있다. 그건 결국 차별이다. 그리고 차별은 결국 소외의 문제를 야기시킨다. 샤시는 가부장적 사회인 인도에서, 그것도 보수적인 남편이 지배하는 가정에서 ‘살림꾼’으로 만족해야 하는 삶을 강요당하며 살아 왔다. 그녀는 인도 전통 음식인 ‘라두(디저트 과자의 일종)’를 잘 만들고 그것이 소규모 시장을 형성할 만큼 인기를 얻지만 그런 그녀의 솜씨조차 남편은 마뜩해 하지 않는다. 그녀의 맛있는 라두는 오직 남편인 자신만이 먹어야(소유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영어(를 하는 것)’ 역시 인도 중상류층 사람들에겐 일종의 소유의 능력으로 치환되는 장치다. 남편은 아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을 다소 한심해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유창한 언어 능력을 구사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둘의 관계는 자칫 역전될 수 있으며 가정이 붕괴될 수 있다고 까지 그는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런 그의 생각은 자식들에게까지 전이돼 있는데 딸 아이는 엄마에게 영어 구사능력을 내세워 철없게도 자신이 계급적으로 우위에 서 있음을 은근히 과시한다. 이제 영어를 하느냐 못하느냐는 샤시에게 단순히 삶의 편의를 위한 기제(機制)만이 아니다. 이건 그녀의 삶이 주체적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결정적인 기로와 같은 문제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맨하탄에서, 인도 아줌마 샤시와 프랑스 남자 로랑은 둘 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관계가 잘 ‘진전’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둘이 마음을 터놓게 되는 데는 각자가 갖고 있는 언어로 얘기할 때이다. 샤시는 자신과 가족의 문제에 대해 분통을 터뜨릴 때, 로랑은 자신의 연정을 그녀에게 고백할 때 각각의 언어인 힌두어와 불어로 얘기하고 만다. 그것이 익숙하니까. 둘은 서로의 말을 못 알아 듣지만 역설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 낸다. 언어의 올바른 기능은 결국 말하고 듣기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 속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진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영어로 떠듬떠듬 얘기하는 두 사람만을 보다가 유창한 자기 언어로 대화하는 광경은 보게 되면 속이 다 시원해진다. 결국 모든 것은 진심 어린 마음이 기초다. 차이와 차별, 모든 소외의 해소는 바로 그 지점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제가 <잉글리쉬 빙글리쉬>인 영화 <굿모닝 맨하탄>은 언뜻 보면 잘 짜여진 기획영화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에피소드들이 구성되고 진행되는 과정도 전형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종일관 귀여운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상투적인 텍스트 구조 안에 얼마나 많은 해석의 여지가 담겨 있는 지를 깨닫게 된다. 여기엔 인도 뉴델리와 미국 뉴욕의 맨하탄이라는 커다란 공간의 차이를 뛰어 넘는 보편성이 담겨 있다. 영화가 아주 다른 색깔을 지닌 듯 하지만 지금 당장의 우리 자신들 얘기, 곧 한국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상사와 근사치가 매우 가까운 얘기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샤시가 4주 정복 영어회화 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직업군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학원 강사는 착하고 인내심 강한 게이이고(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것 만큼 인내를 요하는 작업도 없는데 게이의 여성성, 혹은 모성 본능은 그것을 감내하게 만든다) 로랑은 요리사, 한국인 여성은 미용사, 남미 아줌마는 보모, 파키스탄인은 택시 기사, 그리고 또 다른 인도인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다. 학원은 한 마디로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뉴욕의 축소판으로 그려진다.



<굿모닝 맨하탄>은 인도 영화답지 않게 OST 구성이 매우 훌륭하게 짜여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메인 타이틀 곡인 ‘잉글리쉬 빙글리쉬’는 가사의 댓구로 영화의 설정을 표현하고 있을 정도다. 인도 영화가 갖고 있는 상투적인 리듬에서 벗어나되 한편으로는 그 전통성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되살려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인도 영화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샤시 역을 맡은 스리데비의 외모가 잊혀지지 않는다. 여성감독 가우리 신드는 이 영화 한편으로 주목할 만한 신예로 등극했다. <굿모닝 맨하탄>은 이래저래 인도영화가 한 걸음 한 걸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영화 <굿모닝 맨하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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