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데모크라시> 배우 김종태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마이클 프레인의 정치 다큐드라마인 <데모크라시>는 독일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싸운 빌리 브란트와 그의 수석 비서관이면서 동독의 간첩으로 밝혀져 빌리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빌미를 제공한 귄터 기욤의 정치 스캔들이 주요 내용이다. 중량감 있는 등장인물을 무려 열 명이나 한 무대에 올리고 이들 사이에 끊이지 않는 대화와 사색을 통해 연극서사의 새로운 한 획을 긋고 있다.

지난 해 초연에 이어 오는 6일, 다시 한 번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데모크라시>는 새로운 정부 1년간의 성과와 앞을 알 수 없는 남북 관계의 변화, 그리고 통일에 대한 과제에 대해 화두를 던져 줄 것으로 예상된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품고 있는 빌리 브란트 역 배우 김종태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연극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데모크라시>에 새롭게 다가가기

-<데모크라시> 작품을 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 연출이 제안을 했을 때는, 제가 감당하기엔 인물이 너무 커 고사 했어요. 대본을 읽었을 때는 너무 재미있는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부담감이 생겨서 좀 더 연륜 있는 배우가 했으면 했거든요. 빌리 브란트가 56세에 수상이 돼서 사임하기까지 그 기간 이야기인데, 저보다 두 배 이상의 삶을 산 사람이잖아요. 시골의 나이든 아저씨가 아니라 한 나라의 수상이다보니 조금 부담이 됐던 것 같아요. 실제 외국 공연 사진을 보면 그 연배의 배우들이 해요. 연배에 맞는 배우가 했을 때 나오는 게 있어요. 어떤 공연에서, 노 선배님이 리딩 때 첫 문장을 읽는데 정말 다르더라고요. 얼굴에 쌓여있는 삶의 역사가 읽어져 너무 편안하고 신뢰가 가고 좋더라고요.”

-나이를 가늠을 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배우다. 지난 해 보여준 빌리 브란트 역이 잘 어울렸다.
“학생 때 노인 역을 많이 해서 그 때 농담처럼 ‘60대 되면 잘 할거야’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20대 때 하고 싶었던 역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였는데 결국 하지 못했어요. 나이에 맞는 역을 하면서 배우로서 늙어가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2006년 2월, <줄리에게 박수를>로 데뷔 했으니 9년차 배우입니다. 저랑 비슷한 역을 할 때도 고민을 하지만 나보다 연배가 많은 역을 맡게 되면 더 고민하게 돼요, 관객이 젊은 배우가 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고 보겠지만 그 선을 만드는 게 어려워요. 오히려 나이가 더 어린 역은 이미 겪어본 거니까, 좀 더 고민을 해결하기 쉬워요. 지금가지고 있는 것에서 비워내고 단순해지거나 즉각적이 되면 해결이 되는 게 있거든요.”

-한 번의 고사 끝에 데모크라시 작품을 하게 된 이유?
“작년에 동선 형이 다시 연락이 왔어요. 연출님이 뚝심이 있어서 밀고 가는 스타일이세요. ‘또 데모크라시야?’ 라고 반문했더니 전화 상으로 말고 일단 만나서 이야기 하자는 말이 나왔어요. 형이 나를 통해 구상하는 게 있나보다,란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도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점에서 믿음이 생겼어요.”

-초연에 이어 두 번째 빌리 브란트 역을 하게 됐는데 다르게 다가오는 점이라면?
"드라마터그(마정화)가 붙어서 정치적 배경이나 일화를 알려주세요. 제가 작년 공연을 하면서 대사 몇 군데는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전체 맥락만 보고 했던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드라마터그의 말들을 듣고 나서 몇 문장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그 중에서도 월트 휘트먼의 ‘나에 대한 찬사’라는 유명한 시가 나오는 부분이 특히 그랬어요. 극중 맥락에서는 제가 놓인 상태를 기욤에게 말한 건데, 교묘하게 작품과 맞닿아 있어요. ‘내가 자기 모순적인가? 나는 거대하고, 다수를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내 안엔 수많은 나가 있다는 의미죠. 더 나아가 이 말이 6천만개의 갈라진 목소리로서 ‘민주주의’를 상징할 수 있어요. 그런 맥락에서 기차역에서 기욤하고 두런두런 나누는 대사 중에 여성에 대해 이야기 하며, ‘나를 바라보는 순길, 눈길이 있다’는 부분도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입니다. 나에게 환호를 보내는 사람 뿐 아니라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거죠.”

-빌리 브란트가 실존 인물이고 실제 정치적 사안들이 들어 가 있는 작품이라 공부를 많이 했을 것 같다.
“배우들이 모여서 자료도 엄청나게 찾고 공부를 많이 했어요. 초반엔 한 달 이상을 스터디만 했어요. 한 문장으로 사건이 점핑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건이 동시에 들어와 충돌하는 대본이라 텍스트 이면에 많은 게 들어있어요. 작가 마이클 프레인 이 그때 당시 겪었던 정치적 사안 들을 은유적으로 대입해서 하는 말의 의미도 찾아내야 하구요. 작년 공연 때, <데모크라시>가 다큐멘터리 연극이라 배우들이 전부 다 독일 현대사 발제를 해왔어요. 그런데 다 다른 식으로 요약을 해 와 힘들었어요. 이번엔 정화 누나가 쫙 브리핑을 해주니 한결 수월해졌어요. 하나의 목소리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 거죠.”



■ 빌리는 왜 이 작품의 제목이 <데모크라시>인지 보여 줘야 하는 역

-작품을 하면 할수록 빌리 브란트란 어떤 사람인 것 같나?
“인물보다는 작품 전체 메시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빌리 브란트가 어떤 인물이냐? 물어 보면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런 고민보다 ‘왜 제목이 <데모크라시지>지?’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대본을 읽으면 사건은 빌리와 기욤에 집중 돼 있고, 정치적 현안이 들어와서 극이 진행돼 가고 있는데 제목은 <데모크라시>이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결국 내가 빌리 브란트 역을 하고 있지만 주인공 빌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왜 민주주의란 이름이 제목에 담겼을까? 내가 그런 의문을 품었다면, 관객들도 비슷하게 반응하겠지. 이렇게 질문을 던지며 이유를 찾아가다 보니, 내가 해야 하는 작업은 ‘이 작품의 제목이 왜 민주주의인지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는 답이 나왔어요. 사실 대본이 그렇게 다 써져 있어요. 빌리가 베너(선종남)랑 싸우는 장면에서도 언급 되지만, 빌리는 당에 목숨 건 사람이 아니에요. 많은 정치인이 실제 이권, 당의 정권 장악에 신경 쓰는 것과는 다르죠.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빌리의 자서전이나 평전을 봐도 그는 더 큰 그림을 그렸던 사람입니다. ‘서방세계만이 아니라 동구권과, 독일 바깥만이 아니라 독일 안에서부터 우리의 모든 이웃들과 반드시 화해해야 한다’고 말해요. ‘동독과 서독이 현실적으로 철저하게 갈라져 있어도 두 민족이 될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말에서 공동의 과업과 책임감을 지녔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죠. 독일사회민주당(SPD)만 중요한 게 아니었고 더 크게 독일 전체의 평화, 궁극적으로 원했던 건 유럽 전체 평화였다고 봐요. 젊었을 때 나치를 벗어나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경험도 본인이 속해 있는 영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으로 볼 수 있어요.”

-연출은 어떤 디렉션을 줬나
“빌리가 장면 장면을 리드하기 보다는 작품 전반에서 남들이 빌리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어떤 사안에 대해 빌리가 반응하는 게 많아요. 굵직한 사건들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되죠. 내가 뭔가를 하는 것보다는 거기에 대한 반응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출님도 거기에 중점을 뒀어요.

이번 작품은 워낙 빌리에 대한 뒷담화가 많아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배우로서의 충동은 상대를 노려볼까란 마음이 들 정도로요.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대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침묵'입니다. 배우가 가만히 있을 때 그 대사가 되는 건데 그렇게 있어보면, 저랑은 다른 빌리 브란트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또 배우의 충동으로 이미 일어나서 나가고 있는데, ‘제발 일어나세요’ 란 다음 대사가 나와요. 그런 걸 보면 상대의 대사를 통해 표현되는 ‘빌리’가 많다는 걸 느껴요.”

-빌리의 손짓과 침묵의 연설은 유명하다. 그 장면들은 어떻게 그려내려고 했나
“실제 다큐멘터리를 봤을 땐 정말 일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수많은 인파들과 경찰 저지선을 뚫고 나와 포즈를 보여주는 데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어요. ‘쓰윽’하고 끝났거든요. 저희는 공연을 하는 것이니 그 이미지를 극대화해서 확장해서 보여줘야 하죠. 오히려 엠케 내각에서 빌리가 사람들과 소통할 때 영상 속 빌리의 손짓 장면을 담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 “빌리는 주변 인물들을 신뢰 하지만 기대진 않는다”

-빌리란 인물보다 주변 인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을 것 같다.
“빌리가 바라보는 시선이 있겠죠. 주변 인물들을 되게 신뢰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신뢰하지 못해요. 이게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하지만 기대지 않는 그런 거요. 자기 스스로 스파이로서 신분을 숨기고 망명을 하기도 했고, 그 당시 독일은 거대한 유리궁전 같은 곳이었어요. 누가 간첩이고 누가 우리 국민인지 구별 할 수 없게 된 거죠. 엠케(마두영)가 그렇게 말하죠. ‘모두 그를 사랑하지만 빌리는 누구도 의지하지 못한다’고요.”

-그림자처럼 따르는 퀸터 기욤(이화룡 ∙권태건)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기욤은 오히려 스파이다’는 귀띔을 들었지만 이 사람을 믿는 것 같아요. 자신이 경험했던 걸 이야기 해주면서 그걸 안쓰럽게 보고 있어요. 아직도 저 사람을 믿을 수 있다 생각하고 기욤한테는 기대기도 했는데 결국 배신을 해서 정말 상처받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은유적 대사들이 많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그 대사가 가장 좋았어요. 내각에서 정치적 현안들을 가지고 피 터지게 싸운 뒤 저녁엔 모두 모여 와인파티를 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하루 일과를 잊는 그 장면이요. 동독 사람인 기욤의 입장에서 목격한 민주주의 하루인거죠. 빌리가 하는 말 중에는 독일이 전후에 그렇게 돌무더기가 변했을 때, 두 개로 갈라져 있을 때 그것을 재료로 내일을 건설해야 한다. 하나로 만들어 보자고 말 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어요. 우리나라 정치 현안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죠. 맨 마지막 기욤이 하는 말 중에 ‘귀가 다성 음악의 복잡성에 맞춰져 있을 때 목소리 하나는 얼마나 빈약합니까’란 표현도 다가오는 게 많아요. 육천만개의 갈라진 목소리와 하나의 목소리가 대비되는 게 있죠.”

-‘다성 음악의 복잡성 사이에서 목소리 하나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큰 틀에서 보면 지금까지 이야기가 6천만 개의 갈라진 목소리예요. 민주주의의 한계로도 비춰질 수 있는데 빌리 브란트는 그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 모아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결국은 ‘데모크라시’임을 말해요.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인 거죠.”

-연출은 이 작품을 왜 해야 한다고 말했나? 한국사회에 어떤 정치적 화두를 던지는 극인가?
“동선이 형 장점이 뚝심이라고 생각하는데, 형은 현재 우리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환멸을 내 보이며 너무 냉소적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였어요. 정치에 무관심으로 일관할 게 아니라, 그 다음 정치인들을 위해 책임을 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요. 우리나라는 정치하는 사람들과 너무 거리가 있어요. 관심 두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죠. 그리고 큰 틀 안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 자기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배우인가
“국민으로서의 참여가 아니라 배우로서 제가 정치적으로 뭔가에 참여한다면, 공연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연극이 야외에서 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니긴 하지만, 예술가적인 영역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연을 통해서가 아닐까요. 이번 작업을 함께하는 빌케 역 양동탁 배우가 ‘극사발’에서 활동한다고 들었어요. 처음에 이름을 들었을 땐 촌스럽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극을 통한 사회적 발언’이란 뜻이 담겨있더군요. 그 팀에서 하고 있는 작업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함께 하고 싶어요. 그런 식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

-정치인들이 연극을 보러 왔으면 좋겠는데, 실제로 정치인들이 연극을 자주 보러 오나?
“(홍보 분이 한마디 했다. ‘정치와 관련 있는 연극이라고 보러 오셨다기 보다는 극장이란 곳을 하나의 홍보 수단으로 생각하고 오는 분들이 계세요. 이슈가 될 만한 걸 찾아가는 그런 마인드로 극장에 온다면 반갑지 않죠’) 전 극장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악수한 기억이 나요. 몇년 전 <늙은 도둑 이야기> 마지막 공연 날 스태프 아르바이트로 무대를 철거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동숭아트센터 5층에서 공연할 때였는데, 전 집에서 자다가 나와 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까만 옷을 입고 조그마한 체격의 사람이 나와, ‘공연 잘 봤습니다.’라며 악수를 청했어요. 제가 까만 옷을 입고 있으니 스태프인지 아셨던 것 같아요. 엘리베이터 타고 다 내려가신 다음에 그 분이 노무현 대통령이란 걸 알았어요.”



■ “연극은 ‘내 이웃이 어떻게 사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어”

-성격이 어떤 편인가?
“성격이 차분하면서도 웃겨요. 제 안에 다양한 모습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 보기에 ‘너무 진지한건가?’ 란 생각이 들면 의지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나를 바꿔요. 어느 순간 ‘내가 가벼운가?’란 생각이 들면 다르게 바꾸죠. 남에게 보여지기 이전에 제 스스로 그러는 걸 좋아해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의 결과물로서 오늘 제가 있는 거죠. 1남 3녀의 외동아들로 시골에서 옥동자처럼 산 적도 있고, 가세가 기울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적도 있어요. 그 당시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이사를 갔는데, 말이 안 통해 학교도 안 가고, 심각하게 왕따를 당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교회 중등부 학생회장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기도 했어요. 환경의 변화가 심했던 것 같아요.”

-배우란 직업을 선택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나?
“배우를 한 건 잘 한 일 같아요. 처음엔 국어 선생님이 되려고 했어요. 국어교육과를 다니며 1년 동안 야학을 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방황하다 학교를 그만 둔 학생들, 중등부 과정을 합격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또 연락이 와서 반 편성을 하고 하는데, 다시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감동적이고 기쁜 건 맞는데 똑같은 작업을 다시 하려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국어책 6권을 가지고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는 45년이란 시간 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때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내 삶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성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봤어요. 전 여기로 가면 저걸 하고 싶고, 또 다른 것도 하고 싶어져요. 하나를 가지고 장인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배우, 그리고 연극을 선택했어요.”

-연극을 언제 처음 접했나
“연극을 처음 한 게 왕따 당했던 그 시기예요. 교회에서 준비 없이 연기를 하게 됐어요. 한 달간 연습 한 후 크리스마스 이브에 공연을 올렸어요. 다른 아이들은 무대에 오른다고 하니 떠는데 전 한달 동안 연습 했던 거 그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에 떨리지 않았어요. 그동안 한 번도 주목 받아본 적이 없는데, 제가 한 마디 할 때마다 반응을 하는 게 신기했어요. 처음엔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규모로 했는데, 잘 한다면서 교회 본당에서 어른들 앞에서 다시 한번 연극을 해 보라고 했어요. 600명 이상의 그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공간이었죠. 제가 4.5년이 넘게 교회를 다녔지만, 절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연극 무대 위에 오른 제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웃기도 하면서 저에게 집중하는 거였어요.

그 다음 주에 교회를 가니 집사님이 ‘네가 종태냐’고 말을 걸고 국수 한 그릇을 더 줬어요. 제가 트위터에 ‘배우, 따뜻한 시선’ 이렇게 써놨는데, 연기라는 것, 연극이라는 것 역시 그런 따뜻함 이 밑바탕에 있는 것 아닐까요. 내 이웃이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연극을 보러 와요. 만약에 제게 배우로서 재능이 있었다면. 저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형성 된 거 같아요.”

-처음 접한 연극의 따뜻한 시선에 많은 공감을 느꼈나 보다.
“연극을 보며 나랑 비슷하게 사는구나에 대한 공감, 다르게 사는구나에 대한 자극을 받기도 해요. 배우도 마찬가지죠.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좋아요. 저에겐 그게 가장 원초적 즐거움인 것 같아요. 남 이야기를 내 이야기인처럼 들려주고, 관객들도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들어주는 그 순간이 저에겐 긍정적 에너지를 줘요. 긴장은 안 해요. ‘배우로서 완벽해야 해’란 마음을 갖기보다 이 행위가 재미있는 것 같아요.”

-공연을 오래 보다 보면, 그리고 이 쪽에 몸을 담고 있다보면 연극이든 배우든 자꾸 평가를 하게 된다.
“군대 가기 전, 대학로에서 연극을 많이 봤어요. 성스러운 일 처럼 다가오기도 했어요. 티켓을 모았는데 일년간 157편을 봤더군요. 지금 그 공연들을 돌아보면 배우가 실수를 해서 극이 진행이 안 된 경우도 있었고 완성도 면에서 떨어진 부분도 있지만, 불평하지 않고 다 숨죽이고 봤어요.

그런데 연극을 배워가고 뭔가 아는 게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 배우를 평가하며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다 ‘누구를 평가하면서 보지 말자’란 마음을 먹었어요. 평가하면서 보는 게 배우로서 도움이 되고자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연기 이쪽에 발을 딛고 사는 동안 공연을 보는 즐거움을 빼앗기는 격이 되는거잖아요. 공연을 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보는 즐거움도 빼 놓을 수 없어요. 배우로서 최고의 공연 깨끗한 공연을 만들어야 하는 건 맞지만, 기형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배우가 자책하거나 비생산적인 평가는 의미 없는 것 같아요“

-최근 아빠가 됐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달라진 것이요? 쉽게 말해 ‘철들어야 한다’ 그런 말들을 하죠. 그럼 전 ‘연극 작업을 포기해야 할까?’란 질문을 하게 되겠죠. 하지만 그건 바뀌어선 안돼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작업 이외의 시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답이 나왔어요. 현재 국민대학교 연극 영화과 겸임으로 강의를 하고 있어요. 감사하게 강의를 나가는데, 그런 마음도 있어요. 넘쳐서 누구를 주기 전에는 섣불리 가르치지 말자란 생각도 있었긴 한데...책임져야 할 가족이 늘어나면서 달라진거죠.”

마지막으로 김종태 배우는 <데모크라시> 작품이 올려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관객들이 원하는 장르를 충족시키야 하는 게 예술의 큰 몫인 건 맞아요. 하지만 어떤 면에선 관객들이 놓치고 가는 것도 끌어낼 수 있는 게 예술의 몫 아닐까요. 관객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군데로 쏠려가고 있어요. 대학로에서 올라가고 있는 공연을 보면 로맨틱 코미디물이 80% 이상입니다. 그런데 <데모크라시> 같은 이야기도 들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바나나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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