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예술센터 시즌 발표회 현장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2009년 재개관 이후 남산예술센터가 꾸준히 지켜오고 있는 극장의 정체성이자 비전은 ‘동시대성’을 지향하는 창작극 제작이다. 동시대 창작 연극의 메카, 남산예술센터가 새봄을 맞아 2014년 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조선희 대표이사는 ”그동안 남산은 창작극을 고집하며 공동 제작하는 극장으로 연극계에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공동제작 위주로 라인업을 짜서 이 공간을 어떻게 운영을 해야 연극계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젊은이들에게 문을 열고 실험적인 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 할 것이다. 올해가 서울문화재단 10주년이 되는데, ‘남산예술센터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남산예술센터를 어떻게 한 단계 도약을 시킬 것인가? 등 본격적인 논의의 장도 열어 볼 생각이다“고 전했다.

안미영 극장운영팀장은 “2014년 남산예술센터 라인업은 지난 5년간 지향했던 극장 자체 제작, 극단측과의 공동창작 이 두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좀 더 고민했던 점은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기치로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이 고민해야 할 것, 즉 동시대에 화두를 던지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조선희 대표이사, 극장운영팀장 안미영, 이규석 예술지원본부장, 조만수,김주연 드라마터그, 이강백 극작가, 이경성, 배요섭, 고선웅, 강량원, 김재엽 연출가가 참석한 가운데 ‘남산예술센터 시즌 발표회’가 열렸다.

■ 연극과 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동시대적 시선

-<남산 도큐멘타 : 연극의 연습 - 극장 편>(이경성 연출), <바후차라마타>(배요섭 연출), <푸르른 날에>(고선웅 연출),<즐거운 복희>(이성열 연출), <투명인간>(강량원 연출),<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김재엽 연출) 이렇게 6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안미영: 4년 연속 재공연이 되는 <푸르른 날에>는 남산의 레퍼토리로 가져갈 작품이다. 나머지 작품은 공동공모로 선정했으며 그 기준은 올해의 극장 방향과 일치하면서도 극장 공간을 최대한 활용 할 수 있는 연출력에 중점을 뒀다. 또한 드라마터그와 함께하는 좋은 희곡 발굴 작업 끝에 얻은 작품을 선정했다. 시대 속에서 연극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지 새삼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시즌 첫 프로그램으로 ‘크리에이티브 바키(VaQi)’와 공동제작하는 <남산 도큐멘타 : 연극의 연습 - 극장 편>이 올라간다.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된 배경은 ?

이경성: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극장이 주인공이다. <연극의 연습>시리즈를 올리고 있는데, 작년에 인물 편을 했다면 이번엔 극장 편이다. 내년엔 관객 편을 할 예정이다. 극장 편을 기획하게 된 배경은 극장 안에서 연극이 진행 될 때, 사실 극장은 단 한순간도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통 연극이 시작 되고 나면 극장 밖은 잊고 무대에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경험하는 게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극장 안과 밖이 마찰음을 내면서 작동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들을 무대로 가져오고 싶었다.

남산예술센터의 전신인 드라마센터의 설립 배경, 1970년대 한국 현대연극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던 극장이 걸어온 발자취부터 남산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꼼꼼히 조사했다. 드라마 센터에 놓인 역사적 사회적 맥락들을 재료로 삼고 있다. ‘도큐멘타(Documenta)’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연극 제목은 독일의 카셀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미술행사 ‘카셀 도큐멘타’에서 차용하였다. 카셀 도큐멘타는 독일 나치정권하에 자행되었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 자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남산 도큐멘타 : 연극의 연습 - 극장 편>은 ‘남산과 드라마센터의 기록’을 돌아보면서, 역사와 극장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프로시니엄과 아레나 무대를 혼합한 독특한 구조를 지닌 드라마센터 극장의 빈 무대를 완전히 노출하여 무대과 객석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대에 극장은 어떻게 하면 극장 밖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담은 연극이다.

■ 기존의 성과 젠더라는 경계를 지우고, 경계를 넘어서

-<바후차라마타>(배요섭 연출)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성정체성과 대안적 젠더에 대한 고민을 한국과 인도 예술가들의 공동작업으로 보여준다.

배요섭 : <바후차라마타>는 인도의 젠더전환자 커뮤니티 히즈라가 섬기는 신의 이름에서 따왔다. 인도에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분들이 히즈라는 커뮤니티를 꾸린 걸 보고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거기에서부터 궁금증이 생겼다. 인도에서 히즈라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지만, 남자 여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신성한 존재로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 소수자들의 삶이 어떻게 형성돼 있을까? 그런 쪽으로 더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됐다. 결국 ‘바후차라마타’ 신을 모티브로 해서 남자와 여자, 이렇게 양분 된 체계안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고, 그 삶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져야 할까? 그들은 정말 소수일까? 그런 의문들을 갖게 됐다. 그런 강제적인 이분법 체계 안에서 고민할 필요 없이 살아온 사람도 많다. 넌 남자인가? 여자인가? 그런 질문을 하게 됐다. 그걸 답을 해 줄 수 있는 곳이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넌 남자가 아니면 여자이다. 혹은 넌 여자를 좋아하잫아 그럼 남자인 거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또 이렇게 말로 규정하는 순간 편견이 생겨버린다. 그래서 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뒤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와 협업으로 진행 돼 남산 공연 이후 인도에서도 공연 될 예정이다.

-<푸르른 날에>가 올해도 푸르른 5월,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다. 이번엔 광주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고선웅: 4년 연속 공연을 올리고 있다. 새롭지는 않지만 공연이 4년차인만큼 발전 할 것이다. 4년이 되면 4년만큼 보일 거라 생각한다. 자연스러워지고 밀도가 생겨날 것이다. 4학년짜리 만큼 잘 해보겠다.



■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인간을 만든다’, 이강백의 <즐거운 복희>

-남산의 하반기를 여는 작품은 이성열 연출의 <즐거운 복희>다. 연출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강백 작가가 참석했다. 집필한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이강백: <즐거운 복희>에 대해 말씀 드리기 전에, 세 분 이야기 들은 것에 대해 제 느낌을 꼭 말씀 드려야겠다. 굉장히 실험적인 느낌이 드는 이경성, 배요섭 씨 작품은 ‘남산예술센터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남이 한 번도 안 해 본 길을 가는 이들의 시도가 날 가슴 뛰게 만들었다. 저희 세대는 그런 걸 하겠다고 하면 ‘정도의 길이 아니다’며 배제를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가치를 지원하고 격려하고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정말 감동 받았다. 고선웅씨의 작품은 4번이나 올라간다고 했는데 그건 한국에서 클래식이 됐다는 것과 다름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많은 분들에게 공감이 됐으니 말이다. 새롭지 않다고 했지만, 고선웅의 재기발랄함과 작품에 대한 해석 돋보이는 <푸르른 날에>는 작품 제목처럼 절대 누렇게 변하지 않을 작품이다.

연출자들이 나온 자리인데 나만 직종이 다르다. 이성열 연출이 불가피한 일 때문에 내가 대신 참석했다. 숨겨진 사연을 이야기 하자면, 내가 이 자리에 안 나간다고 했더니 이성열 연출이 ‘밥을 한 끼 사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한 끼가 다섯 끼가 될 때까지 대답을 안 했다. 밥을 다섯 번 사야 하는 걸로 수락했다. 통화를 둘이만 해 증인이 없다. 여러분이 증인이다. 머릿속에 생각해 놓은 감동적인 스테이크 집도 이미 있다.(웃음)

<즐거운 복희>는 한국 희곡에서는 없던 걸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다. 5막으로 돼 있는데, 사이사이 막간극이 4개가 들어있다. 막간극은 복희의 모노드라마이다. 어느 한적한 호숫가 펜션 마을을 배경으로 평범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단순한 물구덩이였던 호수에 이야기가 생기고, 퇴역군인만 아니라 일반 주부, 회사원, 민간인들이 오게 된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인간을 만든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완전히 소외 된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굉장한 대 반전이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무대의 큰 배경이 호숫가이다. 호수를 석촌 호수처럼 진짜 물을 채워 만들건가, 아니라면 반전의 무대 연출이 있는지?

이강백 : 70년대 드라마센터에서 했던 혁명적인 작품으로 오태석 작, 유덕형 연출의 <초분>이 있다. 그 때 무대에서 80가지 이상의 푸른 빛을 봤다. 맑고 투명한 바다에서부터 역병으로 썩어가는 흙색보다 더 칙칙한 푸른 색까지 다양한 바다 색을 보며, 조명이 연극을 해석하는 주제라고 말 할 정도였다. 조명이라는 게 작품의 주제 해석을 이렇게 해 내는거구나!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그 기억 때문에 남산 예술센터를 더 염두해 두고 썼다. 이성열 연출이 어떻게 호수를 시각화 할지 모든 건 그 분이 떠 맡게 됐다.

■ 몸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무대 언어 & 실재와 허구를 넘나드는 다큐멘터리

-연극 <투명인간>은 신체 행동과 움직임에 대한 꾸준한 탐구를 이어오고 있는 ‘극단 동’과 남산예술센터, 대전 문화예술의전당과 협업을 해서 10월 경 대전에서도 공연된다.

강량원 : <투명인간>은 손홍규 작가의 단편소설을 모티브로 극단 동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생일날, 가족끼리 장난으로 시작했던 투명인간 놀이가 결국 놀이를 넘어 현실의 비극을 폭로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손홍규 작가가 후기로 붙여놓은 내용을 보면, ‘투명인간은 망막까지 투명해서 사실 물체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뭔지 모르는 아릿한 슬픔 같은 걸 느꼈다. 제가 이 자리에 존재한다는 확신이 사라지는 느낌. 존재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동안 극단 동에서는 굉장히 선명한 행동을 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통제된 행동을 통해 통제되지 않은 나, 내 밖에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것을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연기로 표현 할 수 있을까? 그 연기 형식을 연습했다. 내가 믿고 있는 이 확신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다시 생각해야 하느냐. 이 확신이 사라졌을 때 무엇을 갖고 다시 내가 확신에 대처하는 자리에 서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저희 <투명인간>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다.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드림플레이 테제21’의 두 번째 작품인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시인 김수영의 생애와 시를 모티브로 한국 현대사와 동시대가 만나는 지점, 예술가와 우리 자신이 만나는 순간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최근 김수영 문학관도 개관했다.

김재엽 : 김수영 시인의 시에서 시와 삶이 일치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시인이 시를 쓴 당시 시간들이 그 시를 읽는 사람들의 시간과 만나는 때가 있지 않을까? 거기서 모티브를 얻었다. 김수영을 매개로 우리 모두가 동시대적 고민과 토론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될 듯 하다. 지금 시인은 없지만, 시는 시인보다 더 오래 살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예술가가 예술을 하며 자기 삶을 얼마나 유지시켰나에 대한 고민도 있고, 우리 시절이 그 시대보다 나은건가. 부침을 겪으면서 퇴행하고 있나 그런 생각도 해 봤다. 시를 무대에 복원시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김수영 시인의 라이프 스토리와 지금 시대가 크로스 오버가 될 듯하다. 시를 통해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과거가 되면서 다채롭게 펼쳐 질 것이다. 공간을 다 살리는 글쓰기, 이 공간을 다 쓰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아직 남아있다. 김수영문학관과의 연계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다훈,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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