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단했던 1995년 ‘컴백홈’ 시절 명곡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1990년대 중반 10대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2NE1의 신곡 <컴백홈>의 제목을 듣자마자 YG의 대표 양현석이 속해 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떠올릴 것이다. 1992년 <난 알아요>로 대한민국의 수많은 10대들을 양팔 휘젓는 회오리에 빠지게 했던 그들이 1995년 늦가을에 발표해 많은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이끌었다는 전설적인 계몽 갱스터랩 <컴백홈> 말이다.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어. 내 가슴 속은 갑갑해졌어. 내 삶을 막은 것은 나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비니모자에 선글라스를 낀 서태지의 코맹맹이 랩으로 시작하는 이 <컴백홈>을 처음 들었던 아니 보았던 순간도 기억난다. 1995년 10월6일 금요일 저녁 8시 MBC에서는 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처음 소개했던 임백천의 사회로 <서태지 4집 컴백쇼>를 방송했다.

95년 당시 고3 수험생이었던 필자는 야간자율학습 중이었다. 교실에는 교육방송 시청 등등을 위한 텔레비전이 각각 한 대씩 갖춰져 있었다. 그때 책상에 묵묵히 앉아 있던 학생들 중 용기 있는 자가 불쑥 일어나 텔레비전 전원버튼을 눌렀던 것 같지는 않다. 기억은 가물가물하나 고3 담임들이 특별히 그날은 봐주지 않았나 싶다. 하여간에 야간자율학습 중에 그렇게 <컴백홈>의 첫 무대를 보았다.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는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거칠은 인생속에/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는 따뜻한.”

특집방송이 끝나자 또 친구들끼리 모여서 웅성웅성 거렸다. 이번 노래 망했다, <발해를 꿈꾸며>까지는 애국심 때문에 좋아했다, 나는 딱 <하여가>까지만 팬이었다, 등등. 하지만 그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노래방에 우르르 몰려가면 <컴백홈>은 기본이요 <필승>에서 <슬픈 아픔>까지 부르는 아이들이 수두룩했다(노래방에서는 <컴백홈>보다 <필승>이 더 신나게 들릴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열렬한 팬까지는 아닌 학생들은 3집보다는 4집의 노래들에 더 열광하지 않았나 싶다. 전국적으로까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 학생들 체감인기는 그랬다. 아니, 그해 MBC10대가수상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컴백홈>으로 대상까지 받았으니 아무래도 전국적인 체감인기도가 3집보다는 4집이 더 좋았던 게 확실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컴백홈>과 더불어 생각해보면 1995년은 대중음악을 좋아했던 이들에게 정말 대단했던 한 해였다. 상업적으로 크게 히트한 노래들도 많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음악인들의 등장도 적지 않았다.

300만장을 돌파한 김건모 3집의 빅히트곡 <잘못된 만남>과 엉덩이춤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를 시작으로 노이즈의 <상상속의 너>와 DJ.DOC의 <머피의 법칙>, REF의 <이별공식>까지. 버스에서건 나이트클럽에서건 길거리에서건 해수욕장에서건 사람을 신나게 하는 댄스곡이 당시의 주류 히트곡이었다. 이러한 댄스가요 중심의 분위기는 이후 세기말 도리도리댄스와 함께하는 테크노까지 이어지면서 쭉 주류 가요계의 판도를 이끌어 나간다. 또한 교포출신 남성3인조 솔리드가 2집의 <이 밤의 끝을 잡고>를 성공시키면서 정통적인 알앤비 가요가 인기를 끄는 발판을 마련한 때도 95년이었다.

반면 주류의 가요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매력 있는 음악이 혹은 그 음악을 감싸고 있는 문화가 등장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달파란(당시 강기영)과 박현준, 그리고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의 빨간머리 이윤정이 함께한 <안녕하세요>와 <딸기>의 삐삐밴드였다. 록큰롤을 기반으로 펑크음악의 감성을 담은 그들의 첫 앨범 <문화혁명>은 정말 사랑스럽고 사랑받았고 독특했던 앨범이었다. 당시 연예잡지에서는 신촌일대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삐삐밴드의 모습을 촬영한 화보들이 실리곤 했다.

“지금 사람들은 1995년 옛날 사람들은 1945년. 안녕하세요, 잘 가세요.”

그리고 95년에는 홍대 인근의 <드럭>이나 <스팽클> 등등의 작은 클럽에서는 후에 인디음악의 중심이 될 크라잉넛이나 언니네이발관 같은 밴드들의 공연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홍대 <드럭> 주변에서는 노란 머리에 피어싱을 한 펑크족, 혹은 헝클어진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펑크와 그런지 사이의 경계에 있는 것 같은 옷차림의 소년소녀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때 대학생 혹은 고등학생이었던 그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1995년은 <담다디>의 보이시한 아이돌스타 이상은이 예술가 이상은으로 변신한 앨범 <공무도하가>가 발매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 대중들에게 싸늘하게 외면 받은 이 앨범은 그러나 꾸준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아직까지도 한국 가요계의 명반으로 사랑 받고 있다. 또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달팽이>와 <왼손잡이>가 실린 이적과 김진표의 <패닉1집>은 대중성과 실험성이 가요 안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90년대의 명반 중 하나가 되었다.



가요 LP와 CD가 공존했던 마지막 시기, MP3플레이어보다 커다랗고 투박하지만 학생들 모두 워크맨 하나쯤은 가지고 다니던 1995년 그해 우리들의 귀는 그렇게 즐거웠다. 그런데 그게 벌써 19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해 가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을 듣던 신혼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던 갓난아이는 이제 막 대학에 14학번으로 입학하는 셈이다. 그들에게 <컴백홈>이란 노래는 엄마 뱃속에서 듣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것이 아니라 2NE1의 신곡으로 더 가깝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Come Back Home/Can you come back home/ 차가운 세상 끝에 날 버리지 말고 내 곁으로.”

하지만 그런들 어떠리. 어차피 좋은 음악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메시지는 언제나 ‘컴백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길거리에서건 외로울 때건 상관없이 언제든 나를 위로하고 행복한 곳으로 이끄는 그것일 테니.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김준홍 촬영감독 트위터, SBS플러스,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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