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뮤지컬 <글루미데이> 배우 정민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글루미데이>는 1926년 8월 4일,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 사이를 운항하던 관부연락선 덕수환에서 투신한 ‘김우진과 윤심덕이 단지 불륜에 의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뮤지컬은 격동의 시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사이에 신원 미상의 ‘사내’를 끌어들였다.

이들을 구원해주기 위해 등장한 ‘사내’의 행동 하나 하나는 촘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성종완 연출가는 "처음엔 우진과 심덕의 이야기로 글을 썼는데, 재연을 올리면서 어느 날 '이건 사내의 러브스토리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결국 사내를 중심에 놓고 보면 "금지된 사랑과 금지된 낭만, 이 모든 걸 사내가 자기 이야기로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는 의미다. 김은영 작곡가는 윤심덕의 ‘날개가 찢긴 한 마리 물새’, 김우진의 ‘그가 사라진 이유’, 사내의 ‘완벽한 결말’ 넘버를 새롭게 추가했다.

DCF 대명문화공장 비발디파크홀 개막작, 뮤지컬 <글루미데이>가 지난달 28일 개막했다. 초연에 이어 ‘사내’ 역을 맡은 배우 정민을 만나 <글루미데이>에 숨겨져있는 매혹적 이야기를 들었다. 스마일 맨 배우로 알려진 정민의 진짜 인생 이야기도 함께 공개한다.

■ “사내는 똑같이 싸워도 우월한 위치에서 싸우는 사람”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참여하게 됐다. 이 작품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2009년에 윤당 아트홀에서 닐 사이먼의 <굿 닥터>를 워크숍 공연으로 올린 적이 있어요. 그 때는 성종완 연출을 몰랐을 때인데, 다른 배우와 인연이 돼서 저희 공연을 보러 오셨어요. 그 후 3년이 지나서 성 연출이 ‘제 이미지가 생각나는 역할이 있다’면서 연락을 해 왔어요. 전 전화로 OK란 답을 한 뒤 제작사를 찾아가, 어떤 분들과 함께 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최종적으로 하기로 결정했어요. (작품 자체의 매력 이외에도 함께하는 배우들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결정요인이었나) 창작 대본은 제가 읽고 ‘좋다 안 좋다’ 평을 하기 어려워요. 또 창작은 아는 사람과 하면 좀 더 재미있어요. 창작은 배우가 만들어가야 하는 게 많은데, 상대적으로 모르는 사람과 하면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해 초반엔 불편함이 있거든요. 그런데 <글루미데이>는 멤버들이 다 아는 사람이고, 친한 사람이라고 해서 마냥 좋다고 했어요.”

-지난 해 사내 역을 해 보니 어땠나?
“사내 역이 악한 인물이랄까요. 아니 악하기 보단 남보단 우월한 느낌이었던 게 힘들었어요. 쉬운 느낌일지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어려웠어요. 똑같이 싸워도 우월한 위치에서 싸우는 사람이 있고, 징징대면서 싸우는 사람이 있어요. 후자처럼 싸웠다면 내가 벌써 졌겠죠. 중반 이후 사내는 우진보다 항상 우월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연출이 이 작품을 영화로 찍는다면, 사내는 배우 류승범, 김우진은 이정재, 윤심덕은 전지현이 그려진다고 했어요. 전 영화 <신세계>의 황정민 배우가 떠오르기도 했죠. 그 배우들을 보면 항상 위에서 싸워요. 우월해요. 그 느낌이 보기에는 쉬운데 하면 어려워요. 미묘한 1프로를 못 채워 항상 고민하고 갈등하게 됐어요. 그 1프로를 이번엔 채워 넣어야죠.“

-창작극 초연인데다, 특히 사내라는 인물은 더더욱 어려웠을 것 같다.
“김우진이 실존인물이라 처음엔 우진 위주로 상황을 만들어 갔어요. 우진을 가운데 놓고 사내가 ‘이랬을거다. 저랬을거다’에 대해 의견을 나눴어요. 대본 수정을 많이 거쳤죠. 서브텍스트에 대한 의견을 정말 많이 나눠가졌어요. 6년의 이야기를 다루는 거라 대본이 광활해요. 그 대본을 1시간 반으로 줄이니 생략 하는 부분이 생기게 되죠. 윤희석 형이 이런 말을 했어요. ‘드라마로 하면 16부작은 나와야 할 이야기인데, 공연에서는 한시간 반으로 줄여서 하려고 하니 정말 힘든 작업이다’ 게다가 작품 자체가 위인전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이야기잖아요. 해결이 안 난 이야기로 대본을 봤을 때 흥미로운 부분이 분명 있어요.”

-연습 과정은 어땠나?
“연습과정은 프리해요. 조명이나 동선은 정해져있지만, 매번 프리동산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공연도 매일 보러 오면 매일 달랐을 겁니다. 물론 기본 방향은 똑같아요. 연출이 ‘마음 껏 놀아라’ 해도 배우는 무대 말고는 어디 갈 곳이 없어요. 배우가 무대에 있지 객석으로 갈 수 없잖아요. 다만 주고받는 감정선이 조금씩 달라요. 쉽게 말해 ‘오늘은 컵이 비뚤어졌다’ 그 정도 다르겠죠. 하지만 이게 나비 효과 처럼 점점 커져요. 그 느낌이 쌓여 뒤에 가다보면 ‘아! 이런 느낌이다’로 다가오죠. 미묘하게 달라지는 상황에 대해 배우들끼리 사전에 이야기해요. 약속 하에 진행됩니다. 돌발로는 안 해요. 즉흥으로 하면 큰일 나죠. 연습 하면서 재미있어요. 마치 로맨틱 코미디처럼 연습했어요. 지루하지 않고 피곤한 것 모를 정도로요.”

-재연 올리면서 달라진 점이라면
“명확하지 않아 매력적일 수 있는데, 이번엔 명확하게 가자는 말이 나왔어요. 그렇다고 아예 친절하게 보여주기 보다는 초연보다는 명확하게 보여줘요. 우진이가 사내에게 공포를 느끼는 부분의 진실을 보충해주는 장면이 추가됐어요. 사내란 인물은 정체를 드러내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다만 초연 때 사내가 허구적인 느낌들이 많이 들었다면, 그 느낌이 많이 사라졌어요. 신비적인 느낌보다 현실적인 인물로 연기 톤도 맞춰서 갔어요. 중요한 건 사내가 실존하는 인물이든 실존하지 않은 인물이어도 무관하다. 굳이 그런 규제를 두지 말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어요. 새로운 배우들이 들어오면서 명확해진 건 맞는데, 정의내리긴 쉽지 않네요. ‘1더하기 1은 2다’고 알고 있는 사람에게 1 더하기 1은 1.5일수도 있다‘ 이렇게 말할 순 없잖아요.”

-재연에서는 역할을 바꿔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이번 재연에서 김우진 역을 하라고 제안했는데, ‘안 한다’고 했어요. 같은 공연인데 역할을 바꿔서 나오면 관객도 웃기고 하는 나도 웃길 것 같아요. 간혹 그런 공연들이 있긴 해요. 전병욱 배우는 <김종욱 찾기>에서 멀티맨 역을 먼저 하고 나중에 김종욱 역으로 나왔죠. 그 공연은 그렇게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저희 공연은 무겁게 정극식으로 가야 하는데, 배우가 역할을 바꾸면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요. 김우진 이란 역은 제가 예전에 했던 뮤지컬 <달콤한 인생>이 떠오르기도 해요. 성격적으로도 김우진이란 캐릭터가 잘 맞는 면도 있어요,”



■ “우진은 자신 개혁의지를 이끌어주는 ‘사내’에게 끌린다.”

-사내는 능력이 특별한 사람인가
“초연 때 성 연출이 이규형이랑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라면, 사내란 캐릭터는 오히려 차가운 색깔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했어요. 어떤 차가운 느낌의 사람인거죠. 사내가 신(god)이냐,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냐.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지만, 전 우진이의 또 다른 자아인 건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사내 역 배우들이 만들어가기 나름이죠.

김우진은 부친의 가업을 물려받아야 했어요. 아버지 말에 꼼짝 못하는 사람인거죠. 김우진이 사내에게 끌리는 건, 자신의 개혁의지를 끌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진의 아버지는 그 당시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친일파였을 확률이 높아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김우진의 개혁의지는 실현되기 어렵죠. 그런 우진에게 사내가 나타나 ‘너 머릿속에 개혁의지에 대한 생각들이 많은데 내가 다 실현 시켜줄게.’ 라고 제안하면 너무 매력적이죠. ‘나 운동해야 해’ 이렇게 말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옆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하게 되듯이요. 실제로 그 사람은 ‘나 요새 운동 다녀’라고 말 할 수 있겠죠.

그렇게 봤을 때, 우진 입장에선 사내에게 끌릴 수밖에 없어요. 사내는 그걸 알고 행동을 한거죠. 그런데 사내는 개혁이란 것에 관심이 없어요. 우진에게 접근하면서, 이렇게 하면 우진이 ‘혹’ 넘어오겠구나. 오케이, 그 다음엔 윤심덕에게 접근해야지. 이렇게 마음을 먹었겠죠. 우진의 생활을 그려보면, 낮엔 가업을 물려받기 위한 일을 했을 것이고 저녁엔 세상에 펼치지 못한 것들을 글로 썼을 것 같아요. 낮과 밤이 다르지 않았을까요. 낮엔 젠틀한 모습을 보였지만 밤엔 술이나 대마초에 찌들어 있었겠죠. 인생이 힘든 데 어떻게 살겠어요? 우진이가 그러니 정신분열이 오고, 약이나 술을 안 먹으면 밤에 잠을 잘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심덕이란 여자에게 신경을 못 써 심덕이랑 사이가 멀어지게 돼요. 그 때 사내가 심덕과 시간을 보내게 되죠.”
-그렇게 사내를 만난 심덕은 사내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게 되나?
“사내는 심덕이 찰나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껴요. 일탈을 꿈꾸는 사람이자, 그걸 대신해주는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심덕은 실제 그렇게 살고 있으니 멋있죠. 심덕이란 캐릭터를 여자 관객들이 많이 좋아해요. 심덕이 대사 중에 ‘짜증나.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지 마’ 란 대사도 있죠. (참고로 이 대사는 김은영 작곡가가 개인적으로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대사라고 밝혔다)

심덕이 사내에게 느끼는 매력은 ‘친구’에 가까워요. ‘그와 어떤 사이야’라는 우진의 물음에 심덕은 ‘니가 내 옆에 없었을 때도 계속 옆에 있었어’로 말해요. 그 말 하나로 충분한 거죠. 사내는 옆에서 항상 챙겨줬던 친구인데, 심덕이 생각하는 친구 개념은 벗 보다 깊은 친구사이 같아요. 애인은 아니지만 우정 같은 사랑이죠. 손만 잡는 그런 친구보다 깊은 스킨십이 있는 관계요.”

■ 19금 영화로 변신 가능한 뮤지컬 <글루미데이>

-심덕이 말하는 ‘우진과 사내의 온도가 다르다’ 또한 그런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나
“그 장면에서 사내가 요구하는 건 질투예요. 일부러 도발하게 하려는 거죠. 되게 직설적인 장면인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심덕에게 매력을 느끼게 돼요. 항상 사내는 심덕이 우진을 선택할 수 없게 하는 복선을 까는 걸 노려요. 사내는 ‘니가 왜 김우진을 사랑하냐? 그는 유부남이고 애인도 따로 있다. 이런 차이 이런 차이 등을 말 하며 비아냥거려요. 심덕은 그 당시 코 성형수술을 하고 원 나이트를 할 정도로 열려있는 여자였어요. 홍난파 등 애인도 많았구요. 그런데 우리 작품이 그리는 건 실제 심덕의 외면이 아닌 내면인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온도’ 란 단어가 가능했을 거라 봐요. 아름다운 여성으로 비춰질 수 있는 ‘찰나에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구요.”

처음엔 ‘온도’ 이야기 그 부분에서, 세 명이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도 넣자는 말이 나왔어요. 세 명이 다 찰나에 사는 사람이란 의미로요. 영화 <글루미선데이>, <몽상가> 포스터 등을 보면 그런 의미가 느껴지죠. 심덕이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느낌도 주고, 세 명이 네 거 내 거 없는 한 배를 탄 느낌을 공유하려면 그 장면이 들어오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관람 수위도 너무 높아지고, 해석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서브텍스트들이 있어요.”

-뮤지컬 <글루미데이>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더 다양한 장면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라면 19금 영화가 됐겠죠. 그럼 그 ‘온도’ 장면에서 훨씬 더 한 장면이 나왔을 수 있겠죠. 사실 심덕이 말한 그 대사가 사내에겐 자존심 상한 이야기잖아요. 따지고 보면 심덕은 사내랑도 잠자리를 하고 우진과도 잠자리를 해요. 그런데도 당돌하게 말하죠. 너랑은 즐기는 잠자리이고 김우진은 사랑의 잠자리야. 심덕은 그런 여자죠. 그런 모습이 사내에겐 먹이감으로 베스트죠. 사내는 심덕을 그렇게 최고의 순간,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올려놓고 싶어해요. 사내는 심덕과 떠나는 걸로 계획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힘들어요. 심덕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찰나의 순간을 선택했을 수도 있어요. 연예인들이 최고의 순간에서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는 그런 마음도 있었겠죠.”

-사내의 궁극적인 목표는 뭔가?
“사내의 목표는 구원자죠. 난 너희를 구원 해주러 온 거다. 너네 삶이 힘들지만, 지금이 최고야. 너희들이 스스로 선택하면서 얻고자 하는 게 뭐냐?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해줄게. 최고의 순간에 스스로 선택해서 그 삶을 마감해. 결국 ‘너희들은 인생의 어떤 목표가 있어서 살고 있냐?’ 생각해 보라는 거죠. 김우진이 나한테 조종당하면서 끌려다니다가 마지막에 심덕을 선택해요. 그 둘이 죽었을 수도 있지만 남이 선택한 죽음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죽음입니다. 그게 우리가 말하는 메시지이죠. 메시지를 글로 써서 보여주면 좋겠지만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지는 않는 거죠. 그런 것이겠죠.”

-연습 하면서 즐거운 에피소드가 많았을 거 같다.
“오늘도 마지막 장면 연습하면서 너무 웃겨서 깔깔 웃고 왔어요. 정문성 형이랑 <글루미데이> 후속 편 이야기를 했는데, 파도가 심하게 쳐서 이 둘이 죽지 않았을까? 우진의 집이 부자이니 준비된 보트가 이들이 타고 있었던 배보다 더 큰 게 아니었을까? 에 대한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나누며 막 웃었어요.

어제는 사내 역으로 새로 투입 된 신성민 배우에게 무대에 먼저 서본 입장에서, 뒤에 동선들을 알려줬어요. 사내가 마지막에 되게 바쁘거든요. 앞에선 안 그러는 데 뒤에선 정말 빨리 빨리 걸어다녀야 해요. 무대 뒤가 정말 협소해서 더 그래요. 보여지는 장면은 멋있는데, 실질적으론 되게 멋있는 척, 숨 안 찬 척 하지만 정말 바빠요. 이 장면들을 성민이한테 움직임으로 보여줬는데, ‘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렇게 움직였냐’고 물어 보더군요. 그리고선 성민 배우가 웃음 터져서 깔깔 거리고, 한명이 참으면 계속 그 장면이 생각나서 또 웃고, 그렇게 연습 시간이 재미있어요. 안유진 누나가 제일 웃기죠.”



■ 스마일 맨 배우 정민의 진짜 이야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부를 상당히 깊게 하는 배우 같다.
“이 계통에 발을 붙이고 나서, 대본 분석하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이건 제 취미 생활이라고 말 할 정도로요. 대본 분석이라기보다는 장면에 대해 혼자 잡생각을 많이 해요. ‘이래서 그러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 해 보는 걸 좋아해요. 각 장면의 감정을 알고 있으면 연기 하는 것도 달라지잖아요.”

-연출가로서 기질도 보인다
“처음엔 연출을 하고 싶었어요. 연출은 분석가, 액팅코치 라기 보다는 큰 크림을 그리는 사람이죠. 음악, 조명, 무대, 객석까지 그림을 그리죠. 그 모든 걸 생각해서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게요. 극장별로 나라별로 포지션이 다 다른 것 같아요. 소극장은 연출이 액팅 디렉터까지 다 해요. 특히 우리나라 경우엔 거의 그래요. 그런데 외국 공연 팀이 들어와서 하는 대극장 공연을 보면 액팅 코치가 따로 있어요. 우리는 아직 그런 시스템이 안 돼 있죠.”

-성 연출이 애정을 담아 정민 배우는 ‘단순해서 좋다’고 말했다.
“연기할 때 머리 돌려가면서 하지 않아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머리만 돌리면서 연기에 접근 하다 보면 배우의 행동에 제약이 오거든요. 저 역시 연출처럼 큰 그림을 그리고 접근해요. 대본 분석은 기본적으로 배우에게 필요한 거고요. 제가 파고들어서 분석한다고 해서 연기가 다르진 않아요. 이래서 이랬다는 느낌을 아니 상대 배우와 맞춰가면서 하는 작업이 더 수월해지죠. 겉으론 김우진과 닮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생각이 깊다면 깊은 건데, 이런 이야기 듣는 것도 싫어요. 딱히 설명해 줄 것 없는 편한 배우가 더 좋아요.”

-스마일 맨 이란 별명이 있다.
“제가 누나가 2명이라 여성적인 감각이랄까, 오감이랄까. 하여튼 제가 여자들이 있는 직감 같은 게 강하고, 신경감각이 퍼져 있어서 섬세해요. 그런데 이런 점이 배우로서 안 좋을 때가 있어요. 배우라는 게 릴렉스 돼 있어 하는데, 항상 텐션이 돼 있으니 신경이 쓰였어요. 내가 이렇게 해보고 싶은데 상대 배우가 불편할 까봐 못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고요. 남들 눈 신경 쓰고, 상대 기분 신경쓰다보니, 스마일 맨 이란 별명이 붙었어요.

화낸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붙은 별명인데 저도 사람인데 화내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저도 제 안에 걸 분출하고 싶어졌어요. 우울증도 오고 몸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29세~30세 그 시기에 작품을 안 하고 1년 동안 여행을 많이 했어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버티고 있는데, 성에도 안 차고 과연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란 생각을 했어요. 혼자 한국일주. 세계 일주를 여행을 하면서요. 그 뒤에 한 작품이 뮤지컬 <캣츠>의 럼텀터커 역이었어요. 서른 지나니 더 좋은 것 같아요.”

-그 시기에 제작 일도 같이 하게 된 건가
“나 스스로 ‘배우 직업은 안 맞나 보다’ 란 생각이 들어 회사를 차렸어요. <논두렁연가> 제작사 공동대표로 있어요. 서울에서도 반응이 좋았고, 지방에서도 콜이 많이 온 공연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제작사 입장이 되니 배우들이 절 불편해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배우와 제작사를 다르게 보나봐요.”

-서른을 앞에 두고 성격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성격이 쉽사리 바뀌진 않는다.
“제가 주변을 의식해서 그런지 욕도 못해요. 서른부터 담배도 피우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술도 엄청 먹었어요. 학교 다닐 땐, 학교랑 도서관, 집 이렇게만 왔다 갔다 할 정도로 갇혀 있었어요. 엄마랑 시장도 같이 가고, 우리 집에선 말썽 한번 안 부린 착한 아들이었죠.

그런데 중학생 때 방학 동안 한 번도 밖을 나가지 않았어요.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닌데, 방학이 되면 어느 누구도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그 때는 어릴 때라 거기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다시 방학이 찾아왔는데, 또 혼자 남게 됐어요. 그때는 정말 나가서 놀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몰랐죠. 당시는 핸드폰도 없었던 시기라, 집으로 전화하는 세대인데, 전화하면 되는데, 그 생각을 못했어요. 해 본적이 없어서요. 친구를 만나는 방법을 몰랐던 거죠. 학교 다닐 때는 친하게 붙어 다니지만 방학 때는 안 보는 친구? 그건 친구 느낌이 아니구나란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들어가 변화를 줘야겠다 마음 먹었어요. 그 때 알게 된 친구 형이 서울예술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신도 연극영화과 간다고 해서 같이 압구정에 있는 건택사단을 다니며 서울예전에 들어가게 됐어요.”

-배우를 하기로 마음 먹고 들어간 대학교 생활은 어땠나?
“대학교 1학년 때 숫기가 없어 여자 동기한테 ‘수학책 빌려줘’ 한마디 하고 얼굴이 빨게 진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 걸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 너 좋다’고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여자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그랬더니 여자랑 이야기하는 게 편해져서 저도 신기했어요. 사람이 변화를 시도 하는 건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가능해요. 날 아는 사람이 없을 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자리를 기다렸죠.”

배우 정민의 20대 이야기가 흡입도 있게 흘러가고 있을 때 2시간 가까이 진행 된 인터뷰는 아쉽게 막을 내려야했다. ‘다음에 꼭 다시 인터뷰로 만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더니 정민 배우는 “인터뷰 말고 편하게 수다 떠는 시간 기다릴게요”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정민은 “<글루미데이>의 또 다른 제목은 <해피데이>입니다”라고 전했다. “제목만 봐서는 어둡고 우울한 느낌을 먼저 받아요. 주인공들의 마지막을 해피엔딩이라 생각 한 사람도 많지 않나봐요. 하지만 <글루미데이>는 힘든 상황에서 그걸 이겨내는, 희망을 주는 작품입니다. 또 다른 제목을 정한다면, 전 <해피데이> 혹은 <원 데이>로 부르고 싶어요”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허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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